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34
00834 192. 전조 =========================
포트니아 테론이 있는 곳으로부터 물러난 형진은 일단 거짓된 천국으로 향했다.
“이건 또… 엄청나군.”
별도의 격리된 공간을 만들고 거대한 애벌레의 사체를 가져다 놓으니, 허세와 망상은 물론이고 급히 불려나온 다른 신들의 표정이 꽤 볼만하다.
“그냥 구경이나 하라고 가져다 놓지는 않았을 테고, 분석해 보라는 얘긴가?”
“그렇습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어쩐지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허세와 망상을 향해, 형진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다른 우주에서 온 녀석이니까요.”
“뭐?”
허세와 망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제는 그도 우주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고, 단순히 다른 행성에 사는 생명체를 형진이 이런 식으로 부르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우주라니. 그게 정말인가?”
“네.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는 어렵겠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 상황에서도 제가 힘을 늘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이유에서죠.”
“으음…”
허세와 망상은 아직 포트니아 테론의 존재를 비롯해서 다른 우주로부터 오는 존재에 대한 것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형진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이전에 형진과 대립했던 시절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형진의 힘이 늘어나는 속도는 실로 공포스러울 정도다. 저렇게까지 힘을 늘려갈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로. 적어도 허세와 망상이 알기로, 지금의 형진에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더 이상 우주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형진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작해야 타나토스와 지구라는 행성에 의식이 못 박혀 있었던 자신과는 달리, 그는 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단순히 그런 점들만 가지고 지금의 자신과 형진의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허세와 망상은 절로 쓴웃음이 배어나오는 것을 억지로 삼킨 채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이것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겠지.”
형진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식독 같은 것을 사용하는 듯 하니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악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모르긴 해도 자신의 독에 견디는 능력 정도는 있을 테니, 이 놈의 시체를 살피면 나름의 대응책 정도는 생기겠죠.”
“과연. 이 덩치면 어지간한 추종자는 상대하기 어렵겠지. 알겠네. 우선은 부식독이란 걸 막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 자네가 지원하고 있는 연구소란 곳에도 샘플을 보내볼까 하는데 괜찮겠나. 저 녀석들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할 테니.”
이제는 척하면 척이다. 역시 함께 일을 많이 하다보니 이제는 대충 그가 뭘 원하는지 어렵지 않게 짚어낼 수 있게 된 모양이다. 형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원하는대로 하십시오. 이 일에 있어서는 전권을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그거 고맙군.”
덩치만 놓고 봐도 환수나 노스페라투 같은 특별한 존재들을 제외한 일반적인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이 녀석들을 상대하기 위한 특별한 무기를 만들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잠시 이후의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형진은 방역을 비롯해 필요한 조치들을 모두 마친 뒤에야 다시 다이애나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미안. 기다렸지.”
“가셨던 일은 잘 되었나요?”
“응. 덕분에.”
“다행이네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달리 의지할 곳이 없는 다이애나에게 있어서 포트니아 테론은 사실상 유일한 후견인이나 다름없다. 물론 형진이 그런 걸 따져가면서 여자를 받아들이거나 다루는 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달리 누군가 뒤에서 버티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나 형진의 다른 부인들과 그리 친하지 않은 다이애나에게 있어서는 더욱더 중요한 부분이다.
“어쩐지 어색해.”
“뭐가요?”
“당신이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대답을 하니까.”
“…”
형진의 장난스러운 말에 다이애나는 그를 살짝 노려보았다.
“나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라고요.”
“그럼 그냥 편하게 대하지 그래.”
“다른 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래요.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고요.”
“지금은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뭘.”
“그거야…”
다이애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크흠. 평소에 연습을 해둬야 실제 상황에서 실수하지 않는 법이니까.”
“호오. 연습은 실전처럼 해야 한다는 얘긴가.”
“맞아. 아니, 맞아요.”
자신도 모르게 반말로 대꾸했다가 얼른 말투를 고치는 다이애나의 모습에 형진은 피식 웃어 버렸다. 다이애나가 이렇게 굳이 말투에 신경 쓰는 이유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녀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주위에 머물고 있는 은염랑이나 요정들이 아니다. 바로 그녀 이전에 형진이 맞이했던 반려들이 원인이라 할 수 있었다.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도 모를 여자가 신으로서 군림하는 자신들의 남편에게 막무가내로 하대를 하고 그러면 과연 좋게 볼 여자가 있겠는가. 인간도 아니고 여신들까지 섞여 있는 상황에서라면야.
사실 형진으로서는 말투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실제로 희망과 생명 같은 경우는 자신에게 말을 놓는 것을 넘어 이놈 저놈 해댈 정도니까. 물론 그래봐야 일단 침실에 들어가면 순한 양이 되어버리긴 하지만 말이다.
“나로선 자연스러운 것이 좋지만, 네가 그걸 원한다면 굳이 하지 말라고 할 필요는 없겠지.”
“이해해 줘서 고마워… 요.”
“자, 그럼 하던 걸 마저 해볼까?”
“…”
형진의 능글맞은 말에 다이애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미 몇 차례나 그와 관계를 가졌음에도 여전히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숙인 다이애나에게 다가서서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린 형진은 그대로 침대로 향했다. 물론 그 전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위에 결계를 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렇게 다이애나의 궁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자, 허세와 망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네 말대로더군. 스스로가 지닌 독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어.”
“그것뿐입니까?”
“물론 아니지. 이걸 보게.”
