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1695)
1701. 헌터 VS 뱀파이어
원작과 달라졌다.
원작 내용과 달라질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빠르게 원작과 달라질 줄은 몰랐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주서현이다. 주서현이 원작 시작 1년 전에 이 세계에 나타나면서 뱀파이어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본래라면 더 은밀하게 움직여야 할 뱀파이어들이 대놓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작의 주인공인 최상우가 활약하고 있긴 하지만, 주서현 정도는 아니지.’
주서현의 업적은 회사에서 거의 전설로 취급되고 있었다. 최상우가 뱀파이어 로드를 죽이지 않는 한 주서현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회사의 승승장구에 위기감을 느낀 뱀파이어들이 총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지부도 그에 대비하여 지방에 있는 직원들까지 모두 서울로 소집했다. 문제는 뱀파이어들의 습격 날짜가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원작과 내용이 틀어져서 뱀파이어의 습격 날짜가 정확히 언제인지 나도 모른다.’
이 상황을 가장 빨리 해결하는 방법은 뱀파이어 로드를 죽이는 거다. 뱀파이어 로드를 죽이면 자연히 퀘스트도 끝난다.
‘그 새끼는 지금도 사회 고위직을 뱀파이어로 만들고 있겠지.’
뱀파이어의 음모.
별거 없다.
사회 고위직을 모두 뱀파이어로 만들어 대한민국을 뱀파이어의 나라로 만들려는 거다. 물론 대한민국이 바로 뱀파이어의 나라가 되는 건 아니다. 놈이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거다. 놈들이라고 해서 수십만 명을 단숨에 뱀파이어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음. 내가 백날 고민해봐야 답은 안 나올 것 같군.’
뱀파이어 놈들은 결국 회사를 습격할 것이다. 그때 뱀파이어 로드도 모습을 드러낼 테니 기다리고 있기로 한다.
‘회사 직원이 얼마나 죽든 내 알 바 아니니까. 주서현만 무사하면 돼.’
우우우웅.
스마트폰이 한 차례 진동한다. 메시지가 온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회사 앱을 통해 온 메시지군. 발신자는 정보부인가.’
업무 명령은 아니다. 업무 명령은 정보부가 아니라 특수부장의 이름으로 온다.
‘내용은 협조 요청이군.’
발신자가 정보부란 걸 보자마자 구린내가 났다.
어제 나는 사무실에서 책상 아래로 들어간 주서현의 펠라를 받았다. 감시카메라에 그걸 과시했다. 주서현에게 마음을 품고 있는 듯한 곽수혁 과장이니 보고 빡쳤을 것이다.
‘설마 바로 다음 날에 수작을 부릴지는 몰랐는데.’
나도 아직 곽수혁을 어떻게 죽일지 정하지 못했다.
‘어지간히도 빡쳤나 보군.’
내용을 확인한다. 정보부 직원과 함께 뱀파이어 무리가 숨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달동네로 가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내 주된 업무는 정보부 직원의 보호다.
‘업무 내용 자체는 별로 이상하지 않군.’
전투부나 특수부 소속의 직원이 정보부 직원의 호위 업무를 맡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 업무에 동원되는 건 나 혼자라는 거지.’
업무를 수락하고 달동네에 가면 100% 사건이 터질 것이다. 그게 어떤 사건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맨 아래에 보면 특수부장의 허가 사인이 적혀 있다. 이미 물밑 작업은 다 끝난 거야.’
특수부장 강명숙.
이 할망구는 원작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할망구는 뱀파이어의 절멸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곽수혁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
‘아닐 수도 있지. 나를 쳐내는 건 특수부의 전력이 떨어뜨리는 짓이니까. 무엇보다 주서현과의 관계가 틀어져.’
하지만 곽수혁은 재벌 3세다. 그 어마어마한 재력에 끌렸을 수도 있다.
‘…음. 그냥 지금 곽수혁을 죽일까? 아니면 일단 업무를 수행하고 증거를 모을까.’
지금 곽수혁은 회사에 있었다. 곽수혁을 죽이려면 회사를 공격해야 한다.
단독으로 회사와 전투를 벌일 경우를 상정한다. 폭탄을 적절히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엔 회사의 전력이 급감한다. 곧 있을 뱀파이어와의 대규모 전투에서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회사에 있는 곽수혁을 몰래 죽이는 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군.’
업무를 수행하기로 한다.
“안녕하세요! 정보부 3과의 강수미입니다!”
메시지에 명시된 장소에서 함께 일할 정보부 직원을 만났다.
