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75
00775 177. 이주 =========================
제드카이아는 기후 난민이다. 기후 난민이란, 전쟁이나 종교 같은 사회 문제가 아닌 오로지 지구의 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한 난민을 뜻하는 말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살던 곳이 바다로 변한 사람, 사막화로 살던 땅이 불모의 땅으로 변한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식의 기후 난민이라면 태평양의 여러 군도에 사는 사람들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제드카이아가 살던 곳은 육지였다. 하루아침에 해안가에 있던 집과 땅이 바다에 잠기면서 기후 난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이런 사태에, 제드카이아와 그의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 소작농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부양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달이 개발되고 있는 이러한 시대에.
그렇게 오늘도 지친 몸으로 하루의 노동을 끝마치고 돌아왔던 제드카이아는 식사 시간 중에 딸아이가 흥분하면서 건넨 말에 깜짝 놀랐다.
“아빠! 저 선발됐어요!”
“선발? 뭘로?”
“달 개발이요! 가족들도 다 같이 가도 되느냐고 그러니까, 괜찮대요!”
“뭐?”
이게 무슨 소린가. 달 개발이라니. 제드카이아는 물론이고 다른 식구들마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도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 점차로 아름다운 파란색의 보석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살림으로는 그런 식으로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나라의 얘기일 수밖에 없었다. 개중에는 그런 식으로 다른 별을 개척할 힘이 있으면 먼저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신경 쓰라며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제드카이아도 그런 부류였다. 오늘만 하더라도 달 개척에 뽑혔으면 좋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젊은 일꾼들에게 화를 내다가 한 바탕 싸움이 붙을 뻔했다.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가 자신의 가족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꾸, 꿈이라도 꾼 거 아니니? 그건 저기 높은 사람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 아니었어?”
“아니에요. 저기… 사실은요.”
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신이 최근 동네 아이들과 함께 구호단체 사람들에게 놀러가곤 했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제드카이아는 군것질거리를 미끼로 아이들이 이상한 짓에 걸려드는 것을 경계해서 그런 곳에 가는 걸 가족들에게 금지시키고 있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그분들은 정말 착한 분들이에요. 희망과 생명 재단이라고 그랬어요.”
“음…”
제드카이아는 일단 딸아이에게 다시는 허락 없이 그런 곳에 다니거나 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직접 그들을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다른 건 몰라도 희망과 생명 재단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 탓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어두워도, 희망과 생명이 진통제 대신 쓰이는 마법 같은 말이라는 사실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마을 한 곳에 자리 잡은 희망과 생명 재단을 찾는 제드카이아는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에 놀랐다.
“아니카 양의 아버지셨군요. 반갑습니다. 희망과 생명 재단에서 파견 나온 필립스라고 합니다.”
“바, 반갑습니다.”
“따님에게 얘기를 들으셨겠지요? 축하드립니다. 사흘 뒤에 가족 분들을 모시기 위해 부양선이 도착할 겁니다. 혹시 이주 전에 달리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특히 법무 관계로 필요한 사항이 있으시다면, 미라지 코어의 특별 전담팀에서 지원해 드릴 겁니다.”
“…”
제드카이아는 빈민이다. 때문에 가진 것이라고는 거의 몸뚱아리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소작을 하면서 버는 돈으로는 정말 입에 풀칠하는 것이 고작이다. 미래를 꿈꾸고 싶어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없는 이런 생활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사람에게 뭐 뜯어먹을 것이 있어서 사기를 치겠나 싶기도 하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인신매매부터 시작해서, 온갖 흉측한 일들이 만연하는 세상이 아닌가. 물론 ‘선언’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그런 일이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가족을 꾸려가는 가장의 입장에서는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확정적으로 자신이 이미 달에 가는 개척민으로 선발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부양선이라니. 그것이 정말로 자신들을 맞이하러 오는 것이라면, 사기일 가능성도 사라진다. 아무리 땅 파먹고 사는 무지렁이라도, 부양선이라는 탈 것이 오직 미라지 코어의 손에서만 움직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저, 정말… 정말로 저희 가족이 뽑힌 겁니까.”
