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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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그런 방법이!
규설과 힐리에타는 리페의 말을 듣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그렇다. 형진은 신이다. 그것도 여느 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닌,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주신이다. 원래대로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라도, 상상 외의 방법을 동원해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 절대적인 힘을 지닌 신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가슴이 없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다.
가슴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터무니 없지만, 그에겐 그러한 일조차 가능하다!
“커허험!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알아? 아예 생물의 종이 바뀌는 일이라고. 조류와 포유류는 아예 분류 자체가 다른 생물이라니까.”
가슴이라는 건 의외로 상당히 중요한 생물학적 특징이다. 포유류라는 분류 자체가, 새끼에게 젖을 먹여 키우는 동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일 정도다.
물론 이런 식의 정의는 어디까지나 분류학적인 내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굳이 이런 식으로 생물의 분류까지 뒤바꿀 정도의 변혁이 아니더라도 그냥 형태만 비슷한 무언가를 갖춰 놓으면 그것뿐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어떤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로봇처럼 가슴이 미사일처럼 발사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결국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지금의 형진이 그런 엽기적인 발상마저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없으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능력과 힘을.
“클로리스인들에 비하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지. 그들은 아예 식물과 동물이 결합한 형태니까.”
“크흠…”
리페의 날카로운 지적에 형진은 괜히 딴청을 피우는가 싶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는 미아의 손을 잡고는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가 버렸다.
“잠깐! 기다려! 어딜 도망가!”
“어허! 어른들 하는 일은 끼어드는 게 아니야! 애들은 가. 훠이! 훠이!”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하고 있는 거야? 거기 안 서!”
형진과 미아, 그리고 리페가 그렇게 소란을 피우며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자, 가만히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아란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얼떨떨한 표정의 규설과 힐리에타에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아무리 그라도 종족 개조 같은 건 간단하게 이루어질 만한 일이 아니니까요.”
차분하게 웃으며 말하는 아란의 모습에, 규설과 힐리에타는 어쩐지 속마음이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미아님은 당분간 연습 때문에 다른 일은 하지 못할 것 같으니, 포로는 당분간 제가 맡도록 할게요. 두 분께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다른 업무들이 밀리지 않도록 신경 써 주세요.”
“네. 아란님.”
“맡겨주세요.”
아란의 말에 규설과 힐리에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업무로 복귀했다.
흔히 연애 소설 같은 걸 보면 연인이 된다든가, 결혼을 하게 되면 그것으로 해피 엔딩이 되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들 앞에 놓인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받아들여진 것처럼, 다른 누군가가 다시 그의 옆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들은 오늘 또다시 뼈저리게 깨달아 버렸다.
네아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다시 며칠이 더 지난 뒤의 일이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그야말로 나락에 떨어진 듯한 기분으로 정신을 잃고 있다가 다시 깨어났다. 형진은 그녀를 향해 온실 속의 꽃 같다고 표현했지만, 평생 동안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했던 것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버리면 누구라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
그나마 다행인 건, 더 이상 새카만 어둠 속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건 바꿔 말하자면, 자신이 빛과 접촉해도 더 이상 저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 되어 버린다.
“후우…”
한숨이 나와 버린다. 허전하고 허탈하고 뭔가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그런 허허로운 느낌에 네아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만다.
손을 들어 눈을 가린다. 확실히 잘 먹고 잘 쉬어야 빨리 낫는다던 미아의 말대로였다. 전에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런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걸 과연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다시 원래대로 건강해지고 나면, 자신은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역시, 죽었어야 했나.
지금은 비록 이렇게 보살핌을 받고 있지만, 이것이 무조건적인 호의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무언가 목적이 있을 테고, 그것은 아마도 빛의 신을 적대하는데 필요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문제가 커지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닐까.
눈을 가렸던 손을 바라본다. 움직일 수는 있어도, 고작 들어 올리는 그 동작만으로도 덜덜 떨리고 있다. 하지만 그럴 의지가 있다면, 이 정도만으로도 자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단숨에, 확실하게 숨통을 끊을 수 있는 도구만 주어진다면. 아니, 손을 쓸 필요도 없다. 몸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힘만 있다면, 그 무언가를 입에 물고 엎어지는 방법도 있으니까.
아프겠지.
네아는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죽고 나면 고통이란 것도 결국 한순간에 불과한 것이니까. 죽고 나면, 전부 끝이니까. 신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후 세계는 믿지 않고 있었다.
똑똑.
그렇게 점점 어두운 번뇌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있는데, 문득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깨어난 것을 모른다면, 저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는 얘기는, 이미 누군가의 시선이 이런 자신의 모습 또한 그대로 들여다 보고 있다는 뜻이겠지.
“네.”
작게 대답하자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여성이 작은 손수레 같은 것을 밀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전까지 자신을 돌봐주던 미아도, 그녀를 이곳으로 옮기는 일을 도왔던 이도 아니다. 입고 있는 예의 그 이상한 옷차림은 마찬가지였지만 이전까지 본 적이 없는, 하지만 살짝 짓고 있는 눈웃음이 상당히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여성이다.
“반가와요. 나는 아란이라고 해요. 미아님이 당분간 다른 일로 바빠지셔서, 그분을 대신해서 당신을 돌보게 되었어요. 잘 부탁해요.”
