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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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이다!”
장로 하나가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대성전 전체에 비상을 걸었다. 최고 장로 네아를 비롯해서 이곳에 모여 있던 장로들은 일제히 자신들이 지닌 능력을 모두 끌어내어 그들의 이해 범주를 벗어나는 무언가의 출현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티폰은 그들과 규모 자체가 달랐다.
티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이 지닌 거대한 질량에 의해 대성전은 뼈대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주에서 가장 존엄한 자를 섬기는 신전답게 대성전은 매우 튼튼하고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이었지만, 그것을 짓는데 참여한 자들은 누구도 그 안에서 행성급의 거대한 존재하 출현하리라는 예상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신이 분노해서 일부러 대성전을 무너뜨리려고 작정하지 않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사태이기 때문이었고,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떠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공격을 가한 자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며, 또한 그들이 섬기는 빛의 신과 마찬가지로 우주를 다스리는 신이었다. 위의 전제와 차이가 있다면, 그는 전혀 분노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 정도 뿐이다.
“어리석은 놈. 그걸 삼키다니.”
형진이 크츄카에게 건네준 것은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않은, 그가 이끄는 자들 사이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물건이다. 어디를 가든 가장 먼저 대기권 상에 퍼트려 그의 눈과 귀로 삼으며, 또한 이동을 위한 이정표 역할을 하는 물건. 바로 휴대용 인공위성이었다.
그것을 건네준 시점에서, 형진은 크츄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스틱스 내부에 앉아 편하게 알아볼 수 있다. 또한 크츄카가 그것을 지니고 있다면, 그가 있는 곳에 곧바로 병력을 보내거나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 계획은 처음부터 반간계 같은 건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았다. 형진이 노린 것은 트로이의 목마. 적의 심장부에 자신의 숨겨둔 칼을 옮길 수단을 필요로 하고 있었을 뿐이다.
때문에 크츄카가 자신이 건네준 인공위성을 버리지 않고 안으로 가져가기만 한다면 이 계략의 최소 성공치는 이미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크츄카의 욕심은 스스로에게 가장 끔찍한 결말을 유도하고 말았다. 위성을 삼킴으로 인해서, 형진이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육체를 파괴해야만 하도록 만든 것이다.
열려라 참깨 같은 주문도, 그것을 말함과 동시에 황혼의 결계가 열렸던 것도 위성의 기능이 발동한 것이 아니라 옆에 있던 형진이 힘을 발현한 것뿐이었다. 만약 놈이 다른 자들 앞에서 그것의 기능을 선보이기 위해 주문을 말하더라도, 녀석이 기대하는 일 따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블랙홀은 오직 스스로의 무게만으로 우주 공간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은 현상을 만들어내지. 이것은 티폰 역시 마찬가지.”
티폰은 비록 주위의 빛마저 끌어당겨 검은 구멍처럼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또한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 삼켜 소화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찌 보면 티폰은 임의로 활성화할 수 있는 블랙홀을 염두에 두고 탄생된 존재가 아닐까. 문득 형진은 그런 생각마저 떠올리고 있었다.
이미 장로들이 모여있던 건물은 완전히 붕괴되고 있었으나 티폰은 이제 고작 그 끄트머리 일부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어떤 수단을 사용하지 않은 채, 단지 출현만으로 이런 거대한 파괴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달리 있을까. 이제는 과거처럼 언데드의 힘에 찌들어 불길하고 혐오스러운 형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티폰은 그 존재만으로도 분명히 재앙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떻게든 티폰의 출현을 막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던 장로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이 터무니 없는 존재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뒤늦게서야 내렸다.
