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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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카트린이나 크루그처럼 타나토스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지구의 문명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된 것도 엘리시온의 이름을 딴 게임이며 또한 신들에게는 거짓된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바로 이곳에서부터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거짓된 천국은 단순한 게임을 넘어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일종의 완충 지대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형진에게 있어 이곳은 현재 다른 이들에게 드러나지 않은 강력한 생산 시설이기도 하다. 허세와 망상 휘하의 인력들이 이곳에 모여 아스트라페나 스틱스 같은 강력한 무기들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
네아와 기타 여러 종족의 아가씨들이 처음 도착한 곳은 길드성이었다. 이른바 타나토노트10이라는 이름으로 한 때 거짓된 천국을 뒤흔들었던 곳이지만, 현재는 형진이 다른 곳에 신경 쓰는 일이 많아져서 이 안에서의 활동이 뜸해진데다, 더 크고 아름다운 길드성들이 추가로 들어서면서 어느 틈엔가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상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길드성이 마치 버려진 것마냥 적막한 공간이냐면 그건 아니다. 형진이 집중적으로 문명을 가속시키고 있는 타나토스나 앙그릴에 속한 왕족들이 여전히 이곳에 모여 수련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꺄아아! 여신님, 오랜만이에요!”
“저도요! 그동안 별일 없었죠?”
“물론이죠!”
빛의 신에 대한 공략에 바쁜 형진을 따라다니느라 한동안 거짓된 천국에 들르지 못했던 보호와 균형이 모습을 드러내자, 카트린과 함께 느긋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길드원들이 그녀를 반긴다.
“너무해요. 그동안 기별도 제대로 안 하시고.”
“맞아, 맞아. 신혼이라고 자기 추종자도 돌보지 않으시다니, 여신으로서 낙제점이라고요.”
“헤헷. 미안해요.”
어느 틈엔가 조그마한 꼬마 여신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보호와 균형이나, 그녀를 에워싼 채 장난식이긴 해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길드원들의 모습이라니. 네아나 다른 아가씨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분들은 누구세요?”
폭풍 성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서 어느덧 아가씨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자라난 카트린이 묻는다. 일곱 쌍의 빛나는 날개를 지닌 네아는 물론이고, 다른 아가씨들도 일반적인 인간과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다.
“아, 이쪽은 네아님이에요. 알마네아라는 종족 출신이죠. 그리고 이쪽의 아가씨들 역시 저쪽 우주에서 오신 분들이랍니다.”
보호와 균형이 그렇게 소개를 하자, 네아를 비롯한 아가씨들은 얼른 카트린이나 승희, 수빈 같은 길드원들에게 얼른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아라고 합니다. 이번에 새로 밤의 신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하.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요. 실은 오빠나 언니들한테 네아님에 대한 얘기는 제법 들었거든요. 아주 아름다우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뵈니 그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겠네요. 잘 부탁드려요.”
“네, 저야말로.”
네아는 엉겁결에 카트린과 그렇게 인사를 나누다가 문득 의문스러운 점을 발견했다.
“저… 오빠 언니라면…”
“아, 전 그러니까 여러분이 밤의 신이라고 부르는 그 분의 동생이에요.”
“네? 도, 동생이시라고요?”
“안 닮았죠? 후후. 처음 듣는 분들은 많이 놀래시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짓는 카트린의 모습에 네아나 다른 아가씨들 모두 얼이 빠지고 말았다. 과연 신이 머무는 곳. 도착하자마자 신의 여동생을 바로 만나게 될 줄이야.
“이쪽으로 오세요. 머무시는 동안 쉴 곳을 안내해 드릴 게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타나토스와 앙그릴의 왕족들이 이곳에서 머물다 가는 일이 많아진 관계로 길드성 내부도 상당부분 확장되어 있었다. 어지간한 초대형 호텔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규모와 시설을 갖추게 된 것이다.
아가씨들은 곧바로 개인용 숙소로 안내받았다. 간단하게 둘러보는 정도를 염두에 두고 이곳을 찾았던 그녀들로서는 이래저래 어리둥절할 뿐이다.
“저… 잠깐 들렀다 가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닌가요?”
“그러셔도 상관은 없지만, 하루 이틀 정도로는 이곳을 다 둘러보기는 쉽지 않을 거에요.”
“그렇게 넓은가요?”
“넓은 것도 있고, 볼 것이 많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일단 숙소를 배정 받고 나서 다시 밖으로 나오자, 왕족 나부랭이들을 수련시키고 있던 크루그와 만났다.
“크루그입니다.”
“작은 오빠에요. 이곳에서 여러 세계의 왕족 여러분들을 수련시키는 일을 하고 있죠.”
이제는 제법 다부진 몸매와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아직 청년이라고 하기는 좀 부족하지만 어쨌든 제법 어른스러워진 크루그의 모습에 아가씨들은 급히 인사를 건넸다. 카트린의 작은 오빠라면 그들이 모시는 밤의 신에게는 남동생에 해당되니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몸을 단련하는 일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오빠에게 말씀해 주세요. 겉으로는 이래도 꽤 자상하게 가르쳐 줄 거에요.”
“쓸 데 없는 소리.”
“후후, 예쁜 아가씨들이 갑자기 많이 찾아와서 부끄러운 모양이네요.”
아무리 봐도 부끄러움보다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해 보이지만, 카트린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어쨌든 크루그와의 인사가 끝나자, 뒤쪽에서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던 왕족 나부랭이들의 차례가 되었다.
