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66)
난 택규와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일이 생겨?”
“원래 진작 연락하려고 했는데,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네.”
“무슨 일인데?”
“뭔가 보여줄 게 있대.”
내가 차를 빼려고 하자, 택규가 먼저 운전석에 올라탔다.
“넌 당분간 운전하지 마. 필요하면 기사 쓰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네.”
또 저번처럼 예지를 보고 정신을 잃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만약 고속도로를 달리던 도중 그런 일이 생기면 대형사고다.
운전뿐 아니라 한동안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것들도 못하게 생겼다.
“너 원 그런 거 안 했잖아.”
“그렇긴 하지.”
난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기면증 환자도 아니고…….”
이제까지 이런 문제에 대해 크게 신경 쓴 적은 없다. 그런데 일주일이나 잠들었다 깨어나니, 좀 걱정이 된다.
몸에 직접적인 이상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OTK컴퍼니 산하의 배터리 연구소, 일명 OTK연구소는 용인에 위치해 있다. 강남과도 크게 멀지 않고, 근처에 서성SB 연구소도 있기 때문이다.
용인이면 동탄과도 별로 멀지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머니랑 같이 내려갈 걸 그랬나?
난 택규가 운전하는 사이 전화해서 어머니가 잘 도착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연구소에서는 정확히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 거야?”
“새로운 배터리 소재를 개발 중이지.”
내가 OTK연구소를 만든다고 돌아다닐 당시 택규 역시 프로게임단 OTK매지션즈를 만든다고 나름 바빴다. 그래서 김호민 교수를 본적도 없고, 연구소 사정에 대해서도 거의 몰랐다.
난 대충 설명을 해줬다.
“현재 시장에 쓰이는 배터리는 대부분 NCM배터리야.”
“NCM이 약자였나?”
“응. 니켈, 코발트, 망간의 약자. 이 세 가지를 섞어서 만들기 때문에 삼원계 배터리라고 불려. 그런데 문제는 코발트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거지.”
“왜 비싼데?”
“희귀금속이거든. 전 세계 매장량의 절반이 콩고에 묻혀있는데, 내전 때문에 공급이 불안정해.”
기본적으로 물품의 가격은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공급이 더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고, 수요가 더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기 마련.
“중간에 장난질도 좀 있고.”
코발트 광석은 보통 비소나 황 등의 불순물과 섞여 함량이 3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코발트만 뽑아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가공기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가공시장이 세 개 업체 독과점 형태야.”
원래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챙기는 법. 가공업체들이 챙기는 수익은 채굴업체들보다 더 많다.
여기에 투기수요까지 극성이다.
“걔들은 자기들이 쓸 것도 아니면서 사는 거야?”
“돈 되는 일이라면 뭘 못하겠냐?”
비슷한 일은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다.
금융위기 이전 원유가격이 폭등하자 투기꾼들과 헤지펀드들이 원유 사재기에 나섰다. 선물뿐 아니라 현물까지도 마구 사들였고, 그러다 보니 더 이상 원유를 저장할 만한 시설이 부족해졌다. 나중에는 아예 유조선을 임대해서 사재기한 원유를 가득 실은 다음 바다 위에 띄워서 보관했다.
그나마 금과 원유야 워낙 거래량이 크고 사실상 실물화폐나 다름없기 때문에 투기가 가격변동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코발트는 수급이 제한적인 만큼 투기수요에 의해 가격이 널뛰기를 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네 배가 넘게 올랐고,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코발트를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를 만들려는 거구나.”
“정답.”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배터리업체들이 마찬가지다. 다들 양극재에 쓰이는 코발트 함량을 줄이기 위한 연구에 한창이었다.
* * *
기업이란 생명체와도 같아서 한 순간도 멈춰있지 않다.
페이스잇과 M피자는 매분기마다 큰 수익을 내고 있지만, 시장을 키우고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이익을 거의 남기지 않고 재투자했다. 배당을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OTK컴퍼니로 들어오는 돈도 없었다. 우리가 투자한 다른 기업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반면 OTK게임즈는 사정이 좀 달랐다.
