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42
00742 167. 흑요호 =========================
위성을 통해 관찰한 마을 전체의 지도를 불러들인다.
본래 십여 가구 정도 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마을인지라 별로 넓은 면적도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너무 좁아서 흑요호들이 선택한 집들을 모두 들여놓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은 기존의 마을보다 대지면적을 더 넓히는 수밖에 없다.
“…”
허공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 인근의 지형도가 떠올라 있는 모습을 흑요호들은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인 것 같기는 한데 그냥 마법이라고만 볼 수도 없는, 분명히 뭔가 그들이 알 수 없는 신들의 힘이 조합되어 있는 것 같은 그런 환상이라고 해야 하나. 엄마들과는 달리 그런 사전지식조차 없는 흑요호 아이들은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멍하니 그 신기한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일단 여기를 깎아내고.”
지형도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지우고 기존의 마을 모습을 참고해서 흑요호들이 선택한 집들을 배치한다. 각각의 집들이 저마다 받을 햇빛이나 바람 같은 것의 영향을 고려해서 이리저리 방향을 틀고 배치를 옮기는 작업이 끝나자, 그 집들을 연결할 여러 가지 부대시설들을 배치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길은 물론이고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회관이나 대형 놀이터를 배치한다. 신전은 이미 설치를 했으니 되었고, 차후에 김밥천국이나 가스트샵 같은 것이 들어설 수도 있으니 그것을 위한 부지도 마련해 둔다.
가로수를 비롯해서 기본적인 조경까지 완료된 상태로 마을의 조감도를 완성하는 일이 끝나자, 멍한 표정으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흑요호들에게 의사를 물었다.
“일단 대충 이런 모습이 될 것 같군요. 어떻습니까.”
흑요호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 정말… 이대로 만들어지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일단 흑요호 전부가 이주를 한 것은 아니라서 이후를 생각하면 더 마을의 크기를 확장해야 하지 않나 싶긴 하지만, 언제 새로운 흑요호 분들이 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우선은 이 정도로만 해두기로 했습니다. 소박하죠?”
“…”
소박하다니. 흑요호들은 타나토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바 있지만 이런 식으로 조성된 마을은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형진 입장에서는 소박한 것이 맞았다. 하다못해 왕성 라이언하트에 조성된 가장 작은 별궁조차도 이 마을보다는 크고 화려하니까.
“그럼 달리 불만은 없는 듯 하니, 일단 이대로 시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내다가 불편한 점이 생기면 그것은 차차 수정하는 걸로 하죠.”
너무 막 퍼주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달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핵심적인 시설들에 대해서는 직접 해봐야 할 일이다. 왕성 라이언하트나 거기에 딸린 별궁들을 짓는 일을 이미 수차례 해본 상황이긴 하지만, 궁전과 마을은 또 상황이 다른 법이니 여러모로 사전에 데이터를 축적해 두는 편이 좋다.
게다가 이 마을이 완성되면, 왕성에 있는 그의 아이들이 놀러올 수도 있다. 왕성은 모든 것이 최고급이지만, 또래의 친구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열둘이나 되는 자매가 함께 생활하고 있으니 굳이 친구가 필요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릴 때의 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그런 상황을 고려해서라도, 가급적 이 마을은 최고로 꾸며질 필요가 있었다.
집을 짓던 때와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지형을 다듬고 지반을 다지는 일부터 시작한다. 마을 전체가 보호의 성역과 황혼의 결계로 보호되기는 하지만, 모처럼 지어진 집이 오래오래 처음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탄탄한 지반 공사가 우선되어야만 한다.
탄탄하게 지반을 다지고 지하수등으로 인해 토사가 밀려나 싱크홀 같은 것이 생길 여지는 없는지 면밀하게 분석한다. 확인이 끝나자, 기반암을 파악해 각각의 건물의 토대를 세운다.
