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19
00819 188. 변화 =========================
도시가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동안, 유아 역시 마침내 변화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긴장할 것 없어. 금방 끝날 테니까.”
“네.”
처음 얘기가 나온지 시간이 좀 지난 뒤에야 비로소 유아를 반신으로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은 희망과 생명의 본신을 봉인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드는데 시간이 걸린 탓이다. 그냥 사실대로 털어놓기가 뭐해서 유아 몰래 일을 진행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자리에는 대신으로 불리는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왕성에서 함께 지내며 친분을 다진 신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반신으로의 승격을 이루는 자리에 참석하는 인사들로는 상당히 거창한 편이다. 하지만 처음에 형진이 반신으로 올라설 때만 해도 그가 지금처럼 우주 전체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엄청난 존재가 될 거라고 예상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당장은 신격도 뭐도 없는 반신에 불과하더라도 유아 역시 어떤 존재로 거듭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미리미리 좋은 관계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시작해.”
“알았어.”
희망과 생명의 말에 따라, 형진은 품에서 파편을 꺼냈다. 포트니아 테론에게 건네받은 파괴와 재생의 파편이다.
사실 유아에게 그런 신의 파편을 건네주는 것이 다소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신을 공격해서 파편을 받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후우…”
유아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양옆에 선 공포와 죽음, 그리고 희망과 생명이 역시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형진은 가지고 있던 파편을 유아의 가슴에 대고 밀어 넣었다.
“읏…”
유아는 파편이 몸으로 스며들자 작은 신음 소리를 냈다. 지금껏 그녀의 몸에 내재되어 있던 희망과 생명의 힘이 밀려나고 그 대신 다른 신의 일부였던 신격의 파편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서 그 모든 일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본래 그녀가 섬겼던 신인 희망과 생명은 물론이고, 공포와 죽음 역시 옆에서 이 모든 일들이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었다. 더구나 그녀의 그릇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희망과 생명을 그 안에 담고 있었던 탓에 신격의 파편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무리 없이 끝낼 수 있을 정도로 확장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쪽이 이상할 정도다.
형진은 만에 하나라도 일이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 가슴을 졸이며 유아의 모습을 살폈으나, 다행히 파편을 받아들이는 일은 별 무리 없이 끝났다.
“후아…”
잔뜩 긴장했었던 탓인지, 파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자 유아는 자신도 모르게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했어. 그럼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그래.”
희망과 생명은 가만히 유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고는 말했다.
“나는 이제 엘리시온의 일좌를 차지한 신 희망과 생명의 이름으로 자격을 갖춘 인간 유아에게 반신의 위를 부여하고자 한다.”
“…”
그것은 더 이상 유아가 희망과 생명의 성녀가 아닌, 독립된 신격을 갖출 자격을 가진 반신으로 선언되는 과정이었다.
희망과 생명을 시작으로, 다른 신들도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엘리시온의 일좌를 차지한 신 공포와 죽음의 이름으로 자격을 갖춘 인간 유아에게 반신의 위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나는 이제 엘리시온의 일좌를 차지한 신 보호와 균형의 이름으로 자격을 갖춘 인간 유아에게 반신의 위를 부여하고자 해요.”
“나는 이제 엘리시온의 일좌를 차지한 신 신뢰와 헌신의 이름으로…”
그런 식으로 모여든 모든 신들의 선언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형진이 다가와 유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나는 이제 엘리시온의 일좌를 차지한 신 밤의 이름으로 자격을 갖춘 인간이며 나의 반려인 유아에게 반신의 위를 부여하고자 한다.”
“…”
유아는 형진의 말에 방긋 미소를 지었다. 형진은 가만히 그런 유아를 안아주고는 다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희망과 생명, 공포와 죽음, 신뢰와 헌신, 보호와 균형, 꽃과 바람, 황혼과 망각, 비와 낭만, 그리고 밤, 이렇게 여덟 신의 총의를 모아 자격을 갖춘 인간 유아에게 반신의 위가 부여되었음을 선포한다.”
