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43
00843 195. 영웅의 시대 =========================
“자아, 달이야. 선물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달이 녀석에게 일용할 양식을 선사하고 있던 유아는 형진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만들어서 가지고 온 물건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얼핏 보기에는 의자 비슷한 형태. 하지만 손잡이 대신 둥근 테이블 같은 것이 주위를 두르고 있다. 요람이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형진은 나름대로 뭔가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새인데, 유아로서는 당최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달이 녀석도 형진을 곁눈질로 흘끔 보았지만, 녀석에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용할 양식을 열심히 먹어 치우는 것뿐이다.
“이게 뭐에요?”
이대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뭔가 서운해 할 것 같은 표정이라 유아는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말이지. 보행기라는 물건이야!”
“보행기요?”
“그래. 아기들의 걸음마를 돕기 위한 도구지. 게다가! 이건 무려 하늘을 날 수 있다고!”
“…”
아직 걸음마는커녕 뒤집기나 목가누기도 못하는 아기에게 보행기라니. 유아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저기…”
“응? 왜?”
“아직 달이가 사용하기에는 이른 물건인 것 같은데요.”
“이런 건 미리미리 만들어 놔야지. 정작 사용할 때가 되어서 부랴부랴 만드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어?”
“그거야 그렇지만…”
유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말했다.
“보행기라면… 아이들이 걷는 걸 돕는 도구 아닌가요?”
“그렇지.”
“하지만 그건 날아다니는 물건이고요.”
“맞아!”
“그럼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요?”
“응?”
형진은 유아의 말을 듣는 순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렇다. 유아의 말대로다. 보행기는 아이의 걸음마를 돕기 위한 물건. 실제로는 별로 효과가 없고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아예 판매와 사용을 금지한 캐나다 같은 나라도 있지만, 그건 일단 이 상황에서는 논외다. 애초에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면, 보행기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그러네. 그 점을 생각지 못했군.”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형진은 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달이 녀석은 열심히 식사에만 몰두하고 있었지만.
풀이 죽은 남편의 모습에 유아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미엘과 하엘의 아이들은 너무 성장이 빠른 탓에 일반적인 아이들이 치러야할 여러 가지 이벤트를 거치기는커녕 그대로 건너 뛰어 버린 것이 태반이다. 어쩌면 달이가 특별한 것은 단순히 첫 번째 왕자라서가 아니라 이런 식의 이벤트를 제대로 거쳐 가게 된 첫 번째 아이라는 점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행기는 좀 그렇지만, 요람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어요. 구조는 좀 고쳐야 할 것 같지만.”
“요람?”
“네. 아이라도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요람 같은 거라면 어떨까요. 그런 것이 있다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오! 그런 것도 나쁘지 않겠네! 역시 유아라니까. 알았어. 금방 고쳐올게.”
“기대할게요.”
물론 그런 걸 만든다고 해도 바로 사용하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 달이는 세심하게 보살펴야 할 시기의 아이. 충분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물건을 대뜸 사용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유아가 굳이 다른 대안을 말한 것은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족처럼 덧붙인 목적의 용도로는 충분히 효과가 있을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동하기 어려운 수준의 중증 장애인에게 아바타를 제공하는 방법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이것은 아직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대책이다. 적어도 신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아바타를 주어도 좋을 정도로 관계가 정립된 추종자들에게나 해당되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구에서는 물론이고 타나토스나 앙그릴에도 기술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휠체어라는 물건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이동 수단일 뿐, 실제로는 매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작은 턱만 존재해도 쉽게 넘어가기 어렵고 계단을 오르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결국 그것만으로는 혼자서 원하는대로 움직이기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바퀴가 없는 부양형의 탈것이라면 어떨까. 계단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기존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훨씬 복잡한 지형도 얼마든지 혼자만의 힘으로 오갈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이것은 기반이 되는 산업 수준만 충족된다면 얼마든지 대량 생산을 할 수도 있다. 모든 장애인들에게 아바타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이런 식의 수단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유아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신이 되면서 희망과 생명의 성녀라는 직함은 내려놓은 상태지만, 여전히 그녀의 사고방식은 성녀로부터 그리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자, 어때!”