땅이 파헤쳐지고, 빗물 같은 것이 원활하게 빠져 나가도록 마을 전체에 하수도를 만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천으로 방류되기 전에 깨끗하게 정화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설비까지 만들어낸다.
“…”
흑요호들은 눈앞에서 땅이 뒤집어지고 커다란 석재 파이프 같은 것이 연이어 놓여지며 뭐에 쓰는지조차 알 수 없는 설비들이 땅속에 차곡차곡 자리를 잡는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나고 깔끔하게 포장된 길이 그들의 마을이 있던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신전이 자리 잡은 마을 중앙을 십자 형태로 가로지르는 커다란 길은 마차 두 대가 동시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널찍했다. 교차로는 회전 로터리를 채용했는데, 사실 마차길 자체가 이후 마을이 크게 확장될 경우를 전제로 마련된 시설물이라 당장 교통량 같은 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마을 외부와 통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황혼의 성물이 될 수도 있으므로, 여러모로 신전이 위치한 마을 중심부는 가장 중요한 교통의 요지가 될 수밖에 없다. 미리미리 대비를 해놓는 것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가서 마을 구조를 고치려면 골치 아픈 일이 될테니 말이다.
아스팔트가 아닌 갈색의 벽돌로 포장이 되어 있는 큰 길 옆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인도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차길과 인도 사이에는 튼튼한 철제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만약의 경우에도 인도를 지나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져 있었으며, 일정한 간격마다 커다란 가로수가 심어져 있었다.
일단 길을 놓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비로소 나뉘어진 구획에 각각의 주택과 건물을 들여놓는 일을 시작했다.
신전 주위에는 우선 공용으로 사용될 마을 회관이 자리 잡았다. 마을 안의 대소사를 처리할 때 흑요호들이 모일 집회 장소로 사용할 수도 있고, 새로운 흑요호 가족들이 정착을 위해 찾아왔을 때 임시로 머물 수 있는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 촌장이나 기타 그와 비슷한 직무를 수행할 자가 사무실로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신전 주위에 조성된 교차로의 부지중 나머지 세 곳은 비워두었다. 이후 필요할 경우 김밥천국이나 가스트샵, 학교 등이 들어설 장소다. 당장은 공터로 비워둔 채 운동장이나 주차장 등의 용도로 활용하면 될 것이다.
기본적인 공공건물이 완성되자, 이후에는 개인 주택의 건설만이 남았다. 앞서 흑요호들에게 시연을 보였던 것처럼 하나씩 공들여서 집을 세우는 일이 차근차근 이루어졌고, 이 모든 일이 끝나고 조감도 속의 마을이 현실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어느새 한 나절이나 지나버린 뒤였다.
“이거 의외로 꽤 힘드네요.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시는지.”
“가, 감사합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할지.”
“하하. 별 말씀을. 아, 잠시만요. 아차차. 벌써 시간이 이렇게. 잠시 다녀와야 할 곳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지. 일단 각자 집에 들어가서 뭔가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그럼 금방 다녀 오겠습니다.”
“네? 아니, 저기…”
하지만 형진은 흑요호들이 다시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남겨진 흑요호들은 아까까지만 해도 초라한 움막이나 판자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장소에 들어앉아 버린 그림 같은 마을의 풍경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엄마! 엄마! 나 저거 타보고 싶어!”
“나도!”
하지만 그런 어른들과는 달리 흑요호 아이들은 신기한 것들이 잔뜩 생겨나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어른들을 졸라 집집마다 놓여진 그네나 미끄럼틀 같은 것을 타보고 싶다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하네.”
흑요호들이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각자의 집을 확인하러 움직이자, 새로운 이웃을 살피고 인사를 하러 왔던 산군 아가씨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지고 말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산군들의 상황도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 역시 포트니아 테론에 의해 옮겨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들의 종족은 좀 더 수가 많았고, 수가 많은 만큼 다양한 재능을 지닌 자들이 있다는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주해 온지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는 뭐든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가 흑요호들을 찾아온 것도 새로운 이웃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아보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머니께서 우리들을 그에게 맡긴 것인가.”
