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2270)
EP.2270 2270. 신의 아틀란티스
“이름이 뭐야?”
“…….”
사무엘이 남자에게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사무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묻는다고 대답해 주지 않겠지. 알고 있었어. 나라도 그랬을 거야. 거울.”
“그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거울 가면을 쓴 엘레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경쾌한 소리가 울린 직후, 남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더니 그대로 천천히 내려간다.
“…재밌는 정신 상태군. 정신을 쪼개서 각각 다른 상태를 유지했다. 중심이 되는 진짜 정신을 숨기려는 방식인가. 뭐, 그래도 내 앞에선 소용없다만.”
남자가 몸을 떨더니 힘 빠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구속용의 뼈 갑옷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으리라.
“이름이 뭐야?”
“에릭….”
사무엘의 질문으로 심문이 시작되었다. 엘레나에게 정신이 장악당한 그는 이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답할 것이다.
“소속과 지위는?”
“바클레이 레기온 연합의 정보부대원이다….”
“크흠.”
반짝이가 헛기침을 했다.
바클레이 레기온 연합. 레기온 세력의 크기만 따지면 대륙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유스티아 제국도 무시하지 못하는 세력이다. 제대로 얽히면 성가셔지는 세력. 상인인 반짝이는 굳이 적대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사무엘은 계속해서 심문을 이어갔다. 10분 정도 이어졌다. 알아낼 건 알아냈다.
“특별히 대단한 정보를 가진 건 아니네.”
“잡히는 걸 상정했을지도 모르죠. 보스. 이 장소에 대한 정보를 바클레이 쪽이 알고 있습니다. 위험한 건 아닌지?”
반짝이의 우려 섞인 물음에도 사무엘은 여유로웠다.
“괜찮아. 바클레이도 우리와 전면전을 바라는 건 아닐 테니까. 설령 여기에 쳐들어온다고 해도 상관없어. 이 구역쯤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어.”
뒤에 있던 거울이 앞으로 걸었다. 그녀는 에릭의 발은 에릭의 앞에서 멈췄다.
“이놈은 처분할 건가? 이놈의 능력은 꽤 쓸만하다. 처분하기 아까울 정도로.”
에릭의 고유 특성은 메소드(SS)다. 대상의 외형과 목소리, 행동 등을 거의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다. 조건은 대상을 열흘 이상 관찰하는 것과 성별이 다른 대상으로 변할 수 없다는 것.
“역으로 이용하자는 거지? 그건 힘들걸. 바클레이도 에릭을 경계하고 있을 테니까. 에릭이 정보원이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바클레이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것도 그 이유지.”
“흐음. 그것도 그렇군. 그럼 처분하도록 하지. 직접 하겠나?”
“부탁할게, 거울.”
딱.
거울이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으로 끝. 에릭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기감을 통해 에릭의 심장이 멈춘 것을 확인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지했다.
“보스. 질문이 있다. 쇼를 벌인 이유는 뭐지? 이놈이 첩자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나?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는 건가?”
“경고라니. 그럴 리가. 헬텐은 내가 세운 조직이지만, 너희들이 속한 조직이야. 나는 폭군이 아니야. 너희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도 없고, 설령 그러더라도 너희들이 따르지 않을 거잖아. 너희에게 말하고 싶어. 나는 강압적으로 헬텐을 이끌 의도가 없어. 그리고 너희에게 이 말을 꼭 해두고 싶어. 결과 이상으로 과정이 더 중요해. 잊지 마. 과정을 알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걸.”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고 해산인가? 아니겠지. 바클레이든 뭐든 당했잖아. 여기서 마무리하면 헬텐의 이름이 운다고.”
사자가 창을 허공에 휘두르며 불량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물론. 이야기만으로 끝낼 거면 부르지도 않았어. 너희들이 각자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사자는 바클레이의 구역에서 소란을 일으켜서 바클레이의 시선을 끌어줘. 반짝이는 내가 부탁한 물건들을 구해줬으면 해.”
사무엘이 여러 간부에게 거침없이 지시를 내렸다. 마지막은 나와 거울.
“거울과 천마는 나를 따라와 줘. 공략해야 할 구역이 있는데… 내 힘만으로는 힘들어.”
“미안하지만, 나는 낼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오늘 있었던 균열 문제다.”
거울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나와 사무엘은 바로 납득했다.
엘레나는 아틀란티스의 유일한 제국인 유스티아의 제국오공(帝國五公) 중 하나인 환상공(幻想公).
하늘에 균열이 일어났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졌으니 일이 바쁠 것이다.
“천마는 어때? 바빠?”
“…딱히 일정은 없다. 같이 하지.”
“그럼 다행이네. 그럼 해산. 각자 맡은 임무를 부탁해. 천마와 화이트는 30분 정도만 기다려 줘.”
사무엘이 구역 밖으로 나갔다. 헬텐의 간부들도 사라진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남은 것은 나와 거울, 반짝이와 화이트다.
반짝이는 앞으로 다가왔다.
“이야. 오랜만입니다, 천마.”
“그래. 사업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물론입니다. 이미 창고에는 마스크가 가득 쌓여 있습니다. 당신의 말에 따르면 화산섬이 출몰하기까지 반년도 안 남았군요. 대륙 제일의 부자가 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악, 하악!”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을 텐데.”
