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95)
모한 교수는 빅원이 오면 1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빅원이 오자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게 밝혀졌다.
만약 대비를 하지 않았다면, 200만 명이 사망했어도 이상할 게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그렇게 대비를 했음에도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치면 7만 명에 달했다. 계속 생존자 구조와 시신수습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망자 숫자는 점점 더 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그나마 실리콘밸리 남부와 프리몬트, 오클랜드 지역의 피해가 적다는 점이 위안으로 삼을 만했다.
역사상 최악의 재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정부와 기업은 여전히 업무를 지속했고, 금융과 산업 등 모든 시스템은 아무 문제없이 작동했다.
오히려 빅원이 오기 전까지의 혼란상황에 비하면, 지금이 더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로날드는 참모들과 함께 대피소에서 생활하며, 이재민들과 함께 식당에서 같이 식사하고 같이 잠을 잤다.
웬만한 외부일정은 전부 내각이 일임하고, 본인은 구조지휘에만 전력을 다했다. 또한 매일 같이 언론브리핑을 하며, 구조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미국언론 역시 여기에 적극 동참했다.
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한다는 인상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탄핵 직전 로날드의 지지율은 5퍼센트까지 떨어지며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그나마도 전화기 버튼을 잘못 누른 사람들 덕분에 그 정도 지지율이 나온 거라는 얘기까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92퍼센트를 기록했다. 빅원에 대한 대비를 잘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97퍼센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정도면 독재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지지율이다.
하긴 로날드가 아니었다면, 누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이번 일로 취임 초기부터 정권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러시아 스캔들과 섹스 스캔들은 자취를 감췄다.
지금 상황에서 로날드를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탄핵에 동참했던 의원들은 민주당과 공화당 가릴 것 없이 눈물로 용서를 빌며, 사태수습은 물론 앞으로의 국정운영에도 적극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몇몇은 책임을 벗을 수 없었다.
탄핵을 주도한 사이먼 언더우드 주지사와 바우어 부통령, 그리고 블루펠 화재참사에 대한 책임을 로날드에게 떠넘겼던 마틴 올브라이트 주지사 등은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봐도 좋았다.
* * *
밀려드는 이재민들로 인해 대피소는 포화상태였다.
미국은 지난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엄청난 기술력과 미칠 듯한 생산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미국 업체들은 그 기술력과 생산력을 총동원해 캘리포니아 주경계선과 인접한 네바다주에 대규모 임시 거주촌을 건설했다.
허허벌판에 조립식 주택들이 수도 없이 들어섰다. 도시가 복구될 때까지 이재민들은 몇 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미국정부는 공식적으로 기부금 모금을 시작했다. 금액은 며칠 만에 100억 달러를 가뿐히 넘겼다.
모든 나라가 국고를 털어 돈을 냈고, 기업들 역시 적게는 수백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억 달러씩 기부했다. 전 세계 국민들도 미국의 피해복구를 기원하며 기꺼이 기부에 동참했다.
이외에 여러 나라에서 보낸 구호물자와 소방관들은 속속들이 캘리포니아로 도착했다. 우방국들은 군 병력 파견까지도 검토했다.
다른 대통령이었다면 체면상 일부 거절했을 법도 한데, 로날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열심히 지원하라며 독려했다.
“미국은 더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동안 미국이 세계를 위해 한 일을 생각해보십시오. 이제 그것을 돌려받을 때가 됐습니다!”
이게 무슨 그동안 뿌린 경조사비를 장례식 한 번으로 회수하려는 것도 아니고.(미국은 세계최대의 부국인 만큼 대외원조액 역시 가장 많았다)
실제로 그만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긴 하다.
복구야 나중 일이더라도 구조는 한시가 급했다. 피해지역이 워낙 광범위한 탓에 미군까지 투입되었음에도 인력부족에 허덕였다.
우방국의 군 병력들은 속속들이 캘리포니아에 도착했고, 그들은 전부 미군의 편제 아래 들어가 일사분란하게 구조에 동원되었다.
한국은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원을 파견했다. 미국과 혈맹인 것도 있겠지만…….
“돈 대신 몸으로 때우겠다는 생각이겠죠.”
“한국에는 최저임금의 10분의 1로도 쓸 수 있는 군인들이 넘쳐나니까요.”
몇 년 전에는 나도 그중 하나였고.
난 옆에 앉아있는 임진용 회장을 보았다.
그는 일이 터지자마자 캘리포니아로 날아와 미국법인의 직원들을 챙기고, 회사 상황을 점검했다. 그리고 로날드를 만나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서성그룹이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번 대지진에 서성전자는 엄청난 역할을 했다. 당장 구조에 쓰인 장비들이나, 대피소에 있는 전자장비들은 대부분 서성전자 제품이다.
무엇보다 위험지역 기지국 안에 있는 스마트폰 사용자의 정보를 바로 재난통합본부로 전송함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덕분에 미국 내에서 서성전자의 인지도는 크게 상승했다.
로날드만 만나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임진용 회장은 며칠째 이곳에서 머무르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을 거들었다.
“힘들진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많이 지쳐보였다. 회장이라는 자리가 육체노동과 별 관련이 없긴 하지.
