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21
00821 189. 발표 =========================
어떤 시대, 어떤 장소라 해도 신무기의 개발은 많은 인원과 자금이 소모되는 일이다. 그것은 앙그릴도 마찬가지였고, 특히 현재 개발되고 있는 부양선은 특히 더 한 면이 있었다.
단순히 범선 한 척을 건조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다. 만약 그 배가 최신식 철갑선이라면 비용은 다시 몇 배로 뛴다. 부양선은 그러한 철갑선을 다시 몇 척이나 건조할 수 있을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카트린의 순방 이후 각국은 부양선에 대한 기술 개발에 일제히 뛰어들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건조해서 운용할 수 있는 나라는 아운 제국이나 동서 양 제국 같은 거대한 몇몇 국가 뿐이다. 다른 나라는 실제 건조는 어찌 되었든 간에 일단 기술이라도 개발해 보고자 노력하는 쪽에 가깝다.
페투스가 속한 파스쿰도 상황은 거의 비슷했다. 형진에게 반지를 받는 즉시, 나중을 위해 대비해 두었던 인력과 자금을 모조리 쏟아 부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건조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돈이 필요해.”
카살 제르토나에서의 일을 전해 듣고 급히 그곳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페투스는 뭔가 돈 나올 구멍이 없는지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추종자들의 능력으로 뭔가 돈을 벌 방법이 없나 하는 식의, 신들이 들었다면 대번에 얼굴을 찌푸릴 만한 생각마저 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과 한정된 시장만으로는 돈이 나올 구석 역시 한정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한정된 곳에서 돈을 뽑아내려면 그만큼 강한 반발에 직면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런 일들을 최소한의 저항으로 문제없이 처리하는 것이 정치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피곤한 일인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다. 돈을 걷는 쪽이나, 내는 쪽이나 그건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카살 제르토나에 도착해서 김밥천국과 가스트샵에 대한 내용을 들었을 때는 눈이 번쩍 떠졌다.
“다른 세계의 물품을 들여오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하지만 단순히 팔기만 하는 건 아니야. 이쪽의 좋은 물건이 있다면 저쪽에 팔 수도 있어. 무작정 팔기만 한다면, 그건 이쪽의 자산을 유출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결국 균형을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되겠지.”
과거 지구에서도 무조건 무역수지를 흑자로 맞추는 것이 좋다는 시각이 팽배한 적이 있다. 그 결과 강대국들은 무작정 공장을 늘리고 시장의 확대를 위해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지구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소비될 수 있는 물자의 양은 한정되어 있었고, 결국 누군가가 흑자를 보면 누군가는 적자를 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결국 국제적인 충돌로 이어졌고, 세계대전이나 대공황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앙그릴은 현재 마법을 통한 산업 사회로의 발전 도상에 있었고, 각국은 지구에서 강대국들이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형진이 앙그릴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지구에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희생을 이곳에서까지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한 가지 이유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신이 옳으니까 그대로 따르라고 한다면, 그러한 상황을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이들로서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굳이 힘들게 이런 저런 일을 하느니, 손쉽게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누구라도 귀가 솔깃해질 수 에 없는 일. 그것을 막는다면 당연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른들이 아무리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이런 저런 충고를 해도, 젊은이들이 보기엔 꼰대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그런 상황에서 이게 옳으니까 무조건 따르라고 한다면, 누구라도 반항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식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좀 더 현명하게 그럴 듯한 미끼를 내미는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굳이 신들의 눈치를 봐가며 힘들게 식민지를 얻으려 애쓰는 것보다 더 쉽고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식으로.
페투스를 비롯한 반지의 주인들이 가스트샵의 진정한 목적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것이 지금 자신들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을 해결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리라는 것 또한 그들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조막만한 땅덩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이쪽의 문물을 저쪽에 팔고 저쪽의 문물을 이쪽에 판다. 세계 대 세계의 교역이란 것은 단순히 조막만한 식민지 한두 개를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확장성을 지닌다. 단순히 일반 서민들에게 싼 가격에 물자를 공급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이러한 교역은 세계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만큼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문제는 각각의 나라나 지역이 다른 어떤 곳과 비교해도 우위를 지닐 수 있을 정도의 품질을 갖추는 일이겠지. 당장은 다른 세계의 신기한 물품들이라는 것만으로도 경쟁력을 갖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참여하는 국가나 지역이 많아질수록 경쟁도 심해질 테니까.”
형진의 말에 반지의 주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식민지를 얻기 위한 경쟁이 상품을 통한 경쟁으로 바뀌는 것이로군요.”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게 상품들이 유통될수록 벌어들이는 세금의 양도 늘어날 테고.”
“결국 얼마나 경쟁력 있는 상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하느냐의 싸움이 되겠죠.”
확실히 말이 통하는 상대와의 대화는 즐거운 일이다. 형진은 생각보다 반지의 주인들이 똘똘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쪽에서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농산물이라도, 다른 세계에서는 크게 호평 받으며 유행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야. 그러니 하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런 식의 특산품들을 잘 찾아내 보도록 해. 그런 물품일수록 이득도 커지게 마련이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간단하게나마 대략적인 내용의 설명을 마치자 형진은 반지의 주인들에게 두 사람을 소개했다.
“이쪽은 오귀스트 공작. 가스트샵의 운영은 현재 그가 총괄하는 중이야. 그리고 이쪽은 내 아내인 유아. 김밥천국에서 쓸 인력들의 기본적인 교육은 앞으로 그녀를 통해 이루어지게 될 거야. 인사들 나누도록.”