“그렇지요. 가장 큰 문제는 독점입니다. 자고로 상인이란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플 테니까요. 어떻게 해서든 제 발목을 잡을 상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부 대비해 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거울?”
“시끄럽다. 천마와 따로 이야기할 게 있으니 그만 가봐라.”
“이거 제가 눈치가 없었군요. 천마,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이야기합시다.”
반짝이가 떠났다.
거울은 화이트를 쳐다봤다. 나도 자연스레 화이트를 바라봤다.
“이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나?”
화이트는 표정 없는 가면을 쓰고 가만히 서 있었다. 전신을 가리는 검은색 로브 때문에 성별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
“위험하다고 말하려 했다만… 쓸데없는 참견이었군. 그만 가보겠다. 황제가 이번 일로 제국오공에 소집령을 내렸다. 솔직히 정말 마음에 안 든다만… 공작의 의무를 다해야지.”
유스티아 황제와 엘레나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그래도 대놓고 반목할 수는 없었다. 서로에게 손해니까.
“아, 잠깐만. 유리아가 네게 전해 달라는 물건이 있거든.”
“유리아가?”
엘레나에게 편지 봉투를 건넸다. 유리아가 엘레나에게 쓴 편지였다. 나는 내 여자를 존중하므로 편지 내용은 훔쳐보지 않았다. 대신 본인에게 물어보니 안부 인사를 적었다고 한다. 꽤 오랫동안 만난 적 없으니 이렇게라도 안부 인사를 하고 싶다던가.
‘내 여자끼리 사이가 좋군. 아주 바람직해.’
엘레나는 편지 봉투를 뜯기 전에 이리저리 둘러봤다.
“가볍군. 이상한 걸 넣지는 않은 모양이야.”
“에이 설마. 유리아가 이상한 걸 넣겠어?”
“농담이다. 유리아가 그럴 여자가 아니란 건 내가 잘 알고 있다. 그 여우 년이라면 모를까.”
확실히 미령이라면 깜짝 부적 같은 걸 넣을지도 모르겠다.
엘레나는 바로 봉투를 뜯었다. 편지 종이와 함께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엘레나는 사진을 잡고 잠시 가만히 쳐다봤다.
거울 가면 때문에 엘레나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딸을 낳았군. 축하한다. 예쁜 아기구나.”
“귀엽긴 해.”
엘레나가 편지를 읽었다. 솔직히 육성으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약간이지만 편지 내용은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음, 평범한 안부 인사용 편지군.”
꾸깃.
엘레나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편지가 구겨진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동요하고 있는 것 같다.
호기심이 치솟았다. 그 엘레나가 이토록 감정적인 반응이라니. 슬쩍 엘레나의 뒤로 돌아가 사진과 편지를 확인했다.
우선 사진은 유나를 안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유리아의 사진이었다. 그 옆에는 내가 유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서 있었다. 얼마 전에 찍었던 가족사진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친애하는 엘레나 발데르트 공작 각하께.엘레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시작은 평범한 안부 인사였다. 한글로 적혀 있었는데 다정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글씨체였다.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 있어서 컴퓨터로 작성하고 인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저와 주인님 사이에 새로운 가족이 태어났답니다. 유나는 밝은 아이예요. 다른 아기들처럼 많이 울지도 않고….]유나에 대한 자랑이 적혀 있었다. 조금 팔불출인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해도 다른 엄마들도 대개 이럴 것이다.
[엘레나는 자녀 계획이 없으신가요? 어떤 가문이든 후계자가 있어야 안정을 느낄 텐데…. 아, 자녀 계획을 논하기 이전에 결혼부터 하셔야겠군요. 공작 가문이니 혼전임신을 정통성 때문이라도 안 될 테니.엘레나. 아내이자, 엄마가 되는 건 신기한 기분이에요. 물론 엘레나는 아직 비혼이시니 그 기분을 잘 모르시겠죠. 제가 말씀해 드릴 수 있는 건 새로운 인생이자 행복이라고 할까요. 엘레나는 두 개의 행복을 모르시겠네요. 안타까워요.]
편지에는 결혼하면 좋은 점, 자식이 있으니 더 좋다는 점, 내가 너무 좋다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편지의 필체와 내용에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적혀 있었다. 그 행복을 선사한 게 남편이자 주인님이 나였다. 나는 내 여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이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꾸깃.
편지가 완전히 구겨졌다.
“엘… 거울?”
가면을 쓰고 있으니 본명을 부를 수는 없었다. 화이트도 눈앞에 있었고. 비록 화이트가 우리에게 전혀 관심 없다고 해도 지킬 건 지켜야지.
“아. 잠깐 다른 생각을 하다가 힘이 들어갔군.”
엘레나는 편지지를 펼치고는 다시 곱게 접어 찢어진 봉투에 사진과 함께 넣었다.
“편지과 사진은 소중히 보관하겠다.”
“답장은?”
나도 다른 세계에선 귀족이라 잘 알고 있다. 편지를 받았다면 답장을 하는 게 예의다. 물론 편지 답장 대부분은 메이드들이 쓰지만.
“…할 일이 많다. 당장 답장을 쓰기에는 어려울 것 같군. 대신 편지를 잘 받았다고 전해줘라. 이만 가보겠다. 할 일이 많아서.”
그녀는 구역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삐끗.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엘레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돌부리를 있는 힘껏 발로 차 화풀이를 하고는 밖으로 걸어가더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