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18
00818 188. 변화 =========================
카살 제르토나는 앙그릴 최대의 상업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평소에도 많은 물자와 인력이 움직이는 곳이다. 하지만 빈민가의 재건축 사업이 시작되면서 그 양은 더욱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것은 많은 양의 자금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뜻도 된다.
형진은 앙그릴에서 통용되는 현금이 없어서 라만에게 퀘스트를 부여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없다 뿐이지,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현물이라면 얼마든지 갖추고 있었다. 금이나 은, 보석 같은 것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시장에서 소소한 물건을 사는 와중에 이런 걸 꺼내면 뒤집어지겠지만, 이런 거대한 사업에는 오히려 환금성과 보관성이 뛰어난 이런 현물들이 선호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은행을 만들어야겠어.”
“은행이요?”
“응. 아무리 귀금속이나 보석이 환금성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너무 많이 풀리면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야. 적당히 시장에 유통되는 양을 조절할 필요가 있는 거지.”
카살 제르토나에는 이미 금융업을 하는 곳이 몇 군데 존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과 환전 업무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지구와 같은 현대적인 금융업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다.
형진은 요안나를 앙그릴로 불러들였다. 당장 자금의 운용에 대해서는 그녀만큼의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을 만들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기존에 있는 금융 시스템을 흡수 통합하든, 아니면 완전히 새로 만들든 그건 마음대로 하고.”
“상당히 큰 일이 되어 버릴 것 같은데요.”
말이 쉽지, 절대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형진은 조금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
“그럼 일단 선금을 받기로 하죠.”
“응?”
요안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형진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일단 선금은 이걸로 충분해요. 나머지는 천천히 받도록 할게요.”
“하하…”
그렇게 은행이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자금이 운용되기 시작하자, 당연히 여기저기서 파리떼가 꼬이기 시작했다.
“들었어? 카살 제르토나에 미친 듯이 돈이 풀리고 있다던데.”
“어떤 미친놈인지는 모르지만 이건 기회다.”
“눈 먼 돈은 먼저 먹는 게 임자야. 다른 놈들이 선수 치기 전에 어서 움직이자.”
이렇게 모여든 자들은 카살 제르토나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도시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건축 사업의 규모를 실제로 보고는 크게 놀라 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건설 자재를 납품하는 입찰에 뛰어들었다.
사업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목재나 석재, 그리고 뭐에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래와 같은 것조차도 엄청난 돈이 되어 버린다. 이들이 가장 먼저 노린 것은 바로 이런 분야에 대한 독점이었다.
“저 말라깽이가 바로 그 녀석이라고?”
“맞아. 자재 납품을 심사하고 업체를 선정하는 일을 최종 감독하는 역할이라던가. 별 볼 일 없는 말라깽이지만, 저 녀석의 결정 한 마디에 엄청난 자금이 움직이게 되는 셈이지.”
“멍청한 놈이군. 조금만 머리를 쓰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그러니 현명한 우리들이 도움을 줘야지.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에 대해서.”
“큭큭큭.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거군.”
당연한 얘기지만 이들은 정상적인 방법을 통한 입찰 경쟁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평소 하던 방법대로, 약간의 꼼수만 쓰면 엄청난 돈이 굴러들어오는 판에 다른 이들과 경쟁 같은 귀찮은 일을 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들은 며칠 동안 감독관의 동선을 면밀하게 파악한 다음 땅거미가 질 무렵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감독관을 으슥한 골목길에서 둘러쌌다.
“여어. 수고하십니다.”
감독관은 쏟아지는 업무 때문에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로한 상태였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엄청난 자금을 만지는 일이라 피곤한 줄도 모를 것 같지만, 운용되는 자금이 큰 만큼 책임감도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좋은 용건인 것 같지는 않군.”
딱 봐도 인상이 더러운 이들이 가로등도 없는 으슥한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감독관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
“아, 착각하실지도 몰라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희들은 그저 푼돈이나 뜯자고 어슬렁거리는 그런 깡패들이 아닙니다. 그저 감독관님과 사업차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 뿐이지요.”
“…”
감독관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이런 놈들이 있었다니. 아니… 새로 도시로 들어온 녀석들인가.”
그 말을 들은 놈들은 씩 웃으며 답했다.
“어허. 말이 좀 심하신 것 아닙니까. 이런 놈들이라뇨. 초면에 그런 말을 들으면… 응?”
느믈거리는 어조로 그렇게 말을 받으려다가, 감독관이 가방을 내려놓고 웃통을 벗기 시작하는 모습에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하는…”
“어? 어어?”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이내 점차로 당혹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상당히 마른 몸매라서 벗어봐야 갈비뼈가 드러난 비리비리한 몸매 정도밖에는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옷 안에 감춰져 있었다.
상당한 수준으로 단련한 것이 명확해 보이는, 마르긴 했지만 세세한 잔근육이 살아 숨 쉬는 그런 몸이다. 형진이 봤다면, 무에타이 선수냐고 물어봤을 법한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무에타이 선수라고 무조건 마른 몸매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이미지다.
감독관은 벗은 옷을 조심스럽게 정돈하여 가방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나의 신께서는 말씀하셨지.”
“뭐?”
“신성한 계약을 더럽히려는 자는, 일단 주먹으로 다스리라고. 좋은 주먹을 냅두고 왜 말로 하냐고.”
“그게 무슨…”
돌변한 감독관의 분위기에 당황한 놈들의 흠칫하는 표정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감독관의 몸이 바람처럼 날았다.
퍽!
“크악!”
뭘 어떻게 때렸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 날까지 어둑하다보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기조차 어렵다.
“미친! 쳐라!”
