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80
00680 154. 침입 =========================
사교의 처단은 일단락되었다. 암중에 도사린 채 앙그릴이라는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던 존재인 타즈프 역시 한 줌 먼지로 변하며 소멸해 버렸다. 하지만 놈이 존재했던 시간은 형진의 예상을 까마득히 벗어날 정도로 길었고, 그것은 바꿔 말하면 이 세계 어딘가에 그만큼 많은 잔재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된다. 이제 앙그릴이 형진의 영향력에 들어온 이상, 다른 세계와 교류하기 전에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르는 그런 위험 요소들은 완전히 소탕되어야만 한다.
형진은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기 위해 앙그릴에 대한 감시 체계를 강화했다. 그리고 타즈프가 남긴 자료들을 확인해 남아 있는 잔재를 색출하기로 했다.
“괜찮겠어? 혼자서.”
“원래 이전부터 해왔던 일인걸.”
“하긴. 여신님의 관음증은 따라갈 이가 없지.”
“…”
공포와 죽음은 형진을 가늘게 노려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형진은 결국 하룻밤 내내 열심히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난 뒤에나 여신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었다.
“그럼 잘 해봐.”
“네. 걱정 마세요.”
카트린에게는 형진이 지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앙그릴에 존재하는 여러 나라들을 순방하는 일이 맡겨졌다. 본인 역시 성물의 수호자인데다 오빠인 크루그와 이곳에서 사귄 친구인 라만, 그리고 힐리에타를 비롯한 주시자들이 곁을 지키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사절들이 탑승한 일곱 척의 범선이 앙그릴을 순회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며, 형진은 자신이 얻은 룻을 확인했다. 타즈프의 것은 특별할 것이 없는 잡템이었지만, 왕도마뱀을 해치우고 얻은 룻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종류의 물건이었다.
아이템정보
명칭 : 의지의 성채
등급 : 전설
사용제한 : 일정이상의 체력, 혹은 정기.
설명 : 전설 속의 대괴수 베헤모스의 힘이 담긴 방어구. 의지에 따라 형상이 변화하며, 사용자에게 성채와 같은 방어력을 선사한다. 착용 중에 지속적으로 체력이나 정기가 소모된다.
효과 : 방어력 대폭 강화. 약점 은닉. 내구도 재생. 체력 증폭.
강화시 효과 : 방어, 의지, 내구도 증가.
“엄청난데 이거.”
다른 건 몰라도 약점을 숨기는 능력만큼은 정말 마음에 든다. 사실 파괴와 재생이나 형진이 지닌 힘들은 상대의 방어를 무시하고 작용하는 힘들이라는 적이 치명적인데, 약점을 숨길 수 있다면 전투를 아무리 유리하게 이끌었어도 한 방에 훅 가거나 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육체가 아닌 아바타를 운용하는 신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특히나 더 중요한 부분이다.
“여러 벌 있으면 좋을 텐데.”
“왜?”
“너희들에게도 나눠주려고.”
그 왕도마뱀이 베헤모스였다는 점도 놀라운 사실. 하지만 타즈프가 베헤모스를 소환한 것조차 상당한 과거의 일이다. 그 시점에서도 이미 언데드 상태였다면 지금쯤은 이미 베헤모스가 존재했던 세계는 이미 티폰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의지의 성채는 등급은 전설급이라도 사실상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유사 신격이란 것의 연구를 시작하기는 했어도 언제 실마리를 찾고 완성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 그렇다면 최소한 약점을 단숨에 찔려 즉사하는 사태를 막아주는 이러한 방어구는 파괴와 재생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지의 성채를 허세와 망상에게 보여 주었다.
“이게 방어구라고?”
착용하지 않은 의지의 성채는 거무튀튀하게 변색된 손바닥 만한 비늘 같은 형상이다. 이것을 가슴에 가져다 대고 의지를 불어넣으면 비로소 원하는 형태의 방어구로 모습을 바꾸는 식이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체력과 정기가 부족해서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 어렵겠지만, 형진이라면 착용한 모습 그대로 하루 종일은 물론이고 평생을 보내도 상관이 없다. 극단적으로는 다 벗고 의지의 성채만 입고 다녀도 다른 사람들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기이하군. 의지와 정기를 받아들여 자체적으로 증식하면서 형태를 만들어내는 건가.”
