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77
00976 [성지순례] =========================
“안녕하세요!”
“오, 안녕. 오늘은 일찍 나왔네!”
“네! 하핫!”
솔직히 말해서, 아유무가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느냐고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다. 그녀는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들이 일하고 있는 이곳에서 발휘할 만한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천국에서 일하고 있는 신들이 그녀를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다루는 것은, 오직 그녀만이 허세와 망상의 인성질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 나 엿 먹이려고 작정한 거냐?”
“아, 아닙니다!”
“아니라고? 아닌데 일을 이따위로 해? 이런 식으로 일 해놓고 아니라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으악!”
또 시작이다. 모처럼 아유무의 미소를 보며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가 싶었던 잡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무실 안쪽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에 움찔하며 얼른 목을 움츠린 채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간다. 괜히 근처에서 얼쩡댔다가 휘말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휴.”
아유무는 그런 잡신들의 모습과, 여전히 안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 소리에 작게 한숨을 쉬고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듯이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성큼성큼 사무실로 향했다.
“조용히 좀… 헉!”
“헛! 피, 피해!”
하지만 문을 벌컥 열고 무언가 말하려던 그녀는 그 순간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놀란 건 허세와 망상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누가 기별도 없이 문을 여나 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던졌는데, 하필 그것이 아유무일 줄이야.
하지만 불행히도 아유무는 무언가를 피한다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다. 만약의 사고를 막기 위해 보호의 성물 같은 걸 얻어다 착용시킨 것이 그녀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흔히 생각되어지는 추종자들의 평균적인 전투 능력과는 전혀 별개의, 사실상 그냥 일반인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아니, 일반인 중에서도 반사 신경이 좋은 사람이라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물건 정도는 몸을 숙이든 구르든 해서 피할 수라도 있었겠지만, 그녀에게는 그런 식의 반사신경조차 갖추어져 있지 못했다. 때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것 정도가 고작이다.
곧바로 눈앞에서 불똥이 번쩍 튈 거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기다렸지만, 묘하게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혹시 운 좋게 빗나가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뭔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나야 정상인데.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슬며시 눈을 뜬 아유무의 눈앞에 보인 것은 누군가의 예쁘고 하얀 손이 자신의 눈앞에서 묵직한 명패를 한 손으로 잡아챈 모습이었다.
“…”
잠시 그 예쁜 손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아유무는 천천히 손목으로부터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선을 따라 시선을 거슬러 올라 가다가, 단아한 모습의 흑발을 가지런히 흘러내린 미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규설님?”
“반가워요. 아유무님. 오늘도 이곳은 시끌벅적하군요.”
“그, 그렇죠. 아하하…”
어쩐지 조금 반해 버린 것 같아. 아유무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차분하게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규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와 함께 서 있는 힐리에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혹시 형진이 온 건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 분만 오신 거에요?”
“네. 아유무님에게 용건이 있어서.”
“저요?”
사무실 입구에서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동안, 안에서 잡신들을 세워놓고 닦달하던 허세와 망상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보호의 성물을 지니고 있으니 큰일이야 있었겠나 싶으면서도. 아유무를 향해 커다란 명패가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 주저앉았던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가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 그 전에 먼저 인사를. 정말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별 말씀을요.”
아유무는 규설을 향해 하트가 뿅뿅 나오는 듯한 시선을 던지다가, 그제서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사무실 안쪽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는 허세와 망상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
말없이 째려보는 그녀의 시선에 허세와 망상은 움찔하며 눈을 피했다. 물론 아유무가 째려본다고 해서 그녀의 눈에서 빔이 나가서 공격한다거나 하는 식의 일은 없지만, 그 눈빛을 받는 것만으로도 허세와 망상은 어쩐지 가슴 속이 쿡쿡 쑤시는 듯한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일단 나가 계세요. 얘기는, 나중에 하죠. 일단 비서 언니들이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 그럴까. 하하하하.”
허세와 망상은 아유무의 말에 그렇게 괜히 웃어보이고는 눈치를 살피고 있는 잡신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슬금슬금 밖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다. 나름대로 신과 추종자의 관계는 지키려 노력하는 그들이었지만, 오늘은 잘못한 게 있으니 알아서 길 수 밖에 없다.
아유무에게 쩔쩔 매면서 도망치듯 사무실에서 나가는 허세와 망상의 모습에, 규설과 힐리에타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생각대로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리 앉으세요. 차는 어떤 걸로 하실래요?”
“간단한 걸로 주세요.”
“나도.”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사실 아유무에게 있어 규설이나 힐리에타는 동경의 대상이라 할 수 있었다. 제랄딘이나 요안나의 비서 모습도 멋졌지만, 그 뒤를 이은 규설이나 힐리에타 역시 프로페셔널한 비서를 꿈꾸는 아유무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허둥대면서 차를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에 규설과 힐리에타는 어쩐지 초보 비서 시절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잠시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따끈하게 우려낸 차 한 잔이 각자의 앞에 놓여지자 그제서야 규설은 천천히 용건을 말했다.
