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78
00778 178. 회견 =========================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건가.
각국 정상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들은 내부의 자중지란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 중동의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산전수전을 겪고 선출직으로 한 나라의 대표자가 되었다. 암투와 모략이 빗발치는 중에 그 모든 도전을 물리치고 국가의 수장이 된 그들이었지만, 이 가운데 누구도 지금과 같은 경우를 상정하고 회담을 준비한 이는 없었다.
그들은 새롭게 세계의 패권을 쥔 기업인을 만나러 온 것이다. 이렇게 왕과 같은 모습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는 이와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아니. 그저 왕과 같은 모습만 하고 있었다면 차라리 그런가보다 할 수 있었다. 실제로 미라지 코어는 이미 국가의 기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와중이었고, G20 중에는 왕정 국가도 존재하는 만큼 받아들이지 못할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몸과 마음을 장악해 가고 있는 이 거대한 존재감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손짓 한 번에 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끌려오는 이 현상은 달리 뭐라고 설명해야 옳단 말인가.
설마 부양선을 타고 오는 과정에서 뭔가 술수를 부린 건가. 혹시 부양선에 타는 순간 엘리시온과 같은 일종의 가상현실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떠올리고 있을 정도다.
“많이 놀란 모양이군.”
형진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새파랗게 질려서 덜덜 떨고 있는 각국 정상들과 그들의 수행원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처음에는 그냥 미라지 코어의 경영 지원 실장이라는 직함으로 맞이할까 싶었어. 하지만 막상 그대들을 맞이할 생각을 하다보니까, 그럴 필요가 있겠나 싶더라고. 일일이 각국 정상들을 만나서 얼굴을 마주한 채 상대의 생각을 듣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내가 무엇인지 일일이 파악하고 그것에 걸맞은 대책을 마련하고 마침내 결론을 내리는 그 모든 과정이 귀찮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정확히는 모처럼 마눌들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훼방을 놓은 것에 대한 짜증까지 그런 귀찮음을 가속시키고 있었지만 굳이 그것까지 밝히지는 않았다.
“어차피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뿐이라면 조금 더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린 거지.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참석하고 있는 인원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면 입단속을 하기도 훨씬 편하니까.”
입단속.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떠올린 각국 정상들과 수행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만에 하나라도 지금 이곳에서의 일이 새어나가면, 어떤 식의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식의 경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미라지 코어의 기술력과 영향력이라면 말이 새어나갈 낌새가 보이면 그 순간 원천적으로 정보 유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에 들어갈 공산도 크다.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미라지 코어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기업 집단만이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죽음의 천사.
그 존재가 이들의 뒤에 버티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나 다름없는 사실. 최근 중동 국가들이 겪고 있는 내홍도 결국은 이들의 작품이다.
미라지 코어가 단순히 기술과 돈만 가진 집단이었다면, 이미 각국의 이해 관계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들이 지닌 기술력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이들의 힘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각국 정상들은 뒤늦게서야 눈앞의 이 인물이 과거 죽음의 천사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겪은 바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는 단순히 게임 상에 등장한 캐릭터를 조종했을 뿐이라는 말로 넘어갔었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다. 이 남자가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죽음의 천사가 맞다. 어째서 진작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힘들어 보이는군. 일단 앉도록.”
한 마디 말과 함께 다시금 그들 앞에 느닷없이 테이블과 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방문자들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젠 놀랄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주춤 주춤 의자로 다가가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고 후들거리던 다리에 주어진 휴식에 감사했다. 만약 이대로 몇분만 더 시간을 끌었다면, 그들은 꼴사납게 바닥을 나뒹구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건장한 청년조차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그들 같은 노인이 이렇게라도 견딘건 오직 정신력 덕분이었다.
형진이 다시금 손가락을 튕기자 이번에는 그들 앞에 간단한 다과가 차려진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각국 정상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단 앞에 놓여진 차로 손을 가져갔다. 따뜻하게 김을 피워올리고 있는 그것을 보는 순간, 마치 조건반사처럼 몸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윽한 향기가 은은하게 전신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서야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형진은 어설프게 다과에 약 같은 걸 섞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 굳이 그런 이물질을 섞지 않더라도,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먹거리들은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풀어 놓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한 번 들어볼까.”
하지만 그렇게 풀어졌던 마음은 다시금 울려 퍼진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다시 흠칫하며 움츠러들고 말았다. 형진은 그런 각국 정상들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난다 긴다 하는 각국 정상들이 떼거지로 나에게 몰려 왔는지.”
“…”
각국 정상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부양선에 타고 있을 때만 해도 이런 저런 안건들 가운데 뭘 먼저 꺼내놓는 것이 좋을지 수행원들과 상의했지만, 이제는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꼴이나 다름없게 되어 버렸다.
물론 형진은 자신의 정체에 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국 정상들은 이미 그가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는 존재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그간의 행적을 보면 그가 막무가내로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드러내기로 마음먹은 이상, 숨겨져 있던 어떤 본성이 드러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따로 할 말이 없는 건가?”
