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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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신은 강대한 신이다. 그 강대함이 지나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조차 크나큰 파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대성전을 파괴해 버린,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와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던 네아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그러한 생각을 머리속에서 떨쳐내 버렸다. 빛의 신을 섬기는 자 중에서도 가장 존귀하다 일컬어지는 최고 장로가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감히 근본조차 모르는 저러한 존재와 신을 동일선상에 놓다니. 그것만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다.
깊게 들이쉰 숨을 내뱉으며 마음 안에서 피어오르는 잡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막상 신의 이름을 되뇌이며 그렇게 자신의 몸으로 세상에서 유일하며 가장 절대적인 이를 불러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잡념이 생긴다.
빛의 신은 지고한 신이다. 그 지고함이 지나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 존재를 세상에 현현하고자 청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빛의 신전에서 장로들이 존귀하게 대접 받는 이유도, 그러한 장로들 중에서도 특히 최고 장로에 오른 네아가 더욱더 존귀하게 대해지는 이유도 결국 하나다.
필요한 때에, 정련된 그들의 몸과 마음을 불살라 세상에서 가장 밝고 찬란한 빛을 불러내기 위해서.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그저 명분으로만 생각되어 왔다. 유구한 빛의 신전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장로들이 그 몸을 살라 가장 찬란한 빛을 이 세상에 현현시킨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니까.
물론 빛의 현현 그 자체는 제법 많이 있어 왔던 일이다. 실제로, 최근에 있었던 칼마란 게이트에서의 전투에서도 그 일은 실현되었다. 물론 장로가 스스로의 몸을 불사른 것도 아니고, 고위 추종자 가운데 하나가 투입되어 가장 찬란한 빛이 아닌 그 일부를 현현시킨 것에 불과하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장 찬란한 빛을 현현시키지 않고서도, 빛의 의지에 반하는 모든 존재들은 충분히 굴복시키고 불살라 지워버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칼마란 게이트에서도 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지워버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는 무참한 패배와 중요한 전략 거점인 칼마란 게이트의 파괴였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존귀한 최고 장로인 네아가 스스로의 몸을 불사르기로 마음먹은 건, 단순히 빛의 신을 찬양하고자 지어진 대성전이 무참하게 파괴된 책임을 지기 위함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대성전이 파괴된 이 시점에서, 그러한 일을 저지른 존재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빛의 이름으로 이루어온 수많은 것들에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조차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또한 그들로서는 예상치 못할 더 큰 파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막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명백한 수단은, 지금 이순간 최고 장로인 네아가 스스로의 몸을 살라 가장 찬란한 빛을 이곳에 현현시키는 것뿐이다.
웅웅! 웅웅웅!
웅얼거리듯 되뇌이는 신의 이름에 호응하듯, 네아의 주변 공기가 공명하며 떨리기 시작한다. 잠시나마 잡념과 번뇌에 시달렸던 네아는 그 소리를 들으며 점차로 몰아지경에 젖어들었다.
화라락!
그녀의 등 뒤에 얌전하게 접혀있던 하얀 날개가 마치 거대한 깃발처럼 활짝 펼쳐진다. 그리고 단순히 햇빛을 반사한 것만은 아닌, 어째서 그녀가 가장 존귀하고 아름다운 최고 장로라 불리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처럼 그 모든 것으로부터 영롱한 빛이 천천히 발하기 시작한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몸집을 거의 전부 드러낸 티폰은 대성전 위를 지나치던 구름을 완전히 흩어버린 채, 하늘 위에서 어떻게든 저지해보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군세들과의 본격적인 전투를 예비하고 있다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힘이 지상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을 느끼고는 천천히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엔,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지구본 같은 움직임. 하지만 티폰의 몸은 아주 거대했기에,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그것은 거의 태풍과도 같은 엄청난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급격한 티폰의 방향 전환은 주위의 대기를 이끌어 순식간에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내었다. 단지 몸을 돌린 것만으로도 또다시 새로운 파괴의 흐름을 만들어 낸 것이다.
티폰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진 거센 바람이 네아가 있는 장소를 덮쳤다.