“일단 피하십시오. 하늘 위에 있는 군세를 불러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대성전이! 이곳이 파괴되도록 그냥 둘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빛의 신께서 임하시는 가장 성스러운 장소! 그러한 곳을 적이 마음대로 유린하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최고 지도부라 할 수 있는 장로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그들중 누구도 이런 식으로 대성전이 직접 공격의 대상이 될 거라 생각한 자는 아무도 없었고, 또한 그들은 이런 식으로 허를 찌르는 계략을 경험해 본 적도 없었다. 빛의 신은 언제나 모든 존재를 압도했고, 그 강력한 힘 앞에서는 일개 지성체의 하찮은 머리 굴림 따위는 처음부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라도 그들은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 자신들이 마주한 이 사태가,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이끌어낸 장본인이,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존재와 동격이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들은 떠올려야만 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유일신의 존재에 매몰된 그들의 사고방식은 그러한 가정 자체를 불경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상황이 이렇게 최악으로 번져가고 있음에도 그것을 해결할 대책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장로들이 그렇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동안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달아 가고 있었다. 어느새 티폰은 그 거대한 체구의 삼분의 일 이상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대성전의 모든 건물은 물론이고 그것을 지탱하고 있던 지각마저 붕괴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층은 뒤틀려 쪼개지고 흔들리며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그렇게 박살난 지층을 뚫고 지면 아래서 움츠리고 있던 용암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지각을 뚫고 나온 용암의 분출은 삽시간에 일대를 불구덩이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렇지 않아도 부서지고 박살난 대성전의 건물들은 땅위로 솟아나온 이 원초적인 불덩이에 타오르고 녹아내리며 사라져 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거대한 파괴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성전에 머물고 있던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제 비명을 지르며 개미떼처럼 흩어져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아니, 그런 생각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이들은 차라리 나았다. 몇몇은 아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이 거대한 파괴에 휩쓸려 그대로 소멸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안 돼! 대성전이!”
“네아님! 결단을! 계속 두고만 보고 있을 겁니까!”
“하, 하지만…”
최고 장로 네아는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겪는 혼란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망설이고 있는 동안, 이미 대성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빛의 신을 찬양하기 위해 봉헌되어 있던 수많은 보물들 또한 불타고 녹아내리며 사라져 버렸다. 희생자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으며, 이미 복구라는 말은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아차 하는 사이에 상황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최악으로 치달아 버린 것이다. 그저 자신들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대성전에 존재를 드러낸 것만으로.
최고 장로란 장로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직위. 그만큼의 권위를 가진 만큼 책임 또한 클 수밖에 없는 자리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빛의 신이 인지하는 순간, 그녀는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것만으로도 네아는 이미 정신이 아득해져서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는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네아가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보다 못한 장로 가운데 한 명이 마침내 독단으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에이잇!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늘 위에 모여 있는 군세여! 저 부정하고 타락한 존재를 공격하라!”
“하지만 대성전이!”
“아직도 그딴 소리요? 눈이 있으면 보시오! 대성전은 이미 완전히 파괴되었소! 언제까지 같은 얘기만 반복할 셈이오!”
“…”
네아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다른 장로들 역시 공격을 결의했다. 그렇게 마침내 장로들의 뜻이 한 곳으로 모이자, 하늘 위에 모여 있던 군세가 일제히 지상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그것은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혼돈 속에 빠져 있던 지상에 또다시 크나큰 파괴를 불러일으켰다. 당연한 얘기지만, 하늘 위에 모여 있던 빛의 군세들은 정밀한 지상 폭격 능력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능력은 거대한 파괴의 힘으로 빛의 신에게 저항하는 자들을 쓸어 버리는 것이지, 핀포인트로 파괴해야만 하는 대상을 공략하는 식의 능력 따위는 처음부터 가질 필요도 없었고 가질 생각조차 없었다.