분명히 미소를 짓고는 있는데, 미아와는 다른 묘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피식 미소를 짓게 만들었던 미아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손수레를 옆에 세워두더니, 네아의 몸을 덮고 있던 시트를 걷어 내고는 매우 숙련된 솜씨로 일을 시작했다. 놀라고 당황해 할 틈도 없이, 그녀를 안아 올려 간이침대에 눕히고 침구를 가는 일을 척척 해치우더니 옷을 벗기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준 뒤 따뜻한 햇빛 냄새가 나는 새 옷으로 갈아입힌다.
어딘지 모르게 서투른 느낌이 있었던 미아와는 달리, 숙련된 것을 넘어 전문가의 손길마저 느끼는 아란의 솜씨와 함부로 입을 열기 어렵게 만드는 묘한 존재감에 네아는 손끝 하나 까딱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그녀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고했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식사를 내올 테니.”
“네…”
일은 전부 자신이 다해놓고서 뭐가 수고했다는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네아는 조금은 기가 죽은 채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뭐랄까. 유익족 알마네아의 직감이 다시금 발동했다고 해야 하나. 괜히 이 여성에게 대들었다가는 국물도 없을 것 같다는 그런 직감 말이다.
침구나 벗어놓은 옷 같은 것을 잘 개어서 손수레 위에 얹은 아란은 그것을 끌고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네아를 태울 휠체어를 가지고 들어왔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밖에서 식사를 하는 편이 좋겠어요. 당신도 그것을 원하겠죠?”
네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더 이상 빛의 신을 모시는 추종자조차 아니게 된 자신에게 따뜻한 햇빛 같은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로 대답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던 모양인지, 아란은 다시 그녀를 번쩍 안아올려 휠체어에 태우고는 테라스로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아…”
하얀 새털구름이 흘러가는 푸른 하늘과, 어디부터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맑고 깨끗한 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햇살 가득 내리 쬐는 테라스.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는 이미 사치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아는 전신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빛에 작은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알마네아가 원래 몸이 가볍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당신은 너무 가벼워요. 그대로 훅 하고 불면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런가요.”
조류에서 진화한 종족이다 보니, 알마네아는 새의 특징을 상당부분 그대로 이어받았다. 예를 들어 뼛속이 비어서 그만큼 다른 생물에 비해 몸이 가볍다든지 하는 식으로.
“얼른 먹고 힘을 내야 원하는 대로 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겠죠.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많이 먹고 얼른 건강해졌으면 해요.”
“…”
잠시나마 이대로 날아서 도망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던 네아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 같은 말을 건네는 아란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뒤이어, 자신이 아무리 강인한 날개를 가지고 있어도 이미 그들의 손아귀로부터는 빠져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곳은… 어디죠?”
테이블 위에 음식을 차리는 아란의 모습을 보며 용기를 내어 그렇게 물었다.
“아마 이름을 말한다고 해도 당신은 알 수 없을 거에요. 애초에 이곳은 당신이 살던 그 우주가 아니니까요.”
“…”
그런가.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자신을 빛 아래 놔둘 수 있었던 것인가. 단순히 밤의 신을 따르는 추종자로 강제 개종이 된 것을 넘어, 빛의 신에게 닿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옮겨진 것인가.
“그럼, 절 어떻게 하려는 건가요.”
그 말에 아란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신에게 달린 일 아닐까요?”
“저에게… 달렸다고요?”
“그래요.”
아란은 음식을 차리는 일을 마치고 나서, 자신 역시 의자를 가져다 마주 앉으며 말했다.
“당신의 가치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에요. 하지만 밤의 신께서는 그런 식의 일을 강제로 시킬 생각이 없어요. 어차피 당신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협력할 이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당신이 우리들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 뭔가를 할 생각이 없더라도, 우리에게는 당신이라는 존재를 활용할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이 이미 존재하니까요.”
“…”
“그러니 나머지는 당신에게 달린 거에요. 자, 어서 들어요. 식으면 맛 없으니까.”
아란은 미아처럼 음식을 떠서 입에 넣어주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가 손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그리고 음식을 가져다 차려준 이상 그것을 먹는 것은 어디까지나 네아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을 그녀는 지금 이순간 그러한 행동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네아는 자신의 눈앞에 차려져 있는, 이전에 미아가 죽이라고 불렀던 이름의 음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 음식은 너무나도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재료가 다소 바뀌었는지, 약간 다른 느낌이 나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냄새를 맡는 순간 입안에 군침이 도는 건 마찬가지다.
“후우…”
네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수저를 들었다. 아쉽게도 이 도구는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엔 너무 빈약해 보인다고 생각하며.
잠시 수저를 들고 그것을 바라보던 네아는 마주 앉은 채로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다과를 즐기고 있는 아란을 향해 다시 이렇게 말했다.
“이걸 다 먹으면, 제 부탁 한 가지를 들어주시겠어요?”
아란은 빙긋 웃었다.
“그렇게 조건을 내걸 처지가 아닐텐데요.”
그녀의 말에 네아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미아님은 제가 식사를 열심히 하면 상을 주셨지요. 그것은 제가 식사를 열심히 하는 것이, 그쪽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래서, 상을 원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구차하긴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상관은 없어요.”
아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 놓았다.
“좋아요. 일단 무슨 상을 받고 싶은지나 한 번 들어보도록 하죠.”
수락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앉은 이가 단순히 허드렛일을 하는 이가 아니라, 그 정도의 권한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네아는 한 번 더 작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이렇게 말했다.
“밤의 신을 만나고 싶어요.”
========== 작품 후기 ==========
두편째.
날짜 지나기 전에 세이프.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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