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82
00782 179. 진행 =========================
어느 나라가 어느 행성을 개척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각 행성별로 규모라든가 자원의 분포가 다르고, 수용할 수 있는 인구의 크기는 물론이거니와 외우주로 뻗어나가기 위한 입지조건 역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달에 대한 테라포밍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고는 하지만, 태양계에 존재하는 모든 행성을 테라포밍하는 것은 아무리 형진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목성 이후에 존재하는 외행성들은 지각을 가지지 않는 가스 행성들이기 때문에 죽었다 깨어나도 테라포밍은 불가능하다.
결국 남은 것은 그 안쪽에 존재하는 지구형 행성들, 그리고 목성과 토성이 거느린 위성들 정도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각국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은 금성과 화성이었다.
금성은 태양계에 존재하는 모든 지구형 천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규모만 놓고 따지면 또 하나의 지구라고 불리워도 충분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성은 지구 궤도 안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것은 차후 외우주로 나갈 때 불리한 요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화성은 지구와 금성 다음으로 큰 천체인데다, 인류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지구로부터 외우주로 나아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목성과 토성의 위성들이 개발될 경우 그 중간 기착지로서의 입지 또한 가지게 된다.
규모만 놓고 따지자면 금성과 화성 다음으로 큰 천체는 목성의 위성인 가니메데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이다. 이들은 일개 위성이면서도 행성 가운데 하나인 수성보다 큰 규모를 지닌다.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관계로 일조량 등의 문제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목성과 토성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원지대를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수성과 함께 여러 나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중이다. 수성에 존재하는 풍부한 철광석이라든가, 타이탄에 존재하는 탄화수소의 바다 같은 것은 태양계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동시다발적인 개발에 있어 무척이나 요긴하게 사용될 자원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인구와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 역량을 지닌 국가라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규모의 행성을 개발하는 것이 맞는 일 아니겠습니까.”
“중국이 큰 나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지구 안에서의 일일 뿐입니다. 금성은 그 자체로 지구와 규모가 비슷한 수준의 행성이에요. 그걸 혼자서 독식하겠다니, 너무 욕심이 과한 것 아닙니까.”
“역량에 어울리는 행성을 개척하겠다는 것뿐입니다. 중국 아닌 다른 어떤 국가가 이런 거대한 행성을 개척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단순히 인구 규모만 놓고 따지면 저희 인도도 중국에 그리 뒤지지 않을 텐데요.”
“크흠… 그쪽은 산업 역량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무슨 소립니까.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화성 궤도에 진입한 국가가 우리 인도입니다. 산업 역량은 물론이고 기술력에서도 비교가 안 되는 쪽은 중국일텐데요.”
“GDP만 놓고 봐도 당연히 우리 중국이…”
“그만.”
“…”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던 각국 정상들은 회의를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의 한 마디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지루한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어떤 존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자리한 커다란 원형 탁자를 굽어보는 듯한 위치에 자리 잡은 옥좌. 그리고 그 옥좌에 지루하고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바로 형진이다.
그의 옆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리따운 두 명의 비서인 제랄딘과 요안나가 앉아 있었다. 여기까지는 이곳에서 처음 각국 정상들과 마주했을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으나, 또한 이전과 확연하게 다른 차이점이 있었다. 흑요호와 산군, 나티, 홍예와 같은 환수들이 마치 형진을 호위하는 듯한 모습으로 둘러서 있는 것이다. 뿐인가. 형진의 어깨 위에는 그의 제자이기도 한 림과 전대 요정 여왕이었던 람이 특별히 불려 나와 있었다. 처음에는 요정들의 대표로 자리한다는 것에 상당히 흥분한 모습을 보였던 그들이지만, 지루한 토론이 끝도 없이 이어지자 형진의 상의 주머니로 들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중이다.
“간 보는 짓은 그만해. 어차피 그 큰 땅덩어리를 혼자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 아닌가.”
“그, 그거야…”
형진의 일침에 중국 측은 우물쭈물한 기색을 보였다.
“반드시 중국이 금성을 다 차지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어.”
“정말입니까?”
“하지만,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어야겠지. 금성을 차지하는 대신, 이후에 이루어질 외우주 개발에서는 빠진다. 어때, 동의하나?”
“…”
형진의 말에 중국 측은 그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다른 나라들은 그것 봐라 하는 식으로 싱글싱글 웃기 시작한다.
물론 중국도 금성을 혼자 다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고집을 피운 건 아니다. 단지 협상과정에서 자국의 지분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식의 생떼를 쓴 것일 뿐이라고나 할까. 원래대로라면 그런 식으로 주장을 이어가다가 적당히 한발 물러서면서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얻어내는 과정을 거쳤을 테지만, 지켜보고 있던 형진으로서는 그런 식으로 과거에 했던 식의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귀찮고 지루하기만 할 뿐이다.
“죄송합니다.”
“흥.”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사죄하는 중국 측 대표에게 콧방귀를 뀌어 보인 형진은 다른 나라 대표들에게 말했다.
“태양계 내의 행성 개발은 그 자체보다도 이후에 있을 외우주 개발에 대한 시험 무대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좋아. 달 개발을 통해 테라포밍 그 자체를 시험해 봤던 것처럼, 각국이 지닌 특징과 역량을 행성 개발이라는 일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살피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유념하겠습니다.”
“좋아.”