마치 유월에 쏟아지는 열대성 폭우처럼 하늘 위에서 공세가 쏟아져 내린다. 그러한 공세는 그렇지 않아도 티폰의 출현 앞에 우왕좌왕하며 도망치기 바쁘던 대성전의 식솔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돌아왔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가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하늘 위의 군세가 쏟아내는 공세 역시 적아를 가리지 않고 지상에 거대한 파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격은 정작 파괴의 대상이 되어야 할 티폰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처음부터 티폰은 보호의 성역과 황혼의 결계를 두른 상태였고,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둥지를 소멸시켰던 것과 동급의 힘을 갖춘 빛이어야만 했다. 아니, 지금처럼 무작위로 쏟아져 내리는 공격은 티폰이 이런 식의 방어 수단이 없는 상태라도 스스로의 재생력만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막상 그와 같은 공세가 퍼부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장로들은 어리석게도 이것이 알 수 없는 이 무언가를 파괴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결계 위에서 터져 나가며 만들어지는 폭발과 그 여파를 보며 그 안쪽에는 티끌만큼의 타격도 가해지지 않는 것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이 공격이 틀림없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장로들은 대성전에서 결과를 보고 받는 일에만 익숙했을 뿐, 실제로 전장에 나서본 일이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직접 대하고도 그 진실을 알아차릴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잘 한다! 더 쏟아 부어라!”
“박살 내버려!”
장로들의 독려에 하늘 위의 군세들은 더욱더 열심히 공세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들의 응원과 독려는 오래지 않아 끝을 맺었다. 점점 더 높이 솟아올라 마침내 그 거대한 위용을 완전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티폰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도 들어오기 시작한 탓이다.
“어째서?”
“부서지지 않아?”
티폰은 이제 그 거대한 체구를 반 이상 드러내고 있었다. 대성전은 이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완전히 사라져 있었고, 그것이 있던 지형 역시 본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채 지진과 용암 분출로 매몰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순간, 그들은 또한 보았다.
번쩍!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티폰으로부터 무언가 알 수 없는 빛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하늘 위에서 공세를 쏟아 붓고 있던 거대한 크리스털 하나가 꿰뚫리며 산산히 부서져 나간다.
티폰이 반 이상 모습을 드러내자 마침내 그곳을 기점으로 아스트라페가 발사된 것이다.
지금껏 공격을 가하지 않고 묵묵히 공세를 받아내기만 하던 티폰으로부터 공격이 가해지기 시작하자, 하늘 위의 군세들은 곧바로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졌다.
번쩍!
하지만 아스트라페의 공격에는 자비가 없었다. 한 번 티폰으로부터 빛이 번쩍일 때마다 하늘 위에 버티고 있던 거대한 군세들 일부가 박살나며 사라져 버리는 그 광경에 장로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막을 수 없어…”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말을 똑똑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심장부에 틀어박힌 이 거대하고도 날카로운 비수 앞에 그들은 빛의 신을 섬기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무력함이라는 감정 속에 빠져 들고 있었던 것이다.
“신께… 아뢰겠습니다.”
바로 그 때, 지금까지 혼란에 빠져 제대로 말조차 잇지 못하고 있던 네아가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선언했다.
“그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장로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만약 네아의 말대로 신께 이 상황이 아뢰어지게 된다면, 자신들 또한 대성전의 파괴 앞에서 헌신짝처럼 버려진 식솔들과 마찬가지 꼴이 되고 말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분명 신을 받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이지만, 신들끼리 싸움을 벌이게 되면 결국은 그들의 발자국에 짓밟혀 뭉개지는 연약한 개미떼 같은 존재들에 불과하다.
“여러분은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네아의 말에 장로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렇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러기에 가장 적합한 직위를 지닌 이는 바로 최고 장로인 네아이다.
눈처럼 새하얀 날개를 지니고 태어나, 그 누구보다도 빛의 신에게 총애 받으며 다른 모든 이들을 제치고 장로에 오른 이. 역대 최연소로 장로의 자리에 오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빛의 신을 모시는 모든 이들의 정점에 올라선 이 아름다운 존재가 비로소 그동안 받은 은총에 대한 보답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서로 눈짓을 나눈 장로들은 급히 네아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자, 네아는 비로소 양손을 가슴에 얹은 채 자신이 모시는 신의 이름을 되뇌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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