임진용 회장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미국이네요. 아무리 대비를 했다고 해도 이렇게 구조와 복구를 빠르게 진행하다니. 아마 비슷한 지진이 중국에서 발생했다면, 10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을 겁니다.”
실제로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당시 중국정부는 초기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고, 사망자와 실종자만 10만 명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런 게 미국의 저력이죠.”
괜히 패권국가가 아니다.
임진용 회장은 웃음을 지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무사해서 천만다행입니다.”
엔플이나 구블 등은 서성전자의 경쟁사이자 협력사다. 만약 IT산업이 붕괴되었다면, 당장 반도체 수요가 급감하며 서성전자 역시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지진은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기업의 운명이 갈리게 되겠지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데요.”
* * *
기업들은 지진 이후의 상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로날드는 취임초기부터 미국 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무역장벽을 쌓고 미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에게 세제혜택을 주었다.
실제로 리쇼어링(Reshoring)이라고 해서 외국에 나가 있던 미국기업들의 공장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일자리는 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여러 혜택을 받아도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리쇼어링이 가능했던 것도 로봇기술과 자동설비 발달로 노동자 숫자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은 실업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당장 구호물자 생산과 건설, 복구로 여기저기서 사람을 구하느라 난리다.
전문가들은 지진 특수로 향후 몇 년 동안은 호황을 맞을 거라고 예측했다. 이를 계기로 산업구조나 경제지형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중요한 건 누가 그 수혜를 입느냐다.
국가적으로 보면 당연히 미국 1순위고, 그 다음으로 중국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G2로 급부상한 중국을 견제하는 만큼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우방국이고 자본과 기술력이 있다. 그런데 안전자산 선호로 엔고를 겪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당연히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 기술력도 있고, 원화가치 폭락으로 가격경쟁력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강진후가 한국인이다!
OTK컴퍼니는 미국법인이면서도, 본사는 한국에 있다. 공헌도를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OTK컴퍼니가 향후 복구산업의 키를 쥐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한국기업들은 일제히 OTK컴퍼니와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표인 강진후는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고, 부대표는 외부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장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강진후의 오른팔이자, K컴퍼니 대표 박상엽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박상엽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무나 만나지 않고 강진후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구조와 복구가 순조롭게 이뤄지는 가운데, 금융시장도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불안요소는 곳곳에 남아있었다.
첫째는 달러강세다.
향후 미국에 대규모 복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며, 신흥국들에 투자되었던 자산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때는 당연히 외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는 만큼,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신흥국 화폐가치는 하락하고 달러 가치는 올라간다.
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비슷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일본계 자금들이 일제히 본국으로 돌아오며 한동안 엔고를 겪어야 했다.
당분간은 미국이 블랙홀처럼 전 세계 돈을 빨아들이게 될 것이다.
달러가 필요 이상으로 오르면 미국 입장에서도 좋지 않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았다.
둘째는 유가상승이다.
금 가격이 상승한다고 해서 실물경제에 직접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원유는 물가상승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빅원으로 인해 서부에 있는 셰일업체들은 가동이 중단되었고, 이는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로 이어져 유가상승의 빌미가 되었다.
그동안 저유가로 고생하던 중동국가와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은 이 상황을 반기는 듯했다. OPEC이 유가상승에 편승해 공급량을 제한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로날드는 전락비축유를 시중에 내다 팔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실제로 미국은 오일쇼크 등을 거치며, 전쟁이나 수급변동 등에 대비하기 위해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의 지하 동굴에6억 배럴이 넘는 원유를 보관하고 있다.
로날드의 발언이 알려지자 줄곧 상승하던 유가는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고, 미국뿐 아니라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모든 국가들이 한숨을 돌렸다.
셋째는 원자재 가격의 폭등이다.
OTK컴퍼니는 일이 터지기 전에 원자재를 집중 매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쓴 것은 철강이었다.
일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철강은 세계적으로 공급과잉 상태였다. 업체들은 남아도는 철강을 팔 수 있다는 생각에 좋아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후 가격이 폭등하자 납품계약을 체결한 철강과 시멘트 업체들은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이미 대금을 지불했는데, 계약을 파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우리 쪽에서 파기해줄 생각도 없고.
이번 일로 금융회사들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다행히 대형 금융사들은 그전에 각종 혼란 상황에 휩쓸려 다방면으로 리스크 관리를 했기에 망정이지, 아무 준비 없는 상태에서 일이 터졌다면 리먼브라더즈 사태 같은 일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200년 전통의 베어링스은행이 파산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고베 대지진이었지.(닉 리슨이 스트래들 매도를 한 게 문제였지만)
전 세계 금융당국이 시장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신용경색과 리보금리 급등은 피할 수 없었다.
* * *
빅원이 발생한 지도 보름이 흘렀다.
연일 언론을 달궜던 생존자 구조소식도 이제는 드문드문 들려왔다. 그래도 구조대는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보름 동안 건물에 갇혀 있던 20대 여성이 구조되자, 사람들은 다 같이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난 로날드와 함께 차를 타고 근처 대피소를 돌아다녔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이재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많은 미국인들은 내 손을 붙잡으며 감사를 표했고, 난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미국은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애도, 그리고 피해와 상처를 딛고 일어설 희망으로 가득했다.
난 돌아가는 차안에서 로날드에게 말했다.
“슬슬 한국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