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20
00820 188. 변화 =========================
새롭게 반신으로 올라선 유아와 임신 사실을 알려온 희망과 생명, 그리고 두 개째의 꼬리가 나오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아이들의 일로 형진이 기쁨에 겨워하고 있는 와중에도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카살 제르토나의 변화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들조차도, 급격하게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당히 세태에 보조를 맞춘다든가 하는 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각국의 왕실이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새로운 보고가 들어올 때마다 이것이 정말 고작 며칠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니, 그렇게 보고를 받고 있을 때는 이미 그 보고 자체가 한참이나 늦어버린 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왕실들은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는 것조차도 자신들의 역량으로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신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신앙과 공헌도가 필요해. 그리고 그것을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전파할 추종자들을 모으는 것이지.”
“그래서 여러 신들이 카살 제르토나의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찾아온 거군요.”
“맞아.”
유아에게 신으로서 지녀야 할 소양이나 기본적인 지식들을 가르치고 있던 형진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희망과 생명이 그동안 성녀로서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얼마간의 공헌도를 주긴 했지만, 스스로 그것들을 모을 수단이 없다면 얼마 못가서 빈털터리가 되어 버리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그래서 준비했지. 짜잔.”
형진은 유아의 손을 잡고는 그녀의 손 위에 투명한 무언가를 올려 놓았다.
“이게 뭐에요?”
“앙그릴에 들어서게 될 김밥천국의 권한 몇 가지야.”
“김밥천국이요?”
“아직 신격이 없으니 신전에 성물을 들여놓을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신도나 추종자를 받아들이기도 힘들어. 반신이 된 이들이 온전한 신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도 사실 그것 때문이지. 신격이 없기 때문에 신격을 얻기 어려워지는, 실로 모순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거야.”
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건 이해했어요. 하지만… 왜 하필 김밥천국을?”
“당신이 나에게 온 이후로 가장 많이 했고, 또한 가장 잘 하는 일이 무언지를 생각해봐.”
“맛있게 먹는거?”
“…”
태연한 유아의 말에 형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확실히 형진이 만든 음식을 가장 먼저 먹은 것도 유아고 가장 맛있게 먹는 것도 유아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대답이라니.
벙찐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잇지 못하는 형진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유아는 키득거리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식재료 손질을 말하는 거였죠?”
“어, 그래.”
“확실히 그거라면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긴 하죠. 확실히 이곳에서 새로 뽑은 희망과 생명 사제들을 김밥천국에 투입한다 쳐도, 당장 요리를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문제가 있으니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의 손질부터 시작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어, 그래.”
“좋아요. 당신에게 배운대로, 열심히 가르쳐 볼게요. 고마워요.”
“어, 그래.”
언제부터 이렇게 여우가 다 되어 버린 것인지. 열이 펄펄 끓고 있는데도 마굿간에서 혼자 끙끙 앓던 곰탱이 같았던 그 유아가 정말 맞는 건가 싶을 정도다. 하기야 평소 보고 듣는 것이 형진의 말과 행동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싶지만.
어쨌든 그렇게 유아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있던 형진은 문득 누군가에게 들어온 연락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빠르네. 하긴 이 상황에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겠지만.”
“무슨 일이라도?”
“몇몇 왕실에서 발 빠르게 납작 엎드리기 시작한 모양이야. 기왕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게 낫겠다 싶었던 모양이지.”
“헤에…”
확인해 보니 가장 먼저 발빠르게 움직인 것은 카살 제르토나와 비슷한 입지를 가진 소국들이었다. 주변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던 그들에게 있어서 카살 제르토나에서 벌어진 변화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모든 설움을 단숨에 극복할 수 있는 커다란 실마리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럼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됐어. 아바타를 보내면 돼.”
“아바타…”
유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왜? 뭔가 문제라도?”
“아뇨. 그게… 역시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둘이 된다는 식의 감각이 좀처럼 익숙해지기가 어려워서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럼 아바타에 적응도 해볼 겸, 같이 가볼래?”
“저도요?”
“그래. 실전보다 좋은 연습은 없는 법이니까.”
결국 유아는 아바타를 불러냈다. 하지만 역시나 두 개의 몸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인간의 몸이었던 그녀에게는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잡아.”
“고마워요.”
형진이 팔을 내밀자, 유아는 비틀거리면서 그의 팔을 잡았다. 하드웨어 자체는 반신이 되면서 충분히 개량되었지만, 소프트웨어 쪽이 적응을 하려면 아무래도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은 느낌이다.
“자, 그럼 가실까요.”
“네.”
공간을 넘어 둘의 아바타가 어디론가 가버리자, 유아는 조금이나마 헷갈리던 것이 나았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예 다른 공간에 두 몸이 존재하고 있으니 차라리 혼란스러운 기분은 덜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의 연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자, 그럼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해 볼까.”
“…”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은 남편의 모습에 유아는 설마 아니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걸 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그게 뭔데?”
“그러니까…”
유아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이 붉게 물들어 버렸다. 설마 싶긴 해도, 그간 형진이 보여주었던 여러 가지 변태스러운 행각들을 떠올리면 그럴 수도 있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뭔데? 뭔데? 뭔데?”
“자, 잠깐만요. 꺄앗!”
