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20
00720 162. 스타트업 =========================
일리 있는 얘기다.
사실 오디션이 끝난 뒤 엘리시온에 남아 있던 신들은 우승자인 견고와 인내는 그렇다 쳐도, 연습생이 된 신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비웃기 바빴다. 공헌도 좀 벌자고 허세와 망상의 인성질을 견뎌가며 일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비웃으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며 뒷담화의 재료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그들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잠시 고생을 했다고는 해도 무한에 가까운 신들의 인생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순간이나 찰나에 가깝다. 그 정도 고생을 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단순히 신전에 자신의 성물을 들여놓는 정도가 아니라 한 세계의 대신으로 거듭날 기회를 얻었다. 어찌 부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잡신들은 다시 물었다. 지난 번에 했던 오디션은 다시 하지 않느냐고. 연습생이라는 것을 또 뽑지는 않느냐고. 자신들도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지금 당장은 예정이 없습니다. 새로운 프로모션의 진행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
물론 형진이 그런 그들의 요구를 바로 들어줄 이유는 없다. 지금 아쉬운 것은 자신이 아니라 엘리시온에서 뭉기적거리던 잡신들이다. 괜히 살짝살짝 입질이 온다고 낚시 바늘을 끌어당겨 봐야 제대로 낚이지도 않는다. 최대한 안달이 나도록 기다렸다가, 더 이상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고 단단하게 바늘이 박혔을 때 끌어당겨야 비로소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낚아 올릴 수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형진은 더욱더 강력한 밑밥을 던졌다.
본격적으로 개척 교단의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갑습니다. 계약서를 쓸 때 이후로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대면한 것은 처음인 것 같군요.”
형진의 말에 우산과 구유, 그리고 뱀과 깃털은 서로를 돌아보고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서로 많이 바쁘기도 했고,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구체적으로 얼마나 관계가 진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뱀과 깃털의 표정에도 어느 정도 여유와 안정이 자리 잡은 걸 보면 두루두루 잘 된 모양이다.
“좋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그렇게 말하며 두 손을 펼치자, 몇 개의 행성 모습이 홀로그램과 같은 모습으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오디션 당시 본선에 참가한 신의 수는 모두 열두 명. 그 가운데 우승자인 견고와 인내, 그리고 엘 파르드의 관리 업무에 스카웃된 청렴과 절조를 제외한 열 명의 신이 이번에 진행한 개척 교단의 대상자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개척 교단에 투신하기로 한 것은 아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부담을 느낀 몇몇 신들, 이를테면 반지와 거울 같은 신들이 빠졌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개척 교단에 참여할 신들은 반 정도에 불과했다.
“이번에 저희들이 준비한 세계들입니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시죠.”
“감사합니다.”
은염랑등을 통해 탐사를 마친 세계 가운데 적당한 수준의 문명과 인구를 가진 곳 열 군데를 미리 선별했다. 신들의 구미에 맞도록, 문명 수준이나 인구들을 고려해 서로 다른 조건에서 교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이쪽 같은 경우는 아직 문명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고 인구도 적은 편입니다만, 육지의 대부분이 비옥하고 대체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확장성을 놓고 봤을 때 상당히 유망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죠. 그에 반해 이쪽의 세계는 문명 정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고 인구도 꽤 됩니다. 그러나 이미 토착 종교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분쟁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잘만 하면 빠른 시일 내에 많은 수의 신도와 추종자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쪽은…”
그런 식으로 먼저 각 세계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를 전했다.
설명을 하면서 형진은 문득 지금 상황이 신혼부부에게 새로 살 집을 소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일단 개척 교단의 설립이 진행되면, 한동안 눈앞의 두 신은 새로운 세계에서 그들만의 생활을 이어가게 될 테니까. 말이 좋아 개척 교단이지, 사실상 신접살림을 준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에 반해 우산과 구유, 그리고 뱀과 깃털은 속으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밤의 신이 여러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손만 대면 바로 자신의 것이 될 만한 세계들을 몇이나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자신들 같은 별 볼 일 없는 신들에게 선뜻 내놓는 배포에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들이라면 가만히 가지고 있다가 여유가 생겼을 때 하나씩 교단을 확장했을 것이다. 말이 쉬워서 세계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그렇게 하나 이상의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신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벌인다면, 제대로 개발되지도 않은 세계까지 신경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교세를 갖추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자신들이 대신으로 올라선다 할지라도, 이미 넘어서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자꾸만 머리에 떠오르는 그런 생각들을 밀어내며, 우산과 구유는 형진의 개괄적인 설명을 차분하게 들었다.
“선택하기가 쉽지 않군요.”
“이해합니다. 중요한 선택이니까요.”
“바로 선택해야 합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시간을 끌게 되면 선택을 하더라도 이미 누군가가 선점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그렇겠네요.”
뭐든 마찬가지지만, 누가 봐도 좋다 싶은 것은 결국 빠르게 선점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산과 구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옆에 앉은 뱀과 깃털에게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드는 곳이 있어?”
그 말에 뱀과 깃털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으니까 네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골라.”
“응?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네가 아니었다면, 개척 교단에 참여하지도 못 했을 테니까.”
“그건…”
우산과 구유는 뱀과 깃털의 말에 뭔가 대답을 하려다가,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빙긋 웃고 있는 형진의 시선을 느끼고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크흠… 잠시 둘이 얘기를 좀 나눠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천천히 의견을 나눠 보십시오.”