“실은, 아유무님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어요.”
“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릴게요. 두 분은 제 생명의 은인이신 걸요!”
“…”
생명의 은인씩이나. 하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은혜를 느끼고 있는데 그걸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 규설은 잔잔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실은 허세와 망상님께서 이런 걸 좀 만들어 주십사 하고…”
간단한 도면이 건네지자 아유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쉽게도 그녀에게는 도면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이나 지식이 없었다. 그림 상으로 봐서 뭔가 반지 비슷한 건가 싶은 생각을 떠올리는 정도가 고작이다.
“비밀스러운 용도의 물건이니, 기능 등에 대해서는 기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굳이 아유무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를 아시겠죠?”
“아하, 그런 거군요.”
구체적으로 이게 뭔지는 몰라도 비밀스러운 제작 의뢰라는 사실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아유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규설과 힐리에타는 그 모습을 보고 아유무가 바로 자신들의 부탁을 수락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 일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이 소녀는 그들의 예상과는 다른 말을 꺼냈다.
“당연히 두 분의 부탁이니 들어드려야죠. 그런데…”
“그런데?”
“대신 제 부탁도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 되나요?”
“부탁… 이요?”
일이 잘 되어 간다고 생각하고 있던 둘의 시선에 살짝 긴장감이 감돌았다. 비록 철부지 소녀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상대는 뭐라 해도 저 허세와 망상마저 쥐고 흔드는 인간. 예상 외로 허를 찌르는 조건이 갑자기 튀어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런 둘을 향해 아유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저랑 같이 쇼핑가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쇼핑이라니.
“쇼핑… 이요?”
“네. 물건 사러 가는 거요. 물론 이곳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이 많은데, 우리 바보 아저씨는 혼자서는 위험하다면서 못 가게 하거든요. 그렇다고 바쁜 사람 데리고 다니기도 그렇고.”
“…”
딱히 외롭다거나 그런 식의 감정은 전해져 오지 않는다. 단지, 또래도 없고 그렇다고 친하게 지낼 만한 다른 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조금 지루해하는 느낌이랄까. 하기야 이곳에 바글거리는 잡신들도 그렇고, 그녀가 추종자로 모시는 허세와 망상도 그렇고, 이 소녀의 감성을 이해해줄 만한 친구로는 이래저래 부적절한 대상이기는 하다.
그런 와중에 동경하는 멋진 비서 언니들이 자신을 찾아와 뭔가 부탁을 건네자, 아유무는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기회라고 여긴 모양이다. 확실히 그녀들이라면 형식적이긴 해도 형진의 호위마저 맡고 있는 이들이니, 최소한 위험하다고 허세와 망상이 반대할 이유도 없다.
규설과 힐리에타는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듯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향해 열띤 눈빛을 보내는 이 소녀의 모습에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자신도 인간들의 세상에 아주 익숙한 편은 아니지만, 형진을 따라서 이곳 저곳 다녀본 경험은 있으니 이 철부지 소녀의 쇼핑을 옆에서 지켜보는 정도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알았어요. 그 정도라면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죠.”
“그럼, 허락해 주시는 거에요?”
“네.”
“와아아!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얼른 가요.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지, 지금요?”
“네!”
“…”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기분이 바로 이런 걸까. 하지만 괜히 시간을 끄느니 차라리 지금 당장 해결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녀들로서도 업무라든가 여러 가지 일이 있으니, 마침 짬을 내서 나온 틈에 전부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알았어요. 그럼 어디로 가면 되죠?”
할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규설이 묻자, 아유무는 어쩐지 눈에서 꽃이 만발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일본 출신인 건 아시죠?”
“네. 지구에 있는 국가죠.”
“그곳의 수도인 도쿄에서도 오다이바라는 곳이 있어요. 아시나요?”
“잠시만요.”
규설과 힐리에타는 바로 정보를 검색해보고는 대략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딱히 분쟁 지역도 아니고, 나름 관광지로 알려진 곳이니 별 문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확인했습니다. 지금 바로 가면 되나요?”
“네!”
그런 식으로 아유무에게 이끌린 규설과 힐리에타는, 마침내 이 소녀가 목적지로 삼고 있던 장소에 도착하고 말았다.
삼각뿔 네 개를 뒤집어 높은 듯한 기이한 형태의 건축물, 그리고 그 앞에 운집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열기.
그녀들은 미처 몰랐다.
아유무가 자신들을 이끈 건물이, 이른바 오타쿠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라는 사실을 그녀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그렇게 그녀들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