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18
00718 162. 스타트업 =========================
반지와 거울, 그리고 우산과 구유는 이전에 벌어졌던 오디션에서 같은 조로 움직였던 신이다.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오디션이 끝난 뒤에는 연습생 내지는 인턴으로 받아들여져서 허세와 망상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다.
“끝나고 한 잔 어때?”
“좋지. 언제나의 거기?”
“언제나의 거기.”
다른 조들은 오디션이 끝나고 관계가 서먹해진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들은 나름대로 꽤 친하게 지내는 중이다. 그래봐야 일이 끝나고 나서 술 한 잔 걸치는 정도가 고작이긴 하지만.
허세와 망상 밑에서 일하는 건 꽤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인간들이 어떤 식으로 문명을 발전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성격이 뭐 같은 상사 밑에서 일하는 건 고된 일이지만, 그래도 착실하게 쌓여가는 공헌도를 보면 뿌듯함이 절로 느껴진다. 수치화된 공헌도의 양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견고와 인내는 어떻게 지낸데?”
“그쪽도 일이 쉽지는 않은가봐. 게다가 그 녀석은 따로 사업도 하잖아.”
“좋겠다. 나도 어서 추종자를 받아들이고 싶어. 정말 잘 해줄 수 있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기반은 있어야지. 막상 추종자를 받아들였는데 아무것도 못해주면 그것도 미안한 일이잖아.”
“그건 그래.”
이 둘이 요새 가장 선망하는 건 역시 추종자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바깥에서의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공헌도도 모여가고 있으니 슬슬 자신들을 받들 교단과 그것을 구성할 추종자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길드성 한 켠에 마련된 욕실에서 간단하게 몸을 씻고 나오는데,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걸어가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인다. 다름 아닌 뱀과 깃털이다.
그녀 역시 결선 진출자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덕분에 다른 조원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더불어 허세와 망상의 질책도 심해서 여러모로 힘든 연습생 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지금 끝났어?”
“어? 응…”
이전에는 이슬과 서릿발의 뒤통수를 친 전력도 있는 여자였지만, 지금은 잔뜩 움츠러든 채 건드리면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어쩐지 축 처진 그 뒷모습이 눈에 밟혀서 우산과 구유가 말을 걸자, 반지와 거울이 툭 치며 눈짓을 보낸다. 어쩌려고 그러냐는 듯한 시선이었지만 우산과 구유는 모르는 척 계속 말을 이었다.
“한 잔 하러 갈 참인데, 너도 같이 가지 않을래?”
“응? 나도?”
뱀과 깃털은 혹시라도 자신이 뭔가 또 잘못한 일이 있는 건가 싶어 움찔하다가 의외의 제안을 받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의도를 이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너도. 이 녀석이랑 같이 찾은 곳인데, 정말 끝내줘.”
우산과 구유의 말에 뱀과 깃털은 머뭇거렸다.
“아니… 난, 그냥… 그러니까…”
상대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녀는 연습생들 가운데서도 사실상의 왕따를 당하고 있는 입장. 물론 그런 결과는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기도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아 그렇구나 당연한 거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상황이기에 혹시 이것이 못된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말하는 걸로 봐서는 거짓된 천국이 아닌 외부로 나가자는 것 같은데, 오디션 이후로 바깥 출입을 한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그것 역시 아직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지 말고.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응?”
“자, 잠깐…”
머뭇거리는 뱀과 깃털의 팔을 잡으며 우산과 구유는 빙긋 웃었다. 뱀과 깃털은 여전히 경계심을 느꼈지만 그 사람 좋은 미소에 이끌려 엉겁결에 함께 외출을 하게 되었다.
“어때, 괜찮지?”
우산과 구유가 안내한 곳은 아담한 펍이었다. 수제 생맥주와 함께 핏물이 뚝뚝 흐르는 두툼한 스테이크와 두툼한 소시지를 만들어 파는 곳이었는데, 의외로 상당히 맛이 좋았다.
“맛있어.”
“다행이네. 많이 먹어. 피곤하고 지칠 때는 그저 잘 먹는게 최고더라.”
“그래.”
