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22
00822 189. 발표 =========================
유아가 다른 여신들과 엘리시온으로 들어섰을 때, 형진은 거짓된 천국에서 허세와 망상을 만나고 있었다.
“바로 왔군. 그렇지 않아도 탐사선에서 보내온 정보를 확인하던 중이야.”
“어떻습니까.”
형진의 말에 허세와 망상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글쎄. 일단 고등한 생명체는 없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
“역시 그렇군요.”
이미 예상했던 결과이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었던 것이 역시나로 밝혀지자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허탕인 건 아니야.”
형진의 그런 태도를 읽은 허세와 망상은 씩 웃어 보이더니, 영상 하나를 띄워서 보여주었다.
“이건…”
다소 실망스런 기색을 보이던 형진은 금새 눈이 휘둥그레졌다.
“딱 봐도 바다 같지?”
“허…”
쌍성계인 센타우리는 중력의 분포가 달라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행성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우주에 대한 지식이 차츰 확장되면서 태양처럼 항성이 하나 뿐인 항성계의 수가 오히려 더 적다는 것이 밝혀지고, 쌍성계라도 충분히 행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역시 확인된 바 있다.
허세와 망상이 보여준 것은 쌍성 가운데 작은 쪽인 센타우리B를 돌고 있는 행성 가운데 세 번째의 것이었다. 크기는 지구보다 약간 작은 수준. 하지만 푸른 바다와 함께 하얀 구름이 떠있는 모습은 명백하게 지구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지구의 그것보다 구름의 양이 훨씬 많아 보이는 것이 문제긴 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저 정도면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충분한 모습으로 보입니다만.”
형진은 흥분한 기색마저 보이며 그렇게 말했지만, 허세와 망상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른 영상을 보여주었다.
“일단은. 하지만 이걸 보게.”
“아…”
허세와 망상이 보여준 것은 같은 행성의 어두운 부분이었다. 적어도 이 행성에 문명이 있다면, 최소한 불빛 정도는 보여야 정상. 하지만 이 행성의 어두운 면에는 그런 조짐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이래서 고등한 생명체는 없다고 말씀하신 거군요.”
조금 허탈한 기색마저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허세와 망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무리 수준이 낮은 문명이라도 최소한 불 정도는 사용할 테니까.”
물론 스하족처럼 존재 자체가 어둠에 속해 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센타우리가 있는 장소를 감안하면 그것도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는 해도, 분명히 커다란 발견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어쨌든 최소한의, 또는 별다른 작업 없이도 인간이 거주할 만한 행성을 찾았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니까.
“본격적인 탐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궤도상에 게이트를 설치하고 유인 탐사선을 보내야만 하겠지.”
“당연히 그래야겠죠. 일단 대기 조성 같은 것도 확인을 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든 생물이 존재하는지도 분명히 파악해야 하니까요.”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도록 해. 난 계속해서 다른 항성계의 탐사를 총괄하도록 하겠네.”
“부탁드리겠습니다.”
형진은 탐사 결과를 넘겨받아서 프리츠에게 정리를 맡겼다. 프리츠 역시 자료를 확인하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세계가… 또 한 번 뒤집어지겠군요.”
금성이니 화성이니 하는 행성들을 테라포밍 하는 문제로 정신없는 각국에게 센타우리B에서 발견된 행성의 모습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태양계 내의 행성에 대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더라도 이것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굳이 테라포밍 같은 번거로운 작업을 할 필요도 없이, 이 새로운 행성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당장 사람이 옮겨가서 살아도 될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는 건 본격적인 탐사가 진행된 다음의 일이 되겠지.”
“발표가 되면 유인 탐사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만.”
“글쎄. 워프 항법을 사용하는 유인 우주선은 아직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고, 황혼의 권능을 이용한 게이트는 아직 공개할 시기가 아니야. 일단은 안전성을 핑계로 시간을 끌어봐야겠지. 그 시간동안 우리는 게이트를 설치하고 인원을 파견해서 직접적인 확인을 하면 되는 일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형진의 말이 맡긴 하다. 그러나 프리츠는 쓴웃음을 지었다. 외계 행성, 그것도 바다와 대기가 존재하기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지도 모르는 외계 행성에 첫 발을 내딛는 영광을 과연 사람들이 쉽게 포기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쩝. 보안을 한층 강화해야겠군요.”
“어쩔 수 없어. 고생은 되겠지만. 그럼, 부탁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형진의 등장 이후 잠시 언론에 대한 노출이 뜸해졌던 프리츠가 이번 발표를 맡게 되었다.
미라지 코어에서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언론에 전해지자, 지구는 다시 한 번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들었어? 중대 발표 얘기.”
“안 그래도 난리야. 지금까지 미라지 코어에서 ‘중대 발표’라는 표현을 쓴 일이 거의 없는 걸 생각해봐.”
“이번엔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는 걸까 싶어서 난 좀 무서워질 정도야.”
“혹시 외계인 발견이라든가 뭐 그런 얘기인 건 아닐까?”
“에이… 설마. 초광속 항해 시험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나온 게 언젠데…”
“…”
“설마?”
“아, 아니겠지?”