150cm의 작은 키와 작은 체구의 여자였다. 헤어 스타일은 숏단발이다. 머리카락 끝이 턱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인상은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귀여운 타입이다. 체구가 작고 얼굴도 굉장히 동안이라 교복을 입혀 놓으면 중학생으로 보일 것 같았다.
정보원으로서는 인재일 것이다. 뱀파이어라도 아이에겐 경계를 어느 정도 푸니까. 아이로 변장하고 정보를 캐내는 거겠지.
‘그것보다는 소속이 3과다. 곽수혁 직속의 직원. 아마 곽수혁에게서 어떤 지시를 받았겠지.’
남자였다면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서 고문이라도 할 계획도 있었지만, 폐기한다. 강수미는 내 취향의 미녀는 아니지만, 미모가 꽤 뛰어난 편이었다.
“특수부 2과의 성유진입니다. 정보부 직원이랑 같이 일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3과면 곽수혁 과장님이 있는 곳 아닙니까?”
“맞아요. 곽 과장님 밑에서 일하죠. 아, 유진 씨는 주서현 대리님의 파트너시죠? 입사한 지는 한 달이 넘었고요.”
“예. 신입이죠.”
“저도 신입이에요.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됐어요. 훈련기간까지 합치면 1년이 넘지만요.”
“그렇게나 오래 훈련을 받습니까?”
“전투부나 특수부와 달리 정보부는 반쯤 스파이라서요. 배워야 할 게 엄청 많아요.”
“아. 그렇군요.”
“저기. 나이도 같은 거로 알고 있는데 말을 편하게 하지 않을래요? 같이 일해야 하니 편해지면 좋잖아요.”
“그럴까.”
강수미가 해맑게 웃는다.
경계심을 풀기 위한 미소. 즉, 연기다.
나도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응했다.
“업무 지역으로 가기 전에 복장부터 바꾸자.”
“복장을?”
“응. 난 학생으로 보이도록 교복을 입을게. 넌 평상복을 입어. 컨셉은 남매로 하자. 아, 너무 좋은 옷은 입지 마. 싸구려 옷이 좋아.”
“난 싸구려 옷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우리가 갈 곳은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곳이야. 명품을 입으면 들어가자마자 경계만 살걸? 너무 새 옷도 좋지 않은데… 불안해서 안 되겠다. 내가 옷 골라줄게.”
“인터넷으로 주문하려고?”
“옷 구하는데 주문은 무슨. 중고 거래 앱으로 사는 게 훨씬 빨라. 특히 중고는 사용감까지 있어서 더 좋아. 운이 좋은 괜찮은 교복도 구할 수 있다구?”
강수미가 자랑하듯 말한다. 직접 스마트폰을 보여줬는데 싼 가격에 많은 물건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내가 시대에 뒤처졌는지 고민했다.
결론은 뒤처진 게 아니다. 나는 애초에 중고 물건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돈이 없는 건 아니니까.’
돈 나올 구석이 많았다. 옷이든 뭐든 버릴 건 막 버린다. 중고로 판매? 그럴 시간에 개인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이득이다.
“좋아. 구했어. 가자.”
“벌써?”
“웃돈을 준다고 하면 대부분 빨리 팔아. 돈은 네가 내야 해?”
강수미를 나를 끌고 차로 갔다. 의외로 그녀는 운전을 제법 잘했다.
그렇게 1시간.
나는 대학생처럼 옷을 입었고, 강수미는 근처 중학교 교복을 입었다. 우리는 차를 달동네 근처에 숨겨 놓고 일부러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의심받지 않으려면 시작부터 철저하게 움직여야 해.”
“지금 움직이는 것도 그 때문이야?”
“맞아. 해가 지기 전까지 2시간도 안 남았지. 부지런한 뱀파이어는 지금쯤 일어날 시간이야.”
“밤이 되면 뱀파이어의 능력이 강해지는 건 알지? 무장도 하지 않고 가는 건 위험할 텐데.”
지금 나는 나이프 한 자루밖에 없었다. 권총을 챙기기에는 너무 컸다. 옷에 숨겨놔도 볼록 튀어나와서 바로 들킬 것이다.
‘여차할 땐 인벤토리에서 꺼내더라도… 강수미나 뱀파이어들에겐 안 보여주는 편이 낫지.’
강수미는 문제없다는 듯이 자기 가슴팍을 두들겼다.
“날 믿어. 뱀파이어를 자극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뱀파이어도 함부로 사람을 습격하진 않아. 우린 뱀파이어를 확인하고 도청기만 설치할 거야. 전투는 계획에 없어.”