옆에서 두 남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반지와 거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버렸다. 우산과 구유는 신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가 혼자 궁상맞게 있는 모습을 지나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훌륭한 호구의 자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호구신이라고 불리는 희망과 생명이 지닌 교단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것은 좋은 신이 될 수 있는 자질인지도 모른다. 당장 뱀과 깃털만 해도 상기된 얼굴로 어쩔줄 몰라 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가 악의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여기에 술까지 들어가게 되자 뱀과 깃털의 경계심은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흑… 흑…”
그 결과,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들이 사무치기 시작한 것인지 뱀과 깃털은 어느 시점이 되자 말없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신이라 해도 결국은 사회초년생. 특히나 그녀는 지금까지 달리 스트레스를 풀 만한 구석조차 없었다.
“네 녀석이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책임을 져. 난 이만 가련다.”
“어, 그래. 미안.”
반지와 거울은 뱀과 깃털이 질질 짜기 시작하자,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그 역시 마찬가지, 모처럼 시원한 맥주와 맛있는 안주로 떨쳐 버리려고 했는데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니 살짝 짜증마저 난 표정이다.
결국 우산과 구유는 이제 목 놓아 울기 시작한 뱀과 깃털을 다독이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마치 뱀과 깃털은 아침에 일어나자, 어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는 울상이 되어 버렸다.
별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우산과 구유는 끝까지 신사다웠고, 그녀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문제는 그녀였다. 외롭다며 같이 있어 줄 수 없느냐는 말을 건네 버린 것이다.
“으으… 어떻게 해…”
제대로 얘기해 본 것 자체가 처음인 남자를 침실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자칫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그녀는 훨씬 더 안 좋은 인식의 소유자가 되어 버릴 것이다.
끝장이다. 어떻게든 근근이 버텨가고 있었는데, 그런 소문까지 나버리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만다. 아무리 술에 잔뜩 취해버렸다지만,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해버린 걸까.
외롭다는 말 자체는 거짓이 아니다. 그녀는 정말로 외로움에 사무쳐 있었으니까. 오죽하면 시내에서 산 커다란 곰돌이 인형을 안고 훌쩍거리면서 자는 것이 일과가 되어 버렸을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처럼 선의를 보여준 남자를 무작정 방으로 끌어들여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관둘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떠올릴 정도다. 그렇지 않아도 최악의 평판을 지니고 있는데다, 허세와 망상의 갈굼마저 심해지고 있는 상황인데, 좋지 않은 소문까지 나버리면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차곡차곡 쌓여가는 공헌도를 보며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이건 그런 식으로는 견뎌낼 수 없는 문제다.
결국 뱀과 깃털은 그날 일을 쉬었다. 중간에 밤의 신의 반려 가운데 한 명이며, 비서 역할을 맡고 있는 요안나라는 이로부터 연락이 오긴 했지만, 몸이 좋지 않아서라고 핑계를 댔다. 웃긴 일이다. 인간도 아니고 신이 그런 말을 하고 결근을 하다니. 누구든 듣는 순간 꾀병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뱀과 깃털은 우울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언제나 안고 자는 커다란 곰돌이 인형을 부둥켜안은 채로 지나온 일들을 후회했다.
그러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다시금 요안나로부터 연락이 왔다.
“밤의 신께서 연습생 여러분들에게 긴히 할 말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와주시겠습니까?”
“그게…”
아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모양새였지만, 지금은 꾀병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듯한 완강한 말투와 표정이다. 신조차 아닌 인간의 연락을 받고 위축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그녀의 뒤에 버티고 선 밤의 신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알았어요. 바로 갈게요.”
“감사합니다.”
요안나의 영상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뱀과 깃털은 작게 한숨을 쉬어 버렸다. 보나마다 허세와 망상은 미친 듯이 방방 뛸 것이고, 자신은 못해도 삼십분 이상은 그것을 가만히 서서 듣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잘못이니 어디가서 하소연도 할 수가 없다.
대충 몸을 씻고 길드성으로 향한다. 출근용으로 주어진 황혼의 성물을 이용해 길드성에 들어서는데, 문득 누군가 급히 그녀의 팔을 잡아끈다.
돌아보니 다름 아닌 우산과 구유였다.
망했다. 하필이면 지금 이순간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이와 마주치다니.
