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10)
열심히 일하는 일선 경찰들이 무슨 잘못이겠나?
위에서 우송기업 노사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것이다. 백날 수사해봐야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으니, 제대로 수사할 수도 없었을 테고.
난 옥상에 있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계속 찍는 중인 거 아시죠?”
눈앞에서 범죄자가 도망치는데 경찰이 가만히 서있는 모습이 그대로 언론에 나가면 무슨 욕을 먹게 될지 모른다.
내 말에 정신을 차린 지휘관이 소리쳤다.
“잡아!”
경찰들은 재빨리 도망치는 용역을 쫓아가서 붙잡았다. 양팔이 붙들린 그는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
“이, 이거 놔! 나는 억울해!”
난 그에게 말했다.
“뭐가 억울해요? 당신이 집어던진 소화기에 맞아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맞아.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아야지.”
그는 나를 보며 소리쳤다.
“넌 대체 뭐야? 뭔데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거야?”
용역들은 물론 경찰들의 시선까지 전부 나에게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다들 눈치 챘을 것이다. 내가 이번 일을 계획했다는 걸.
택규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왜 못 알아보지? 아직은 스타성이 부족한가?”
“…….”
TV에 한 번 나왔다고 한눈에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하지.
“전 강진후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주위가 술렁거렸다.
“강진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자, 잠깐, 강진후면 설마…….”
“OTK컴퍼니 CEO!”
“마, 맞아! 전에 TV에서 본적 있어!”
이름을 밝히자 모두가 나를 알아보았다.
“대, 대체 OTK컴퍼니 CEO가 왜 여기에……?”
“당신이 소화기로 머리를 깨트린 사람이 저에게는 삼촌 같은 분이라서요.”
“…….”
남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난 당황하는 그에게 계속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합의는 없을 겁니다. 이쪽은 이미 로펌 변호사 선임했고, 형사고소와는 별개로 민사소송도 들어갈 겁니다. 수술비, 입원비, 재활치료비, 위자료 등등. 부동산이든 차든 전부 압류해서라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받아낼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쪽도 최대한 좋은 변호사 선임하세요.”
단순폭행도 아니고 특수상해면 합의 없이는 결코 실형을 면할 수 없다. 여기에 민사소송을 하면 배상금액만 억 단위가 넘어간다.
용역깡패가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는가?
남자의 나이는 30대 중반. 잘못된 행동으로 한창 나이에 전 재산을 잃고, 교도소 가게 생겼다.
이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좀 파악되는지, 그는 용서를 빌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집에 아내와 자식들이 있습니다. 제가 감옥에 가면 가족들은 어떡합니까?”
“당신이 죽일 뻔한 그 사람도 가족이 있어요. 수술하고 치료하느라 빚까지 졌고, 후유증 때문에 언어장애까지 생겼어요.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져야죠.”
“저, 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전부 위에서 시켰습니다.”
“그래요? 누가 무슨 지시를 내렸나요?”
그는 울먹거리며 말을 쏟아냈다.
“무슨 일이 생기든 회사에서 책임져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뒤에 있는 대머리가 소리쳤다.
“입 안 닥쳐, 이 새끼야? 죽고 싶어?”
난 대머리에게 다가갔다. 이철진 과장에게 한 대 맞고 쓰러졌던 그는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있었다.
난 누가 말리기도 전에 그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당신들 돈 받고 이 일하지?”
“뭐……?”
“우송기업과 OTK컴퍼니가 돈으로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 것 같아?
참고로 우송기업 시총은 1천억도 안 된다.
대머리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너 이 새끼…….”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
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 대머리는 부들부들 떨 뿐 주먹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돈이 가진 힘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난 용역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동영상 분석해서 그동안 폭력 휘두른 사람들 한 명도 빠짐없이 찾아내, 전부 형사고소와 민사소송할 겁니다.
택규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것 때문에 특별히 로운이라는 최대 로펌과 계약도 맺었어요.”
엄밀히 말해 최대는 아니다.
압도적 1위는 누가 뭐래도 정앤김이니까. 그래도 로운이면 3위 정도는 된다.
용역들 중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젊은 청년들도 많았다. 선배나 졸업생들 따라 나온 대학생들인가?
일당 몇 만 원 벌기 위해 왔다가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빨간줄 긋게 생겼다.
그들은 앞 다투어 소리쳤다.
“저, 저희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전부 사장이 시킨 겁니다!”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했어요!”
쇠파이프를 휘두를 때만 해도 그게 범죄라고는 생각지 못했겠지.
막상 법적문제가 생기면, 회사는 ‘우리는 불법시설물 철거만 지시했을 뿐, 사람을 때리라고 한 적은 없다’라며 발을 빼고,책임은 개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인생은 실전이니까.
* * *
용역들이 간이천막과 현수막 철거에 나선 사이.
홍우송 회장과 이세엽 사장은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잠시 후, 밖에서 깨고 부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금방 끝날 테니까요.”
“알았네.”
홍우송 회장은 오늘따라 커피향이 좋다고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비명이 멎었다.
이세엽 사장은 웃음을 지었다.