“흐흐흐. 말은 그래도 몸은 솔직한 걸? 자아, 나에게 이실직고 하라고!”
“아하하하하! 그, 그만!”
급히 달려온 반지의 주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접견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유아의 아바타는 흠칫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어야만 했다.
“벼, 변태…”
“응? 내가 뭘?”
“으윽…”
유아는 괜히 따라오겠다고 한 건가 싶은 생각을 떠올렸지만, 재미 있는 일을 발견했다는 듯이 빙글빙글 웃고 있는 변태 같은 남편은 자신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팔짱을 낀 손을 깍지까지 껴서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본신이 느끼고 있는 모든 감각을 최대한 차단해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확실히. 과격하긴 하지만 연습 치고는 확실할 것 같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둘이 접견실로 들어서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반지의 주인들이 일제히 형진을 향해 고개를 조아린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그래. 무슨 일이지?”
형진은 유아와 나란히 옥좌에 앉기가 무섭게 그렇게 물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유아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미 보고를 드렸습니다만, 저희 나라에서도 카살 제르토나와 같은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형진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반지의 주인은 모두 다섯 명.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몇 명은 아직 이곳을 향해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중이니까.
“글쎄. 너희들도 알겠지만, 이 도시는 이미 나의 영역으로 확고하게 정해진 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낌없이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고. 하지만 너희들의 나라는 그렇지 않아.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자 곧바로 반지의 주인 가운데 하나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만약 기적이 저희 나라에서도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왕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께 귀의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뭐?”
어느 정도 보상이나 조건이 붙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무조건적인 제안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의외로군. 나는 기껏해야 왕실의 재산을 들여 투자하겠다는 정도의 제안이 나올 줄 알았는데.”
“감히 어찌 신께 거래를 제안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바라는 바가 있다면, 왕실을 불쌍히 여겨 그 은혜가 닿을 수 있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
형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요컨대 저들이 바라는 바는 간단하다. 왕실 전체가 추종자로 들어오겠다는 심산이라고나 할까.
“추종자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에 걸맞은 조건을 갖춰야만 하는 법이다.”
“물론입니다. 그저 저희들은 왕실에 속한 이라고 해서 그 선택의 기회를 잃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확실히. 그 정도라면 들어주지 못할 이유는 없지.”
이제 보니 지금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는 저 반지의 주인은 다른 녀석들처럼 희생양이라든지 버리는 돌로 보내졌던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적극적으로 왕실의 안위에 매달릴 이유가 없으니까.
“좋아. 그럼 너희들은?”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들은 죄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나라의 왕실은 그런 혜안을 가진 자들이 아직 없는지라.”
“저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을 대신해 이렇게 사죄드립니다.”
사실 형진이 기대했던 것도 이런 쪽이기 때문에 화를 내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만, 반지의 주인들은 혹시라도 노여워할까 싶었는지 고개를 숙여 죄를 청했다.
“상관없다. 오히려 나로서는 저 녀석 같은 자들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곤란한 일이니까.”
“하오면…”
“물론 그렇다고 트집을 잡아서 왕실을 쓸어버리겠다든가 하는 식의 얘기는 아니야. 나로서도 계획을 세워둔 것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예외가 늘어나면 곤란하다는 것 뿐이지.”
반지의 주인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왕실이야 그렇다 쳐도, 그런 왕실들 때문에 자신을 포함한 다른 이들까지 불이익을 받으면 곤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투자는 받는 것으로 하지. 다만 나를 대신해서 현장에서 그 모든 것을 살필 이들을 파견하겠다.”
“어떤…”
“수호신이라고 해두면 되겠군. 너희들의 ‘나라’를 보살피는 역할을 맡게될 신들이라고 하면 될까.”
“…”
반지의 주인들은 형진의 말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이해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카살 제르토나에서의 일을 통해, 그들은 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신들이 지금 눈앞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옥좌에 앉아 있는 밤의 신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말을 잘 되새겨 보면, 밤의 신이 다른 신들의 행동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또한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수직적인 관계인지, 수평적인 관계인지는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신들에게도 인간과 비슷한 느낌의 사회가 있고, 그 사회에서 밤의 신이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앞서 말을 꺼낸 녀석처럼 왕실을 설득해서 밤의 신 자체에 귀의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하기야 그 밥통들이 자신들의 말을 제대로 들을 리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과 고집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밤의 신 아래 서는 것이 아니라 수호신이라는 이름의 다른 신들을 통해 한 다리 걸치게 된 사실이 그들로서는 그저 아쉬울 뿐이다.
반지의 주인들과의 접견은 그렇게 몇 마디 대화를 더 이어가다가 끝을 맺었다. 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아를 데리고 접견실을 빠져 나오면서 의외로 잘 버티고 있는 유아를 향해 말했다.
“어때, 별 것 아니지.”
하지만 유아는 그제서야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었다. 억지로 내색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는 있었지만, 이미 그녀는 한계 상황에 달해 있었다. 이제 막 아바타를 써보는 그녀에게 형진의 시험은 너무 난이도가 높았던 것이다.
뜨거운 숨결을 하나 가득 내뱉은 그녀는 밉다는 듯이 형진을 흘겨보며 그의 팔을 꼬집었다.
“몰라욧! 이 변태.”
“아얏!”
============================ 작품 후기 ============================
세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