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41
00841 194. 신입 =========================
“비서가 필요하면 말을 하지.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갑작스런 마주침이 당황스러운 건 규설과 힐리에타만이 아니었다. 모처럼 두 여신과 산책을 즐기던 형진에게도 이것은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었다.
“저, 저도요.”
희망과 생명의 말에 보호와 균형도 질 수 없다는 듯이 형진의 팔을 꼬옥 껴안으며 그렇게 덧붙인다. 팔을 통해 전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가슴의 느낌. 평소라면 입이 헤 벌어졌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묘한 압박으로 느껴진다.
“커흠. 하지만 그러자면 제랄딘에게 일을 배워야 할 텐데. 괜찮겠어?”
“그건…”
제랄딘은 곧 공포와 죽음의 아바타. 제랄딘에게 일을 배운다는 것은 공포와 죽음에게 일을 배운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그녀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는 희망과 생명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저기… 저는 괜찮은데.”
보호와 균형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형진은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비서가 된다 해도 지금이랑 그리 달라지는 것도 없을텐데?”
“달라지는 게 없다구요?”
“응. 항상 붙어 다니는 건 마찬가지잖아. 오히려 방금 그 사람들은 수습 비서가 된 뒤로 날 한 번도 보지 못했어.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건… 곤란해요.”
“그렇지?”
“네.”
희망과 생명, 그리고 보호와 균형의 반발을 단숨에 말로써 격침시켜 버린 형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속으로 한숨이 푸욱 새어나오고 말았다. 얼마 전에 미엘에게 제대로 반박도 못해보고 둘을 수습 비서로 받아들인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아도 그렇고, 어째서 그런 쪽의 경험치만 더 쌓여가는 것인지. 누구에게 배웠는지 뻔히 보이니 더 난감할 뿐이다. 이런 걸 청출어람이라고 하는 건가. 부부는 닮게 마련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이런 식으로 그 실제 사례를 체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그날의 일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어차피 규설과 힐리에타가 수습 비서의 신분을 얻은 이상 결국은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둘이 대중 앞에 형진의 새로운 비서로서 선을 보일 기회가 생겨났다.
“오늘 진님께서는 자동차 산업 박람회의 오프닝 리셉션에 참석하시게 됩니다. 며칠 전에 공지한대로 저희 비서진들은 오늘 진님을 측근에서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준비는 되셨겠지요?”
“넵!”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대답하는 둘의 모습에 제랄딘은 잔잔하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찬찬히 설명을 이어갔다.
“좋습니다. 오늘은 지구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자동차 업체 경영진들을 비롯해, 각국의 귀빈들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다른 이들 앞에 첫 선을 보이는 자리긴 하지만, 아직 수습 신분이시니 실제 현장에서의 업무를 잘 지켜보는 쪽에 전념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죠.”
규설도 힐리에타도 긴장으로 인해 몸이 뻣뻣하게 굳은 상태다. 사실 형진의 입장에서는 그저 간단한 리셉션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녀들로서는 지난 며칠 동안의 교육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제랄딘을 따라 공간을 넘자, 실리콘 밸리에 자리잡은 형진의 사무실로 곧바로 이동했다. 요안나와 함께 무언가 서류를 살피고 있던 형진은 셋이서 공간을 넘어오자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잠시 기다려줘. 이것만 살펴보고 바로 움직일 테니까.”
“네.”
제랄딘은 둘의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옆으로 비켜섰고, 규설과 힐리에타는 마치 어미를 따르는 새끼 오리마냥 제랄딘의 옆에 나란히 자리했다.
잠시동안 이것저것 서류를 살피고 몇 군데에 서명하는 일이 끝나고 나서야 형진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규설과 힐리에타에게 다가갔다.
“교육 받느라 고생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힘들지는 않았나?”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단장을 만난 이등병처럼 차려 자세로 대답하는 힐리에타의 모습에 형진은 피식 웃더니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 그럼 좀 더 강도를 높이라고 해도 되는 건가?”
“그, 그건…”
힐리에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사실 그녀는 지금 받는 교육만으로도 사실상 한계에 달한 상태다. 더 이상 강도 높은 교육을 받게 된다면, 그녀는 정말 퍼져 버릴지도 모른다.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힐리에타의 모습에, 형진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굳이 나에게 입 발린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식의 대화가 누적되면 나는 너희들의 능력이나 한계, 그리고 성격에 대해 오해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 단순히 사교적인 관계라면 몰라도, 너희들은 나를 측근에서 돕는 비서의 역할이니까 가급적이면 명확하게 사실 관계에 입각한 대화가 오갈 수 있으면 좋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형진의 시선은 이제 규설에게로 향했다.
“산군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전해 들었다.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이 인간들과 마주하는 일이니, 네 능력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가 나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편의를 위해서 몇몇 이들에게 내 정체를 밝히긴 했지만, 지구라는 곳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신의 간섭이 드러나 있지 않은 상태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비서로서 마주하는 첫 번째 만남. 그래서 형진은 일단 간단하게 자신을 보좌하면서 주의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사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나머지는 제랄딘과 요안나가 잘 알아서 가르칠 테니 굳이 여기서 더 말을 꺼낼 필요는 없는 일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방금 전의 말조차도 사족에 가까운 것이니까.
