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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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진은 겁에 질린 누에 공주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어떤 신이며,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조금만 이해하고 있어도 이런 반응은 나올 수가 없다. 하다못해 추종자가 된지 얼마 되지도 않는 네아마저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따르려 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누에들의 이런 모습은 그로 하여금 아직 이 정도 밖에 전해지지 않은 건가 싶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사실 보호와 균형을 자신에게 속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누에들을 직접적인 통제 범위에 넣긴 했지만, 그들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형진도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특히나 지금처럼 서로 다른 종족들을 마구 끌어들이고 있는 시점에서라면 이것은 앞으로 그들이 여러 종족을 이끌어 가는 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고민하던 그는 왕성에서 조용히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고 있는 포트니아 테론에게 이 문제를 의논했다.
“그런 종족이 있었군요. 역시 우주란 참으로 넓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의외로 포트니아 테론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저기… 장모님께서는 그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형진이 조심스럽게 묻자, 포트니타 테론은 잔잔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그보다는 당신을 믿는 쪽이라고 해야겠죠.”
“저를요?”
“네. 당신을요.”
“…”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형진이 입을 다물자, 포트니아 테론은 다시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다희가 저에게 와서 자랑하더군요. 아빠가 준 선물이라면서.”
“크흠. 그, 그랬습니까.”
다희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형진은 살짝 당황해 버렸다. 아무리 비와 낭만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철모르는 아이한테 그런 엄청난 걸 줘버렸으니 단순히 팔불출이구나 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종족의 문제는 다희에게 그것을 주었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아요.”
형진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다르지 않다고요?”
그 반응을 보며 포트니아 테론은 웃었다.
“왜요. 귀엽고 영리한 딸과 그들을 비교하는 것이 기분 나쁘기라도 하신가요?”
정곡을 찔려버린 형진은 화들짝 놀라며 딴청을 부렸다.
“그, 그렇다기 보다는…”
시선을 회피하는 형진의 모습에 포트니아 테론은 다시금 입을 가리고 작게 웃다가 말을 이었다.
“따지고 보면 신에게 있어 다른 모든 종족들도 결국은 자식과 같아요. 밤의 신께서는 직접 낳은 자식들이 있기에 그 둘을 동일시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 군요.”
하기야 지금 형진이 그녀를 장모님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포트니아 테론은 단순히 신들에게만 어머니로서 불릴 존재는 아니다.
“자, 그럼 이번에는 제가 물어볼게요. 밤의 신께서는 다희에게 그것을 줄 때, 분명히 여러 가지 걱정을 하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 아이에게 주기로 결정한 이유가 뭔가요.”
“그건…”
형진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단순히 내 아이라서 내지는 다희니까 같은 대답을 하기엔 뭔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모자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트니아 테론은 그런 형진에게 푸근한 시선을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해 밤의 신께서 가장 먼저 떠올린 대답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싶군요.”
“…”
“다희니까. 나의 아이니까. 이곳에서 모두와 함께 자라난 아이니까. 나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이 그 아이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고 있으니까.”
형진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달리 돌려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녀의 말이 맞았다.
“어쩌면 밤의 신께서 누에들의 문제를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그래서일 겁니다. 그들은 충분히 완벽한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로 인해 다른 종족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자신 안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이제는 그것이 완전히 굳어져 버린 것이지요.”
포트니아 테론은 멀리서 서로 뒤엉켜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말했다.
“그에 비해, 지금 저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신과 환수와 기타 다른 모든 종족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지요. 다희 역시 그건 마찬가지이고,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어떤 점에서 다르고 그러한 다른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어요. 그 아이를 그렇게 키워낸 것은 바로 밤의 신이고, 스스로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은 그런 엄청난 것을 맡기면서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거에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저 내 아이니까라는 대답이 되겠지만, 그건 결국 당신 자신은 물론이고 당신의 아이가 지금까지 겪어온 그 모든 시간에 대한 신뢰를 축약한 대답이 되는 셈이죠.”
“뭔가… 거창하군요. 어쩐지 제 얘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후후후.”
형진은 어쩐지 쑥스러운 기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손위의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칭찬을 받아본 적은 그의 기억 안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다.
“얘기가 좀 장황해지긴 했지만, 결국 그 누에라는 종족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을 이끌어줄 신에게서 떨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종족들과 어울릴 방법을 배우지 못했죠.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어울리는 방법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다른 종족을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치면 되는 겁니까.”
“맞아요.”
“하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쉽진 않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랍니다.”
포트니아 테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젠가 그들은 자신들의 거취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때가 올 거에요. 그렇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과 처지로 인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는 시점이 왔을 때, 그런 그들을 저에게 보내 주세요. 완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들을 곁에 두시려는 겁니까?”
“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제 일을 돕게 할 생각입니다.”
“일이라면…. 아이들을 돌보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물론이죠. 지금 제가 달리 하는 일이 그것 외에 더 있나요?”