형진은 여섯 신의 동의를 얻어 반신의 지위를 얻었지만, 유아는 그보다 늘어난 여덟 신의 동의를 얻어 반신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형진은 물론이고 다른 신들 또한 어지간한 잡신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갖춘 이들. 설령 다른 신들 가운데 이번 일을 반대할 의향을 갖춘 이가 나오더라도 감히 그 뜻을 거스르거나 하지는 못할 것이다.
형진의 선언이 이루어지자 마침내 유아의 몸과 영혼이 변화했다. 방금 전 받아들인 파편이 녹아들어 그녀의 존재와 하나가 되었고, 그 모든 일이 끝나자 그녀의 신체에 새겨져 있던 희망과 생명의 문양은 사라지고 새로운 문양이 생겨났다. 마침내 온전한 반신으로의 변화가 모두 끝난 것이다.
“축하해.”
유아는 자신에게 생겨난 그 새로운 문양을 보고는 잠시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그녀는 희망과 생명이라는 신의 이름 아래 살아왔는데,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이제는 독립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끝… 난 건가요?”
“일단은.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렇군요.”
생각해 보면 참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형진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동안 겪었던 이런 저런 일들을 떠올리면 과연 자신이 이런 위치에 올라서도 괜찮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녀석 말대로야. 반신이 되었다고는 해도 신격을 얻기 전엔 오히려 이전에 성녀로서 활동할 때보다 못할 수도 있어. 무엇보다도, 더 이상 내 권능을 끌어다 쓰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겠지.”
희망과 생명의 말에 유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사용해 왔던 희망과 생명의 권능들을 더 이상 쓸 수 없다니, 단순히 상실감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건 좀… 아쉽네요.”
“불가능한 건 아니야. 단지 네가 얻게 될 신격에 영향이 갈까봐 그렇지. 뭐… 저 녀석을 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형진은 계약을 통해 여러 신들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이라는 커다란 함의를 지닌 신격을 얻었다. 어찌 보면 그렇게 여러 신의 권능을 쓸 수 있는 형진이기에 넓은 뜻을 지닌 신격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원한다면 이전처럼 내 권능을 가져다 써도 좋아. 다만,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해야겠지만. 어떻게 할래?”
“대가라면…”
“음… 당장은 신앙이나 공헌도 같은 걸로 받기는 어려울 테니까. 나중에 네가 신격을 얻으면 나도 그걸 빌려 쓸 수 있도록 해줘. 어때?”
말은 그래도 사실상 공짜로 권능을 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조건이다. 비록 반신으로 인정 받았다 할지라도 유아가 어떤 신격을 얻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당장으로서는 과연 신격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떨지조차 알 수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확실히 형진은 특별한 경우에 해당되는 셈이다.
유아 역시 그런 희망과 생명의 속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아는 희망과 생명의 성녀였고, 반신이 된 것도 그녀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고마워요. 언니.”
“고맙긴. 어차피 주고받는 건데. 공짜가 아니라고.”
“네. 명심할게요.”
마침내 모든 일이 끝나고, 이번 일에 협조해준 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형진은 유아를 쉬게끔 한 뒤 희망과 생명을 찾아갔다.
“왜 왔어? 가서 유아나 보살펴 줄 것이지.”
퉁명스러운 기색이면서도 형진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 싫지는 않은 모양인지 은근슬쩍 몸을 기대온다.
“고마워서.”
“뭐가?”
“이것저것. 전부 다.”
“흥.”
희망과 생명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앞에서 유아를 아끼는 마음을 드러낸 그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나도 꿍꿍이가 있어서 그렇게 나선 것 뿐이야.”
“꿍꿍이?”
형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금 피식 웃어 버렸다. 정말로 뭔가 속셈이 있어서 그런 일을 추진한 것라면 이렇게 굳이 자신에게 털어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 들어볼까. 우리 여신님이 얼마나 사악한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그게… 그러니까…”
희망과 생명은 얼굴이 붉어진 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모양만 봐서는 형진의 첫 번째 부인이라 할 수 있는 유아에게 잘해줌으로서 그의 마음을 더 얻으려는 걸까 싶은 느낌. 하지만 머뭇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그런 단순한 일은 아닌 모양이다.
“뭔데 우리 여신님께서 부끄러워하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걸까.”
“실은…”
희망과 생명은 다시금 머뭇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사실은… 나… 아이 생긴 것 같아.”