식사를 마친 달이 녀석을 안고 등을 살짝 쓰다듬어 트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자니, 순식간에 보행기의 개조를 마친 형진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새로운 작품을 가져왔다. 그래도 좀 시간이 걸릴 줄 알았건만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속도다. 누가 신 아니랄까봐.
“바로 태우는 건 좀 무리 아닐까요. 아직은.”
“그런가?”
“네. 대신 다른 이들에게 먼저 사용해 보도록 하면 어떨까요. 안전성을 확인해 볼 겸.”
“흠…”
어떻게 보면 장애인들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것 같은 모양새이긴 하지만, 형진은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막 만들어진 물건을 제대로 시험도 해보지 않고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지. 좋은 생각이야.”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해서 달이의 요람은 지구에서 먼저 선을 보이게 되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수준의 장애인조차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요람의 등장은 큰 이슈가 되었다.
“여기에 팔을 달아보면 어떻겠습니까.”
“팔?”
“그렇습니다. 발의 자유를 허락하셨으니, 이제 손의 자유까지 추가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겠죠.”
“그럴 듯 하군.”
팔을 만드는 일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었다. 기존에 지구상에 존재하던 로봇 기술은 물론이고 형진의 독창적인 기술인 인형술 역시 응용되었다.
형진이 이런 것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가 왕성 안에 전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할과 쿠가 그에게 달려왔다.
“기왕 만들 것이라면 사람 형태가 낫지 않겠습니까?”
“어째서?”
“사람에게는 사람의 형태가 가장 운용하기 쉬울 테니까요.”
“너…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거냐?”
형진은 덩치까지 비슷한 두 녀석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애초에 사람 형태로 만들 거면 그냥 아바타를 쓰면 돼. 효율을 따져도 다리를 만드는 것보다 부양형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활용도나 유지 보수 면에서 수월하고. 효율만으로 따진다면 일부러 팔을 만들 것 없이 요정들처럼 염동력을 사용하도록 만드는 게 더 편해. 인간형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능이 아니야.”
“그, 그렇지만…”
할과 쿠는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해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의 언변으로 형진을 설득하는 건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들은 채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한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패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전처럼 이단 옆차기에 맞아 날아가 버리지는 않았다는 정도다.
“인간형이라…”
비록 할과 쿠는 실패했지만, 인간형이라는 화두마저 집어던진 것은 아니다. 굳이 아바타처럼 별개의 신체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외골격 형태로 근력을 보조하는 형태의 물건이라면 충분히 구현할 만한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강화 외골격, 또는 엑소스켈레톤이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사실 강화 외골격은 이미 상상을 넘어 실용화되어 사용되고 있는 물품이다. 일본에서 제작한 HAL시리즈는 이미 의료 계통에서 널리 판매되고 있으며, 전투용 강화 외골격도 이미 실용화 직전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 작게는 수십 킬로그램에서 많게는 톤 단위의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강화 외골격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가동 시간이나 장비 자체의 부피나 무게 정도. 이런 정도의 문제라면 형진이나 거짓된 천국에서 오늘도 열심히 갈려나가는 신들의 힘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왕에 시작한 것이니, 신형 갑주에도 도입을 해봐야겠군.”
달이의 보행기로부터 시작한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해서 이제는 추종자들을 위한 갑주 개발에까지 번져가기 시작했다.
“본신 상태에서가 아닌 인간형에서만 작동하도록 만드는 건가.”
“그렇습니다. 본신이라면 굳이 이런 것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인간형일 경우에는 여러모로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죠. 이것은 그런 부분을 보완해 주는 기능이 될 겁니다.”