허세와 망상이 가리킨 곳에는 무언가 가죽 같은 것이 씌워진 철판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지구의 과학자라는 이들, 대단하더군. 샘플을 보낸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놈의 가죽이 지닌 특성을 분석해냈어. 자네가 어째서 막대한 자금을 연구소라는 곳에 쏟아 붓고 있는지, 이제는 이해가 갈 것 같아.”
“그랬습니까.”
사실 형진도 꽤 놀라고 있었다. 그가 연구소에 막대한 금액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설마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형진이 직접 분석을 의뢰했다는 사실에 놀라 그야말로 연구원들을 갈아 넣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의외로 분석이 용이한 물질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괜히 연구 성과를 전해 듣는답시고 찾아갔다가 알아듣지도 못할 논문 설명회에 참석하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저 철판은 임의로 애벌레의 외피를 흉내 낸 물건이야. 자, 시작하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곧바로 철판이 놓여진 공간이 다른 곳과 차단되었고, 뒤이어 황혼의 결계를 사용해 보관하고 있던 부식독이 철판 위로 떨어졌다.
푸시시시…
철판 위로 떨어진 부식독은 옅은 연기를 내뿜는가 싶더니 이내 위쪽에 덮여진 인조 가죽 같은 것에 흡수되었다. 뒤이어 방호복을 착용한 잡신 하나가 철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질로 만들어진 막대기로 여러 번 철판 뒤를 건드려 보았지만 부식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화된 겁니까?”
이미 충분히 예상한 부분이라 형진은 그리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허세와 망상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아마도.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것은 이게 아닐세.”
“그럼요?”
또 뭔가 있는 건가. 형진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허세와 망상은 씩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보통 이??식의 방어 능력이 있다고 해도, 게속해서 부식독에 노출되다 보면 유효 성분이 소진되어서 결국 피해를 입게 마련이지. 하지만 놀랍게도 이 소재는 무려 재생 능력을 갖추고 있어.”
“재생 능력이요?”
형진은 조금 놀라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재생 능력이라니. 이건 며칠 동안의 연구 성과로 알아낼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다.
그의 반응이 기대대로였는지 허세와 망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놀란 표정이군. 무리도 아니지. 사실 이건 연구소의 성과가 아니야. 저 멍청한 놈들이 실수를 저지르고는 그것을 무마한답시고 벌인 일 때문에 밝혀진 일이니까.”
“…”
허세와 망상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몇몇 신이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얼굴을 푹 수그리고 있었다. 얼마나 갈굼을 당했는지, 고양이 앞에 쥐 신세도 저 모습보다는 나을 것 같다.
그래도 명색이 신인데. 하기야 허세와 망상의 인성질이 아니더라도 자칫 중요한 샘플이 망가질 수도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포션이라도 뿌린 겁니까?”
“호오. 용케 알아차렸군.”
사실 형진이 이 녀석과 마주했을 때는 딱히 재생 능력 같은 것이 드러나지 않았었다. 게다가 방금 허세와 망상은 말했다. 저지른 실수를 무마한답시고 벌인 일로 인해 알게된 일이라고. 이 말들을 조합해 보면 결국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은 하나 뿐이다.
“뭐… 대충 감이 잡혔다고 해야겠죠.”
“사실 이 소재가 가진 재생 능력 자체는 아주 미약해. 하지만 그것이 포션과 만나 반응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강하게 증폭이 된 거지.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사체의 가죽이 이런 식으로 포션에 의해 재생된다는 것 자체가 실로 놀라운 일 아니겠나.”
“확실히. 그렇군요.”
아무리 희망과 생명의 권능이 스며든 포션이라 해도 죽어버린 것을 되살려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형진은 애벌레의 가죽을 흉내 낸 소재를 연구소에서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만들어낸 것인지 이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구소는 신소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미생물을 검출하기 위한 배양 도중에, 그러한 작업이 이 소재의 조직 그 자체를 증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뿐이다.
“방어 능력은 어떻습니까.”
“일단 확인된 건 부식독에 대한 내성 한 가지. 나머지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부식독에 대한 내성과 재생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다른 물질과의 융합이라든가, 이 소재를 이용한 복합 장갑 같은 것도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겠네. 그런 건 저 녀석들에게 시켜보면 되겠지.”
허세와 망상의 시선을 받은 잡신들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아마도 저들은 당분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 어려울 듯한 모양새다.
며칠 뒤, 노스페라투들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새로 제작된 갑주의 실전 테스트를 진행하고자 하니, 지원하고 싶은 자들은 나서도록.]이와 같은 공지가 전해지자, 그동안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형진의 눈에 드는 것에 실패했던 한 여인이 득달같이 지원하고 나섰다. 바로 노스페라투 즈라탈의 딸 힐리에타였다.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엔 빠지는 편이…”
내심 자신의 딸이 형진과 잘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던 즈라탈도 이번 만큼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새로운 장비의 테스트는 퍼스널 모빌리티를 비롯해서 이미 이전부터 있어 왔던 일이다. 하지만 다른 여러 주시자들 가운데 노스페라투만 콕 집어서 공지를 내려 보낸 것이 뭔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것이다.
“아뇨! 그러니까 더욱더 제가 가야만 해요!”
“하지만…”
“아빠! 걱정 마세요. 그분이 하시는 일이에요. 별 일이야 있겠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던가, 결국 즈라탈은 힐리에타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그녀는 당당하게 테스트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