“이런. 아직 다 마시지도 못했는데, 벌써 끝났나 보네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는 경악했다.
“뭐, 뭐야?”
창밖의 풍경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용역들은 전부 쓰러졌고, 그 주위를 검은색 옷을 입을 남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홍우송 회장은 놀라 소리쳤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저놈들은 뭐야?”
이세엽 사장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경찰이 출동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시키기도 전에 누군가가 회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유상기 전무는 다급하게 말했다.
“크, 큰일 났습니다, 회장님!”
“무슨 일이야?”
“OTK컴퍼니 강진후 대표가 엑스캅 직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뭐? 강진후?”
당연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강진후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홍우송 회장은 어이가 없어서 소리쳤다.
“여기서 강진후가 왜 나와?”
“아무래도 노조 편에 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대체 왜? 강진후가 저놈들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방금 검찰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강진후가 로펌에 위임해 우리 회사와 창주컨설팅에 대해 고소고발장을 제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뉴스돌파에서 취재를 시작했다고…….”
노조파괴는 명백한 불법이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할 공권력이 우송기업 편에 섰고, 사실을 알려야할 언론이 침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진후가 나서는 바람에 상황이 변했다.
“뭐하고 있어? 어서 은성차 쪽에 연락해봐!”
“그, 그게…….”
유상기 전무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방금 본부장과 통화했는데, 우송기업 문제는 우송기업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합니다. 은성차는 아무 관계가 없는데, 왜 노사문제를 이쪽에 문의 하냐고 화내며 끊었습니다.”
홍우송 회장은 할 말을 잃었다.
은성차는 파업대응을 일일이 지시하고, 창주컨설팅과의 계약을 주선해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관련이 없다며 발을 빼다니.
이세엽 사장은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합법적인 집행과정에서도 사람을 폭행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용역깡패를 동원해 노조의 쟁의행위를 방해한 건 두말할 것도 없는 범죄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몸을 피하기로 했다.
회장실을 빠져나가려는데, 어느새 문 앞에 20대 청년 두 명이 서있었다. 그중 한 청년이 손을 내밀었다.
“여기 계셨네요, 이세엽 사장님.
“넌……?”
“강진후예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의 뒤에는 경찰들이 서있었다.
“이세엽 사장님 맞으시죠? 방금 창주컨설팅 직원들이 사장님께서 불법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해서요. 같이 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
* * *
경찰들은 이세엽 사장을 데리고 나갔고, 난 택규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커피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맞은편에는 체구가 작은 백발노인이 앉아 있었다. 이 노인이 바로 맨손으로 우송기업을 일궈낸 홍우송 회장이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남의 집안싸움에 왜 끼어드는 건가?”
“…….”
이게 이 노인의 인식인가?
자신이 만든 기업이고,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 아니다.
난 벽 한쪽에 걸린 액자를 보았다. 거기에는 ‘직원을 가족같이’라는 글귀가 써져 있었다.
“정말로 직원을 가족 같이 생각한다면, 이러면 안 되지 않나요?”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그리 심한 편이 아니다. 일해서 임금을 받으면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자산불평등은 극도로 심각하고,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자산이 없는 서민들은 소득이 끊기면 바로 생계가 막막해진다. 이 때문에 법으로 노동자의 최저조건과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홍우송 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불법파업하는 놈들을 가만히 놔두라는 건가?”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갖는다. 파업 역시 법적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이 나라에서 합법파업을 본적이 없다. 파업만 하면 무조건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때문이다.
박시형이 대통령이 된 뒤로는 타협보다는 엄정한 대처를 강조했고, 언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게 바로 비즈니스 프렌들리지.
“직원들 중 한 명이 자살하고, 여러 명이 크게 다친 건 아시죠?”
내 말에 홍우송 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전부 자업자득이지.”
종수 아저씨는 스스로 목을 매달았고, 석범 아저씨는 크게 다쳤다. 하지만 이 노인은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정말로 스스로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체 원하는 게 뭔가?”
난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그동안 법과 권력을 잘 이용하셨더라구요. 저도 제가 가진 돈과 지위를 이용해 회장님께서 하셨던 방식대로 똑같이 해볼 생각입니다.”
택규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얘가 돈이 존나 많아요.”
“…….”
“그냥 참고하시라구요.”
난 홍우송 회장의 표정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걱정하실 것 없어요. 그렇게 좋아하셨던 법대로만 할 거니까요. 지은 죄가 없으면 아무 일도 없겠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부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세요.”
* * *
뉴스돌파는 ‘우송기업 노조파괴 사건의 전말’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기사를 터트렸다.
주류언론에 비해 인터넷언론은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뉴스돌파는 PAS 보도를 통해 이미 유명세를 떨친 전력이 있다.
게다가 이번 일에 강진후가 나선 것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말이 되나?
-ㅋㅋㅋ현수막에 글씨 쓰다가 아스팔트에 페인트 묻혔다고 징역 1년 구형. 이거 실화?
-CCTV에 테이프 붙였다고 징역 1년6개월 구형했는데.
-미친놈들 아니야?
-검찰이 장난으로 구형 때리나?
-대체 그 대가리로 어떻게 검사가 된 거지?
