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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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아의 일을 진행하면서도 형진은 추가적인 공세를 위한 준비도 빼놓지 않고 있었고, 그것을 위한 정보의 취합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체적인 작전 수립에 들어갔다.
작전을 실행할 장소와 범위가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만큼, 필요한 인원도 지금까지와는 격이 달랐다. 그래서 몇몇 신들은 이번 작전에 유저들을 동원하는 것이 어떻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추종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유저들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이미 타나토스에서의 언데드 출몰이나, 링 월드의 수색 등에 엘리시온의 유저들이 투입되었고 지금 현재도 그러한 일에 계속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전의 사례들과는 달리, 이번에 상대해야 할 적은 이미 죽어 버린 언데드들이 아니라 다른 우주의 생명체들이다.
아무리 게임이라도 살아있는 생명체를 상처 입히고 죽이는 것은 작전에 투입되는 유저들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
“이건 전쟁입니다. 게다가 이번 작전의 성패는 신속함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불안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유저들은 충분히 유효한 전력이고 지금은 그 정도의 전력을 놀려둘 정도로 여유로운 상태도 아닙니다.”
“하지만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것과 살아있는 생명체를 상대하는 건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 안에서도 그러한 일은 얼마든지 겪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세계의 생명체라면 인간과 동일시하기도 어렵겠죠.”
“저들을 언제까지고 다른 세계와 격리시켜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언젠가는 이 모든 사실을 알리고 개방을 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되었을 때 자신들이 죽였던 것이 진짜 살아있는 외계 종족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저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겠습니까.”
“그것은 허세와 망상님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저들이 보는 것과 실제의 사물에 다소 차이가 있게끔 만드는 거죠.”
“이것은 전쟁입니다. 그것도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다른 신을 따르는 이들과의 전쟁이죠. 허세와 망상님이 지닌 환상의 힘이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그 와중에 어떤 식의 사태가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자칫 그러한 환상이 깨지기라도 한다면, 거짓된 천국의 실체가 아무런 대책조차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벗겨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너무 위험천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형진은 다른 신들이 벌이는 열띤 토론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유저들은 투입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링 월드의 탐색에만 전념하게끔 한다.”
곧바로 몇몇 신들이 반발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작전 수행에 필요한 전투 인력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당장 장악해야 하는 게이트의 숫자만도 천여개에 가까운 상황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솔직히 유저들을 동원해도 모자른 상황에서 오히려 그들을 제외하다니, 이래서는 작전 수행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찬성하는 쪽도 있었다.
“어차피 유저들을 전부 투입해도 동시에 모든 게이트를 점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최대한 전력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저들을 투입하게 되면 오히려 지휘계통이 통일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더 큽니다.”
“통제되지 않는 병력은 오히려 전략에 차질을 가져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단순히 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번 게이트 점거 작전의 가장 큰 목표도 결국 최소한의 희생으로 통합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긴 했지만 신들의 의견은 점차 형진이 뜻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의견 조율이 마무리 되자 형진은 이번 협의에 공이 있는 신들을 불러 치하했다.
“수고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다.”
“저희들은 딱히 주신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옳은 길이기에 선택했을 뿐입니다.”
“알지. 물론 알다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대들을 신뢰하는 것이고.”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형진이 주신이라고 해도 그것은 다른 신들에게 권력을 위임 받는 형태로 주어진 자리이기에, 형식상으로라도 다른 신들의 의견을 묻고 그것을 취합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었다.
청렴과 절조를 비롯한 측근의 신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형진은 조금은 피곤한 기색으로 스틱스에 돌아왔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휴… 좀 씻을 테니까 도와주겠어?”
“알겠습니다. 규설님과 힐리에타님을 들여보낼게요.”
자신의 겉옷을 받아들며 아란이 그렇게 말하자, 형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당신이 도와주지 그래.”
“안 돼요. 요며칠 두 분을 안지 않았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냥 마음 편하게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아내가 조곤조곤한 손길로 머리를 감겨주는 것을 즐기려 했던 형진으로서는 하는 김에 그것까지 치르고 나오라는 아란의 말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긴, 건드렸으면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모처럼 아내로 맞이해 놓고 방치해 놓으면 자칫 오뉴월 한 섞인 서리에 맞을 가능성도 생긴다.
“역시 앞으로는 좀 자제를 해야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옷을 벗고 있자니, 쭈뼛거리는 모습으로 규설과 힐리에타가 안으로 들어왔다.
“바쁜데 불러서 미안해.”
“아,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불러주셔서… 그러니까…”
벌써 몇 번이나 같이 밤을 보냈는데도 여전히 긴장되는 모양이다. 형진은 부동자세로 대답하는 힐리에타의 모습에 피식 웃어버렸다.
간단하게 몸을 씻고 욕조에 앉는다. 규설과 힐리에타는 그가 자리를 잡고 앉자 머리를 조심스럽게 머리를 감기는 일을 시작했다.
“둘이 가위바위보 해봐.”
“지금요?”
“그래.”
규설과 힐리에타는 왜 그러나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시키는 대로 가위바위보를 했다.
사실 이건 불공정한 게임이다. 규설은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그럴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빈틈 많은 힐리에타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긴 쪽은 힐리에타였다. 잔뜩 긴장한 그녀를 위해 규설이 슬그머니 양보를 한 것이다.
