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16
00716 161. 대면 =========================
입이 떡 벌어진다. 분명 평범한 존재는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엘리시온을 낳은 장본인이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단 말인가.
“좀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건 틀림없는 얘기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네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을게야.”
“…”
그러고 보면 이상한 점이 있긴 했다. 이를테면 티폰이나 베헤모스 같은 존재가 그것이다.
티폰이나 베헤모스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단지 그들을 인스턴트 킬로 죽였을 때, 나타나는 아이템의 정보가 문제다. 형진이 그것을 잡았을 때, 신들은 그런 존재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템 정보에는 어째서 티폰이나 베헤모스라는 이름이 나타나는 걸까.
거짓된 천국을 만든 허세와 망상, 그리고 추종자들로 하여금 게임 시스템을 활용하도록 하고 있는 공포와 죽음에게 이런 내용을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은 이랬다.
“엘리시온에 있었던 내용이야. 나는 그것을 참고해 거짓된 천국을 만들었을 뿐이지.”
엘리시온은 그 자체로 안식의 장소이며, 또한 신들에게 있어서는 요람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어찌보면 신들이 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곳이고, 아직 완전한 신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형진으로서는 엘리시온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에 탐색은 그 정도에서 멈추었다.
다만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엘리시온이나 언데드의 영역은 결국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
그런데, 드디어 그 비밀이 밝혀졌다. 바로 그 엘리시온이 사실은 포트니아 테론으로부터 창조되었던 것이다.
“그럼… 창조신이라는 말인가. 당신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언데드의 영역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던 존재가 사실은 엘리시온을 만들어낸 자라니. 얼핏 생각하기엔 단순한 기만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나로서는 그저 낳았을 뿐이지만.”
“…”
“믿기지 않는가 보군. 하긴 무리도 아니지.”
포트니아 테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도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니 알겠지만, 사실 아이들은 어미의 뜻대로 자라나는 경우가 드물어. 설령 그것이 실현되더라도, 서로에게 갈등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지. 부모와 아이의 이상이 일치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푸욱 내쉰다.
“나 역시도 그건 마찬가지야. 위대한 어머니라 불리워도 결국은 자기 자식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존재라는 얘기지.”
“신들이 뜻대로 자라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쯤 되면 포트니아 테론에게 존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긴 했지만, 형진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평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엘리시온의 창조자라면, 아직 완전한 신조차 아닌 그에게는 우러러 볼만한 존재니까 그에 걸맞은 존경을 보내는 것이 맞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그것은 상대의 말을 아직 완전하게 믿기 어렵다는 의사 표현일 수 있었다.
포트니아 테론 역시 그런 부분을 이해했는지 달리 불쾌감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 말대로야. 자네도 이미 겪어 보았겠지만, 아주 골치 아픈 일이지.”
그녀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대부분의 신들은 엘리시온에서 자기들끼리 뭉기적거리고 있을 뿐이지. 개중에는 수호해야할 생물마저 지키지 않아 멸종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신격이 사실상 없어진 이들마저 있을 정도야. 생각해 봐. 내가 그러라고 엘리시온을 만들었겠나.”
“그건…”
형진 역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만큼은 포트니아 테론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고, 오히려 동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엘리시온은 외부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장치에 가까운 장소. 그런데 지금의 신들은 그곳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안락함만을 누리려 하고 있다. 만약 자신이 엘리시온을 만든 장본인이라도 한심스러운 기분을 저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엘리시온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그 안에 머물고 있던 신들을 잡신 취급하게 된 건 그런 이유에서인지도 몰랐다. 원래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을 누리려 하는 자는 아무리 훌륭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존경 받기 어려운 법이다. 그것은 신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밖으로 나온 아이들도 마찬가지야.”
탄식 섞인 포트니아 테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주는 수많은 세계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그 세계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공간이기도 하지. 하지만 실제로 신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은 얼마나 되는가. 이른바 대신이라 불리는 아이들도, 고작해야 하나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이야. 이 드넓은 우주 전체로 보자면 티끌이라는 말조차도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아주 한정된 공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니. 어이없는 일 아닌가? 그들이 수많은 아바타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여러 가지 상황을 즐기라는 식의 배려가 아니었다는 말이야.”
그 말에는 형진도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여러 아내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아바타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자네가 기이하게 여겨지는 건 바로 그래서야.”
포트니아 테론은 이야기의 방향을 형진에게로 돌렸다.
“자네는 본래 신으로 예정되어 태어난 존재가 아니야. 물론 파편의 힘과 인연이 연결되어 신으로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지만, 파편을 얻었다고 해서 모두 그러한 결말을 얻을 수는 없는 일이지.”
그건 형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잭 더 리퍼와 요안나를 비롯한 이들 또한 파편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반신이 되고 다시 신격을 얻어 불완전하게나마 신위를 획득한 것은 오직 그 뿐이다.
“그것까지도 사실은 그리 특별한 일이라고 보기 어려워. 문제는 자네가 지금껏 다른 신들이 한 적이 없는 일을 했다는 점이야.”
