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83
00783 179. 진행 =========================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다른 나라들은 참여국의 협의를 통해 로드맵을 공개하고 그에 필요한 인원의 모집과 교육을 시작했다. 또한 행성 개발 자체는 미라지 코어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인력이나 물자의 운송까지 모두 미라지 코어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라 대형 수송선의 건조에 더욱 총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중동 여러 나라의 사절들이 미국에 위치한 미라지 코어의 본사를 찾은 것은 그렇게 세계 전체가 우주 개발과 그것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태양계 내의 천체들을 개발하는 일로 한창 달아올랐을 때였다.
“후… 이쪽은 벌써 부양 자동차가 시판에 들어간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시내에 부양 자동차들이 몇몇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미라지 코어의 시험 차량이라고 합니다.”
“저렇게 드러내놓고 다닌다는 건 조만간 시판하겠다는 뜻이겠지.”
“그건… 그렇습니다.”
실제로 미라지 코어와 기술 협력을 맺은 자동차 회사들은 연이어 새로운 모델들을 내놓고 있었다. 아직은 부양 자동차 기술을 실증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몇 개월 후에는 양산형 모델이 나올 것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뉴욕 시내의 바뀐 풍경은 단순히 부양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가는 것만이 아니었다.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던 자동차들 대신에, 비행형 퍼스널 모빌리티를 사용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로 길 위까지 북적거리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바퀴 달린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자동차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마차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
푸념 섞인 한 사람의 말에 사절들은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이건 그리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그것을 타고 다니던 사람들을 향한 시선은 지금 부양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문명의 이기에 선망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없진 않았겠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지금처럼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역행한다는 식의 느낌까지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마차를 끄는 말들이 자동차의 질주에 놀라는 것에 대해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고작이었을 테니까.
어쨌든 그렇게 도심을 가로질러 미라지 코어의 본사에 도착했다. 세계를 선도해 나가는 기업의 본사답게 이른 시간부터 이런 저런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석유 수출국 기구 사절단입니다. 미리 약속을 했습니다만.”
“그렇군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 데스크에서 대기 중이던 직원의 안내를 받은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회의실에 도착했다.
“들어가십시오. 기다리고 계십니다.”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지만, 직원의 말에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낯익은 사람 하나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형진이었다.
“…”
형진은 귀찮음이 얼굴에서 뚝뚝 묻어나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게 전부?”
인사는커녕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그 한 마디를 던지는 형진의 태도에 사절단들은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잘못해서 사과하러 왔다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일개 기업의 실장 따위가 여러 나라를 대표해서 찾아온 사절단을 이런 식으로 맞이하는 건 명백한 결례였기 때문이다.
“크흠. 예의를 갖춰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일단 잘못해서 사과를 하러 온 입장이기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고 그렇게 좋은 말을 먼저 건넸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그들을 향해 피식 웃어 버렸다.
“예의? 지금 나에게 예의라고 한 건가?”
순간 회의실의 문이 갑자기 쾅 하는 소리를 내며 닫히자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사절단들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이 채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형진의 목소리가 다시 그들에게 전해졌다.
“너희가, 지금, 나에게, 감히, 예의를 논한 건가?”
뚝뚝 끊어지는 어조로 형진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온 순간, 그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의 파도가 자신들의 몸을 덮쳐오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허억!”
“크헉!”
갑작스럽게 덮쳐온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사절단들은 그대로 휘청거리며 나동그라졌다. 아주 잠깐 존재감을 드러내 보인 것 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형진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말했다.
“사죄를 하고 싶다면, 책임 있는 자가 직접 오도록.”
“책임… 있는 이라면…”
“몰라서 묻는 건가.”
“아, 아닙니다.”
다른 강대국들조차 각국 정상들이 직접 찾아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식으로 최고 책임자가 찾아와도 만나줄까 말까인데, 고작 말단의 몇몇을 사절단이랍시고 보내다니. 물론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들은 이미 처단된 상황이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역시나 정신을 못 차렸다고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는 일이다.
“꺼져.”
“…”
사절단들은 채 일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형진을 마주하고는 그대로 도망치듯 미라지 코어 본사로부터 쫓겨나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한참이나 길거리에 주저앉아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형진의 말을 본국에 전했다.
“직접… 오라고?”
“네.”
“…”
사실 그들이 직접 가지 않고 사절단을 보낸 것은 자존심을 세운다든가 하는 식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대의 권력자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혹시라도 자신들 역시 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차마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라 따위 어떻게 되든 그냥 권좌에 앉아 복락을 누리며 살고 싶다. 우주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어차피 한 세대는 지나야 구체적인 성과가 드러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이미 자신들은 늙어 죽은 후일 테니까.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다 당장 타이탄에 매장된 엄청난 양의 탄화수소를 유럽 연합이 관리하게 되면서 석유 수출국 기구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부가 있다고는 하지만, 돈의 힘으로 억눌러 두었던 국민들의 불만 역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 터져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칫하면,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던 혁명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 권좌에서 끌어내질 가능성마저 있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작정하고 미라지 코어가 사람들을 끌어가기 시작하면 그들의 국가는 어느 순간 빈껍데기만 남은 존재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차라리 그렇게 온건한 방법만 쓰면 다행이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그들을 밀어내려고 마음먹는다면, 채 몇 년조차 버티지 못할 것이다. 당장 그들이 던진 떡밥에 몰려들어 아우성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을 움직여 군사적으로 병탄해버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일 같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일들을 말도 안 되는 일로 치부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그는… 그는… 보통 인간이 아닙니다.”
