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50
00750 169. 모집 =========================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에 모집 공고를 내면서 ‘사실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인해 물벼룩과 클로렐라라는 이름을 가진 신의 수족이 되어 하찮은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일할 아주 마음 착한 추종자를 모십니다. 많이많이 지원해 주세요.’라는 식의 언급을 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런 식의 공고를 올려봐야 진실로 받아들일 사람도 없을뿐더러, 설령 진실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과연 이런 수상쩍은 공고에 응모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때문에 형진은 약간의 사기를 칠 수밖에 없었다. 미라지 코어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행함에 있어서 QA업무를 담당할 신규 직원을 뽑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달 개발을 비롯한 테라포밍 사업 자체가 미라지 코어의 프로젝트인 것도 맞고, 기초 생태계 조성 및 관리도 역시 엄밀히 따지면 개발이나 품질관리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개발이라고 해야 할지 품질관리라고 해야 할지 조금 고민할 수밖에 없었지만, 물벼룩과 클로렐라가 하는 일은 엄밀히 말하면 조성된 기초 생태계가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부분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라, 결국 QA업무로 칭하게 되었을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살짝 말을 비틀었을 뿐. 형진은 거짓말을 아주 싫어한다. 사기를 좀 자주 치긴 해도.
미라지 코어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QA업무. 이것만으로 충분히 이슈가 될 만한 일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지원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지원 요건이었다.
이력서? 필요 없다. 당연히 학력도 안 본다. 나이. 일단 성인이기만 하면 된다. 남녀 구분도 안 본다. 국적도 안 본다. 신들에게 거짓된 천국이라고 불리는 엘리시온에 접속이 가능하기만 하면, 외적인 조건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런 조건이 없는 건 아니다.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프로젝트이므로, 오랫동안 함께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보안 사항을 엄수해야만 하므로 입이 무거워야 한다. 즉, 장기 근속 및 보안 엄수가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지키면서 자신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는 이라면 누구든 환영한다. 이것이 바로 이번 모집 공고의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었다.
미라지 코어는 현재 세계를 선도하다 못해 각국 정부들마저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기업이다. 복지 혜택이나 근무 환경 역시 알려진 다른 어떤 대기업보다 좋다. 한때 망하느니 마느니 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때의 일을 마무리 짓고 경영진이 교체된 이후에는 정말 단순한 게임 회사가 맞나 싶을 정도의 행보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회사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QA. 당연히 개인은 물론이고 다른 기업이나 국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곧바로 수많은 지원이 모여들었다. 단순히 흥미 본위의 지원자들은 물론이고, 은밀하게 기업이나 국가와 연결된 이들 역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당당하게 스파이를 밀어 넣을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그들이 놓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력서나 기본적인 서류조차도 필요 없이 그저 엘리시온의 아이디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게임 안에서 지원이 가능하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도 나도 지원을 시작했고, 그 결과 무려 백만 단위의 인원이 세계 각지에서 이번 모집에 응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모든 인원을 전부 면접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아란은 요정들과 함께 엘리시온의 플레이 이력을 살피는 한편, 요안나가 구축해 둔 정보망을 통해 기업이나 국가와 관련 있는 인원들을 골라냈다.
비매너 플레이 이력이 있는 사람을 골라내고, 다시 스파이들까지 추려내자 지원자의 수는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선별된 사람들이 이번 면접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 줄기 빛과 함께 지원자 하나가 세 환수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네!”
첫 번째 지원자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귀여운 소녀였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거짓된 천국 안에서 사용하는 아바타의 모습일 뿐, 실체와 어느 정도 닮았는지 환수들로서는 알아볼 도리가 없다.
담담한 말투로 소야가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름을 말씀해주시겠어요?”
“드위 브르하티 리아입니다. 보통은 그냥 리아라고 불러요.”
그러자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규설이 미소를 지었다.
“이름에 의미가 있나요?”
“네. 드위는 제가 두 번째 아이라는 뜻이고, 브르하티 리아는 즐거운 마음으로라는 뜻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얻은 두 번째 아이… 좋은 이름이네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리아는 규설의 말에 대답하며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본인은 자신의 이름이 별로 좋은 의미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 그게…”
우람한 체구답지 않게 순간의 표정을 포착한 쿠가 그렇게 예리한 질문을 던지자 리아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니까… 저는…”
우왕좌왕하는 리아의 모습에 규설은 여전히 미소 지은 표정으로 물음을 이어갔다.
“따지려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저 당신에 대해 알고 싶을 뿐입니다. 드위 브르하티 리아님.”
“…”
하지만 리아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수그리기만 했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소야가 다시 말을 이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좋다는 내용이었지만, 리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머뭇거리는 모습만 보인다면 과연 면접관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겠는가.
이번 모집 공고에 수많은 사람들이 응시했다는 것은 이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정확한 응시 인원은 미라지 코어에서 발표하지 않았지만, 언론 등에서는 못해도 백만은 가볍게 넘을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을 정도다.