잠시 버티고 서 있던 나무가 꺾이더니 곧바로 그녀를 향해 날아든다. 만약 그 장면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면, 날아드는 나무에 얻어맞은 그녀가 피를 뿜어내며 구겨지듯 바람결에 휩쓸릴 것을 연상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감겨져 있던 네아의 눈이 번쩍 뜨여지더니 그녀의 몸으로부터 거대한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빛의 기둥은 티폰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구름들을 뚫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순식간에 대기권을 뚫고 올라간 그 빛은 밤이 들어찬 우주 공간에 눈부신 하얀 선을 그어 버렸다.
“아아아…”
네아의 눈에서는 어느 틈엔가 쉴새 없이 눈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감동이 그녀의 심령을 뒤흔들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빛. 이것이야 말로 가장 찬란한 빛.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조차도 감히 맞설 수 없는 절대적인 빛.
네아는 몸을 떨며 그렇게 벅차오르는 기분에 완전히 젖어들었다.
이순간만은, 지금의 이 현상이 끝을 맺고 난 뒤에 자신의 육신이 한줌 재가 되어 버릴 것이라는 사실조차 잊어 버렸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빛을 현현시키고 있다는 사실마저 그녀는 완전히 잊어 버렸다. 그저 신과 일체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채우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신이 되어 버린 것만 같은 커다란 고양감이 그녀로 하여금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마치 지상에 강림한 달처럼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티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경하다.
감히 빛과 하나된 자신의 눈앞에서 당당하게 거대한 파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 모습에 네아는, 그리고 그녀와 하나된 빛은 분노했다.
그녀는 손을 들어올렸다. 느릿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그 손가락은 티폰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악!
그러자 그녀의 몸으로부터 다시 한 줄기 빛이 뿜어져 나와 티폰에게 날아들었고, 그것은 어김없이 티폰의 거죽을 태우며 지나쳐 갔다.
그오오오오!
어지간한 공격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는 티폰이었지만, 이 일격만큼은 감당할 수 없었다.
곧바로 티폰의 거대한 몸에 하나의 줄이 새겨진다. 마치 동굴처럼, 빛의 궤적에 따라 그 신체의 일부가 소멸해 버린 것이다.
“칫.”
네아는 작게 혀를 찼다. 그녀의 의도는 저렇게 거죽에 상처를 내는 것이 아니라, 티폰을 꿰뚫어 단숨에 지워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빛의 신을 모시는 최고 장로인 그녀조차도 이제 하나 된 가장 찬란한 빛을 다루는 것은 너무나도 힘에 겨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티폰의 몸에 새겨졌던 상처는 빠른 속도로 아물었지만, 그 흔적은 창백한 달을 연상시키는 티폰의 몸에 확연하게 흉터로 남았다.
네아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며 티폰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이번에야 말로, 저 불경한 존재를 깨끗하게 지워버리겠다 생각하며.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눈은 크게 떠지고 말았다.
프화아아아악!
갑자기 티폰의 거대한 몸이 검은 구름 같은 것에 감싸이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나 짙은 그것은 마치 삽시간에 하늘을 뒤덮어가는 적란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네아는 그것을 보는 순간, 이것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님을 이해했다. 그것으로부터 전해지는, 자신에게 머물고 있는 빛의 힘과 버금가는 강대한 존재감을 알아차린 것이다.
밤의 신.
네아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다른 우주의 또다른 강대한 신이 스스로 그 힘을 드러내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빛을 그 몸에 받아들이기 전이었다면, 삽시간에 세상을 어둠 속에 몰아넣으려는 것처럼 기세를 키워가는 저 짙은 어둠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의 그녀는 단순히 빛의 신을 섬기는 최고 장로 네아가 아니었다. 가장 찬란한 빛을 받아들여, 신과 일체가 된 그녀에게 있어 저 짙은 어둠은 그저 시야를 거스르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크크… 크크크크…”
네아의 입을 통해 웃음이 흘러나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맑고 청아한, 아름다운 새벽 햇살 속에서 이슬을 머금은 푸른 잎사귀 사이로 들려오는 아름다운 새소리를 연상시키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그녀의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목소리로 네아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마음속에 하나의 외침이 전해졌다.
