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2095)
2108. 광명승천도
침묵이 앉았다.
이곳에 모인 전원이 눈알을 굴리며 상황을 판단한다.
겉으로 봤을 때 가장 강력한 세력은 적골악귀(積骨惡鬼) 반오의 요괴들이었다. 대요괴 반오는 삼정경이고, 그 휘하의 요괴 중 10마리 이상이 오기경이다.
그다음은 귀혼흑수(鬼魂黑手)다. 500마리에 달하는 강시 군단. 강시 대부분이 출지급이라 하더라도 500마리의 숫자는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이 아닌 강시라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강시는 두려움을 모르니까. 더군다나 귀혼흑수의 경우 숨겨 놓은 강시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결전 병기 같은 거 말이다.
이 세력들 중에서 가장 약한 건 우리다. 저들은 최소 수십인데 우리는 달랑 셋이다. 삼정경의 무인과 술법사와 오기 10단의 무인. 소개하기에도 살짝 초라한 감이 있었다.
‘너무 얕보이면 안 돼. 가장 약한 놈부터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려 할 수도 있으니까.’
허세를 부려서라도 강해 보일 필요가 있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마기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나를 중심으로 검은 마기가 뻗어나간다. 마기에 닿은 강시들이 몸을 떨었다. 적들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귀혼흑수는 두 눈을 번뜩였다.
“케케케. 마기… 그것도 이 정도로 짙은 마기라. 마교쪽 놈이로구나!”
요괴들은 주춤거렸다. 꺼림직하다는 듯 날 쳐다본다.
“불길한 마기다.”
“상대하고 싶지 않은 놈이다….”
“차라리 지금 바로 죽여야….”
천마군림보를 한 번 밟아줄까? 아니다. 여기서 더 나댔다간 두 세력을 동시에 도발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저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
공간의 긴장감이 계속 치솟는다. 허나 적의와 살의는 명확하지 않았다. 누구부터 노려야 하지? 이곳에 있는 일들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우리가 싸울 필요가 있나?”
대요괴 반오가 입을 열었다. 중저음이 퍼진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듯 마기를 거둬들였다. 마기를 뿌려 사방을 압박하는 건 내공 소모가 심하다.
“케케. 손이라도 잡자는 거냐? 그게 가능하리라 보느냐? 도명산의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건 셋이다. 나야 혼자이니 동료를 만들 수 있지만… 너희는 아니지 않느냐.”
“본좌의 뜻은 경쟁자가 우리만이 아니라는 거다. 저 뒤에 보이는 정상이 가짜라는 건 너희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도명산의 공간은 여기가 끝이 아닐 터. 이곳에 없는 경쟁자들이 있다. 우리끼리 싸운다는 것은 그들에게 좋은 일만 해줄 뿐이다. 따라서 본좌는 다음 공간으로 이동할 때까지 휴전을 요구한다.”
반오는 싸우지 않기를 원했다. 여기서 가장 강력한 세력은 반오의 요괴 세력이다. 즉, 다른 두 세력. 우리와 귀혼흑수가 일시적으로 손을 잡고 반오를 공격하는 걸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삼정의 고수가 셋이 되면 반으로서도 패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케케케. 젊은 놈이 말이 많구나. 너희는 어떻게 할 테냐?”
귀혼흑수가 이쪽에 물었다.
성지곤과 사마령은 나를 바라봤다. 판단을 내게 맡긴다는 뜻이었다. 나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 판단은 저 대요괴가 나타난 순간부터 내렸으니까.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기척이 나타났다.
우리처럼 공간을 이동해 나타난 게 아니다. 세 개의 집. 그중 한 곳의 문이 열리더니 긴 하얀 수염을 가진 노인이 나타났다. 겉보기에는 선풍도골 그 자체인 노인은 우리들 사이로 천천히 다가왔다.
“허허. 이번에도 많이 모였구나. 흉흉한 분위기를 보니 세계는 몇천 년이 지나더라도 변치 않았다는 뜻이겠지.”
“…….”
모두가 침묵했다.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신비한 기운. 그것은 자연의 기운이었다. 노인은 금속이고, 물이며, 땅이며, 나무이고, 불이었다.
“신선이시오?”
귀혼흑수가 물었다. 어느새 그녀의 천박한 웃음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아니다. 나는 그들의 찌꺼기일 뿐이다. 음, 그래. 말하자면 망령에 가깝지.”
“그 망령께서 우리 앞에 나타난 이유가 뭐요?”
“너희가 싸우려 하지 않으니까. 너희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도명산에 입산하지 않았느냐? 싸우거라. 서로의 목을 물어뜯고, 심장을 파괴하거라. 경쟁자를 죽이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거라. 이곳은 너희를 위한 전장터이니라.”
“…….”
노인이 말하는 대로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싸우라고 하면 싸우기 싫어지는 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 같은 경우는 노인을 죽이고 싶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싸워라? 명령하는 꼴이 아니꼬웠다. 저게 진짜가 아닌 망령이라해도 나라면 죽일 수 있다. 죽일 힘이 있었다.
“과연, 알겠습니다.”
내가 움직이기 전에 사마령이 말했다.
“도명산은 축복의 공간도, 기적의 공간도 아닌 거대한 의식에 불과한 거군요.”
“그러하다, 술법사야. 너는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이름 무엇이냐?”
“사마령이라 합니다.”
“사마씨의 일족이었나. 과연. 몇천 년이 지나도 사마씨의 일족은 영민하구나. 나는 혜진선인(慧進仙人)이다. 비록 망령에 불과하다만은….”
“의식이라니. 무슨 의미지?”
반오가 끼어들며 물었다. 선풍도골의 노인, 혜진은 경멸스러운 눈길로 반오를 노려봤다.