결국 각국은 논의 끝에 금성의 경우는 브릭스에 속한 5개국이 협력해서 진행하기로 했다. 브릭스(BRICS)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5개 신흥 개발국을 뜻하는 이름이다. 이들은 각 대륙을 대표하는 인구와 규모를 지닌 강대국들이지만, 선진국들에 비해 낮은 인권이나 지역 격차, 빈부 격차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공통점 역시 가지고 있다.
“너희들이 예뻐서 금성 같은 커다란 행성을 맡기는 것이 아니야. 그것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어.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화성 역시 금성과 비슷한 방식으로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 브릭스가 금성을 개발하게 된 것처럼, 화성은 믹타라는 이름의 국가협의체가 맡게 된 것이다.
믹타(MIKTA)는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의 5개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와 규모 자체가 크고 아름다운 브릭스와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또한 각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들의 집합체이다. 실제로 믹타에 소속된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GDP를 지닌 터키조차도 G7이라 칭해지는 선진 7개국과 브릭스를 제외하면 스페인 정도 밖에는 비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 스페인조차도 믹타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과 호주의 GDP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또한 구성된 모든 나라가 신흥 개발국에 머물고 있는 브릭스와는 달리, 한국과 호주는 IMF 기준으로 엄연한 선진국에 속한 나라이기도 하다.
“의외로군. G7쪽에서 화성을 노릴 거라 생각했는데.”
G7에서는 물론이고 명실 공히 세계 최강이라 칭해지는 미국이 의외로 화성에 욕심을 내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형진은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입지 조건으로 봤을 때, 차후 외우주 개발이 시작되면 다른 어떤 행성보다도 중요한 곳이 될 가능성이 높은 행성이 바로 화성이기 때문이다.
“금성과 마찬가지로 화성도 혼자 먹기엔 너무 큰 파이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다소 규모가 작더라도 독자적인 개발을 추진해 보고 싶습니다.”
중국이 당장 가장 큰 떡이라 할 수 있는 금성에 욕심을 부렸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이후 벌어질 외우주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자국 만의 독자적인 행성 개발을 추진하고자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야. 그래. 원하는 곳이 어디지?”
미국이 어깃장을 놓고 나섰다면 금성이나 화성의 개발권을 정하는 일이 간단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형진은 보상해주는 셈 치고 그렇게 물었다.
“저희가 원하는 곳은 가니메데입니다.”
가니메데는 목성의 위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그 크기는 태양계의 첫 번째 행성인 수성보다도 크다. 다만 밀도에 있어서는 수성보다 작은데, 이것은 가니메데를 이루는 구성 성분의 상당량이 물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수성은 태양계에 존재하는 모든 지구형 천체 가운데 철의 비율이 가장 높은 천체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군.”
가니메데는 지구형 천체이긴 하지만, 물의 비율이 높아서 테라포밍 과정을 거치더라도 육지보다 바다의 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규모가 수성보다 크다고는 하지만 실제 상주할 수 있는 인구의 규모 역시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물론 수중 도시 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수는 있겠지만, 여러모로 수고로움에 비해 보상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오히려 가니메데는 그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참여하려는 국가의 수가 적은 편이다. 금성을 독차지하려다가 한 소리를 들은 중국과는 달리, 큰 경쟁 없이 미국 혼자 독차지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입지도 그리 나쁘지 않다. 목성이라는 어마어마한 자원의 보고가 바로 코앞에 있는데다, 다른 목성권의 위성들을 선도하는 입장에 설 수도 있으며 풍부한 수자원은 화성 이전의 중간 기착지로서의 입지를 갖추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식으로 어떤 행성을 어떤 나라가 맡을 지에 대한 논의가 끝나고, 그 내용이 다시금 발표되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우리나라는 화성을 맡게 되는 건가?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나눠지게 되는 거지?”
“그건 아직 좀 더 협의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의외야. 난 솔직히 분배 문제 때문에 전쟁이라도 나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
“그건 그래. 솔직히 미국이 금성이나 화성이 아닌 가니메데 같은 위성으로 만족한 것도 의외고.”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네.”
“그러게.”
“아무래도 미라지 코어가 입김을 넣은 거겠지.”
“미라지 코어 없이는 행성 개발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대단해. 나 같으면 그냥 혼자 다 먹어치울 텐데.”
“아무리 대단한 곳이라도 결국은 기업일 뿐이니까. 혼자 다 먹으려다가 배탈 나기 전에 알아서 나눠 먹기로 한 건 아닐까.”
“말은 그렇지만 어디 사람 욕심이 그런가.”
“하긴.”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이런 저런 여건이나 국력의 미비로 인해 G20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이후의 물밑 협상에서 컨소시엄에 포함되지도 못한 나라의 국민들은 일제히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기회를 달라!”
“자기들끼리 다 나눠먹을 셈이냐!”
“도대체 우리 정부는 뭘 하고 있는 거냐!”
당장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숟가락을 얹겠다고 나서는 것이 좀 어이없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개중에는 이번 기회를 토대로 부실한 국가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충분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외된 나라들 역시 존재했다. 일전의 테러 사태를 배후 조종한 탓에 지도자들이 처단되고 그 이후의 혼란이 아직 수습되지 않은 중동의 나라들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사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과 같은 흐름에서 도태되어 버린다면, 우리들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타이탄이 유럽 연합의 공동 관리하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곳의 석유가 지구에 공급되기 시작한다면, 유가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떨어지게 될 겁니다. 셰일 사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거란 말입니다.”
“크윽…”
어떻게든 더 버텨보려고 해도 이래서야 답이 없다. 결국 견디다 못한 테러 사건의 배후자들은 미라지 코어에 사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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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