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79
00679 153. 사교 처단 =========================
지켜보고 있던 렐그낙이 다가가 굴러가 버린 해골을 주워들었다.
“크윽… 가, 감히 너희들이 신을 몰라보고 이런 무엄한…”
머리만 따로 떨어진 주제에 덜그럭 거리며 말도 잘 한다. 하기야 본래의 육체도 성대 따윈 이미 썩어 문드러져 있는 상태였으니, 이제 와서 그걸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신기하군. 머리만 있어도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호기심 넘치는 목소리로 형진이 그렇게 말하자, 놈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 불사의 권능을 지닌 나는 이 정도쯤은… 아악! 네놈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아마도 리치라는 특성상 육신이 사라진다 해도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이렇게 기고만장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놈은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몸을 붙잡고 있던 즈라탈이 불길을 일으켜 놈의 몸을 태워버리기 시작한 탓이다.
“머리만 있어도 말 하는데 지장이 없다면, 몸 같은 건 딱히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즈라탈의 말에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긴 그렇겠군. 하지만 그렇게 하면 냄새가 배지 않겠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체 타는 냄새가 역겨운 건 마찬가지다.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리 줘봐. 내가 해보도록 하지.”
“여기…”
형진은 즈라탈에게서 리치의 몸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결계로 감싸 연기나 냄새가 퍼지지 않도록 조치한 다음 불의 속성력을 일으켜 마저 깔끔하게 불태워 버렸다.
“아악! 안 돼! 멈춰! 무슨 짓이야! 이 무엄한… 컥!”
자신의 육체가 순식간에 불타 사라지는 모습에 놈은 화들짝 놀라며 그렇게 소리쳤지만, 렐그낙의 턱뼈를 뽑아버리자 그나마도 할 수 없게 되버리고 말았다.
“턱뼈를 뽑히면 말을 못하는 건가.”
“다시 끼워 보겠습니다.”
렐그낙이 다시 턱뼈를 끼워 봤지만, 힘으로 우악스럽게 뽑아 버린 탓인지 앞서와는 달리 헐거워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신기한 구조다. 몸이 다 불타 버려도 나불거리는 주제에 고작 턱뼈가 뽑혔다고 말을 못하다니.
“감히… 어둠의… 신인… 나에게…”
물론 그 와중에도 놈은 그런 식으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물론 그 말에 귀기울이는 자는 이곳에 단 하나도 없었다.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할까요.”
사로잡힌 채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는 다른 사교도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묻는 즈라탈의 말에 형진은 짤막하게 답했다.
“예정대로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즈라탈은 정신을 잃은 놈들을 하나씩 깨워서 형진 앞에 데리고 나왔고, 그는 혹시라도 운나쁘게 이번 일에 휘말린 자들이 없는지 살피고는 그들을 어딘가로 보내버렸다. 이들은 사교도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자들이었기에, 의식을 진행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태양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았다.
“그럼… 남은 건 이 놈 뿐인데.”
형진이 돌아보자, 놈은 헐거워진 턱뼈로 힘겹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날 받든다면…”
이 상황이 되어서도 놈은 여전히 신 노릇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형진은 피식 웃어 버리고는 손을 뻗어 놈의 해골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추억의 권능을 불러일으켜 놈의 기억을 살폈다.
“…”
서서히 밀려드는 놈의 기억에 형진의 얼굴은 찌푸려졌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언데드라고는 해도 오래된 자 같은 이들을 제외하면 정말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존재 같은 건 별로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언데드는 이성보다는 욕망을 우선하는 존재이고, 그 육신에 기억 같은 걸 남겨두는 일도 별로 없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하지만 이 놈은 달랐다.
“괜히 신 타령을 하는 것이 아니었군.”