“물론입니다. 아, 근처 이웃에 사시는 사이풀씨와 자히드씨 가족도 뽑히셨습니다. 원하신다면, 함께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세 가족 분들이 모두 동의하셔야 가능한 일이겠지만요.”
“아… 신이시여.”
고향을 잃어버린 뒤로 잊고 있었던 말이 제드카이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신이 자신을 버린 것이라며 한탄하고 원망하던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져 간다. 신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기적을 달리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어려움에 빠진 분들을 모두 도울 수 없는 것이 저희로선 그저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혹시 몰라 가족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만에 하나라도 자신들이 잡은 행운을 시샘해서 누군가 그들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사흘이라는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고, 어느 틈엔가 아침이 밝아오고 말았다.
“아빠! 왔어요! 왔다고요!”
아침이 되자 딸아이의 외침이 집 안에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족들을 집 밖으로 뛰쳐나가 하늘을 보았다.
그들의 눈앞에는 하얀색의 선체를 가진 아름다운 범선이 둥실 떠있었다. 정말로… 그들은 선택된 것이다.
멍한 표정으로 하늘에 떠있는 배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곳으로부터 건장한 남성 하나가 허공을 걷는 듯한 모습으로 내려와 그들 앞에 섰다.
“아니카님. 그리고 가족 분들. 맞으십니까?”
무언가 목록을 살피는 듯한 모습 뒤에 그렇게 물었다. 제드카이아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마, 맞습니다.”
“마중 왔습니다. 짐은 미리 챙겨두셨겠죠?”
“이, 이, 이, 일단은…”
“그럼 바로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가지고 오십시오.”
“알겠습니다.”
밤잠을 설쳐서 부스스한 얼굴로 제드카이아와 그의 가족들은 급히 짐을 가지고 나왔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자 뒤이어 사이풀과 자히드의 가족들도 확인을 받고는 허둥지둥 짐을 챙기러 들어갔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달로 이주하는 사람에 뽑힌 건가?”
“정말? 저 사람들이?”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말하다가, 그중 한 사람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며 배에서 내린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 나도 데리고 가 주시오! 나에게도 천국으로 갈 기회를 달란 말이오!”
하지만 그 남자는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에 튕겨나가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이번 이주는 사전에 신청한 분들 중에서 선발되었습니다. 이주를 원하신다면, 다음번의 선발을 준비해 주십시오.”
“다음번? 다음이란 것이 정말 있는 겁니까?”
보이지 않는 벽에 튕겨나가는 남자의 모습을 본 터라 같은 일을 하지는 못하고,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의 눈에 남자의 주위를 에워싼 결계는 영락없는 마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종교의 영향이 강한 이 지역에서 마법은 가까이 해서는 안될 사악한 것이다.
“물론입니다. 달은 미라지 코어의 개척 사업을 시험하는 무대일 뿐입니다. 저희는 최근에 항성계를 탐사 가능한 초광속 항행 또한 성공한 바가 있습니다. 기회는 계속 생길 것이니, 너무 서운해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허겁지겁 짐을 챙긴 제드카이아의 가족들이 마치 구르듯이 남자에게로 다가왔다.
사실 짐이라고 해봐야 별 것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막 버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준비 되셨습니까.”
“네.”
“그럼 배로 오르시죠.”
남자가 손짓하자 넓은 판 같은 것이 배로부터 내려왔고, 세 가족들은 그것에 올라탄 채 배에 올랐다.
“정말… 가는구나.”
“제길. 이곳에서도 뽑는 줄 알았으면 진작 신청했을 텐데…”
마을 사람들은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던졌지만, 막상 세 가족들은 부양판이 하늘로 떠오르자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소공포증이 있으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얼마 걸리지 않을테니.”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죄송하죠. 미처 준비를 제대로 못했으니.”
남자의 말대로 부양판은 순식간에 하늘을 날고 있는 배 위로 옮겨졌고, 세 가족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갑판 위에 내려설 수 있었다.
“따라와 주십시오. 달까지 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다른 이주민 분들을 태우러 가야 하기 때문에 출발에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 안쪽의 선실에서 휴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네.”