“답은 이미 나왔거늘…. 그딴 걸 질문이라고 하느냐? 역시 요괴란 것들은 상종하지 못할 것들이로군.”
“케케케.”
귀혼흑수가 다시 천박하게 웃었다.
“이 도명산 자체가 인신공양을 위한 술법 의식이라는 뜻이지. 천년의 주기로 의식이 열리는 건… 영맥과 하늘, 별의 자리가 천년 주기로 일치되는 것일 뿐일 테지.”
노인은 반박하지 않았다. 추가로 다른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들어도 모르겠다만.”
“대협.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도명산은 의식이 치러지는 장소. 즉, 제단입니다. 도명산에서 죽는 이들은 제물입니다. 그리고 도명산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그 자체로 의식의 절차입니다. 절차가 까다롭고 클수록 마지막에 주어지는 보상은 더욱 달콤해지지요.”
“사마가의 말이 실로 옳다. 정상에 올라 원하는 것을 받고 싶다면, 서로를 죽여라. 대가 없는 보상은 없나니.”
반오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허공에서 생겨난 뼈창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혜진선인의 머리를 꿰뚫었다. 혜진선인은 몸이 허물어지듯 사라졌다.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울린다.
“죽음 없이는 이다음으로 나아가지 못 하리라.”
다음으로 가려면 서로를 죽여야 했다. 이곳에 평화 따윈 없었다. 성지곤이 검을 뽑아 들었고, 사마령은 조용히 술법을 준비했다.
나는 귀혼흑수를 큰 목소리로 불렀다!
“귀혼흑수!! 우리가 싸우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저 요괴 새끼들을 먼저 처리하는 게 어떤가?!”
“케케케!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는구나! 저 요괴놈들을 죽일 때까지만 일시적 동맹이다!”
“이 하찮은 인간 새끼들이…! 본좌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이다! 저 불경한 인간들을 죽여라!”
반오의 목소리에서 살의가 넘쳤다.
요괴들이 괴성을 지르며 강시 군단을 향해 달려든다. 강시들이 그에 대응하며 전투가 일어났다.
요괴 중 일부는 강시를 조종하는 귀혼흑수를 노렸다. 성지곤이 귀혼흑수에게 달려갔다. 귀혼흑수를 죽이려고? 그럴 리가.
오히려 귀혼흑수를 도와주며 호감을 얻으려는 속셈이겠지.
대요괴 반오는 귀혼흑수가 아닌 나를 주시했다. 아무래도 놈은 나를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끄에에에에엑!”
“이 강시놈들…! 무공을 쓰잖아!”
“법기를 가진 강시가 있다!”
강시들이 요괴를 압도한다. 몇몇 강시가 시기적절하게 법기를 사용하며 전세의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반오가 움직였다. 그의 공간함에서 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간의 뼈는 적었다. 대부분 요기가 담긴 요괴의 것이다.
“귀혼흑수. 네년의 강시는 본좌의 뼈 병사들을 절대 넘을 설 수 없다.”
뼈병사와 시체들이 부딪친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무협인지, 판타지인지 모르겠다.
나는 화련비도를 손에 쥐고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선 돌격하고 싶은데, 반오가 나를 경계하고 있다. 게다가 놈과 나 사이에는 요괴와 뼈병사들이 존재했다. 함부로 돌격했다가 역으로 내가 당할 수 있었다.
“대협.”
“사마가주. 걱정마십시오. 좀 난전이긴 한데 제가 사마가주를 지켜드리겠습니다.”
“대협. 저는 약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협께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반오를 죽이십시오. 귀혼흑수와 협력하는 지금 죽여야 합니다.”
“…길을 열어주신다고 하니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녀의 섬섬옥수가 절도 있게 인을 맺는다. 술식이 구현되어 주변의 법칙을 일그러뜨린다.
처음부터 하는 게 아니다. 사마령은 몇 분 전부터 이 술법을 위한 밑 작업을 해놓았다. 술식이 구현되며 하나, 하나가 주변을 채우며 발동한다.
“혼원중광수계식(混元重光受戒式).”
빛이 터져 나와 원형으로 주변을 감싼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던 일부 요괴와 뼈병사들은 빛의 방진을 뚫지 못하고 역으로 밀려났다. 나는 이게 일종의 결계라는 걸 알았다.
사마령이 무표정하게 오른손을 들었다. 오직 검지만이 쭉 뻗어 있었다. 검지 끝에는 빛이 모여있다. 그녀의 검지는 반오를 가리켰다.
빛이 앞으로 뻗어나간다. 빛은 어느 순간 거대한 검과 흐르는 물이 되어 있었다. 검이 뼈병사를 꿰뚫어 길을 내면, 그 뒤를 흐르는 물이 길을 넓혔다.
유감스럽게도 검은 반오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 못했다. 반오가 주먹으로 검을 쳐낸 것이다. 대신 흐르는 물은 그대로다. 반오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길은 열렸습니다. 가세요.”
흐르는 물 위로 올라탔다. 물이 빠른 속도로 흐르며 내 몸을 이동시켰다. 에스컬레이터. 아니, 워터 슬라이드를 타는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반오와 거리가 가까워진다.
팟.
반오를 향해 뛰었다. 화련비도에서는 시커먼 강기가 맺혀 있었다. 반오는 뼈 칼을 손바닥에서 만들어 내 공격을 받아냈다.
뼈칼에는 강기가 없는데도 베어낼 수 없었다. 나는 뼈칼이 모양만 뼈일 뿐인지 실상은 강기에 버금가는 기운임을 알았다.
“본좌는 삼정 중단이다. 삼정 초단에 불과한 네놈이 진심으로 본좌를 이길 수 있으리라 보는 것이냐?”
지금 내겐 천심과 완전 회복이 없다. 하지만.
“할만하니까 왔지, 병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