“어떤…”
“바로 영역의 확대야. 자네는 다른 신들과 작은 세계 하나를 가지고 티격태격하며 겨루기 보다는 신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더 넓은 영역을 장악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격을 강화시켰어. 내가 신들에게 바랐던, 하지만 그 어떤 신들도 하지 않았던 일을, 본래 신으로 태어나지도 않은 자네가 한 것이야.”
형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구 외의 지역으로 영역을 넓히게 된 것은 사실 파괴와 재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만약 그 미친놈이 없었다면, 형진은 지금도 지구와 타나토스를 오가며 아내들과 알콩달콩한 생활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무도 손대지 않은 블루오션이 있으니 깃발을 꽂았을 뿐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 과정에서 깃발을 꽂아도 되는 건지 좀 고민하긴 했지만.
“신들이 각기 두 가지의 신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생명체가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듯, 신격들이 지닌 가치를 수호하라는 의미를 지닌 것이지. 신의 힘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신격의 가치가 세계에 널리 퍼져 융성한다는 뜻도 되는 것이니까.”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얘기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생물의 이름을 신격으로 삼는 이들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는 일이다. 해당하는 신의 힘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신이 수호하는 생물이 융성한다는 의미. 다른 일반적인 신격 또한 그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나로서도… 의도한 일은 아니었어. 그저… 상황이 그렇게 나를 이끌었을 뿐.”
“운명이란 얘긴가.”
“거창하게 말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사실 지금까지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포트니아 테론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확실히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처음 캐릭터가 삭제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일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었을까. 자신은 물론이고, 그런 자신을 스카웃한 요안나도, 요안나에게 지시를 내렸던 공포와 죽음도 현재의 상황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잠깐. 포트니아 테론이 엘리시온을 만든 장본인이라면, 그리고 실질적으로 신들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면, 여신을 셋이나 아내로 맞이한 자신에게는 장모님이 되는 셈인가.
“좋아.”
그런 잡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형진을 바라보며 포트니아 테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을 이었다.
“자네의 운명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지,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어졌어.”
“시험?”
“그래, 시험.”
뭔가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든다. 보통 시험이라고 하면 어려운 문제를 내주고 그것을 해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안해 할 것 없어.”
“그렇게 말하니 더 불안해지는데.”
“그런가.”
포트니아 테론은 빙긋 웃었다.
“사실 난 엘리시온을 없애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지.”
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미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엘리시온을… 없앤다고?”
“아아… 물론 엘리시온만이야. 그 안에서 머물고 있는 이들까지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독이는 듯한 말투로 포트니아 테론은 말을 이었다.
“엘리시온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그것이 고된 외부의 생활로 인해 상처받고 지친 이들을 달래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지. 본래 안식이나 휴식이란 것은 그런 의미니까. 하지만 지금의 엘리시온은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안주하는 이들의 공간이 되어 버렸어. 내가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 버린 거지.”
포트니아 테론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물론 엘리시온에 머물 수 있는 자격에 대해 제한을 가하면 될 일이긴 해.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다소의 극약처방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슬슬 떠올리고 있던 참이거든. 더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물론 차마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지금까지 그 모양이긴 하지만.”
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시험이란 건 뭘 말하는 거지?”
포트니아 테론은 빙긋 웃었다.
“간단해. 내가 하지 못한 걸 해주었으면 하는 거야.”
“하지 못한 것… 설마, 엘리시온을 부수기라도 하라는 얘긴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형진이 그렇게 묻자, 포트니아 테론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엘리시온을 없앨까 했다는 얘기는 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로 말한 것 뿐이야. 아무리 그래도 무작정 그걸 없애라고 할 리가 없지. 네가 그걸 들을 이유도 없고.”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형진은 엘리시온의 실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무작정 부수라고 한들 따를 이유도 없고, 따를 능력도 되지 않는다. 다른 신들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이유도 없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고.
“그렇다면, 뭘 시키려는 거지?”
조금 누그러진 태도로 묻자, 포트니아 테론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는데 실패했어. 부모가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해줄 이를 구해야 하지만 그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지.”
무려 신이다. 아무리 제 멋대로라고는 해도 일반적인 인간과는 격 자체가 다르다. 그런 존재들을 가르칠 만한 존재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 시험이라는 건…”
“그 아이들이 스스로 엘리시온에서 나와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줬으면 해. 보아하니 이미 몇몇 신들을 그런 식으로 끌어내서 부리고 있는 듯 하더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서는 안되는 것. 그 모든 것들을 가르쳐 주었으면 해.”
“음…”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전에 했던 것처럼 아바타를 걸고 프로모션을 진행하면 얼마 정도는 끌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몇몇 신들이 아니라 엘리시온에 머물고 있는,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 숫자의 신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곳을 벗어나도록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야. 이 시험을 훌륭하게 수행한다면, 그리하여 스스로 자격을 증명해 보인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도록 하지.”
“보상이라면.”
포트니아 테론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엘리시온의 운영권 정도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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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