“기다려. 지금 들어가면 허세와 망상과 마주칠 테니까.”
“고, 고마워.”
무슨 꿍꿍이일까 싶었지만, 대뜸 날아온 말은 그것이었다.
역시 오지랖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고 고마운 것도 사실이다. 허세와 망상의 인성질은 가급적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일이니까.
“어제는 괜찮았어?”
“어? 응… 그럭저럭.”
“다행이다. 굉장히 힘들어 보여서 괜찮을까 싶었거든.”
“…”
그렇게 말하면서도 슬쩍 얼굴을 붉히는 걸 보니 역시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뱀과 깃털은 어색해져서 입을 다물었고, 우산과 구유 역시 다른 말은 하지 못한 채 괜히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리자, 한쪽의 공간이 열리며 어김없이 눈가리개를 착용한 형진이 요안나와 제랄딘을 대동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가자.”
“응.”
형진은 복도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며 서있는 두 신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앞서서 연회장으로 향했다. 우산과 구유, 그리고 뱀과 깃털은 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뱀과 깃털은 허세와 망상으로부터 시선을 받았다. 딱 봐도 좀 있다가 보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시선이다.
형진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신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미리 마련된 연단에 올라섰다.
“갑작스런 요청에도 불구하고 빠짐없이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야?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형진의 말에 허세와 망상이 불퉁거리며 그렇게 대답한다. 하지만 정말 바쁜 와중에 불러서 기분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다른 연습생들에게 자신의 지위를 확고하게 전하기 위한 일종의 과시성 발언에 불과할 뿐이다.
뻔히 속내가 들여다 보이는 발언이었지만, 형진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디션이 끝나고 나서 여러분들을 연습생으로 받아 들인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힘들고 고된 일들을 잘 견뎌주시고, 상당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연습생 여러분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을 다시 모이게 한 것은, 이제 슬슬 연습생 제도의 취지에 걸맞게 본 궤도에 올라서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그 말에 모여 있던 신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본 궤도에 올라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곧바로 우산과 구유가 손을 번쩍 치켜들고는 형진에게 질문을 던졌고, 형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제 슬슬 여러분도 교단을 갖출 때가 되었다는 얘기죠.”
쿠궁!
순간 모여 있던 잡신들은 정수리에 번개가 내리 꽂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교, 교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신도와 추종자들을 받아들여, 신으로서의 여러분을 세상에 알리는 본분을 지닌 단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공헌도가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자, 연습생으로 일하고 있던 신들은 그런 생각을 조금씩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교단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신전을 세우고, 추종자를 받아들이며, 신도들에게 무엇을 베풀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게다가 이것을 선택한다고 끝이 아니다. 타나토스와 지구에는 이미 여러 신들의 영향력이 뻗어 있었고,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이른바 대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들과 무한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막 바깥 세상에 발을 딛기 시작한 잡신들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교단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좀처럼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건 결국 이런 이유에서다.
“교단이라는 건 생각처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이제 막 신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깨달아 가기 시작하는 여러분들로서는 더욱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냥 막무가내로 혼자 시작한다면 틀림없는 일일 겁니다.”
이번에는 이슬과 서릿발이 물었다.
“그 말씀은, 밤의 신께서 저희들이 교단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형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신전의 건립은 물론이고 추종자의 영입이나 신도들에 대한 포교등, 가능한 모든 부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와아!”
그렇지 않아도 망설이고 있던 잡신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형진은 이미 아바타 하나 구할 공헌도가 없던 신들에게 어엿한 교단을 선사한 전례가 있다. 그가 도와준다면 이미 이 일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형진은 그렇게 밝은 표정으로 웅성거리는 잡신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이요?”
“그렇습니다.”
웅성거림이 멎는다. 하긴 이런 좋은 얘기에 조건이 없을 턱이 있나.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잡신들의 시선을 일일이 마주쳐 가던 형진은 가만히 설명을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지구나 타나토스는 이미 여러 신들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새로운 신이 교단을 만들어 그 교세가 융성하도록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건 그렇지.”
허세와 망상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형진은 빙긋 웃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제안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종족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여러분의 이름을 알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름 하여, 개척 교단. 만약 성공한다면, 여러분은 독립된 하나의 세계에서 강대한 대신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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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