“좋아.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이번 자동차 산업 박람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바로 부양형 자동차다.
사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에 대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상상되었고, 또한 연구되어 왔다. 특히 최근 드론 기술의 발전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기술을 이용한 비행형 자동차의 개발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부양형 자동차는 그렇게 차츰 성장해 가고 있던 비행형 자동차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드론에서 파생된 비행형 자동차들이 로터등의 안전성이나 모터 출력 등의 문제로 인해 계속해서 실용화가 미루어지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기존에 타이어와 아스팔트로 대표되던 자동차 시장이 한순간에 부양형 자동차로 넘어가 버린 건 기존의 기술로는 이룰 수 없는 거대한 변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지구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부양선이 진수를 끝내고 의장 공사에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이런 자동차 산업의 변혁은 속도가 너무 완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진수된 부양선은 모두 기존에 만들고 있던 선체를 활용한 것. 그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차체를 가진 자동차의 경우엔 기존의 차체를 활용한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개발에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자동차 산업 박람회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새로운 형태의 컨셉트 카는 물론이거니와 그러한 새로운 차량에 걸맞는 다양한 부품들이 선을 보이는 자리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실상 부양형 자동차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미라지 코어로서는 빠질 수 없는 자리인 셈이다.
“좋은 차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 요안나, 마음에 드는 차가 있으면 사도 좋아.”
“정말요? 고마워요.”
원래부터도 자동차를 사모으는 것이 취미였던 요안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사실 컨셉트 카는 일반적으로 판매가 되지 않는 차량이다. 만약 사더라도 형식 승인이 나지 않는 경우에는 도로 주행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유명한 수집가의 요청이 있으면, 판매 아닌 판매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요안나는 충분히 그런 수집가의 반열에 들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거의 전부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구매한 것이기 때문에 잘 알려진 수집가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저 드러나지 않은 어둠 속의 수집가쯤 된다고나 할까.
이번 박람회에 나올 차량들도 이전에 했던 방법으로 구매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복잡한 방법을 쓰게 되면 그만큼 힘이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가능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요안나는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눈앞에서 아쉽게 사고 싶은 것을 놓쳐 버린 적이 있었다.
요안나가 기뻐하는 이유는 단순히 컨셉트 카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뒤에 숨는 형식이 아니라 당당하게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제작자 입장에서도 미라지 코어가 자신들의 컨셉트 카를 구입한다는 건 이 모든 변혁을 주도하는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전향적으로 판매에 임할 수밖에 없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요안나가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를 이용해 그 안에 수납되어 있던 차량을 꺼냈다. 3세대 퍼스널 모빌리티의 주요 특징 중에 하나인 차체 소환이다.
“먼저 타세요.”
“네.”
규설과 힐리에타는 날렵한 차체 안쪽에 마련되어진 넓은 공간에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세명이 타면 고작일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안으로 들어와 보니 자신들의 숙소보다도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제가 운전할게요.”
“부탁해.”
요안나가 운전석에 앉고 대신 형진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커다란 침대는 물론이고 샤워시설까지 갖춰진 곳에 형진과 마주 앉은 탓인지 둘의 표정에는 다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일부러 내부를 이렇게 꾸며 놓은 것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 이곳에서 자신들의 상사인 제랄딘과 요안나가 그와 밤을 보냈을 거라 생각하니 절로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들이 정식으로 비서가 되면 같은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그녀들로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둘 다 아직 운전은 할 줄 모르지?”
“네.”
“아직…”
개인용 퍼스널 모빌리티라면 몰라도 이런 커다란 탈 것은 아직 몰아본 적이 없다. 사실 환수나 노스페라투에겐 그다지 필요 없는 것이기도 했고.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필요하면 형진을 대신해 운전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테니, 지금부터라도 배워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부양형 자동차에도 자율 주행 기능을 도입하기 위해 애쓰고는 있는데, 아직 완성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그러니, 당장은 힘들더라도 운전 역시 배워두는 편이 좋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부양형 자동차는 그들이 머물고 있는 사무실에서 벗어나 박람회장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박람회장이 미라지 코어 지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이번 박람회 자체가 미라지 코어에게 자신들의 성과를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열리는 것이니까.
“그럼 내릴까.”
“네.”
형진이 먼저 차에서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맹렬하게 터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침내 규설과 힐리에타가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 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얘기로 듣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살짝 당황한 그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렸지만, 앞서서 움직이는 이들을 보고는 이내 주먹을 불끈 쥔 채 조심스럽게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누구지?”
“글쎄.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새로운 비서들인가?”
“와… 원래 데리고 다니던 비서들도 엄청난 미인들인데,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걸.”
“그러게. 뭔가 묘하게 눈길을 끄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기자들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규설과 힐리에타의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물론 오늘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형진이었지만, 그가 데리고 온 미녀들에 대한 것도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데는 부족함이 없는 기사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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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어째 하늘이 우중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