-이게 바로 대한민국 검찰 클래스!
당황한 검찰은 ‘노조원들의 지속적, 집단적 손괴행위와 모욕행위를 경합범으로 기소한 사안으로서 범행의 위험성과 사안의 중대성을 높이 평가하여 구형했다’ 라는 해명자료를 내보냈다.
-ㅋㅋㅋ지랄한다.
-감사합니다. 요즘 개그프로가 재미없어서 웃음을 잃었는데, 간만에 빵 터졌습니다.
-그렇게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놈들이 차를 몰고 용역에게 돌진한 용역깡패를 단순교통사고로 처리하냐?
-이건 살인미수로 구속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소화기로 사람 두개골을 박살냈는데 수사도 안 했다며?
-그래서 강진후는 이 일에 왜 끼어든 거야?
노조에게는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던 검찰이 우송기업과 창주컨설팅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손 놓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뉴스돌파는 이어서 우성기업의 노조파괴 문건과 은성차의 지시사항이 오간 문건을 공개했다.
결국 여론에 떠밀린 검찰은 차를 몰고 돌진한 용역과 소화기를 던져 두개골을 함몰시킨 용역을 구속하고, 폭행혐의가 확인된 이들을 전부 수사하기로 했다. 또한 우송그룹 홍우송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근로기준법 위반, 최저임금법 위반, 노동조합법 위반, 파견근로자보호법 위반 등등.
죄목은 차고도 넘쳤다.
왜 이제까지 구속을 안 했는지가 신기할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수차례 기소의견으로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담담검사가 보강수사를 명목으로 계속 돌려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창주컨설팅 이세엽 사장도 구속을 피할 수는 없었다. 체포된 용역들이 조금이라도 죄를 줄이기 위해 사장의 불법지시를 증언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난리가 나자, 주류언론들도 어쩔 수 없이 취재에 나섰다.
뒤늦게 검찰청 앞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미 예전에 몇 차례 고발되었던 사건이고, 새로운 증거가 드러난 것도 아닌데, 왜 이제야 구속기소를 하는 겁니까?”
“근로감독관의 보고서를 묵살한 사실을 인정합니까?”
“우송기업과 검찰의 유착관계가 사실입니까?”
“상부의 지시나 압력은 없었습니까?”
“은성차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자들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담당 검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면을 통해 정해진 원칙과 절차에 따라 수사했다고만 밝혔다.
이제 시선은 은성차에게로 쏠렸다.
처음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은성차는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회사차원의 지시는 없었고, 안정적인 부품조달을 위한 구매본부 담당자의 개인적인 일탈행동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사실 확인 후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은성차의 진술을 받아들여 해당직원만 조사해서 처벌하기로 했다.
법적책임은 피했어도 여론의 비난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진짜 다시는 은성차 안 산다.
-지네 노조한테는 꼼짝도 못하면서, 하청업체 노조는 아주 죽이려고 했네.
-그동안 애국심 때문에 은성차 샀는데, 이제는 은성차 안 사는 게 애국인 듯.
-인터넷에서 백날 떠들어 대봐야 은성차 점유율 70퍼센트 넘음. 어차피 살 놈들은 다 산다.
-설마 이번 일도 PAS나 각하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죠?
-그래서 PAS는 누구 겁니까?
* * *
난 택규와 어머니와 함께 꽃다발을 들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석범 아저씨는 강남에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았다. 비용은 내가 전부 지불했다.
1인실에는 입원한 석범 아저씨와 함께 중년여성과 중학생 남자애, 고등학생 여자애가 같이 있었다.
중년여성은 우리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너희도 어서 인사드려.”
남매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오래 전, 회사 야유회 때 본 기억이 난다. 얘들도 많이 컸구나.
석범 아저씨는 나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와, 왔니, 진후야?”
여전히 말을 더듬었지만, 이전보다는 발음도 나아졌고 표정도 밝아졌다.
어머니는 석범 아저씨와 가족들에게 말했다.
“앞으로의 일은 걱정하지 말아요. 퇴원하시는 대로 일자리도 찾아드릴 거고, 지낼 곳도 마련해 드릴 테니까요.”
아주머니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모님께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할지…….”
“무슨 말이에요? 진후 아버지가 이 자리에 계셨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거예요.”
돌아가신 종수 아저씨네 가족들과도 연락했고, 다른 직원들도 찾아볼 생각이다.
다들 없는 살림이다.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친척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과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사기를 당하거나,한 번에 다 써버릴 수도 있고.
때문에 일정기간 동안 연금처럼 돈을 지급하며, 일자리를 찾아 자립할 수 있게 만들 생각이다.
그 일은 어머니께서 맡기로 했다. 아버지 회사 직원들이었던 만큼 챙겨주고 싶으신 모양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죠? 다 알아요.”
“으흐흑!”
그 말에 아주머니는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어머니는 그런 아주머니를 안고 위로해주었다.
“이제 괜찮아요. 앞으로는 다 잘 될 거예요.”
석범 아저씨와 남매도 다 같이 울며, 어느새 병실 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열심히 우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택규는 옆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으허어엉!”
“…….”
대체 넌 왜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