“지브릴… 어쩌면 그는 지브릴일지도 모릅니다.”
이슬람에서 알라 다음으로 칭송 받는 존재가 바로 지브릴이라는 이름의 천사다. 서구에서는 흔히 가브리엘이라 불리는 이 천사는 기독교에서는 수태고지로,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에게 알라의 계시를 전한 천사로 유명하다.
죽음의 천사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슬람 쪽에서는 그의 존재를 지브릴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날개를 드러낸 채 악인을 징벌하는 모습 때문에 그런 인식이 생긴 것인데, 사절들은 자신들이 이번에 겪은 일을 통해 형진이 비로소 진실한 신분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이 속한 나라의 권력자들에게 그대로 전했다.
어쩌면, 이번 G20 정상 회의에 참석한 이들도 그런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평소라면 몇 달은커녕 몇 년은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합의들을 채 며칠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그렇게 줄줄이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그들은 더욱더 두려움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이것이 자신들에게 내려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도 깨달았다. 만약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자신들 역시 전임자처럼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황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공포에 잠긴 채 미라지 코어의 본사가 있는 뉴욕으로 향했다.
“이제 온 건가.”
“죄, 죄송합니다.”
그들은 형진과 마주하는 순간 먼저 왔던 사절들이 그를 지브릴이라 칭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방을 뒤덮어 버릴 위엄과 존재감에 그들은 잠시도 버티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만 더 늦었으면,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했을지도 몰라.”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형진에게서 그런 말이 흘러나오자, 그들은 납작 엎드려 사죄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기를…”
“흥.”
하지만 그런 정도의 사죄로 일이 간단하게 해결될 거라고는 당사자들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형진은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말했다.
“나는 어지간하면 여러 국가나 민족이 지닌 다양성을 존중해주고자 한다. 하지만 너희들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지금처럼 자기 나라 안에서만 웅크린 채 지낸다면 몰라도 앞으로의 시대에도 그런 것이 통용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하지만 뭐?”
“아, 아닙니다.”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 나중에 뒤에 가서 꿍얼대거나 하는 놈이 나오면 짜증이 나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니까. 난 분명히 참을 만큼 참았어. 내 말이 틀린가?”
“아닙… 니다.”
“흥.”
부부는 닮는 법이라든가. 요새 들어 희망과 생명이 콧방귀 뀌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은 탓인지 형진도 그녀처럼 콧방귀 뀌는 버릇이 들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에게 먼저 고한다. 너희들이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 거대한 흐름에 동참하고 싶다면, 먼저 ‘선언’을 준수하도록 해.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결코 이 작은 땅덩어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경고가 아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
그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암묵적으로 그들의 국가 역시 ‘선언’을 따르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건 벼락이라는 형태로 구현되는 이른바 천벌이 두려운 탓이지 그것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형진은 그들에게 ‘선언’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암묵적으로,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과 권력자인 그들이 전적으로 ‘선언’의 준수를 천명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얘기다. 자칫하면 보수 세력의 반발로 그들의 권좌 그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어느 쪽을 선택하든 험난한 가시밭길일 뿐이다.
“싫어? 싫으면 관두던가.”
형진이 다시 그렇게 말했지만, 바닥에 무릎을 꿇은 이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 채 식은땀만 주룩주룩 흘리고 있을 뿐이다.
“할 말은 그것으로 끝이다. 따르든 따르지 않든, 그건 너희들의 선택에 달린 일. 이제 꺼져라.”
하지만 형진은 그들이 결정을 내리는 것조차 기다리지 않은 채 축객령을 내렸고, 다음 순간 그들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알지 못한 채 회의실 밖으로 이동되어져 버렸다.
“그렇게 여과 없이 힘을 막 드러내도 괜찮을까요?”
문득 한쪽에서 요안나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형진은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목숨이 아깝다면 입조심 정도는 하겠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
따지고 보면 오늘 그와 마주했던 이들도 이전에 처단 당한 권력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이들이고, 테러 계획을 알면서도 묵인한 자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단은 피해갈 수 있었지만, 그럴 만한 빌미가 주어진다면 형진은 손을 쓰는 것을 망설일 생각이 없었다. 테러라는 형태로 자신의 울타리에 속한 자들을 위협했다는 사실 자체가 변하지 않는 이상, 그의 생각이 바뀔 여지는 별로 없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