“뭐?”
형진은 그제서야 희망과 생명이 다소 급하게 이번 일을 추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본신이 봉인된 상태로는 아이를 낳기 어려우니, 자연스럽게 그 상태를 벗어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진작 말하지.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어?”
“그, 그런 거 아니거든? 꺅! 왜 갑자기 안고 그래?”
“왜긴. 우리 여신님이 너무 예뻐서 그런 거지.”
여신들 가운데는 공포와 죽음에 이어 두 번째로 아이를 가진 셈이다. 하지만 신은 인간과는 달라서 오랜 시간 동안 부모 되는 신들이 정성을 다해야 비로소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물론 그냥 인간으로 키우겠다면 그 기간은 대폭 줄어들겠지만, 형진은 일부러 그런 선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유아가 갑자기 새콤한 것이 먹고 싶다고 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아, 아마도…”
희망과 생명은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것에 대한 후련함과 더불어, 기뻐하는 형진의 모습을 보며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다. 아이를 너무나 좋아하는 형진이 그럴 리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면 어쩌나 하고 마음 한 구석에서 불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형진은 역시나 크게 기뻐하며 그런 감정을 희망과 생명에게 모두 풀어놓았다. 여신은 자신의 몸을 꽉 끌어 앉고 기쁨 가득한 입맞춤을 해오는 형진의 행동에 못 이긴 척 몸을 맡겼다.
유아가 반신이 된 것과 더불어, 희망과 생명의 임신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지만 경사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으읏!”
“끄으응!”
오늘도 어김없이 빠아거리며 형진과 함께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인상을 팍 쓴 채 마치 큰 것이 마려운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힘을 주기 시작한다.
얘들이 왜 이러나 싶어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퐁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꼬리가 나왔다.
“어?”
“꼬리가!”
변화는 꼬리의 숫자가 늘어난 것만이 아니었다. 꼬리를 빼면 영락없는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던 공주들이 갑자기 한 줄기 빛과 함께 제법 꼬마 숙녀 같은 느낌의 모습으로 훌쩍 성장해 버렸다.
“후아…”
“세상에. 벌써 두 개째라니.”
미엘의 아이들이 연거푸 그렇게 모습이 변화하자, 하엘의 아이들은 언니들의 그런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괜찮니? 이상한 데는 없고?”
혹시라도 너무 급격한 변화로 인해 무리가 가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아이들의 몸을 살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네!”
“힘이 더 세진 것 같아요!”
“더 빨리 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미엘과 하엘로 달려와 아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는 다행히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빨라도 너무 빨라요.”
“하긴 지금 상태로도 이미 상식을 벗어난 일이긴 하지만.”
사실 느닷없는 일은 아니었다. 최근 들어 아기 공주들이 쑥쑥 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렇게 너무나 빠르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쉬워서 열심히 캠코더로 촬영까지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래도 막상 이렇게 단숨에 쑥쑥 커버린 아이들을 보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흑요호는 독립심이 강한 종족. 이러다가는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 모두가 떠나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형진을 우울하게 만든다.
“빠아. 표정 이상해.”
“우리가 갑자기 커서 그런가.”
“빠아는 아기만 좋아하나봐.”
몸만 커진 것이 아니라 사고 능력도 진일보 한 것인지 대뜸 아이들은 그런 소리를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형진은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나중이냐 어찌 되었든 당장은 아이들의 성장을 기뻐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아니야! 설마 그럴 리가! 단지 아빠는 너희들이 너무 빨리 자라서 떠나버릴까봐 걱정되어서 그런 것 뿐이야.”
그러자 아이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빠아 바보.”
“맞아. 바보. 바보.”
“난 빠아랑 평생 같이 살 건데?”
“나도! 나도!”
형진은 귀엽게 종알거리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감격하여 아이들을 덥썩 껴안았다.
“그래! 평생 같이 살자! 우리 귀여운 공주님들.”
“꺄하하하! 가, 간지러워요!”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미엘과 하엘은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역시나 그녀들의 남편은 천하에 둘도 없는 팔불출이 맞는 모양이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모쿠님을 위해 한 편 더 준비하겠습니다.
건강하게 군생활 마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