형진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몸을 일으키고는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렇게 한 십분 쯤 지나고 나서 얘기가 끝났다는 말에 다시 돌아가자, 우산과 구유는 형진이 제시한 열 개의 세계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으로 정하겠습니다.”
그가 정한 곳은, 지구로 치면 흔히 4대 문명이라는 것이 발흥하기 시작한 무렵의 세계였다. 아직 문명의 체계가 완전히 잡히지 않았고 인구도 그만큼 적은 곳이었으나, 종교 역시 세계 전체에 영향을 줄 만한 것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않은 상태라 새로운 신들이 터를 잡기에는 매우 유리한 곳이다. 아무래도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뱀과 깃털 역시 함께 하기로 한 상황이라 안정적으로 교세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곳을 고른 모양이다.
“좋은 선택입니다. 비록 당장은 보잘 것이 없더라도 확장성을 놓고 보면 이곳만한 세계가 없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럼 이곳으로 확정하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네?”
뜻밖의 말에 우산과 구유는 물론이고 뱀과 깃털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계의 이름을 짓다니. 생각도 못한 일이다.
형진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신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앞으로 두 분의 터전이 될 곳입니다. 또한 두 분을 소개할 때 반드시 따라붙게 될 곳이지요. 이를테면, 인간들이 자신의 터전이 될 곳의 지명을 짓고 그 이름을 성으로 삼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입니다. 또한 이것은 두 분이 같은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라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이름도 되겠죠.”
“그, 그렇군요.”
두 남녀가 같은 성씨를 쓴다는 것은 또한 하나의 가정에 속한 자라는 의미도 된다. 우산과 구유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지만, 뱀과 깃털은 감히 형진과 시선을 마주하지 목하고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붉혔다.
자신들의 관계를 이미 다 꿰뚫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럼… 음, 환희라는 뜻을 지닌 단어로 어감이 좋은 것을 하나 골라주셨으면 합니다.”
“환희. 좋은 단어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형진은 휴대폰을 꺼내 이런 저런 나라나 세계에서 환희라는 뜻을 지닌 단어들을 살펴보고는 그 중 하나를 골라 말해 주었다.
“카르모네가 어떻겠습니까. 그리스어로 기쁨, 즐거움, 환희, 찬양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우산과 구유는 대답없이 뱀과 깃털을 돌아보았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흔쾌히 답했다.
“좋군요. 카르모네. 그 이름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세계의 이름은 앞으로 카르모네라고 불리게 될 것입니다.”
이름을 짓는 일이 끝났으니, 이제는 신전을 지을 곳을 정할 차례다.
“사실 인간들에게 있어 신이라는 존재는 손에 잡히지 않는, 마치 뜬구름과도 같은 무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이기에 더 갈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을 신앙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성물이나 신전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래서지요.”
초기에는 우상 숭배 같은 것을 배척했던 종교들이 이후 토착화되면서 여러 가지 상징물들을 남기게 되는 것도 결국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나 지금 이들이 자리를 잡게 될 카르모네는 아직 문명의 고유한 특징 같은 것이 완성되기 전이고, 사용하는 문자나 언어 역시 단순해서 복잡한 교리 같은 것을 전달하기도 어렵다. 때문에 상징이나 성물, 그리고 신전 같은 눈에 보이는 권능의 증거들이 더욱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지만, 교단 역시 초기에 자리를 잡은 곳의 문화나 관습의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물론 그러한 부분은 두 분께서 조정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처음에 좋은 입지를 선점하게 되면 보다 쉽게 교세를 확장시키는 것이 가능하겠죠. 또한 앞으로 두 분의 교단이 융성하게 되면, 지금 선택하는 장소는 말 그대로 그 세계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당장의 조건은 물론이고, 이후의 확장성까지도 고려해서 입지를 선정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미리 선정된 몇 군데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저희가 임의로 선정한 곳들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당장의 입지는 물론이거니와 나중의 확장성까지 고려해서 고른 장소들입니다. 우선 이 세곳은 현재 카르모네에서 가장 융성한 세 개의 문명이 들어서 있는 곳입니다. 인구도 많고 기본적인 농업 생산성도 좋은 곳이라 교단의 초기 확장에 유리합니다. 이외에도…”
그렇게 설명이 끝나자, 우산과 구유는 다시 뱀과 깃털의 의견을 들어본 뒤 그 중 한 곳을 골랐다.
“이곳으로 하겠습니다.”
그가 고른 곳은 세 문명 가운데 가장 호전성이 떨어지는 곳이었다. 오히려 주위의 호전적인 부족들에 의해 항상 침탈을 겪고 있는, 어떻게 보면 두들기면 식량과 가축이 쏟아져 나오는 호구로까지 취급되는 그런 문명이다.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높은 생산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침탈을 겪고 있으니 자신들을 보호해줄 강대한 신의 존재를 다른 어떤 문명보다도 환영하겠지요. 다만 유의하실 것은, 이들이 신의 권능에 안주하게 되면 그 순간 문명 자체가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문명을 이끌어 갈 때는 그들이 안주하지 않도록 여러모로 상황을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쉽지 않겠군요.”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문의를 해주십시오. 최대한 여러분의 교단이 융성할 수 있도록 협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식으로 기본적인 사항들에 대한 협의가 끝나자, 형진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그럼 여러분들의 교단이 들어서게 될 세계로 가볼까요?”
곧바로 황혼의 권능을 사용해 경계를 열고는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우산과 구유는 바로 그 뒤를 따르려다가, 뱀과 깃털을 돌아보고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응.”
두 신은 가만히 서로의 손을 잡고는 형진의 뒤를 따라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