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21
00721 162. 스타트업 =========================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범람원이었다. 대부분의 초기 문명이 그러하듯, 이들이 선택한 지역 역시 거대한 하천과 그것을 통해 발달한 비옥한 범람원이 풍부한 생산력의 원천이 되었고, 이러한 농업 생산력의 발달이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아…”
드넓은 범람원과 그곳에 조성된 경작지의 모습에 두 신은 작은 감탄을 터트렸다.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아래로 도도하게 흘러가는 웅대한 강의 모습과, 그곳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푸른 숲과 초원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곳이다.
이곳에서 진정한 신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우산과 구유, 그리고 뱀과 깃털은 가슴 속에 희망이 부풀어 가득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신전을 세울 곳은 바로 저곳입니다.”
잠시 두 신에게 감상의 시간을 주었던 형진이 문득 한 쪽을 가리켜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두 신이 얼른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곳은 강 하구에 자리 잡은 높은 언덕이었다.
“강 전체를 조망할 수 있으며 바다에서의 접근도 용이합니다. 주기적으로 범람이 이루어지는 주변의 토지와는 달리, 홍수로부터도 안전하고 지반도 안정되어 있는 곳이죠.”
멋지다. 저런 곳에 왜 아직도 그럴 듯한 건물 하나 지어져 있지 않은지 의아할 정도로.
“그런 곳이라면 이미 마을 같은 것이 들어서 있어야 하지 않나요?”
뱀과 깃털의 질문에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저곳은 그렇지 못합니다. 몇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요.”
형진은 해당 지형에 대한 홀로그램을 펼쳤다.
“우선은 단단한 지반이 문제입니다. 지형 자체가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식수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아낼 수 있는 방풍림의 조성도 어렵습니다. 이것을 견뎌낼 정도의 튼튼한 건축물을 조성하자면 막대한 노동력과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데 노동력이야 그렇다 쳐도 기술은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신 이 언덕을 바람막이로 사용하는 식으로 그 아래쪽에 촌락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런 문제는 이곳에서 문명을 일궈나가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신전을 짓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습니다.”
“아하… 그럼, 이곳에 신전을 지으면 기존에 조성된 촌락을 내려다보는 형국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대답과 함께 형진이 한 번 더 손을 휘저어 보이자, 언덕 위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신전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난다.
“기본 설계입니다. 거대한 나무를 연상시키는 마천루의 디자인을 기본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조화로운 모습을 만들어 보려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공간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
이미 지구의 문물에도 제법 익숙해져 있는 두 신으로서도 신전의 규모와 아름다운 자태에는 절로 감탄이 흘러나오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홀로그램을 들여다 보고 있는 신들의 모습에 빙긋 웃으며 형진은 말을 이었다.
“바깥에서 보기엔 거대한 탑과 같은 모습이지만, 공간 확장 기술이 적용되어 있기 때문에 안쪽으로 들어서면 온갖 기화요초들이 만발한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게 될 겁니다. 아마도 인간들은 이곳에 들어서면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왔다는 착각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별말씀을. 기본적인 구성은 이렇습니다만, 필요하다면 다른 것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던 우산과 구유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다른 것이라면?”
“이를테면, 성벽이나 수호탑 같은 것이 대표적이겠지요. 앞서도 말했듯이 외부의 침탈이 심한 곳이니까요. 물론 이런 부분들은 성역이나 결계 등을 통해 감당할 수 있지만, 견고한 성과 같은 형상은 신도들로 하여금 든든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 것입니다. 그 외에도 특별히 필요한 시설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추가하셔도 됩니다.”
“아…”
잠시 고민하던 우산과 구유는 문득 이렇게 말했다.
“성벽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조형물을 하나 추가했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기본 옵션으로 제공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이라면 괜찮습니다.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우산과 구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탑… 전체를 휘감는, 깃털 달린 뱀의 형상을 추가했으면 합니다.”
가만히 홀로그램을 바라보고 있던 뱀과 깃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누가 들어도 그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몇 가지 이름을 떠올렸다. 뱀이 휘감고 있는 나무의 형상은 여러 종교에서 생명을 뜻하는 의미의 상징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가 이곳에 세워질 신전의 형상으로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탑 내지는 나무의 모습을 떠올린 것은, 그것 자체로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상징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강력한 신의 힘을 이곳의 인간들에게 인지시킴과 더불어, 세계수나 신단수 같은 상징들의 이미지 또한 가져오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기에 뱀이 휘감고 있는 형상이라니.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형진은 간단하게 홀로그램을 조작해 우산과 구유가 요청한 깃털 달린 뱀의 이미지를 추가했다. 요리 실력에 비하면 신들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는 않은 편이지만, 그는 세공 분야에서도 이미 장인의 경지를 넘어선지 오래다.
“후, 훌륭합니다.”
순식간에 깃털 달린 뱀의 아름다운 형상이 추가되자 우산과 구유는 물론이고 뱀과 깃털마저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외에 추가하실 만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니, 과분합니다.”
솔직히 두 신은 신전을 지원해 준다길래 희망과 생명의 신전 같은 걸 연상했다. 사실 그 정도만 되어도 신도나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기에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홀로그램은 그들이 알고 있던 신전의 스케일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정말 이런 걸 받아도 괜찮은 건가 싶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럼 이상과 같은 디자인으로 신전의 형상을 확정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우산과 구유가 고개를 끄덕이자, 형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네?”
