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80
00979 [실사] =========================
형진은 물론이고, 그녀를 수행하는 두 비서, 그리고 실사단을 맡게 된 즈라탈마저도 영토 분쟁은 뒷전인 상황. 그러나 실제로 그곳에 살고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안카로 사의 문제를 안카로 사의 사람들은 배제한 채 논의하다니요!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도대체 행정청은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엇을 한 것입니까!”
두 개의 강이 만나는 삼각주에 만들어진 도시 안카로 사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두 개의 강으로 통하는 수운의 종착지로서, 두 나라의 상업과 경제의 중심지로서 발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느 한 나라가 독점하게 되면 그 자체로 다른 나라의 경제마저 손에 쥘 수 있는 특성으로 인해 안카로 사는 이전부터 많은 전쟁을 겪어야만 했고, 어느 틈엔가 반쯤은 독립적인 자치지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안카로 사라는 도시를 두고 다투는 두 도시 뿐만이 아니라, 도시에 살고 있는 자들의 이권에도 영향을 미쳐서 최근에는 안카로 사를 영세중립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갑작스럽게 나타난 신이라는 존재에게 안카로 사 문제가 맡겨진다는 식의 첩보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인접한 양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에 들인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영향력을 행사할 주체가 하나 더 늘어난 정도로 인식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문제다. 기존에 안카로 사 문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이번에 새로 등장한 신은 기존에 안카로 사가 즐겨 사용하던 방법, 이를테면 돈이나 다른 여러 가지 수단을 쓸 수조차 없다.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를 상대로 뇌물을 바치거나 로비를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결국 첩보를 접한 평의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던 행정청의 무능을 질타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런 식으로 난리를 친다고 해서 당장 뭔가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워야 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완전히… 한 방 먹었습니다.”
혼이 쏙 빠지도록 평의회 의원들에게 질타를 받은 행정청의 직원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단순히 욕을 먹고 책임을 진다고 해결될 문제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다른 첩보는 들어온 것이 없나?”
행정청장이 머리를 감싸쥔 채 그렇게 물었지만, 주위에 늘어선 직원들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기존에 연결되어 있는 자들에게 급히 연락을 취해봤지만, 모두 기이할 정도로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안카로 사가 미묘한 위치에서 지금껏 자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두 가지 힘은 바로 자금력과 외교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안카로 사를 지탱하던 이 두 가지 힘은 아무런 효과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자칫하면 지금껏 쌓아올렸던 기반이 한순간 모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안카로 사처럼 대외적인 기반이 취약한 곳일수록 정치나 외교 분야에서의 큰 변동이 내부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찾아야 합니다. 신이라는 존재와 연결된 누군가가 분명히 이곳을 찾아왔을 겁니다. 그를 찾아야만 합니다.”
“무슨 수로?”
“신이라는 존재가 어떤 식으로 이번 문제를 해결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최소한 이곳의 실정을 확인하는 절차 정도는 거쳐 갈 것입니다.”
“실사를 할 것이라는 얘긴가.”
“행정청을 찾아와 서류 같은 걸 요구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만, 그렇지 않고 비밀스럽게 조사를 한다 해도 어쨌든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음…”
물론 그건 희망사항이다. 애시당초 신이라는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상업을 경제의 기반으로 삼는 곳인 만큼, 안카로 사는 각국의 정보를 모으는 데 매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갑자기 출현한 신의 존재라든가, 그런 신에게 갑작스럽게 안카로 사의 문제를 맡긴 양국의 움직임 같은 걸 재빨리 알아낸 것은 바로 그러한 정보력의 도움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정보력으로도 신 그 자체에 대한 것은 전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일단… 최근 시에 들어온 인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도록. 어쨌든 무언가를 조사한다면 드러나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곧바로 몇몇 직원들이 급히 어디론가 움직이는 와중에, 문득 곰곰이 뭔가 생각에 잠겨 있던 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장파 쪽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과격주의자들 말인가.”
당연한 얘기지만 이 작은 도시 안에서도 저마다 의견이 다른 자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이대로 양국의 영향력 하에서 안전하게 발전을 도모하자는 자들과 중립적 지위를 획득하여 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자는 이들이었다. 무장파는 독립을 추구하는 자들 중에서도 독자적인 군사력을 기반으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과격주의자들이다.
단순히 군사력을 갖추자는 것 때문에 과격파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독립의 수단으로서 대외적인 강경 투쟁을 주장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 같은 민감한 시기에 자칫 신과 관련된 자들에게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멍청한 자들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동향을 철저히 살피도록.”
“알겠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막상 도시의 운명을 쥔 절대자는 아리따운 두 아내와 함께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 해봐.”
“아…”
“어때. 맛있어?”
“네!”
형진은 지금 도시락을 싸고 있는 중이다. 즈라탈은 셋이서 외부의 다른 방해 없이 틀어박혀서 아이 만들기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해 주었지만, 단순히 틀어박힐 곳을 찾는 것이었다면 이전에 만들어둔 별궁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들어가면 그 뿐이다.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형진과 규설, 그리고 힐리에타는 직접 재료를 다듬고 그것으로 요리를 만들어 서로에게 먹여주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 과정 중에 약간의 농밀한 스킨십이 오고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밤을 함께 보낸 일은 많아도 이렇게 부부임을 실감할 수 있는 일을 해본 적이 별로 없는 규설과 힐리에타로서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꿈결을 걷는 기분이 되어 버린다.