“문제는 소형화겠군. 이제 겨우 끝나가나 싶었는데, 다시 엎어야 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미안할 것까지는 없고. 어설픈 물건을 내놓는 건 내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는 일이니까.”
결정은 형진과 허세와 망상, 둘이서 내렸지만 실제로 갈려 나가는 것은 결국 그 밑의 잡신들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신형의 갑주가 만들어졌다.
“영락없이 특촬물의 히어로 같은 느낌이군.”
방어 능력에 덧붙여 근력 강화와 비행 능력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으니, 신형 갑주로서의 요구 조건은 충분히 갖춘 셈이지만 아무리 봐도 모양이 너무 촌스럽다. 제 아무리 신이라 해도 패션이나 디자인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이런 것들은 권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형진은 다시 갑주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의태?”
“그렇습니다. 주위 환경에 대응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바꾸는 기능이죠.”
“은신과는 다른 건가?”
“은신은 아예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지만, 의태는 주위의 것과 비슷하게 모습을 바꾸는 기능입니다. 용도가 다르지요. 하긴, 둘 다 있어도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군요.”
정확히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형태의 복장을 그런 식으로 구현하기 위한 것이지만, 필요하다면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의 의복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비서로 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지만 사실은 강화된 신형 갑주를 장착하고 있는 상태라든가 하는 식으로.
“뭔가… 신기한 느낌이네요.”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야. 앞으로는 일할 때 항상 착용하고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수습 비서로서 일하고 있는 규설과 힐리에타는 강화된 신형 갑주의 테스트까지 맡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 배우느라 정신없는 마당에 신형 갑주의 테스트까지 겸해야 하니 그녀들로서는 손발이 더 꼬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신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어요.”
“신? 걔들이 왜?”
“신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신들은 당신과는 달라요. 권능을 제외하면 아바타 상태라고 해도 보통의 인간과 그다지 차이가 없으니까요. 자칫 그들에게 문제가 생겨서 신격의 파편 같은 것이 지상에 마구 굴러다니게 되면 큰일 아니겠어요? 신형 갑주를 그들에게 공급한다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되는 셈이죠.”
“그럴 듯 한데.”
거의 길바닥에 자갈 굴러다니는 듯한 느낌으로 주위에 온갖 잡신들이 모여 있는 탓에 그 중요성이 다소 폄훼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신격의 파편은 그 자체로 한 명의 인간을 초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당장 형진만 하더라도, 파괴와 재생의 파편으로 인해 인스턴트 킬이라는 능력을 얻지 않았는가. 어쩌면 신들이 여전히 자유롭게 인간 세상을 오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결국은 이 때문이다. 물론 그들로서는 신격의 파편이 지상에 돌아다닐 때의 위험성보다는 그것이 떨어져 나갈 때의 끔찍한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보호와 균형의 의견에 따라 신형 갑주는 잡신들에게도 공급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이런 것을 주는 건가 싶었던 잡신들이지만, 그것을 착용했을 때의 이점을 알아차리자 크게 기뻐했다.
엉뚱한 일이지만 한동안 지구와 타나토스, 그리고 앙그릴에는 화재나 기타 여러 가지 위급한 사고 현장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사람들을 구출하는 식의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영웅 놀이에 심취한 잡신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났군.”
형진은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 같은 것을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잡신들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그런 식으로라도 존재감을 드러내야 나중에라도 교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추종자 하나를 받아들이더라도, 이미 여러 가지 활동으로 이름을 얻은 상태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수월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너무 많다는 점이다. 지구와 타나토스, 그리고 앙그릴은 이미 전쟁이 종식되고 중대한 범죄들 역시 추종자들에 의해 근절되어 가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는 솔직히 영웅 같은 존재가 있어도 할 일이 없게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형진이 굳이 잡신들의 행동을 통제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바야흐로, 영웅 과잉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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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영웅이 너무 많아서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