“그래. 전문가의 말을 믿어야겠지.”
“뱀파이어를 확인하는 법은 알지?”
“그림자. 뱀파이어는 그림자가 없으니까.”
“맞아. 하지만 대충 확인하면 안 돼. 뱀파이어가 입고 있는 옷에는 그림자가 생기거든. 옷이 가리지 못하는 손과 머리를 잘 봐야 해. 모자를 쓰고 손까지 가렸다면 90% 이상은 뱀파이어야.”
“사람일 수도 있잖아.”
“지금은 겨울이 아니야. 그렇게 몸을 꽁꽁 싸맬 리가 없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건 이 거울이지.”
강수미는 주머니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냈다. 앞에는 평범한 거울이고 뒤는 금속으로 되어 있다.
“마녀의 거울. 이 거울에는 진짜 모습만 비쳐.”
“…뱀파이어의 진체가 비친다는 건가. 이런 신기한 물건도 있었네.”
“정보부 직원에게만 제공되는 물건이야.”
거울에는 나와 강수미가 비친다. 특이한 것은 없었다. 평범한 거울처럼 보였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호기심은 거울이 아니라 다른 것에 향했다.
“이 거울의 이름이 마녀의 거울? 마녀가 만든 물건이야?”
“응. 맞아. 특수제작품. 회사에 협력하는 마녀가 만들고 있어. 마녀는 알지?”
“자세히는 몰라.”
“나도 몰라. 마녀는 극비 중에서도 극비거든. 곽 과장님도 모르는 눈치였어. 아마 부장쯤 되면 알지 않을까.”
“마녀라면 마법을 쓰겠네.”
“맞아. 하지만 마법은 한정되어 있고, 그 마법을 쓰는데도 조건이 있는 것 같아.”
강수미가 알고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마녀에 대해 몇 번 물었지만 그녀가 아는 건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달동네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강수미를 보니 연기가 자연스러웠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걸음이 경직되고 몸에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가길 마련인데, 강수미에겐 그런 연기의 흔적이 전혀 없다.
‘제대로 훈련받았군.’
믿음직스럽지 못한 외모와 달리 그녀는 철저한 프로였다. 그렇기에 더욱 그녀를 경계해야 한다.
1702. 헌터 VS 뱀파이어
“안녕하세요~”
강수미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며 달동네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들의 경우 그런 강수미를 흐뭇하게 지켜봤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친다. 물론 모두가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동네에서 못 보던 아이들이군. 이 동네에는 왜 왔는가?”
“저희 오빠가 다음달에 서울에서 지내게 돼서 집 보러 왔어요!”
그녀가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나는 멋쩍은 듯 웃으며 노인에게 정해진 대로 말했다.
“군대 때문에 휴학했다가 다음달에 다시 복학하려고 합니다.”
“군대에 갔었다고? 그런 것 치고는 머리카락이 길구먼.”
“전역하고 몇 달 놀았습니다.”
“으음. 그렇구먼. 여기 이 동네가 좀 어둡고 언덕이 많긴 해도 집값은 싸서 학교 다닐 동안 살기엔 그럭저럭 괜찮네. 잘 둘러보게.”
그는 경계심을 거둬들였다. 그가 떠나려고 한다. 강수미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물었다.
“네! 감사해요! 할아버지도 여기 사세요?!”
“저 건물 보이지? 저기 살아. 궁금한 게 있으면 와서 물어보게! 내가 이 동네에서 30년을 살았어! 30년!”
“네! 궁금한 게 있으면 꼭 물어볼게요!”
그가 다시 등을 돌려 떠난다. 강수미는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척 마녀의 거울로 노인의 등을 비추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노인이 비친다. 노인은 인간이었다.
‘뭐. 그럴 거라 생각 했지.’
뱀파이어는 노인의 모습을 하지 않는다. 영생을 살아가는 뱀파이어는 커먼급만 되어도 외모를 조정할 수 있다. 대부분 20~30대의 젊은 모습을 유지한다.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도 중년인이 정도가 전부다.
굳이 추레한 노인의 외모를 할 이유가 없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고서야.
‘이걸 강수미가 모를 리는 없을 테고…. 뭐, 업무이니 노인까지 전부 확인하는 게 맞지.’
강수미는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점점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찾았어.”
강수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을 보던 시선을 내렸다. 강수미는 벽 모서리에 붙어 지나가는 사람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저게 뱀파이어? 직장인으로 보이는데?”
“직접 한번 봐.”
그녀가 내게 마녀의 거울을 보여줬다. 거울 속의 대학생은 근육질 몸에 곤충 같은 더듬이를 가진 괴물이었다.