환수들만의 이상향. 듣기에는 그럴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불편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환수들의 숫자는 인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그들로부터 생산될 수 있는 물자 등의 양도 적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곳은 무엇하나 존재하지 않는, 문자 그대로 처음부터 일궈나가야 하는 곳. 인간에 비해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환수들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한두 세대 정도는 피땀 흘려 기반을 일구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식의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밤의 신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그 남자가 아무런 댓가도 없이 이런 것들을 베풀 리는 없는 일. 그에 합당한 조건을 제시하겠지만, 그것은 적어도 스스로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도시를 짓는 식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지금껏 해본 적 없는 그런 일들이 아니라, 그들이 좀 더 잘 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조건이 될 것이다. 조건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환수들 입장에서도 제법 그럴 듯한 거래가 될 수밖에 없다.
“먼저 동족들에게 이 사실부터 알려야겠지.”
산군 아가씨가 그 말과 함께 허공으로 떠올라 모습을 감추었을 무렵, 느닷없이 볼일이 있다며 사라진 형진은 학교를 향해 차를 몰고 가는 중이었다.
“응?”
멋들어진 스포츠카 형태의 부양 자동차가 학교 입구에 들어서자 대번에 사람들의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부러움과 신기함이 섞인 그들의 시선을 즐기며 안쪽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자, 마침 첫날 강의를 마치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오는 제랄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중 온 거에요?”
“우리 예쁜 마누라를 누가 채갈까 싶어서.”
“킥킥.”
제랄딘은 운전석에서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형진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어 주고는 반대쪽으로 가서 차에 올라탔다.
“덕분에 살았어요. 같이 놀자고 꼬시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거절하는 것도 일이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허세라고 했겠지만, 제랄딘의 경우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래? 어느 놈이 감히 우리 마누라를 꼬시려고 들어?”
당장이라도 차에서 내려서 감히 추파를 던진 놈들을 혼쭐내려고 하는 그의 모습에 제랄딘은 키득거리며 말했다.
“여자 애들이요. 남자 애들은 감히 말도 못 붙여보던데요.”
“엥? 정말?”
“네. 정말로요.”
“흠…”
하지만 역시나 안심이 되질 않는다. 워낙에 샌프란시스코가 자유분방한 곳이다 보니, 여자라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고나 할까. 물론 그래도 남자들이 집적거리는 것보다야 낫지만.
형진이 일단 차를 학교 밖으로 몰고 가기 시작하자. 제랄딘은 수업 중에 있었던 재미있었던 일을 하나씩 그에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교수로 임용된지 얼마 안 되는 강사가 자신 앞에서 마치 선보러 나온 남자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얘기라든가, 여자애들이 형진과의 결혼 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묻는 것 때문에 난처했던 얘기 같은 것들이다.
“재미있었나 보네.”
“네. 그런데 클럽 활동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놀라더라고요.”
“이쪽은 원래 대학 입시에서도 클럽 활동을 중요하게 여기거든.”
“아하.”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런 것도 경험해 보는 게 좋아. 물론 그만큼 놈팽이들이 집적거릴 가능성은 늘어나겠지만. 쳇.”
“쿡쿡.”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오자, 형진은 비로소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했다.
“그래요? 하긴… 환수가 달랑 두 종류라는 것도 뭔가 이상한 일이긴 하죠.”
“그래서 골치야. 흑요호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 외의 떨거지들까지 다 돌볼 생각을 하니 막막하더라고.”
“어차피 다 할 거면서.”
“그렇긴 하지만.”
입을 삐죽거리는 형진의 모습에 제랄딘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저녁 먹고 같이 가 봐요. 도와줄 테니까. 저도 새로운 환수들을 보고 싶어요. ”
“그래.”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축구 보다가 늦잠을 자버렸…
왜 봤나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