오랜 만에 형진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 긴장한 힐리에타는 규설이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양보를 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쭈뼛거리며 형진에게 다가섰다.
“제가… 이겼는데요.”
“그래? 그럼 이리 들어와.”
“?”
손목을 잡아 낚아채는 형진의 행동에 힐리에타는 반항할 겨를도 없이 욕조 속으로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규설은 머리를 부탁해.”
“네. 맡겨주세요.”
규설이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감겨주는 것을 즐기며, 형진은 힐리에타의 부드러운 몸을 품에 안았다.
“요즘은 좀 어때.”
갑작스럽게 살을 맞대게 되자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없던 힐리에타는 허둥거리기 바쁘다.
“혹시 몸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냐고.”
“아, 아뇨. 이젠 괜찮아요.”
“다행이네.”
대견하다는 듯이 슬슬 어깨를 쓰다듬는 형진의 손길에 힐리에타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문득 다른 말을 꺼냈다.
“저, 저기… 이번 작전에 인원이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저희들도 참여하는 쪽이 어떨까 싶은데요.”
“흠…”
비서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있고 경험도 많은 쪽은 전투다 보니 이런 식의 사안에 대해서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글쎄. 당신들이 위험해지는 건 싫은데. 게다가… 괜히 다른 녀석들 눈요기를 시켜주고 싶지도 않고.”
“…”
힐리에타는 대답없이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말았다. 형진이 그것을 보며 껄껄 웃자 가만히 그의 머리를 감겨주던 규설이 말했다.
“제 생각입니다만, 이번 작전에는 진님께서도 함께 나서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음. 아무래도 내가 나서게 되면 그만큼 인력을 더 활용할 수 있으니까.”
누가 뭐래도 형진은 자타공인의 최강 전력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여러 추종자들이 떼로 덤벼들만한 일이라도 그 혼자서 너끈히 처리할 수 있으니, 그가 나서게 되면 그만큼 다른 곳에 전력을 더 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형진이 선선히 대답하자 규설은 차분하게 그를 설득했다.
“당신께서 누구보다 강하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또한 이번 작전의 그 모든 부분을 총괄하는 일 또한 맡으셔야 합니다. 자칫 그런 일들에 집중하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손실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둘이서 내 보디가드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부족한 실력이지만, 차분하게 주위를 돌아볼 시간 정도는 벌어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흠…”
형진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의외로 흔쾌히 그녀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았어. 모처럼 마누라들이 날 위해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데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럼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물론. 다만… 맨입으로는 어려워. 뭔가 상응하는 보답을 받았으면 하는데.”
“…”
슬쩍 뒤쪽으로 고개를 젖히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형진의 모습에 지금까지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규설은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그가 말하는 보답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린 탓이다.
“부,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쿡쿡. 기대할게.”
그리고 마침내, 구체적인 작전 수립이 끝나고 그것을 실행할 날이 되었다.
“괜찮겠어? 셋이서만 움직여도.”
“아아, 걱정마. 든든한 지원군을 준비해 뒀으니까.”
“지원군?”
“그래. 나나 이 둘은 아마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
또 무슨 엉뚱한 수를 생각해낸 걸까. 다른 이라면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작전대로 움직이기만 하라고 했겠지만, 상대가 천하의 형진이다 보니 리페도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조심하세요.”
미아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그의 손에 가만히 손수건을 감아준다. 물론 본신은 안전한 곳에 있고 아바타만 움직이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완전히 접지는 못한 탓이다.
“걱정마. 당신도 알지? 내가 얼마나 센지.”
“물론이죠.”
“그럼 다녀올게.”
상황실에 남은 아란과 리페, 그리고 미아는 의지의 성채로 몸을 감싼 채 형진의 뒤를 따라나서는 규설과 힐리에타에게 잘 부탁한다는 눈빛을 보냈고, 여신들의 그런 시선을 받은 둘은 걱정 말라는 듯이 고개를 숙여 답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나자 형진과 규설, 그리고 힐리에타는 경계를 넘어 예정된 목적지로 이동했다.
그들이 목표로 삼은 곳은 킨브린드 게이트를 통제하는 신전이다. 킨브린드 게이트는 빛의 신의 영역 가운데 약 삼할 가량의 경로가 연결된 요충지. 사람으로 치면 경동맥에 해당하는 중요한 급소인 셈이다.
“지원군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그랬지.”
규설의 말에 형진은 싱긋 웃더니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와라!”
그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주위의 숲그늘로부터 복면을 한 남자 십여명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규설과 힐리에타는 깜짝 놀랐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숨어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들이 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라면 필시 엄청난 수준의 강자일 터.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저들의 정체를 알게 되면 더 놀라게 될걸.”
“누구… 길래요?”
힐리에타의 물음에 형진은 그들 가운데 한 명을 가리켜 보였고, 지적당한 복면인 하나가 얼굴에 쓰고 있던 것을 벗었다.
규설과 힐리에타는 그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또 하나의 형진이 빙긋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들은 많은 수의 아바타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지. 게다가 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강의 전력. 그런 전력이 하나도 아니고 십여명이 동시에 전투에 투입된다면 과연 막아설 자가 있을까?”
없다. 규설과 힐리에타는 형진의 말을 듣는 순간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형진은 씩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신이 작정하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오늘 그 결과를 보여주도록 하지. 기대해도 좋아.”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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