리아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면접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일반적인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극심한 중증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번 면접이 현실에서 이루어졌다면, 그녀는 시험을 보러 가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휠체어에 앉는 것조차 힘든 그녀의 처지를 생각하면 물리적으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운 일이니까.
“저는… 몸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을 대부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부모님들은 마음고생이 심하셨어요. 그래서… 그냥…”
가급적이면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미리 말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밝혀지게 되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다. 그래서 결국 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규설은 그런 리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앞서도 밝혔다시피, 이번 모집 공고의 자격 요건에 신체장애 유무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엘리시온에 접속이 가능하기만 하면 되고, 외적인 요건은 보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죠. 설마, 잊으신 건가요?”
“아, 아뇨! 그럴 리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자 옆에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소야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백 이십 칠만 사천 이백 팔십 삼명의 지원자들 가운데 선발되어 이 자리에 선 것입니다. 당신이 지닌 장애는 그 과정에서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내용을 알았다면 이렇게 캐묻거나 하지도 않았겠죠. 그러니 드위 브르하티 리아님. 당신은 이 자리에 와 있다는 사실에 좀 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말투였지만, 옆에 앉아 있던 규설이나 쿠는 그녀가 다시 이렇게 길게 말을 했다는 사실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소야가 이렇게 길게 말을 할 때는 무언가 크게 당황하거나 마음이 흔들렸을 때 뿐이다. 말투는 이 모양이어도, 따지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감사… 합니다.”
리아 또한 그런 소야의 내심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는 대신, 그녀는 다른 이들의 속내를 빠르게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산군의 그것처럼 이능이라고 불릴 정도의 능력은 아니다. 장애를 가진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능력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소야는 자신을 향해 방긋 웃는 리아의 모습에 괜히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리아님. 당신은 엘리시온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입니까.”
앞서의 대화로 인해 긴장이 많이 풀렸는지, 리아는 얼른 대답했다.
“음… 요리요.”
“요리요?”
순간 소야의 눈이 반짝 빛을 발한다. 요리라는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반응해 버린 것이다.
“네. 칼이나 불같은 건 현실에서는 절대로 다룰 수 없는 것들이니까요. 게다가 요리라면 가만히 앉아서도 넓은 세상을 살펴볼 수가 있어요. 제가 태어난 곳은 인도네시아지만, 요리를 하다보면 맛을 통해 유럽이나 멕시코, 아르헨티나 같은 곳도 마음껏 체험할 수가 있죠. 그래서 전 요리를 할 때가 가장 즐거워요.”
“그렇죠. 맞는 말이에요. 아주 좋은 의견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곧바로 쿠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만약 신과 같은 힘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그건…”
리아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세 면접관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우선은… 제 몸을 고치고 싶어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대답이다.
“그것 뿐입니까?”
규설이 다시 묻자, 리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다른 이들을 돕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음… 저는 이런 식으로나마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이들이 더 많은 걸 알고 있어요. 저에게 신과 같은 힘이 주어진다면, 우선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다른 이들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소통. 당신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까.”
“네. 서로 소통이 이루어져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규설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지켜보고 있던 물벼룩과 클로렐라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정했어요! 저분으로 할래요!”
아란은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소녀는 당신의 수호를 받을 생물들에 대해 아무런 전문 지식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런 건 상관없어요. 저도 그런 건 모르니까요. 그리고… 정말로 필요하다면 배우면 되는 거에요.”
맞는 말이다. 연구는 전문적인 연구자들에게 맡기면 된다. 지식은 쌓으면 된다. 문제는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지식을 지니고 있더라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알겠습니다. 뜻이 그러하시다면.”
아란은 대답과 함께 가볍게 손을 휘저었고, 그 순간 여신이 있던 장소와 면접이 치러지던 장소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이 사라졌다.
“어?”
리아는 다음 질문에 대비하며 정신을 가다듬고 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두 명의 여인을 보고는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이건…”
놀란 건 면접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으로 면접 도중에 난입하는 경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위 브르하티 리아님.”
“넷!”
“합격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네?”
리아는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아란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당신은 여신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자, 어서 이리로.”
“여, 여신이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던 물벼룩과 클로렐라가 그녀에게 성큼 다가가 손을 잡았다.
“당신과 같은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도와주시겠어요?”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앞에 다가온 이가 자신의 도움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만약 거절한다면, 그대로 울어버릴 것 같은 모습. 리아는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고마워요!”
리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바로 물벼룩과 클로렐라는 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 자신의 문양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새롭게 추종자가 된 리아는 물론이고 여신에게도 의도치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물벼룩과 클로렐라. 그것은 생태계의 밑바닥에 자리 잡은 아주 작고 하찮은 생명들. 본래 여신이 지닌 신격은 단순히 그 두 가지 생명체들을 수호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리아라는 추종자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의 신격은 한 단계 진화했다.
작고 하찮은, 굳이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드러나지 않는, 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 물벼룩과 클로렐라라는 이름의 신격이 지닌 의미가 그렇게 확장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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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그럼 아침 먹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