서로 눈치만 볼 뿐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 각국 정상들의 모습에 형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자, 러시아 대통령이 깊은 숨을 몰아쉬고는 한 마디 말을 건넸다.
“당신은… 누굽니까.”
이것은 매우 포괄적인 질문이다. 공식적으로 형진이 미라지 코어의 경영 지원 실장을 맡고 있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 이미 뻔히 알고 있는 것을 물어볼 필요는 없는 일. 단순히 말문을 열기 위한 서두라고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드러나지 않은 형진의 진면목에 대해 묻고 있는 것.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질문일 수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신분 외에, 죽음의 천사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대통령이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대화를 나누는 당사자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먼저 얻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죽음의 천사라는 신분조차, 따지고 보면 그저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죽음의 천사가 과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제까지 이런 저런 행보를 보인 것인지조차 그들은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협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좋은 질문이야.”
형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짧게 대답했다.
“나는, 밤의 신이다.”
“…”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이건 비유의 의미가 아니다.”
빙글빙글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형진의 모습에 각국 정상들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 모습이나 말투를 봐서는 얼핏 농담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야기. 하지만 그럴 거라면 굳이 비유가 아니라는 단서를 달 필요가 없다.
신이라니. 달이 지구화되고, 초광속으로 우주를 여행하는 지금 시대에 이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란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달이 지구화되고, 다시 초광속으로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 자체가 바로 눈앞에서 웃고 있는 이 남자로 인해 이룩된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뒤늦게서야 떠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시중에 돌고 있는 얘기 중에는 그런 것이 있다. 사실 미라지 코어가 이룩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단순히 지구의 기술만이 아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세계의 존재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식의 소문이 그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이런 식의 얘기는 외계인 고문 같은 식의 허무맹랑한 뜬소문에 지나지 않지만, 날고 긴다 하는 각국의 엔지니어나 과학자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기술들을 생각하면 귀가 솔깃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랬던 건가…”
따지고 보면 단서는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선언’이라든가, 포션이라든가, ‘희망과 생명’이라든가… 신과 연관 지으려고 든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단서들이 마구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으니까. 단지 은연중에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부정해 왔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기존 종교와는 여러모로 다른 부분이 있는 터라 의식적으로 더 부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그 분이십니까.”
그래서일까. 각국 정상들 중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 이들도 있었다.
“그 분이라는 것이 누굴 지칭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닐 것 같아. 애초에 신이 나뿐인 것도 아니고.”
“그, 그게 무슨…”
대놓고 유일신을 부정하는 말에 각국 정상들은 당혹한 표정이 되었지만, 형진의 말은 그런 이들을 향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생각해봐. 아무리 신이 대단해도 이 광대한 우주를 혼자 살피는 것이 가능할까? 당신들 능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보좌관이나 공무원 없이 국가의 모든 일을 혼자서 살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 사방에서 이일 저일 해결해 달라고 독촉하기 시작하면, 뭘 하고 싶어도 그럴 수조차 없을 걸. 아무리 신이라도 그런 식으로 일에 내몰리면 과로와 스트레스로 다 팽개치고 도망쳐 버릴 거야.”
“…”
뭔가 신이 할 말은 아닌 듯 하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얘기다. 수행원과 기타 공무원 없이 각각의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공무를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지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당신들이 당장 믿고 있는 종교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당신들이 뭘 믿든 간에, 나와 나를 돕고 있는 이들이 신이라는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정 납득하기 어렵다면, 그냥 신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외계인들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어디까지나 당신들의 몫이야.”
“…”
가볍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들이 생각하던 신들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게다가 파격적이다. 싫으면 그냥 신이라는 이름을 지닌 외계인으로 생각하라니. 그들이 알고 있는 어떤 종교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발상이다.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밝힌 시점에서 그것을 부정하는 이들은 신성 모독이라는 이름 아래 천벌이든 뭐든 받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벼움을 지닌 말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상들은 또한 점차로 상대가 신이나 그에 준하는 어떤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자신들의 인식이 어떻든 간에, 신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존재가 절대적이라는 표현이 될 수도 있었다.
“이 정도면 내 소개는 어느 정도 된 것 같은데.”
러시아 대통령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닫고 있던 미국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곳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까.”
참으로 정석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누구’ 다음에 와야 할 것은 ‘언제, 어디서’가 되겠지만, 미라지 코어나 죽음의 천사의 활동이 언제 어디서부터 이루어졌는지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으니 이제 ‘무엇을’이 나올 차례가 된 것이다.
“그럼 다음은 ‘어떻게, 왜’가 되는 건가.”
형진은 피식 웃어버렸다.
“답하도록 하지.”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의 목적은 이 우주가 생명의 불꽃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지구의 밤이 수많은 빛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이 광활하고 넓은 우주가 생명으로 가득 채워져 빛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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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밥 먹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