잠시 살펴보긴 했지만, 허세와 망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이건 어려울 것 같아. 하다못해 베헤모스라는 그 생물을 직접 볼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역시 그렇습니까.”
사실 그리 큰 기대를 한 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영혼 포식자 같은 걸 마구 뽑아내어 주시자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을테니까.
어쨌든 그런 식으로 앙그릴의 일이 일단락될 즈음, 소행성대의 얼음을 가져다가 달에 가져다 놓는 일들이 끝났다.
사실 지구 전체로 따져도 지표상의 물은 그리 많지 않다. 지표상의 모든 물을 모아 구슬 형태로 만들어 봐야 그 지름은 한반도 전체의 길이보다 조금 더 긴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지하수를 포함한 수치이다. 지표가 아닌 지구 내부에 숨어있는 물까지 포함하면, 이 수치는 다시 최소 1.5배에서 11배까지 늘어난다.
달의 표면적인 지구보다 훨씬 작은 수준이고, 때문에 단순히 그 표면을 물로 덮는 수준이라면 생각보다 필요한 물의 양은 그리 크지 않다. 기존의 추진 체계로는 그것을 가져다 옮기는 것조차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되는 큰일이지만, 형진에게는 딱히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내막을 잘 모르는 지구의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달의 모습에 경악하고 있었다. 아니, 설령 이런 내막을 잘 알고 있다한들, 달의 모습이 나날이 사파이어처럼 푸르게 변화해 가는 그 모습은 절로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진행속도가 빠른데.”
“어차피 처음부터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릴거라 예상한 건 생태계 조성이었으니까요.”
“그런가.”
생태계 조성이란 건 그냥 나무 몇 그루 심어놓고 가축 풀어 놓는 정도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무나 식물, 곡식 같은 것이 자라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가지 박테리아나 균류, 곤충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수경 재배 같은 방식으로 키우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인위적인 도움이 없이 자체적으로 유지되는 생태계는 완성되지 못한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환경에서 가장 취약한 점이 바로 생태계 다양성이다. 움리드의 예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다양성이 부족한 생태계나 생명체는 돌발적인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생물 병기 한 방에 거의 대부분이 사멸해 버린 움리드의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생태계 조성은 가급적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진행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군.”
테라포밍 완료로 예상하고 있는 시간은 내년 초. 유아의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환경의 조성은 그렇다 쳐도, 역시 생태계 조성을 마무리 짓기에는 너무 촉박한 시간이다. 작은 온실을 꾸며 그 안을 닫힌 생태계로 조성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달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수많은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만은 반드시 해두어야만 해.”
“그게 뭐죠?”
“모기. 달은 모기가 없는 세상으로 만들 거야.”
“하하…”
파리, 바퀴벌레와 함께 인류의 삼대 숙적으로 불리며, 역사상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곤충이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모기만큼은 새로 만들어지는 달의 생태계에서 반드시 퇴출시킬 생각이다.
하지만 형진이나 요안나와는 달리, 하루가 다르게 모습이 바뀌는 달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큰 파급 효과를 가지고 왔다. 아무리 미라지 코어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건만, 자고 나니 밤하늘의 달이 푸르게 변해 있는 상황.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특히 이전부터 달로의 이주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는 몇몇 국가는 아예 사절단까지 꾸려서 미라지 코어의 개발부가 있는 실리콘 밸리에 죽치고 앉아 버렸다.