스스로를 타즈프라고 칭하는 리치는 실로 앙그릴의 역사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놈이 처음 리치가 된 것은 하나의 국가가 소멸하고 새롭게 탄생하는 혼란의 시기. 그런 시기에 한 명의 마법사가 사기를 모아들여 그것을 마력으로 대신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 일을 진행하던 와중에 다른 세계로부터 존재 하나를 불러들이게 되었다.
타즈프는 처음에 마법사조차 아닌 평범한 청년이었다. 징집되어 전장에 끌려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다 죽어가는 것을 마법사가 빼돌려 실험체가 되어 버린 가련한 존재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실험이 타즈프의 인생을 바꾸었다. 다른 세계에서 불러들인 존재와의 융합을 통해, 그는 불사의 신체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타즈프는 자신과 융합한 무언가를 통해 힘을 얻었고, 자신을 실험체로 만든 마법사를 죽인 뒤 그가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자신에게 힘을 부여한 무언가를 불러들이는 법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불사의 신체를 가지게 된 타즈프였으나, 그는 또한 자신의 신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천히 말라비틀어지며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음식을 씹으면 모래를 씹는 것 같았고, 아름다운 여자를 봐도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떠한 쾌락도 그에게는 의미가 없었고, 이래서는 아무리 불사의 신체를 가졌어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타즈프는 미친 듯이 마법을 연구했다. 본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무지렁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마법을 연구해도 자신이 몸을 되돌릴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이 이런 모습이 된 것은 다른 세계의 존재를 불러들여 융합한 결과이다. 만약 더 강력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불러들여 융합할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타즈프는 당시 번영하고 있던 세계에 죽음을 뿌려댔다. 불사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데다 인간의 일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 마법을 연구한 그를 막아설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었고, 그로 인해 세계는 멸망 직전까지 내몰려야만 했다. 물론 당시에 인간은 세계 전부를 석권할 정도도 아니었고, 인구 또한 지금에 비하면 훨씬 작은 수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한 명의 타락한 마법사에 의해 멸망 직전까지 내몰렸던 것이다.
그렇게 모아들인 사기로 타즈프는 다른 세계에서 무언가를 불러들이는 의식을 치렀다. 그렇게 해서 불러들인 것이 바로 방금 전에 쓰러뜨린 왕도마뱀이었다.
모처럼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를 불러들이는데 성공했지만, 그것은 타즈프가 원한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이를테면 열심히 지갑을 탈탈 털어 가챠를 실행했는데 엉뚱한 녀석이 나온 셈이다.
다시 한 번 같은 일을 실행하려 했지만, 타즈프는 자신에 의해 인간이 절멸 직전까지 내몰렸음을 깨달았다. 이래서는 다시 한 번 같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업었고, 놈은 그래서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인간들을 다시금 부흥시키는 일에 매진했다.
놈이 스스로를 어둠의 신이라 칭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즈음의 일이었다. 인간과 그들이 일구어 가는 문명을 배후에서 손에 쥐고 흔드는 그의 존재는 실로 이 세계에서는 신과도 같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급하게 가지 않고 꾸준하게 진행했다. 사기 역시 무작정 숫자만으로 끌어모으는 것을 넘어서서 원한과 슬픔이 가득 담긴 순도 높고 농밀하게 연성했다.
그렇게 해서 불러들인 것이 바로 티폰이었다.
물론 이것도 타즈프의 입장에서는 실패나 다름없는 일이었지만, 소환된 존재가 상상을 불허하는 엄청난 존재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아가면 이번에야 말로 신적인 존재를 불러들여 융합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이런 말라비틀어진 시체 같은 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신의 육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신이 되는 것이다!
타즈프는 그와 같은 생각에 급하게 사기를 끌어 모아 다시 한 번 의식을 치르려다가 주시자의 손에 의해 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다.
“너… 넌… 도대체…”
정확히 형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지금껏 보아왔던 어떤 인간과도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타즈프는 비로소 깨달았다. 추억의 권능을 통해 기억을 내보이면서 형진의 격과 접촉한 탓이다.