반사적으로 옷에 숨긴 나이프를 매만졌다.
‘진체와 의체의 차이가 큰 거로 보아 커먼급이군.’
1대1이면 무난하게 내가 이긴다. 찰나를 사용한다면 3초 내로 끝장낼 자신 있다.
“우린 싸우려는 게 아니야. 정보 수집이 목적인 거 잊지 않았지?”
“물론.”
나는 나이프에서 손을 뗐다. 내가 진짜 경계해야 하는 건 뱀파이어보다 강수미 쪽이다.
“미행하자. 저 뱀파이어의 거처를 알아내고 도청기를 설치해야 해. 지금 회사에 필요한 건 정보니까.”
“그렇지. 잠깐 잊었어.”
“조심히 날 따라와 섣부르게 미행하면 들킬 거야.”
강수미가 움직인다.
훈련받아서 그런지 미행 실력이 제법 뛰어나다.
‘인간보다 뛰어난 감각을 가진 뱀파이어의 뒤를 밟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혹시 매뉴얼 같은 거라도 있나?’
뱀파이어는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가 반지하 집으로 들어갔다. 뱀파이어라고 해서 돈에 쪼들리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다.
“도청기는 집에 들어가서 설치하게?”
“저 집에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야. 가면 바로 들키니까. 이럴 때는 장소를 기억하고… 입구 근처에 도청기를 설치하는 거야.”
“나중에 집안에 들어가서 설치하는 거야?”
“뱀파이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안에 도청기를 설치하고 나오면 돼. 그 작업을 할 때면 너도 깜짝 놀랄걸? 이게 심장이 막 뛰거든. 나도 20번 넘게 한 작업인데 할 때마다 심장이 엄청 뛴다니까.”
“얻을 정보가 없다고 판단되면?”
“전투부나 특수부 쪽으로 업무가 넘어가지. 이런 사람이 많은 동네는 보통 날잡고 전투부가 한 번에 들이닥쳐서 한 번에 소탕해.”
“전투부의 업무를 본 적 있어?”
“3번 정도 있어. 거의 전쟁하는 느낌이야. 장갑차는 기본에 헬리콥터까지 뜨더라.”
그녀는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사람이 지나가면 다른 주제로 돌린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마녀의 거울로 뱀파이어를 확인한다. 뱀파이어면 미행해서 거처를 파악하고 대충이나마 도청기를 설치한다.
“다음은 저기야.”
“저기 맞아?”
그녀가 가리킨 건 골목 구석에 있는 점집이었다. 간판도 없었다. 대문 앞에 ‘카산드라 점집’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아무리 점집이라도 그렇지. 이런 곳에서 장사를 하나?’
장사할 생각이 아예 없어 보인다.
“네가 봐도 수상하지? 점집을 표방하고 있으니 손님인 척 안으로 들어가 보자.”
강수미는 당당히 움직였다.
나는 긴장했다. 어쩌면 이게 곽수혁이 준비한 함정일지도 모른다.
초인종을 누른다. 삑 소리와 함께 인터폰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대문이 열렸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은 없고 짧은 통로가 있었다. 통로에는 화분들이 몇 개 장식되어 있었다.
‘뱀파이어들이 숨어 있는 걸로는 안 보이는군. 함정이 아닌 건가?’
무수한 함정을 당해본 나는 이게 함정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긴장을 풀지 않았다.
통로 끝에 도착했다. 강수미는 문고리를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모르니 준비해. 뱀파이어가 있을지도 몰라. 들어갈게.”
강수미가 문고리를 돌리며 문을 열었다.
짙은 향냄새가 났다.
방은 검은색 커튼을 치고 촛불로 불을 밝혔다. 촛불의 한계는 명확해서 기본적으로 방은 어두웠다. 딱 뱀파이어가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다.
“후후. 재밌는 분들이 오셨군요.”
방의 중심. 검은색 천으로 온몸을 가린 여자가 검은색 책상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커다란 수정구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여자에게서 드러난 부위는 두 눈밖에 없었다. 눈에 숨길 수 없는 주름이 보인다. 나이가 제법 있는 아줌마다.
“저는 카산드라라고 합니다. 자, 여기로 와서 앉으세요.”
“아, 네!”
강수미가 대답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여자가 지켜보고 있으니 대놓고 마녀의 거울을 꺼내 확인할 수 없었다. 만약, 여자가 뱀파이어라면 마녀의 거울을 보는 순간 바로 덮쳐올 테니까.
