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42
00842 194. 신입 =========================
“반갑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렇지 않아도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우르르 그에게로 몰려와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다.
미리 교육을 받긴 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니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조차 어렵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열심히 외운다고 하기는 했는데, 막상 실전에 돌입하고 보니 이건 단순히 외우고 말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제랄딘과 요안나는 형진에게서 한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그가 누군가와 악수를 할 때마다 지금 손을 잡고 있는 이가 어떤 인물인지 세세하게 메시지를 통해 전해주고 있었다. 미라지 코어와는 어떤 관계이고, 이전에 언제 만났으며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까지 세세하게 기록을 띄워주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뵈었을 때보다 신수가 환해지셨습니다.”
“모두 실장님이 포션을 보내주신 덕분입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오늘 전 이곳이 아니라 침대 위에서 박람회를 보았겠지요.”
“다행입니다. 모두를 위해서도.”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업계 인물들에게는 아직 형진의 정체를 밝힌 바가 없었지만, 여기 있는 누구도 형진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이 모습이야 말로 현재 지구라는 세계에서 형진이 지닌 영향력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
규설과 힐리에타는 처음에 이번 행사에 형진이 신이 아닌 일개 기업의 부사장 급 경영자로 참석한다는 것에 대해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지구는 형진이 지배하고 있는 다른 어떤 세계와도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신이라는 것을 대중 앞에 드러내 보이지도 않은 상태로, 왕이나 기타 다른 지배적인 위치의 지위도 가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규설이나 힐리에타로서는 그런 부분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별다른 힘도 없어 보이는 노인들에게 그가 말을 높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납득하기 어렵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그런 감정을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은 아직 정식도 아닌 수습 비서의 역할.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형진의 일에 간섭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관계로 인사를 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과정을 건너 뛸 수도 없다. 그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이번 박람회의 오프닝 리셉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형진과 나누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 끝나나 싶었던 인사가 끝나자, 리셉션은 마침내 끝을 맺었다. 정말로 다른 것 하나 없이 인사만 하다 끝난 셈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규설과 힐리에타는 큰 일을 치른 형진과 제랄딘, 그리고 요안나에게 얼른 음료수를 가져다 주었다.
“고마워.”
“별 말씀을요.”
그렇지 않아도 말을 너무 많이 한 탓에 목이 마르던 형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고는 그녀들이 건네준 음료수를 받아 들이켰다.
“후… 좀 살 것 같군. 이제는 천천히 박람회를 돌아보면 되는 건가.”
“천천히라는 말에는 좀 어폐가 있는 것 같지만, 방금 전 같은 전쟁은 일단 끝이 난 거라고 봐야겠죠.”
“요안나가 급한 모양이니 얼른 움직이는 것이 좋겠어.”
아닌게 아니라 요안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은 건가 싶을 정도다.
박람회에는 수많은 출품작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양형 자동차라는 새로운 탈것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교통 시스템부터 일신할 필요가 있다. 이차원적인 도로에서 벗어나 공중이라는 새로운 공간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 만큼, 효율적인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양형 자동차가 출시될 경우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계와 각국 정부들은 기존의 도로를 대신할 개념인 공로의 설정을 놓고 열띤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홀로그램 기술을 바탕으로 공중에 부양형 자동차들이 운행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임의로 그곳을 벗어나지 않도록 규제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개중에는 이러한 규제가 부양형 자동차가 지닌 가능성을 억제하는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전개되고 있었다. 부양 자동차로부터 비롯된 모든 것이 생경하기 그지없으니, 운행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부분들 역시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출품된 것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새로운 교통 통제 시스템이 차지하고 있었다. 홀로그램을 통해 구현한 공로부터 시작해서, GPS를 활용한 부양 자동차용 위치 정보 시스템은 물론이고, 각각의 자동차에 탑재되어 접근하는 다른 차량이나 지상 구조물과 보행자들을 탐색할 수 있도록 소형화된 레이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 모으는 대상은 뭐니 뭐니 해도 각국의 자동차 업체들이 내놓은 컨셉트 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전부터 자율 주행과 함께 자동차 업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신기술로 주목 받고 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플라잉 카라고 불리던 비행형 자동차이다.
물론 플라잉 카는 현재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부양형 자동차와는 근본적인 기술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결국 하늘을 나는 탈 것인 것은 마찬가지다. 희망과 생명처럼 모든 일반인들이 집에 활주로를 놓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들 비행형 자동차들 또한 거의 대부분 수직 이착륙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날개와 로터 같은 것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비행 특성은 비슷한 면이 많은 셈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공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거품 물고 덤벼들 만한 얘기겠지만.
어쨌든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 박람회에서는 기존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 보여지고 있었다. 기존에 플라잉 카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스타트업들이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들과 손을 잡고 컨셉트 카를 선보이는 경우가 월등하게 많아진 것이다.
“이건 꽤 멋진데.”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아요?”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 같아.”
사용되는 소재에 극한에 가까울 정도로 경량화를 추구한 차량부터 시작해서, 펴고 접을 수 있는 날개를 부착하여 순항 능력을 강화한 차량까지 실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구현되어 박람회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원래부터도 자동차라면 끔벅 죽는 요안나로서는 그야말로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일 수밖에 없다.
“시승해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괜찮은가요?”