형진은 놈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주시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무너져 내린 도마뱀의 잔해 아래쪽에 이 놈의 핵이 있다. 가져 오도록.”
“명하신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의 신이시여.”
즈라탈을 위시한 주시자들은 곧바로 형진이 마킹해준 곳을 뒤져 요사스런 붉은 빛을 지닌 구슬이 담긴 고풍스런 느낌의 유리 항아리를 꺼내 가지고 왔다. 항아리가 있던 곳에는 또한 타즈프가 오랜 시간 동안 모아들인 이 세계의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왕도마뱀의 진정한 역할은 침입자를 물리치는 일이 아니라 바로 그것들을 지키는 것이었다.
“어, 어떻게…”
“글쎄.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 아니었나.”
“…”
타즈프는 말을 잃었다. 그저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자신의 핵을 손에 쥐고 있는 형진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실험은 실패가… 아니었다는 얘긴가. 정말로 나는 신을 불러냈다는 말인가…”
넋이 나간 듯한 타즈프의 중얼거림에 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놈의 실험은 실패였다. 그것을 통해 불려 나온 것은 세계를 먹어치우는 종말의 괴수. 내가 기르고 있는 놈일 뿐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지금 이런 식으로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형진의 담담한 말에 타즈프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엇!”
놈은 갑자기 머리밖에 남지 않은 육신으로 맹렬하게 사기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놀란 렐그낙이 깜짝 놀라며 손을 놓자 머리만으로 사방을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외쳤다.
“내놔라! 그 몸… 나의 것이다! 너를 불러낸 자의 뜻에 따라… 그 몸을 내게 바쳐라!”
아무래도 타즈프는 모처럼 설명해준 형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놈은 그저 자신 앞에 존재하는 완벽한 신의 육체를 얻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랄.”
하지만 형진은 그런 식으로 소리 지르며 발악하는 타즈프의 사기를 단숨에 찔러 흩어버렸다.
“컥.”
모처럼 쥐어짠 사기가 단번에 인스턴트 킬로 파훼되자, 타즈프는 그 반작용으로 경직에 걸리고 말았다.
놈의 머리가 허공에 우뚝 멈추어 서자, 렐그낙은 급히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잡았다. 이번에야 말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형진은 들고 있던 유리 항아리를 부수고, 그 안에 담겨져 있던 섬뜩한 느낌의 붉은 구슬을 손에 쥐고는 그것을 밤의 권능으로 감싸버렸다.
“이, 이것이… 신의 힘…”
자신의 핵을 감싸버린 강대한 힘에 타즈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정한 신의 힘이란, 자신이 상상했던 것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이해했다.
“처음부터… 나는 실패작이었던 것인가.”
타즈프는 최후를 예감했고, 그 순간 사방에서 가해지는 압력을 견디지 못한 핵이 부서졌다.
핵이 부서지자 놈에게 남은 마지막 육신인 머리가 힘없이 무너지며 한줌의 먼지가 되었고, 그나마도 푸른 불꽃이 확 피어오르며 불타서 사라져 버렸다.
앙그릴이라는 행성 전체를 아우르며, 스스로 신이라 칭하며 배후에서 군림했던 거대한 악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후우…”
처음 앙그릴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어째서 이런 행성에 티폰이 불려나온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이런 거대한 악이 도사리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세상의 인간들을 마치 가축처럼 기르고 있던 그런 존재가.
그러다 문득 형진은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과연 신이란 어떤 존재일까. 자신이 타즈프라는 이름의 리치와 다른 점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혹시나 타즈프와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그는 떠올리고 있었다.
스스로의 육신이 지닌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거대한 도마뱀의 모습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형진은 앙그릴 전역에서 주시자들이 임무를 모두 완수했다는 보고를 전해 듣자, 자신의 주위에 늘어선 추종자들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모두 수고했다. 이만 돌아가자.”
형진의 말에, 주시자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네. 나의 신이시여.”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