바로 시작하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두 신은 형진의 말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음 순간 일어난 현상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구구구구구!
형진이 언덕을 향해 손을 뻗자, 그곳에서 거대한 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빨과 말뚝의 권능을 발현해 언덕의 기반으로부터 거대한 기둥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놀란 것은 허공에 뜬 채로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두 신만이 아니었다. 오늘도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쳤음에 감사하며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던 이곳의 인간들 언덕 위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기둥의 모습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좀 더 압축을 해야겠군.”
솟아오른 거대한 기둥은 형진이 한 번 더 손을 휘저어 보이자, 강력한 힘에 압축되어 높은 강도를 지닌 구조물로 바뀌어 갔다. 이제는 기둥이 아니라 하늘로 솟아오른 송곳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뼈대는 이쯤이면 되었고, 다음은 외장 공사.”
형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리 발주해서 뽑아 놓았던 블록형의 구조물들을 기둥 주위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왕성 라이언하트는 물론이고 수많은 별궁까지 포함하면 이미 많은 건축물들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터라 그 작업 속도는 눈부실 정도로 빨랐다.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척척 건물이 올라가는 형국이다.
“…”
우산과 구유, 그리고 뱀과 깃털은 입이 떡 벌어진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신전을 지어준다고는 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한 탓이다.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거대한 마천루가 모습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이미 기본 디자인을 완성하고 조립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뭘 어떻게 할 틈조차 없이 빠르게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 다음은 정원.”
건물의 기본적인 형태가 잡혀지자, 그 주위에 비옥한 토양이 깔리고 아름다운 기화요초들이 심어진다. 성장과 질주의 권능이 한 번 발현되자, 식물들은 순식간에 자라나 마천루의 주위를 감싸버렸다.
외부의 정원을 조성하는 일이 끝나자, 다음은 우산과 구유가 부탁한 깃털 달린 뱀의 형상이다.
구구구!
곧바로 다시 한 번 이빨과 말뚝의 권능이 발현되어 기둥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하늘을 그대로 꿰뚫어 버릴 듯했던 앞서의 기둥과는 달리 이번에는 지어진 건물의 외벽을 나선의 형상으로 감싸는 구도로 솟아오른다.
여기까지 일이 끝나자, 형진은 영혼 포식자를 꺼내어 그렇게 솟아오른 나선형의 기둥에 세공을 가하기 시작했다. 쏘고 자르고 깎아내는 일이 시작되자, 나선형의 기둥은 순식간에 깃털 달린 뱀의 형상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꿀꺽.
우산과 구유, 그리고 뱀과 깃털은 이제 탄성을 지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형진의 그런 모습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도대체, 그의 힘은 어디까지가 한계란 말인가. 이렇게 간단히, 그리고 순식간에 홀로그램으로 보여주었던 이미지의 신전을 현실화시키다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 신의 권능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깃털 달린 뱀의 형상을 조각하고 세공하여 완성시키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신전에 보호의 성역과 황혼의 결계를 펼치고는 다시 견고의 권능을 부여해 만약의 사태가 생기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마감을 하고 나서야 다시 그들에게 돌아왔다.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그제서야 두 신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대답했다.
“무, 물론입니다.”
“대단… 해요.”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형진은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지내시면서 뭔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요.”
그리하여, 마침내 행성 카르모네에 우산과 구유, 그리고 뱀과 깃털이라는 두 신의 교단이 첫 발을 내딛었다.
이 과정은 두 신의 동의를 얻어 영상으로 제작되어 엘리시온에 배포되었다. 최초로 다른 세계에 첫 발을 내딛은 개척 교단의 모습을 홍보한다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엘리시온에서 웅크리고 있는 잡신들을 확실하게 끌어내기 위한 떡밥이었다.
“맙소사.”
“이건 말도 안 돼. 이런 신전이라니!”
“이게 어딜 봐서 신전이야! 이건 궁전… 아니 성전이라고 하는 편이 맞아!”
당연히 신들은 난리가 났다. 개척 교단이라는 말을 듣고는 대신이 어디 그렇게 쉽게 되는 거냐면서 어차피 고생만 죽어라 할 거라 생각했던 신들조차 카르모네에 세워진 두 신의 엄청난 성전의 모습에는 할 말을 잊었을 정도다.
“연습생… 나도 연습생이 될 거야!”
“다음 오디션은 언제지?”
“나도 연습생이 되고 싶어! 나도 개척 교단으로 가고 싶다고!”
그렇게 잡신들이 안달을 내며 문의를 쏟아내기 시작하자, 형진은 그제서야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연습생들 가운데 이번 개척 교단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한 반지와 거울 같은 신들이었다.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래는 좀 더 느긋하게 일을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너무나 많은 분들이 문의를 보내 주셔서 일정을 조금 앞당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먼저 운을 뗀 형진은 함께 온 신들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이전에 연습생이었다가, 이번에 정규직으로 올라서신 분들이십니다. 이번에 새로 뽑힐 분들에게는 직속 상사가 되실 분들입니다.”
반지와 거울을 비롯한 신들의 소개가 끝나자, 형진은 다시 모여든 잡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저희와 새롭게 일을 해나갈 인턴 분들을 뽑기 위한 면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연습생이 아니라 인턴인 것이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새로 신들을 뽑는다는 말에 잡신들은 환호를 터트렸다. 물론 그들 가운데 앞으로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예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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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
형진 콘체른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