세상에는 형진의 생각보다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들은 이번 발표가 이전에 알려졌던 초광속 항해 시험과 연결되어 있는 사안임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오죽하면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했음을 확인하고 놀란 프리츠가 혹시 자료를 정리하던 인원들에 의해 정보가 누설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리고 마침내, 예고된 시간이 되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미라지 코어의 프리츠 베커입니다.”
한동안 미라지 코어의 대외적인 발표들을 담당하고 있던 형진 대신 프리츠 베커가 모습을 드러내자 긴장한 표정으로 대기중이던 기자들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앙그릴에서의 일로 바쁜 형진이 프리츠에게 발표를 대신 맡겼다는 사실을 그들이 추측해낼 단서는 처음부터 주어져 있지 않았다.
“오늘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미라지 코어가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음을 알리고자 합니다.”
프리츠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작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공간에 한 마디를 던졌다.
“20XX년 X월 X일. 미라지 코어의 초광속 무인 탐사선이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계인 알파 센타우리에 도달했습니다.”
“헉!”
설마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밝혀지자,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생중계 중인 텔레비전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헛숨을 들이키고 말았다.
초광속 항해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고작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런데 벌써 다른 항성계에 도달하다니!
놀란 기자들이 기사를 송고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프리츠는 준비된 내용을 계속해서 말했다.
“미라지 코어는 이번 탐사에 모두 세 척의 무인 탐사선을 동원했으며, 이 세 척의 탐사선은 각각 센타우리A, 센타우리B, 그리고 프록시마의 세 항성에 성공적으로 도달했습니다.”
“맙소사!”
“세 곳을 동시에!”
하나만 도달했어도 놀라 자빠질 만한 일인데, 동시에 세 곳에 대한 탐사를 진행해서 모두 성공시키다니. 미라지 코어의 저력에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 잠깐만요.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본래 질문 시간은 발표 후에 주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의외로 프리츠는 순순히 질문을 받아 주었다.
“원래 예정에는 없는 일이지만, 무슨 질문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말씀해 보십시오.”
허락을 받은 기자는 급히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XXX 방송의 기자 호너입니다. 질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알기로 이 항성들은 모두 4광년 이상의 먼 거리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그곳에서 정보를 보내도 최소 4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최근 초광속 항해 시험이 성공했음을 발표한 즉시 탐사선을 보냈어도 그곳에 도달한 탐사선이 정보를 보내오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기자의 질문을 듣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을 지켜보는 이들이 모두 빛의 속도 같은 물리학적 지식에 대해 깊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그들 모두가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은 지금 당장은 구체적으로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지금 드릴 수 있는 말씀이라면, 미라지 코어는 이미 그러한 일이 가능한 기술을 확보한 상태라는 정도겠군요.”
“그, 그런!”
프리츠의 대답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셋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뒤집어질 듯이 놀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런가 보다 하며 별 것 아니라는 듯이 흘려듣는 경우였으며, 마지막은 그게 뭐가 중요하다는 건가 싶은 반응이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프리츠의 발언이 내포한 의미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4광년 이상 떨어진 곳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 기술이란 것은, 바꿔 말하면 거리의 한계를 초월한 통신 수단을 가졌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알큐비에레 드라이브와는 다른 방식의, 이를테면 공간을 접는 식의 워프 역시 이미 실용화 수준에 들어섰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 굳이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를 사용하는 대신 그 워프 방법을 사용하면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그것을 탐사에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 새로운 워프 방법이 기술적으로 물질을 옮기는데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물론 사실은 이미 가본 곳에만 경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한계 때문이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빠르게 떠올릴 수 있는, 그리고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일단 그 정도였다.
중요한 건 지금은 통신 수단으로만 제한되더라도, 언젠가는 물질을 전송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바로 그 점에 주목한 것이고, 프리츠가 굳이 질문을 받아 준 것도 이후에 공개될 게이트에 대한 떡밥을 뿌리고자 하는 의도였다.
곧바로 기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손을 들며 질문 기회를 청했지만, 프리츠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질문은 발표가 끝난 후에 계속 받기로 하고, 그럼 준비된 내용의 발표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정숙해 주십시오.”
기자들은 아쉽지만 그 말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거부하고 소란을 피웠다가 회견장에서 쫓겨나기라도 하면 자기만 손해니까.
회견장이 조용해지자, 프리츠는 단상에서 걸어 나오더니 세 개의 영상을 띄웠다. 그것은 바로 붉게 타오르고 있는 세 개의 항성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번에 탐사된 세 개의 항성입니다. 그리고…”
프리츠가 다시 허공으로 손을 뻗자, 세 개의 항성 주위에 행성들이 배치되었다.
“지금 보시는 것이 바로 이 항성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들입니다.”
기자들은 열심히 프리츠가 보여준 영상들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센타우리B의 주위에 배치된 행성 가운데 특이한 모습의 행성이 하나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 잠깐. 저건…”
“저건 설마…”
기자들이 하나둘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프리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발견하신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행성 가운데 하나는 아주 놀라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이것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뻗어 센타우리B의 세 번째 행성을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어! 저, 저건!”
“세상에! 저게… 저게… 정말로?”
그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지구의 모습을 매우 많이 닮아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바다와 하얀 구름. 그리고 그 아래 드러난 대륙의 모습까지.
프리츠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지구인이 발견한 또 다른 지구, 그 첫 번째가 될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행성의 이름을 ‘유아’로 정했습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