“자, 준비 끝. 그럼 가볼까.”
능청스럽게 팔을 내미는 형진의 모습에 규설과 힐리에타는 까르르 웃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
그들의 목적지는 항구가 잘 내려다보이는 제방 위다. 바쁘게 들락거리는 수많은 선박과 바다의 정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소풍 장소다.
제방 위에는 일찍부터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깔고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 아직 초여름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곳의 문화가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꽤 근사한 해변이 펼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속으로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깝네. 모처럼의 멋진 해변인데, 그냥 구경만 하고 마는 건가.”
“왜요. 이곳 사람들의 수영복 차림이라도 구경하고 싶으신 거에요?”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조금쯤은 비서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아내로서의 위치를 즐기기 시작한 힐리에타의 장난기 어린 물음에 형진은 조금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고 하면 역시 거짓말이겠지.”
“너무해요! 이렇게 예쁜 아내가 둘이나 옆에 있는데!”
힐리에타가 토라진 표정을 짓자, 형진과 규설은 그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혹시 수영복 준비해 왔어?”
“일단은요.”
“오오, 그거 기대되는데. 있다가 돌아가면 보여줄 거야?”
“그, 그게…”
살짝 토라진 표정을 짓고 있던 힐리에타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망설이자, 형진은 가슴을 펴고 다시 말했다.
“사실은 나도 꽤 멋진 수영복을 준비해 왔거든. 힐리에타가 보여주면 나도 보여주도록 하지. 어때? 꽤 대단하다고. 아마 보면 놀랄 걸.”
“푸핫! 아우, 못 말려. 진짜!”
해변을 돌아다니는 수영복 미녀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쉴 새 없이 항구를 드나드는 커다란 범선들과 그것에 감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응? 뭐가?] [그거… 할 거야?] [그, 그거?] […] […]형진 모르게 은밀하게 메시지를 주고받던 그녀들이지만, 그거라는 말이 나오자 일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유무가 선물한 동인지에는 그녀들이 지금껏 상상조차 하지 못한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물론 아유무도 그 내용을 다 알고서 그런 것을 선물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녀 역시 상경한지 얼마 되지 않아 허세와 망상이라는 신과 얽히게 된 상태고, 마법 소녀 같은 것에 관심이 많기는 했어도 막상 동인계에 발을 붙일 만한 기회는 얻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흘러 거짓된 천국에서 신들의 일을 돕다가, 규설과 힐리에타의 도움으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동인계에 접하게 된 그녀가 각 서클들이 어떤 작품을 만드는지 다 꿰고 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대충 그림이 예쁘다 싶은 건 규설이나 힐리에타의 도움을 받아 다 사 모으긴 했다. 하지만 막상 사놓고 보니 성인 등급을 뜻하는 R-18 동인지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아유무 본인도 에로 동인지에 흥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괜히 그런 걸 사가지고 돌아갔다가 허세와 망상에게 발견되면 그것도 큰일이라 예쁘고 매력적인 언니들에게 양보한 것이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규설과 힐리에타로서는 그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장을 돌아다니긴 했어도, 설마 이런 물건을 이렇게 공공연하게 사고 파는 행사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탓이다.
개중에는 그나마 부담이 적은 내용도 있었지만, 몇몇 동인지들은 예쁜 그림체와는 달리 상당히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규설과 힐리에타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이른바, 48수라 불리는 일본의 전통 체위를 귀여운 캐릭터들을 이용해 설명한 일종의 해설집이었다.
[그게… 실제로 가능하기는 한 거야?] [가능하니까 그렇게 설명을 해놓은 거 아닐까.]그녀들 역시 형진과 부부로서의 경험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라 어느 정도 기본적인 체위 정도는 숙지하고 있었지만, 그림책에 해설된 체위는 그녀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실로 문화적 충격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고, 실제로도 그녀들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져 버리는 충격을 받았다.
일단 무언가를 배우게 되면 써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그냥 해보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애초에 48수에 등장하는 체위 대부분은 남자나 여자 가운데 어느 한쪽이 해보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니 더욱 그렇다.
잠시 고민했던 그녀들이지만, 이건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있다가 밤에 상황을 봐서…] [그, 그래. 상황을 봐서.]형진은 귀엽고 아리따운 두 아내가 속으로 그런 대화를 주고받는 중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느긋하게 한가로운 항구의 정취를 즐겼다.
그렇게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틈엔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등불을 매달고 항구를 빠져 나가는 배의 숫자도 줄어들고, 언덕 위에 나와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짐을 챙겨서 돌아가기 시작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이만 돌아갈까.”
“네…”
어쩐지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운 느낌. 형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조금은 귀엽게 느껴지는 둘의 그런 반응에 피식 웃으며 천천히 도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세, 세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