“…”
형진은 조금 불안한 기분이 되었다. 개체의 생명을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그들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니 당연히 그런 기분이 될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해가 간다거나, 아이들에게 그들의 생각이 전해진다거나 하는 식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형진의 생각을 눈치 챘는지 포트니아 테론은 다시 말했다.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들이에요. 그래서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어쩔 때는 굉장히 단순해 보이다가도, 또 어떨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이기도 하니까요. 항상 세심하게 살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보모가 되기 어렵답니다.”
포트니아 테론은 그렇게 말한 뒤, 어느새 비어 있던 형진의 찻잔을 다시 채워주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동족의 생각을 이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그들에게 있어서, 이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 거에요. 소통에 능한 이들조차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이 과정을 통과해야할 당위성을 적절하게 부여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과연. 그런 얘기로군요.”
형진은 가만히 그녀가 따라준 차를 입 안에 머금은 채 생각에 잠겼고,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포트니아 테론이 말한 때가 온 셈이다.
솔직히 말해서 다희와 이들을 동일시 한다는 건 지금의 형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주신이란 결국 신들의 대표를 넘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은 존재. 그러한 역할을 맡은 이상 언제고 스스로가 짊어진 그러한 책임을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결국 이것은 바꿔 말하면 형진에게도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할 때가 왔음을 의미하는 일이다.
“두려운가.”
“…”
누에 공주는 가늘게 떨며 대답하지 못했다. 형진은 그런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했다.
“명을 내리겠다.”
“말씀해 주십시오. 따르겠습니다.”
“몇 명 정도… 음, 대충 한 열 명이면 되겠지. 인간의 크기를 갖춘 이를 열 명 정도 뽑아서 왕성으로 보내라.”
“네? 그게 무슨…”
뜬금없는 형진의 말에 누에 공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보다가 그런 자신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 얼른 고개를 숙였다.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고, 맡길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잠자코 시킨 대로 따르도록. 만약 그들이 내 기대에 부응한다면, 더 이상 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즉시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누에 공주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그의 명을 수락했고, 그 내용을 동족들에게 전했다.
당연히 누에들은 그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하기 시작했다. 당장 형진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왕성으로 열 명을 보내란 것은 무슨 의미일까.”
“뭔가 그들을 대상으로 시험 같은 것을 하려는 건 아닐까.”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단서가 뭔가 의미심장한 듯 보인다.”
“혹시 그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삼으려는 건가.”
“그런 거라면 굳이 왕성으로 보내라 할 이유가 없다.”
“의문이다.”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수락했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단 명을 따르도록 하자.”
물론 의견을 교환한다고 해서 그들이 어떤 해답에 도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그들은 만약의 사태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인간과 흡사한 외모를 지닌 누에 공주들을 뽑아 왕성으로 보냈다.
긴장하며 왕성에 도착한 누에 공주들은 곧바로 포트니아 테론에게 보내졌다.
“잘 왔어요.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지내게 될 포트니아 테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오기는 왔는데 밤의 신은 보이지 않고 다른 이가 그들을 맞이하자 누에 공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포트니아 테론은 그런 그녀들에게 문득 꾸러미 하나씩을 건네주었다.
“누가 그러던데, 이 왕성에서 일하려면 이 옷을 입는 것이 관례라더군요. 일단 각자 숙소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오세요.”
“네.”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메이드복이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때문에 누에 공주들이 메이드복을 입고 나오자 그것을 본 식구들은 바로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메이드복이잖아. 설마?”
“으음… 심각한데.”
“오빠의 취향이 다양한 건 알았지만, 설마 저런 외모의 종족에게도 손을 뻗치기 시작한 건가?”
“곤란하구만.”
누에 공주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의미심장한 표정과 시선에 곤혹스러워 하면서 다시 포트니아 테론 앞에 도열했다.
“아주 잘 어울리네요. 그럼 바로 일을 시작하죠. 우선… 이걸 좀 세탁해 주겠어요?”
“…”
누에 공주들이 바라보니, 그곳에는 산처럼 쌓여있는 기저귀들이 놓여 있었다.
환수들의 아이들을 받아들인 것을 시작으로 왕성에는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한때 왕족들이 머물며 휴식을 취했던 아름다운 별궁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아이들이 점령해 버린지 오래. 원래부터도 아이 돌보는 일에 솔선하던 희망과 생명의 사제 출신인 유아가 다른 세계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고아나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을 불러 모아 왕성에서 키우기 시작한 탓에 형진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이런 모습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록 양산형에 가까운 공주라고는 해도, 기회가 되면 하나의 둥지를 이끌어갈 여왕이 될 누에 공주들이다. 필요하다면 이런 저런 일도 기꺼이 맡을 수 있지만, 밤의 신으로부터 종족의 명운을 건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될 거란 생각으로 왕성을 찾아온 그녀들로서는 눈앞에 산처럼 쌓여있는 똥기저귀의 모습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트니아 테론은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요?”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네는 그녀의 모습에, 누에 공주들은 흠칫 놀라며 얼른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건 설마 벌인가. 누에 공주들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서둘러 일을 시작하면서도, 미처 그것이 자신들에게 찾아온 시련의 서막에 불과하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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