어이없게도 선제공격을 당해 날아가 버린 동료의 모습에 놀란 놈들은 그렇게 소리치며 감독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
위협용으로 가져왔던 몽둥이로 감독관의 머리를 향해 내리친다. 단순히 제압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너무 과한 행동. 머리를 그런 무기로 내리쳤다가는 운이 나쁠 경우 자칫 죽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그 살벌한 기세에 잠시나마 움찔할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감독관은 피하지 않았다.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날아드는 몽둥이를 머리로 들이받아 버린다.
콰득!
“어?”
몽둥이를 휘두른 놈은 단숨에 반토막으로 부러져 버린 몽둥이를 보고는 얼이 빠져 버렸다. 보통 몽둥이로 사람 머리를 내리치면 피가 터지고 사람이 나가떨어져야 정상인데, 오히려 몽둥이가 부러져 버렸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감독관은 얼이 빠진 녀석을 향해 다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신께서는 말씀하셨지. 네가 나를 믿는다면, 그 무엇도 너를 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히익!”
아까부터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설마 이런 힘을 감추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부러진 몽둥이를 들고 있던 놈은 혼비백산해서 부러진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다음 순간 날아든 주먹에 얻어 맞으며 문자 그대로 허공을 훨훨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뭐야. 이게. 이게 말이 되냐고.”
“쫄지마! 어차피 한 놈이다! 숫자는 우리가 많… 케엑!”
물론 놈들의 말대로 숫자는 그들이 많았지만, 상대는 뭘로 두들기든 간에 끄떡 않는 반면 그들은 주먹이든 박치기든 발길질이든 한 방만 맞으면 그대로 훨훨 날아가 처박혀 버리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싸움이 될 리가 없다.
“후우…”
격투는 순식간에 끝을 맺었다. 애초에 싸움이라는 건 서로 치고 받는 것이지, 이래서야 일방적인 폭력이나 다름 없다. 물론 서로 치고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결과가 이래서야.
감독관이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혈관 안에서 들끓는 피를 진정시키고 있을 때, 문득 한 사람이 허공에서 날아내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벌써 끝난 모양이군요.”
돌아보니 자경대의 복장을 하고 있는 인물은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다.
감독관은 정중한 태도로 상대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들이 감히 신성한 계약을 훼손하려 들기에 저도 모르게 그만.”
“그랬군요. 멍청한 놈들. 신뢰와 헌신의 수호자 앞에서 그런 짓을 하려 들다니.”
자경대 복장의 남자가 혀를 차며 주위를 돌아보자, 감독관은 벗어 두었던 옷을 다시 챙겨 입었다. 그가 굳이 옷을 벗은 것은 싸움 스타일 자체가 워낙 과격해서 피와 살점이 묻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의 피란 일단 옷에 묻으면 지우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든, 상대의 것이든 간에.
“순찰 중이셨습니까?”
“네. 어둠은 밤의 신의 영역. 그분의 뜻에 따라 항상 그 모든 것을 살피는 것이 저희 주시자들의 본분이니까요.”
“그렇군요.”
“일단 희망과 생명의 사제님께 연락을 해두었으니 이곳은 저에게 맡기십시오. 뒤처리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주시면 고맙지요. 그럼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옷을 다시 챙겨 입은 감독관은 자경대원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뒤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놈들은 운이 나빴다. 가뜩이나 정신적인 피로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수호자를 건드렸으니 평소라면 가볍게 한두 대 맞고 끝날 일이 몇 군데나 부러지는 식의 결말을 초래해 버린 것이다.
“어이쿠. 이거 참 화려하게도 해치웠군요.”
허둥거리며 달려온 남자가 널브러진 놈들의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찬다.
“오셨습니까. 죄송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쉬고 있을 시간에 이렇게 불러서.”
“별 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허허.”
느긋하게 다가선 남자는 허허거리며 주변에 널브러진 놈들에게 회복의 권능을 사용했다.
“억! 으억!”
“어이쿠. 가만히 있으시게. 뼈가 잘못 붙으면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할지도 몰라.”
“…”
우악스런 손으로 뼈를 맞추고 회복의 권능으로 붙여 놓는 그 무지막지한 시술에 놈들은 비명을 지르다가도 그 말을 듣고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놈들도 이제는 알아차렸다. 이 도시가, 그리고 이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그들이 알고 있던 보통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음을 이렇게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차린 것이다.
부러지고 뒤틀려버린 뼈를 고치는 와중에 몇몇 놈들은 그나마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기절해 버렸다. 자경대원은 그 모습을 보며 어디론가 다시 연락을 취했고, 곧바로 다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수가 제법 많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청년은 곧바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문 같은 것을 열어 보였고, 자경대원은 정신을 잃었거나, 정신은 차렸어도 넋이 나간 놈들의 목덜미를 집어 올려 그 안으로 집어 던졌다.
“사, 살려 주십시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자신의 동료들이 갑자기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모습에 질려버린 몇몇 놈들이 그렇게 울며 불며 소리를 쳤지만, 자경대원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 모두를 황혼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경계 너머로 집어 던졌다. 그들은 앞으로 지은 죄를 갚기 위해 다른 이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해야할 일인 것을.”
“오늘 밤도 계속 순찰을 도시는 겁니까? 피곤하실 텐데.”
“시간을 정해서 나눠 하는 일이니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밤은 저희들에게는 오히려 편안한 시간이니까요.”
“그렇군요.”
세 명의 추종자들은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고, 도시는 다시금 천천히 고요한 휴식의 시간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가랑비가 잠시 내리고 나자, 그나마 땅바닥에 뿌려져 있던 혈흔마저도 깔끔하게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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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밥 먹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