강수미와 함께 나란히 책상 앞에 앉았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제가 맞혀 보죠.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남매군요.”
“어, 어떻게 아셨나요?!”
강수미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야 당연하지. 연인이 데이트하면 이런 곳으로 오겠나? 절대 아니다. 게다가 지금 강수미는 중학생 교복까지 입고 있었다. 연인이라기보다는 오빠와 동생으로 보여야 정상이다. 강수미도 알고 있을 텐데도 호들갑을 떨었다.
“흐음. 아주 흥미로운 미래가 보이는군요….”
“정말요?! 어떤 미래인가요?!”
“20만 원입니다.”
여자가 딱 잘라 말했다.
20만 원.
잘은 모르지만, 점집치고는 꽤 비싼 가격이 아닌가 싶다. 따로 타로점을 보거나 부적을 써주는 것 같진 않고.
“오빠! 이분은 진짜 용하신 분이야! 우리가 남매인 걸 한 번에 알아봤어! 부탁해, 오빠!”
“어, 뭐. 그래. 네가 하고 싶다면야…. 근데 내가 지금 현금으로 20만 원이 없는데.”
“카드도 됩니다. 물론 계좌 이체도 되고요.”
“카드로 해주세요.”
카드로 긁었다. 사짜 냄새를 너무 대놓고 풀풀 풍기는 게 아닌가.
“대가를 받았습니다. 자, 자, 천기를 훔쳐봐 볼까요. 우선 여성분부터…. 구슬아, 구슬아, 내게 보여다오!”
구슬이 빛난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커다란 수정구슬을 손바닥으로 문지를 뿐이었다. 뭔가 어설프고 조잡했다.
“호오? 여성분은 진짜 나이가 아니군요.”
“네, 네?!”
강수미가 진심으로 당황했다. 갑자기 정곡을 확 찔리니 그렇다.
“혹시 빠른 년생입니까?”
“네! 맞아요! 그걸 알아보시다니 대단하시네요!”
강수미는 과장되게 말하면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동요를 감췄다. 책상 아래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후후. 제겐 기본이지요. 어머, 아가씨는 기구한 삶을 살아오셨군요.”
“기, 기구하다니요?”
“그건 저보다 아가씨가 더 잘 알고 계시겠죠. 제게 보이는 건 호수에 비치는 불꽃이군요. 호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불타고 있네요.”
강수미가 입을 다물었다. 뭔지 몰라도 벌써부터 동요하고 있다. 카산드라는 강수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수정구슬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아가씨. 아가씨의 인생에 장애물이 있어요. 장애물은 반짝이며 아가씨를 유혹하고 있죠. 옳지 못한 일을 시키지만, 그 끝에는 파멸뿐이에요. 근데 다행히도 장애물을 치워줄 수 있는 귀인이 있네요. 그 귀인을 따른다면… 네. 탄탄대로의 인생이 펼쳐지는군요. 귀인을 따르세요. 그럼 웬만한 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예요.”
강수미는 카산드라에게 말에 빠져들었다. 대단하긴 했다. 나도 어느새 카산드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귀인… 이라뇨? 그게 대체 누구죠?”
“이 나라에는 이런 속담이 있죠. 등잔 밑이 어둡다.”
“네?”
“아직 모르시겠나요? 아가씨는 이미 귀인을 만났답니다.”
“만났다니…. 그게 무슨….”
강수미는 그러면서 나를 힐끗 쳐다본다. 남매 행세를 하고 있지만, 나와 그녀는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카산드라가 가리키는 귀인이 나라면, 그녀는 이미 나와 강수미가 남매가 아니란 것을 간파했다는 거다.
“아가씨는 귀인만 믿고 따르면 된답니다. 그럼 목적을 이룰 실수 있을 거예요.”
“아, 네….”
“그럼 이제 남자분의 점을 봐 드리죠. 구슬아, 구슬아, 내게 보여다오!”
카산드라가 열정적으로 수정구슬을 문지른다.
나는 심드렁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강수미는 어떻게 구워삶을 수 있었는지 몰라도 나는 쉽지 않으리라.
“어머나. 정말 특이하네요.”
“뭐가 특이합니까?”
“최근에 당신의 삶이 바뀌었어요. 아니지. 삶이 시작되었다고 해야 하나요? 당신은 최근에 태어났군요.”
“전 20살이 넘었습니다.”
“후후. 전 본 것을 말했을 뿐이랍니다.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겠죠.”
“…….”
“당신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감히 제가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그건 또 무슨….”
“수정구슬이 말해주네요. 이 세상은 당신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고. 당신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네?”
“당신은 혹시 신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