“물론이죠. 오히려 저희들로서는 그렇게 해주십사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하…”
형진은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번 박람회에 참가하는 업체 관계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내기가 성행하고 있었다. 과연 참가한 차량 가운데 어떤 것에 먼저 시승하느냐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큰 돈이 걸린 건 아니고 고작해야 박람회에 참가한 직원들끼리 음료수를 나눠 마실 정도의 소소한 내기에 불과하지만, 앞서 리셉션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일과 마찬가지로 참가 업체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지금 형진이 지목한 차량은 그런 점에서 보면 의외의 행운을 거머쥔 셈이다. 같은 대학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손을 잡고 만들어낸 스타트업으로부터 출품된 차량이 다른 쟁쟁한 대기업들을 물리치고 형진의 눈에 들었으니 그들로서는 평생의 운을 다 썼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요안나. 한 번 타봐.”
“네!”
형진에게서 허락이 떨어지자 요안나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얼른 차량으로 다가갔다. 업체에서는 이번 박람회를 위해 최고 수준의 레이싱 모델을 초빙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을 하고 있음에도 깔끔한 오피스 룩을 갖춰 입은 요안나의 옆에 서니 자연스럽게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모르긴 해도 모델과 나란히 선 요안나의 사진이 새로운 형진의 비서들의 사진과 함께 한동안 인터넷을 달구지 않을까 싶다.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허둥지둥 다가와 이것 저것 점검하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자체적인 시험을 위해 형식 승인이나 주행 허가를 받아둔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귀빈이 탑승한 상태에서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단순히 모처럼의 호기를 날려버린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은 각국의 업체들이 부양형 자동차라는 새로운 시장의 선점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날에는 자칫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긴장한 직원들에 의해 조작법을 설명 받고, 안전을 위한 모든 조치가 취해지자 천천히 지붕이 열리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군.”
지붕이 열리도록 개조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시험 운행은 처음부터 잡혀있었던 일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단지 형진의 방문과 요안나의 탑승으로 인해 그것이 당겨진 것일 뿐.
지붕이 열리며 박람회에 참여한 컨셉트 카의 시험 운행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자 관람객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부랴부랴 형진이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이쯤 되면, 이번 박람회의 메인이벤트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운행 준비를 시작합니다. 물러서 주십시오!”
“떨어지세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규설과 힐리에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몇인지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인원들이 마구 뒤엉켜 소용돌이치는 그런 상황 자체가 그녀들로서는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네? 아, 네… 이, 일단은.”
“혹시 기분이 나쁘거나 하면 말해요. 가서 쉴 수 있도록 해줄 테니.”
“괜찮습니다. 네. 정말 괜찮아요.”
다른 이의 내심을 읽을 수 있는 산군의 입장을 고려한 것인지 제랄딘이 넌지시 규설에게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규설로서는 역시 베테랑 비서는 뭐가 달라도 다른가보다 하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주변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자, 마침내 요안나가 탑승한 차량이 시험 운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는 정도. 하지만 그렇게 고도를 높이다가 마침내 지붕 밖으로 나가자 요안나는 천천히 속도를 높이며 박람회장 위를 날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터 쇼보다는 에어 쇼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어.”
형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부스에 대기 중이던 컨셉트 카들도 천천히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요안나가 몰고 있는 차량과 보조를 맞추어 날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확실히 모터 쇼보다는 에어 쇼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다.
시험 운행은 약 십분 정도 계속 이어지다가 끝을 맺었다. 하나 둘씩 차량이 다시 박람회장으로 내려앉고 지붕이 닫히기 시작하자, 마침내 요안나가 평소의 엄격한 비서 모습과는 다른 활짝 웃는 모습으로 내렸다.
“어때?”
“좋아요. 차체가 가벼워서 외부 환경에 다소 영향을 많이 받는데다 조작감도 다소 거친 편이긴 하지만, 그만큼 날렵하고 경쾌한 것이 특징이네요. 방향 전환 시에 관성의 영향이 적은 것도 특징이었구요. 미라지 코어의 차량처럼 관성이 완전히 배제된 차량과는 비교할 수 없겠죠. 그러나 아예 없는 것과는 탑승시의 느낌이 또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활기찬 야생의 조랑말을 모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 그렇군. 아무튼 좋았다는 얘기지?”
“네!”
요안나가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형진에게 폭풍처럼 풀어놓은 감상은 순식간에 언론사와 SNS 등을 통해 전 세계로 영상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미녀 비서의 시승 후기라는 제목이 달린 채로.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냥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 비서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못 말릴 정도의 자동차광이었다. 업체 관계자는 당황하면서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형진은 자신들을 향해 다시금 그렇게 말을 건네 오는 업체 관계자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얼맙니까.”
“네? 그게 무슨…”
“얼마냐고요.”
잠시 당황했던 업체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 차량은 연구용의 컨셉트 카라서 공식적으로는 판매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필요하시다면 기증이나 기타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하지만 형진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
“이 차량. 양산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묻고 있는 겁니다. 얼마입니까.”
“네? 그, 그게 무슨…”
“생각 같아서는 회사를 통째로 사고 싶지만 참고 있는 겁니다. 대신 투자를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가, 감사합니다!”
박람회에 참여한 것 자체가 투자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형진은 제랄딘이 슬며시 알려준 정보로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준 셈이다.
규설과 힐리에타는 그런 모습들을 조금 부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기쁜 기색이 역력한 요안나의 모습을 그녀들을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지켜봐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두 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