태워라.
그것은 하나의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들은 이로 하여금,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거부한다는 마음조차 떠올릴 수 없도록 만드는. 듣는 순간, 이미 그 명령에 함몰되어 버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앞으로 내밀어졌던 네아의 손으로부터 길고 하얀 손가락이 전부 펴진다. 단순히 하나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넘어 손 전체로 티폰을 가리키는 형국.
그러한 행동을 취하며 네아는 또한 깨달았다. 지금의 이 공격이 실현되는 순간, 자신의 시야 속에 들어오는 이 아름다운 그녀의 팔과 손목과 손과 손가락은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뿜어내려는 힘이 너무 큰 나머지, 그것의 경로가 되는 자신의 신체가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의 몸은 가장 찬란한 빛을 담아낸 시점에서 소멸될 것이 예정된 상황. 팔 하나가 먼저 사라진다 해서 그것이 어찌 두려운 일이 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녀는 자신에게 두 개의 팔이 있어 그와 같은 일을 한 번 더 세상에 이루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아니다. 그녀에게는 두 개의 팔 외에도 두 개의 다리가 있다. 그리고 다른 존재들과는 다르게 두 개의 날개마저 있다. 다른 이들은 고작 네 번 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은 무려 여섯 번이나 할 수 있다.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웅웅웅웅웅!
네아의 몸을 통해 강대한 힘이 모여든다. 마치 뒤이어 찾아올 거대한 파괴를 예고하듯이, 그 힘은 주변의 모든 것을 끓어 넘치게 만들고 있었다.
대기는 끓어오르며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속에 스며있던 물들은 급격한 변화에 이끌려 보다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다. 이미 극한의 파괴를 겪으며 불지옥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변화한 대지는 한 번 더 강한 힘에 이끌려 붉은 용암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설령 그녀의 공격이 성공해 티폰을 지워버리거나 패퇴시키더라도, 대성전이 존재했던 행성 역시 온전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상황.
그러나 네아도 그녀의 몸을 장악해 버린 무언가도, 이미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눈앞에서 불경한 어둠을 뿜어내어 감히 빛을 가로막으려 드는 무언가를 지워버리는 것뿐이었다.
“사라져라. 불타 사라져라. 한줌 티끌이 되어, 가장 찬란한 빛 속에서 지워져 버려라!”
네아의 입으로부터 그러한 외침이 터져 나와 주위의 모든 공간에 울려 퍼진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가장 강력한 의지의 선포였고, 그것을 들은 모두는 생명이 있는 것이건 없는 것이건 그 명령이 이루어지리라 확신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염병하네. 아주 날 새겠다.”
“!”
자신의 말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앙복하는 것을 기꺼워하던 네아의 귀에 그 말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동자에 들어온 것은, 나른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공격 한 번 하면서 아주 별 지랄을 다하는구나. 가능한 한 빠르고 신속한 공격수단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밤을 잠도 못자고 수련이다 연구다 하며 고생하는 나같은 녀석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니까.”
“…”
네아는 대답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완전히 등을 내줘버린 상황에 당황한 것은 차라리 별 일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가장 찬란한 빛에 휩싸인 상태. 멍청해서 그렇게 힘을 모으는데 시간을 끌고 자신의 모습을 다 드러낸 채 공격을 준비한 게 아니다. 무엇도 가장 찬란한 이 빛 속으로 파고들어 접근하여 그녀에게 해를 끼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네아는, 그리고 그녀를 장악한 무언가는 티폰을 향해있던 손을 어느 틈엔가 자신의 등 뒤에 선 누군가를 향해 돌렸다. 아니, 돌리고자 했다.
“늦어.”
하지만 미처 그 생각이 육체로 전해져 행동에 옮겨지기도 전에, 그의 손이 움직였다. 너무나 빨라서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또한 가장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위해.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은 암흑으로 뒤덮였다.
적어도, 네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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