개발 총책임자인 이치카와 시게루는 RPG의 역사와 함께해온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RPG의 진행방식과 재미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다. 덤으로 현질을 유도하는 방법까지.
덕분에 로스트 판타지M은 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모바일게임 1위를 지켰고, 한국과 일본에 이어서 출시한 동남아, 유럽, 미국 등에서도 대박을 쳤다.
제조업은 매출대비 영업이익률이 평균 10퍼센트 안팎인 데 비해, 게임업계의 영업이익률은 50퍼센트가 넘는 경우도 있다.
제조원가라고 해봐야 인건비와 마케팅비인데, 이는 판매량과는 관계없는 고정비용이다. 때문에 매출이 일정 이상 넘으면 그때부터는 전부 순이익이다.
라스트 판타지M 흥행으로 OTK게임즈는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신작 개발비만 놔두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분기별로 배당했다.
원래 OTK게임즈는 OTK컴퍼니가 100퍼센트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게임 흥행 이후 이치카와 시게루와 개발진들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자신들 몫으로 12퍼센트를 가져갔다. 그래서 현재 OTK컴퍼니의 지분은 88퍼센트.
우리는 벌써 수천만 달러의 배당을 챙겼고, 난 그 돈을 아낌없이 배터리 연구소에 투자했다.
연구소란 곳은 성과가 없으면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다. 만약 OTK게임즈가 없었다면, 설립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OTK연구소 설립에는 택규의 공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처음 만들어질 때 한 번 와보고, 이후에는 바빠서 못 와봤다. 난 이번이 두 번째 방문, 택규는 첫 번째 방문이다.
도착했다고 연락하자, 김호민 교수는 연구소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꾀조죄한 모습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건강해 보이네. 이제 괜찮은 거야?”
난 웃음을 지었다.
“잠깐 쓰러져서 누워있던 건데, 기사가 과장되게 나간 거예요. 원래 언론들이 그렇잖아요.”
“다행이네. 걱정 많이 했어.”
김호민 교수는 택규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들어가자.”
우리는 김호민 교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소는 보안이 중요한 시설인 만큼 감시카메라를 포함해 각종 보안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엑스캅 경호원들이 24시간 교대로 근무를 섰다.
난 연구소장에게 고가의 장비를 구매하거나 필요한 인력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물론 연봉협상이나, 구매협상은 전부 우리 쪽에서 책임졌다.
김호민 교수가 연구소로 옮기며, 같이 일하던 연구원들은 전부 따라왔다.
교수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누리고 돈도 벌만큼 벌지만, 조교나 연구원들은 대부분 박봉과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난 그들에게 연차별로 대기업 이상의 연봉을 지급해주고, 최소 10년 이상의 고용을 보장해주었다.
여기에 김호민 교수는 MIT에서 박사과정과 포스트닥터 과정 도중 인연을 맺었던 이들을 연구소로 초청했다.
그들은 연구 분야와 성과에 대해 어떠한 터치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마음에 들어 했다.
국내 대학이나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는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시키는 연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정해진 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지원이 중단되거나 자리를 옮겨야 한다.
이런 방식이 반드시 잘못됐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필요한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니까. 이렇게 해서 그동안 여러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연구과제에 따라서는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외에,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하는 것도 있다.
뭐, 말은 이렇게 해도 내가 지원하는 이유는 김호민 교수가 노벨화학상을 탈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만.
김호민 교수는 우리를 실험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이미 연구원들이 모여 있었다.
자고로 연구소라 하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최첨단시설에 엘리트 연구원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
하지만 실제 연구소는 보통 건물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고, 연구원들은 다들 크록스에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머리는 언제 감았을지 모를 만큼 떡져 있고, 흰색 가운에는 땟국물이 줄줄 흘렀다.
가운을 입지 않았다면 연구원이 아니라 노숙자인 줄 알겠다.