“바,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이것이 현실인가 싶은 신화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네아부터 시작해서 저마다 각양각생의 특색과 미모를 갖춘 아가씨들이 떼로 몰려온 탓에 그렇지 않아도 슬슬 짝을 찾을 때가 된 몇몇 왕족 나부랭이들은 몸 둘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그러니 서로 친하게 지내주셨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네아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별궁에 모여 있는 아가씨들이 부담스러워서 이런 식으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누에 공주처럼 완전히 인간과는 이질적인 모습과 사고를 가진 종족이라면 이런 식으로 만남을 주선해도 별 의미가 없겠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모습을 지닌 상대라면 의외의 관계가 생겨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강제할 수도 필요도 없는 일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세계의 화합이라는 건 우선 인적인 관계로부터 시작하는 법이니 친분을 쌓는다고 해서 해될 일은 아니다.
왕족까지는 아니어도, 여기 모인 아가씨들 역시 각 종족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고 그 중에는 해당 종족의 실력자에게서 난 자녀들도 많았다. 적어도 서로 사귐에 있어 격이 떨어지거나 할 일은 없다는 얘기다.
그런 식으로 길드성의 시설이라든가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아가씨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길드성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안내를 자청한 왕족 나부랭이들과 외출을 준비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네아는 요정 사이즈로 오랜 만에 카트린이나 다른 길드원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보호와 균형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네. 말씀하세요. 네아님.”
“외람되지만, 이곳에서 쿠치넬리 장로가 일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잠시 살펴봤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잠시만요. 이리 온.”
보호와 균형이 손짓하자, 풀숲에서 무언가가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네아가 바라보니 턱시도를 그럴 듯하게 차려입은, 어쩐지 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토끼다.
“마탑으로 이분을 안내해 줬으면 해.”
보호와 균형이 그렇게 말하자, 턱시도를 차려 입은 토끼는 제법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네아에게 따라오라는 듯이 눈짓을 해보인다.
“얘를 따라가면 되요. 모습은 이래도 꽤 똑똑하니까 안내에는 지장이 없을 거에요.”
“아, 알겠습니다.”
네아는 속으로 살짝 당황해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방식은 예상치 못한 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신이나 자신이 모시는 신의 여동생에게 안내를 해달라고 다시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어정쩡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빠져 나온 네아는 앞장 선 턱시도 토끼의 뒤를 따라 길드성을 빠져 나왔다.
“…”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근처를 지나고 있던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반짝 반짝 빛나는 일곱 장의 날개야 조금 특이한 코스튬을 입었구나 하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외모나 터질듯한 몸매는 아무리 게임 안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보기 드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지?”
“글쎄. 연예인인가?”
“설마. 저런 외모였다면 기억 못할 리가 없잖아.”
네아로서도 이런 식으로 불특정 다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사실 처음 겪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신에게 봉사할 것을 전제로 애지중지 키워졌고, 장로가 되고 난 이후에는 대성전 안에서 나올 일이 거의 없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라고 해야 할까. 네아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뭔가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새로운 세계에 속한 것이 실감이 된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렇게 다른 유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마탑에 도착하자, 연락을 받았는지 누군가가 그녀를 알아보고는 손짓했다.
“반갑습니다. 벗과 추억이라고 합니다. 진님에게서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중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안내해온 토끼라든가 길드성에서 보았던 이들과 비슷한 부류인줄 알았지만 이름을 듣자 그것이 아님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란 모습이 되어 버렸다. 생소하긴 하지만, 이런 식의 이름을 지닌 것이 신이라는 사실 정도는 이제 그녀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정도였다.
벗과 추억은 그런 그녀의 기색을 알아채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신인 그조차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회 초년생처럼 잔뜩 긴장한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사실 신이라고는 해도 밤의 신이신 진님처럼 뭔가 특별한 것도 아니거든요. 게다가 이제부터 살펴보실 장소에는 저 같은 신이 그야말로 지나가다 발에 채일 정도로 있기도 하고요.”
“그, 그런가요.”
발에 채일 정도라니.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명 네아는 형진의 휘하에 많은 신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일 뿐 현실적으로 이해되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네. 자, 그럼 가실까요.”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아스트라페를 비롯한 각종 신무기들을 생산하는 곳은 마탑 내부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형진 같은 경우는 이렇게 따로 입구를 찾아 들어가지 않아도 곧바로 그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그런 식의 출입이 가능한 건 몇몇 허락 받은 이들 뿐이다.
“지금 이걸 일이라고 해놓은 거야? 장난 해? 이런 걸 장착했다 사고 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엉? 네가 책임질 거냐고!”
“죄,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뭐고 얼른 다시 해! 만약에 이걸 허세와 망상님이 봤어봐! 너 나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거냐? 응? 그런 거야?”
“바로 다시 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바로 거친 고함과 함께 뭔가 요란한 소음이 가득 울려 퍼진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열기로 가득한 그 곳의 분위기에 그렇지 않아도 잔뜩 긴장해 있던 네아는 뻣뻣하게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요즘 주문이 많아져서 이래저래 정신이 없습니다. 좀 소란스럽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아, 네…”
우왕좌왕하던 네아는 앞서서 걸어가는 벗과 추억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혹시…”
“네. 말씀하십시오.”
“이곳에 계신 분들… 설마 전부 신인가요?”
그 말에 벗과 추억은 작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그 대답에, 네아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신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제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이해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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