“국가 단위 이주는 곤란한데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지구에는 국가가 너무 많다. 그것을 굳이 달까지 그대로 옮겨갈 이유가 있겠는가. 자치구 정도는 가능할지 몰라도, 독립된 주권을 가진 국가가 달에 들어서는 건 여러 가지로 귀찮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개중에는 달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주 조약에서 어떤 국가도 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는 부분을 가지고, 국가는 안 되어도 개인이라면 상관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해석해서 소유권을 주장하고 땅을 팔아먹던 자들이 지구에는 실제로 존재했다.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가보지도 않은 알파 센타우리 같은 곳의 행성에 존재하는 토지조차 자기 방에 앉아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한술 더 떠볼까. 누군가 태양에 대한 소유권을 등록하고 태양의 에너지로부터 촉발되는 모든 부산물의 소유권이나 지분을 요구한다고 치자. 그것을 받아들일 자가 있을까. 자칫하면, 자기 생명에 대한 지분조차 지불해야 할지 모르는데.
어쨌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또다시 새로운 시대를 체감하고 있을 때, 타나토스에서 한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응?
-왜 그래?
-그게… 잠깐만.
왕성 라이언하트의 한 켠에는 여러 세계에 배치된 위성들로부터 전해지는 정보들을 받아들여 종합하는 관제실이 존재한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은 바로 요정들. 그들은 형진이 장악한 세계들로부터 전해지는 여러 가지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종합해 제랄디에게 보고하고, 제랄딘은 그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추려 다시 형진에게 알리는 식이다.
-이상한데.
-왜?
-북반구에 위치한 위성 하나가 고장인 것 같아.
-뭐?
당연한 얘기지만 위성들은 황혼의 결계와 보호의 성역을 통해 외부의 충격을 막아낸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타나토스 전체를 아우르는 보호막의 일종으로서 기능하게 되지만, 위성 자체도 그러한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위성이 고장이 났다?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뭔가 큰 일이 난 건지도 몰라!
-얼른 보고해야해!
요정들은 호들갑을 떨며 자신들이 확인한 내용을 제랄딘에게 보고했고, 실제로 위성 가운데 하나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 제랄딘은 즉각 그 내용을 형진에게 알렸다.
“위성이?”
“네.”
“언제?”
“2분쯤 됐어요.”
“알았어. 다른 변동사항이 있다면 바로 알리도록 해.”
“네.”
형진은 곧바로 황혼의 권능을 사용해 고장이 난 것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위성으로 이동했고,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일단… 결계부터 복구해야겠지.”
바로 휴대용 위성 하나를 꺼내 정해진 위치에 배치하고 활성화시킨다. 이 조치를 통해 결계는 복구되었지만, 2분 동안 결계 일부가 뚫려 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급히 돌아와 확인해 본 결과, 위성은 스스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힘에 의해 과부하가 걸려 파손된 상태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것은 일반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넓은 영역에 펼쳐져 있었다 한들, 여신의 권능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무너질 만한 것이 아니다. 즉, 무언가가 임의로 결계를 뚫고 타나토스 내부로 스며들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형진은 급히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가장 먼저 왕성 라이언하트를 둘러싼 결계를 강화했다. 어쩌면, 파괴와 재생이 역공을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신들의 회합이 열렸다.
“놈이 돌아온 것이라면 가벼운 재앙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협력하겠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신뢰와 헌신이 협력을 선언하고 나섰다. 비록 이전에 타나토스에서 이름을 떨쳤던 세 명의 대신 가운데 교단의 성장 속도가 가장 둔화되었다고는 해도, 신뢰와 헌신이 이끄는 수호자들의 저력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문제는 결계를 뚫고 들어온 곳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야. 그 짧은 시간에, 재대로 대응할 틈도 없이 결계가 뚫려 버린 건, 그만큼 강한 힘을 지닌 상대라는 의미도 되니까.”
희망과 생명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다. 형진이 급히 신들을 불러모은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이유니까.
“필요하다면… 타나토스의 인원들을 최대한 빠르게 대피시킬 방법이 필요해.”
공포와 죽음은 최악의 사태를 감안한 발언을 이어갔다. 과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신들이 진정한 힘을 드러내고 싸우면 그 세계는 순식간에 파멸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애꿎은 자들이 희생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는 분명히 있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잠깐 눈을 붙인다는게… 그냥 푹 자버려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