여기까지만 해도 얼떨떨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안쪽의 선실로 들어가자 그들의 눈은 다시 휘둥그레졌다. 평생 삐걱거리는 오두막이나 움집 같은 곳에서만 살아왔던 그들에게 부양선의 선실은 그야말로 천국에 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감흥을 던지고 있었다.
“도착하기 전까지 자유롭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럼,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 나가고 나서도, 제드카이아의 가족들은 한참이나 멍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이, 이거… 정말 우리가 써도 되는 거야?”
막내가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딸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써도 된다고 그랬잖아.”
“그런가.”
하지만 제드카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시험일지도 몰라. 물건을 훔친다거나 망가뜨리면 바로 내?아 버릴지도 몰라.”
“아…”
그럴 수도 있다. 뭐하나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들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도착해서 완전히 달에 발을 딛기 전까지는 무엇 하나도 방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조, 조심할게요.”
“저도요.”
결국 제드카이아의 가족들은 감히 바닥에 깔린 아름다운 양탄자를 더럽힐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입구 근처에서 오도카니 쭈그리고 앉아 있기만 했다.
“뭐하시는… 겁니까?”
다른 가족들을 각각의 선실에 안내하고 나서 돌아온 남자는 그런 제드카이아의 가족들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함부로 더럽히면 안 될 것 같아서.”
“…”
제드카이아의 살짝 겁먹은 듯한 모습에 그 남자, 프리츠는 빙긋 미소를 짓고 말았다. 어쩌면 형진의 실체를 처음 알아차렸을 때, 자신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괜찮습니다. 이미 여러분은 미라지 코어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상태입니다. 물론 여러분 다음에 이곳을 사용하실 분들을 생각해서 깨끗하게 사용해 주시면 감사한 일입니다만, 도가 지나치치 않는 수준이라면 자유롭게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달에 도착하시면 이와 비슷한 주거가 제공될 겁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곳의 시설들을 미리 알아봐 두시는 것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네? 이런 집이 주어진다고요?”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곳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이주하시는 분들을 위한 시설입니다. 최고급으로 모시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딸아이의 배에서 꼬로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화의 중간을 묘하게 비집고 들어온 그 소리에 제드카이아는 얼굴이 확 붉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프리츠는 이번에도 푸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방문하는 바람에 미처 식사를 챙기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주방에 신선한 식재료들이 갖춰져 있으니, 일단 식사부터 하시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감사… 합니다.”
프리츠는 가만히 인사를 건네고는 방을 나갔지만, 제드카이아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은 달랐다. 프리츠가 방을 나서기 무섭게 일단 주방으로 먼저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냉장고라는 건가?”
“열어봐! 열어봐!”
“어디… 헉!”
“와아… 이게 다 먹을 거야?”
프리츠의 말대로 냉장고에는 각국의 신선한 식재료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 다양한 먹거리의 향연에 그대로 넋이 나가고 말았다.
“어, 엄마! 일루 와봐요! 먹을 게 엄청 많아요!”
“그게…”
소심한 성격을 가진 아내가 제드카이아의 눈치를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한달음에 달려가 살펴보고 싶지만, 혹시라도 남편이 화를 내면 어쩌나 싶었던 모양이다.
제드카이아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내는 얼른 냉장고로 달려가서 안을 살펴보고는 어쩜이란 말을 연발하기 바빴다.
“첫 번째 이주민들의 승선이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없고?”
“네. 몇몇 장소에서 승선을 요구하는 이들과 충돌이 있었습니다만, 별다른 문제없이 해결되었습니다.”
“잘 됐군. 첫 번째 이주이니 더욱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만 해.”
“직원들에게 다시 한 번 주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형진은 요안나로부터 보고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처음이 중요한 법. 나중에는 이것도 일상이 되겠지만, 처음에 발을 잘못 헛디디면 나중의 일에도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이후를 위해서도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국민들을 노골적으로 빼가는 사태를 맞이한 각국 정부들의 태도는 요주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중동 국가들이 획책한 테러를 막아내는 과정을 지켜본 자들이라면 엉뚱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으니 세심하게 지켜봐야만 한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