그래. 이런 게 현실이지.
꾀죄죄한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뭔가를 해낸 듯 상기된 표정과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내 물음에 김호민 교수는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코발트를 대체할 만한 신소재를 만들어냈어.”
그 말에 나와 택규는 동시에 깜짝 놀랐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몇 년 안에 성과가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현재 코발트 가격이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퍼센트가 넘는다. 만약 코발트 외에 다른 소재로 삼원계 배터리를 만들 수만 있다면, 배터리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업체에 비해 월등한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김호민 교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너무 좋아하지는 마. 문제가 좀 있으니까.”
“뭔가요?”
“좀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같은 양의 신소재를 만들어내는 가격이 코발트보다 20퍼센트 더 비싸.”
“……예?”
우리는 어이가 없어졌다.
택규는 눈을 껌뻑이며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100달러짜리 위조지폐 만드는데 120달러가 필요하다는 얘기랑 뭐가 달라?”
“…….”
응. 똑같아.
코발트가 비싸서 다른 소재를 개발하라고 했더니, 더 비싼 소재를 개발해낼 줄이야!
난 실망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지금이야 더 비싸다지만 향후 코발트 가격이 더 오르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셰일가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셰일층에서 가스와 석유를 채굴하는 방법은 진작 개발되었다. 그전에는 채산성이 안 맞아 시도하지 못하다가, 이후 고유가가 지속되자 신기술로 각광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수급 불안 없이 안정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대량생산을 통해 단가를 낮출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의 표정을 본 김호민 교수는 웃음을 지었다.
“아직 실망하기는 일러. 한 가지가 더 있으니까.”
“뭔가요?”
김호민 교수는 양손에 두 개의 원형 배터리를 들어보였다. 똑같은 크기지만 왼쪽은 빨간색, 오른쪽은 파란색이다.
“이게 뭔지 알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18650이잖아요.”
“맞아.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드론 등 안 쓰는 데가 없는 범용 배터리지.”
“전기차에도 쓰이죠.”
이유는 가격이 싸기 때문. 니콜라 전기차에는 저 원형배터리가 1만 개 가까이 들어간다.
“왼쪽은 기존 NCM배터리고, 오른쪽은 신소재를 사용한 배터리야. 보통 18650은 3000mAh 정도지. 그럼 여기 신소재를 사용한 배터리 용량은 얼마나 될 것 같아?”
“글쎄요.”
김호민 교수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 오른손에 있는 이 파란색 배터리는 7000mAh야.”
“예?”
아까보다 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아직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충전속도 역시 기존보다 네 배는 빨라. 즉, 용량을 두 배로 늘려도 충전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어.”
“…….”
난 할 말을 잃었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가 갖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가격, 둘째 용량, 셋째 충전속도.
그런데 이중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김호민 교수는 멋쩍게 웃었다.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는 그래. 급속충전을 하기 위해서는 급속충전에 적합한 소재로 배터리를 만들고 그에 맞는 충전기를 써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실제 속도는 좀 차이가 날 수 있지. 그런데 사실 진짜 문제는 뭐냐면…….”
김호민 교수는 두 배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한쪽에 있는 두꺼운 전공서적을 들어서 빨간색 배터리를 가볍게 내리쳤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파란색 배터리에 똑같이 했다.
퍼엉!
순간, 폭발음과 함께 배터리의 표면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러고는 이내 배터리 전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익숙한지 옆에 있던 연구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스프레이형 소화기를 뿌렸다.
치이익!
불은 금세 꺼졌다.
“보다시피 매우 불안정해. 조금만 충격을 가하면 금방 폭발하지. NCM배터리의 안정성을 10이라고 한다면, 이건 1도 안 돼.”
난 예전에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삼원계 배터리는 용량과 안정성이 반비례한다. 용량을 두 배 이상 늘렸으니, 불안정성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해결할 수 있을까요?”
김호민 교수는 웃음을 지었다.
“글쎄. 이제부터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