“오귀스트라고 합니다.”
“유아에요. 만나서 반가와요.”
“바, 바, 반갑습니다.”
반신이 되면서 성녀일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게 된 유아의 모습에 반지의 주인들은 쩔쩔매며 어쩔 줄 몰라하기 시작했다. 왕실 내부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이들이었지만, 유아의 앞에서는 예쁜 형수님과 처음 대면한 풋내기 중학생처럼 숫기 없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공작. 우선 이들에게 가스트샵 오픈에 필요한 것들을 설명해 주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폐하.”
형진은 우선 오귀스트로 하여금 반지의 주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다음 유아와 함께 자리를 빠져 나왔다.
“하마란님이 조금 서운해 하는 것 같았어요.”
결혼 후 하마란은 항상 오귀스트와 찰떡처럼 붙어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도 임신 중인 상태. 물론 수호자이므로 다른 임산부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도록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첫 임신인 만큼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나중에 가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그쪽이 나은 일이니까.”
가스트샵의 운용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 타나토스와 앙그릴은 실질적으로 하나의 세계로 묶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당장 인력의 교류는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직접적인 교역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물자가 서로 오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지구 쪽에는 가스트샵이나 김밥천국을 열 생각이 없나요?”
“아직은. 지금 지구와 이 두 세계가 연결되어 버리면 산업 자체가 순식간에 압살될 가능성이 있거든.”
사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중국처럼 타나토스나 앙그릴에서 사업을 하려면 무조건 현지에 합작법인을 세우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런 방법 가운데 하나다. 지구 쪽에서 기술과 자본이 투입하고 타나토스나 앙그릴은 시장 그 자체를 무기로 삼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아직 타나토스나 앙그릴의 산업체계가 지구의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점. 이래서는 모처럼 싹 트기 시작한 마법 문명이 제대로 꽃 피워보지도 못하고 뭉개져 버릴 가능성이 있다. 어차피 그런 식의 유통 체계라면 지구쪽이 원조이기도 하고.
물론 부양선처럼 마법을 통해서만 구현 가능한 물품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마법 기술들이 효율을 빌미로 과학 기술들에 밀려버려서는 형진이 직접 앙그릴에 개입한 보람이 없다.
거처로 돌아오니 세 여신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반신이 된 유아도 자연스럽게 그녀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자리에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뭐가요?”
얼른 다가와 그의 옆자리를 차지 하고 앉은 보호와 균형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형진은 빙긋 웃었다.
“탐사선 말이야. 센타우리 쪽으로 몇 척을 보냈거든.”
“아하. 그 초광속 항법인가 쓰는 우주선 말이죠?”
“맞아.”
사실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생명이 번성하고 있다면 은염랑에 의해 탐사가 되었을 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설령 생명이 존재한다 해도 아주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처음이니까, 일단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는 중이야. 하지만 지구인들로서는 충분히 기념비적인 일이겠지.”
물론 그것이 지구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업적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쨌든 미라지 코어가 지구에 속한 기업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센타우리라고 불리는 세 개의 항성에 대한 보고가 형진에게 도달했다. 쌍성계로 이루어진 알파 센타우리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이며 알파 센타우리로부터 0.2광년 떨어진 프록시마가 바로 그것이다.
0.2광년이라고 하면 얼마 안 되어 보이지만, 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를 기준으로 삼는 천문 단위인 AU로 따지면 수치가 만 육천이 넘어가 버린다. 태양계에 속한 가장 먼 행성이라 일컬어지는 해왕성이 30AU가 좀 넘는 거리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건지 알 수 있다.
“역시 우주는 너무 넓어. 짜증날 정도로.”
심술난 초등학생처럼 툴툴거리는 형진의 모습에 세 여신과 유아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니, 이제는 유아도 반신이 되었으니 네 여신이라고 부르는 편이 맞으려나.
“저렇게 툴툴거리면서도 결국은 다 자기 손을 거쳐야 직성이 풀리면서.”
희망과 생명이 그렇게 일침을 가하자, 형진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했다.
“크흠. 어쨌든 거짓된 천국으로 가서 상황을 살펴볼 생각인데, 같이 갈래?”
하지만 여신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별로.”
“음… 가고는 싶지만… 여신들끼리 할 얘기가 좀 있어서요.”
단칼에 거절하는 희망과 생명이나 공포와 죽음과는 달리 보호와 균형은 살짝 꼬시면 따라 나설 것 같기도 했지만, 어차피 여신들의 입장에서는 재미 없는 얘기들만 나올 것이 뻔한지라 형진은 혼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수 없지. 무슨 비밀 얘기를 하려고 그러나 싶어서 좀 궁금하긴 하지만.”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희망과 생명이 대꾸한다.
“눈치 없는 남자는 별로야. 잘 생각했어.”
“쳇. 말을 해도. 아무튼 그럼 다녀 올게.”
“응. 수고해.”
형진이 모습을 감추자, 유아는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세 여신들을 바라보았다. 반신이 되었으니 동등한 입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인간이었던 때의 일이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녀로서는 세 여신이 자신을 에워싸듯 다가와 앉자 불안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저기… 저한테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유아의 말에 공포와 죽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장소를 바꾸자. 엘리시온. 아직 안 가봤지?”
“네.”
“반신이 되었으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가는지도 알아둬야 해. 할 얘기도 있고.”
“…”
어쩐지 좀 불안한 기분이 되었지만, 세 여신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에 유아는 자리에서 일어난 여신들의 뒤를 따라 엘리시온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날씨가 뭐이리 찌부둥한지.
가뜩이나 월요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