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02)
PAS는 원래 자동차용 대시보드와 내장재 등의 플라스틱 부품을 주력으로 하는 작은 회사였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내외 여러 부품업체들을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웠고, 그중에는 자체 에어백 개발에 나선 TKT정밀도 있었다.
창업자 탁권택의 이름을 딴 TKT정밀은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 중에서도 강소기업으로 손꼽혔다.
당시 회사규모, 매출액, 영업이익 모두 PAS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지만, 어이없게도 PAS에게 인수되었다.
비유를 하자면 새우가 고래를 집어삼킨 꼴이다. 이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떻게 인수했는데?”
“뻔한 패턴이지.”
안전벨트 제조회사 TKT정밀은 수년간의 투자 끝에 신형 에어백을 개발해냈고, 국토교통부의 안전검사도 통과했다.
그러나 에어백은 중요한 안전장비인 만큼 완성차업체들은 쉽게 협력업체를 바꾸지 않았다. 납품계약을 따내지 못해 답답해하던 그때, 은성차가 손을 내밀었다. TKT정밀에 에어백 납품을 제안한 것이다.
탁권택 사장은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만큼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신중하게 납품계약을 진행했고, 은성차에 선수금을 받은 다음 설비를 증설하고 직원을 고용해 본격적인 생산에 나섰다. 그리고 정해진 날짜에 납품했다.
문제는 이때 발생했다.
은성차 내부에서 실시한 안전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이 경우 귀책사유는 당연히 TKT정밀 쪽에 있다. 문제가 있다고 트집 잡기는 쉬워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납품대금을 받기는커녕 기존에 받은 선수금을 물어주고 계약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까지 떠안아야 할 상황이었다.
국토교통부에 문의 해봐도 기업들끼리의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는 답변만 돌아왔다.
다른 완성차업체에 납품을 알아보았지만, 은성차의 안전검사도 통과하지 못한 에어백을 납품받겠다고 하는 회사가 있을 리 없었다.
부채와 설비증설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은성차 역시 제때 에어백을 납품받지 못하며, 신차출고가 보름 이상 지연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은성차는 다른 업체를 수배하는 한편 TKT정밀에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건실한 중견기업이던 TKT정밀은 이 일로 인해 파산 위기까지 몰렸다.
이때 PAS가 인수를 제안했다. 부채와 고용을 전부 승계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탁권택 사장은 어쩔 수 없이 헐값에 TKT정밀을 PAS에 넘겼다. 헐값이라고 해도 매각대금은 3백억에 달했다.
당시 PAS는 그만한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대단히 쉽게 해결되었다.
은성차는 PAS에 직접 돈을 빌려주고 은행에 지불보증을 서줬다. 은행은 낮은 이율로 인수자금을 대출해주었고, 결국 PAS는 TKT정밀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됐어?”
“뻔한 얘기지.”
은성차는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대신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다. PAS는 에어백을 개선해(뭘 개선했는지 모르겠지만) 납품했고, 이번에는 안전검사를 쉽게 통과했다.
그때부터 PAS는 은성차에 독점적으로 에어백과 안전벨트를 공급하며 최중요 협력업체로 올라섰다. 현재도 PAS 매출에서 에어백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택규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TKT정밀을 인수하기 위해 은성차와 PAS가 짜고 사기를 쳤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겠네.”
“그래서 회사를 잃은 탁권택 사장은 언론에 제보하고 검찰에도 고소했지.”
“어떻게 됐어?”
“늘 그렇듯 언론은 침묵하고,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리며 사건을 종결시켰어.”
참고로 이런 식으로 PAS가 인수한 회사가 TKT정밀만은 아니었다. 납품을 틀어막는 방식으로 궁지에 몰아넣어 공짜로 인수한 회사도 있다.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에어백 문제로 리콜될 거라는 것.
대체 무슨 결함이 있는 걸까?
잘 모를 땐 역시 아는 사람에게 문의하는 편이 좋겠지?
“어디에?”
“카로스에.”
난 데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반갑게 내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잘 지내고 계신가요?”
[물론입니다.]“연구소는 어때요?”
[아무 문제없습니다. 차량 판매량 역시 회복되며 재고는 거의 소진되었고, 공장 가동률도 오르고 있습니다.]원래 카로스는 실리콘밸리가 본사였다. 크라이슬러와 합병하며 본사는 디트로이트로 이전하고 연구소는 남겨두었는데,빅원으로 인해 아예 연구소까지 디트로이트로 이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실리콘밸리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핵심인력들이 일부 이탈했으나, 지금은 거의 대부분 복귀했다.
왜냐하면 실리콘밸리가 통째로 사라졌기 때문이지.
연구소 이전과 미국 내의 혼란, 핵심인력 이탈 등으로 연구가 잠시 중단되었으나, 지금은 정상을 되찾았다. 신차 출시 일정이 몇 달 밀리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디트로이트에는 언제 오십니까? 직원들 모두가 대표님을 뵙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저도 다들 보고 싶네요. 안부 전해주세요.”
인사가 끝나고 나자 난 본론을 꺼냈다.
“은성차 에어백에 대한 자료 좀 보내주세요.”
[무슨 일 때문이십니까?]“기사를 몇 개 봤는데, 확인해볼 게 좀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바로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 *
다음날.
택규가 나간 사이 나는 카로스에서 보내준 자료를 훑어보았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논문이 하나 있었다.
영국 학술지에 실린 논문은 은성차 에어백의 결함 가능성을 지적했다. 작성자는 한국대 자동차학과 박필현 교수.
그는 국내외에 내로라하는 자동차 전문가로 정부에서 자동차 명인 1호라는 호칭까지 받았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박시형이 대통령이 된 뒤 명인 제도가 폐지되었기 때문이지.
국내 자동차시장이 은성차의 독점체제인 만큼 관련 전문가들은 대체로 은성차에 호의적이다. 그러나 박필현 교수는 업체를 가리지 않고 결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한 번은 은성차가 출시한 신차의 엔진룸 누수 결함을 지적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은성차는 리콜을 하는 대신 박필현 교수를 ‘업무방해’와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제품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대기업이 전문가를 고소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검찰에서 무혐의로 끝나긴 했지만, 그 이후로 국내 전문가들은 은성차의 결함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에어백의 구조와 원리에 대해 찬찬히 읽어보았다.
에어백 분사제에는 일반적으로는 테트라졸(Tetrazol)이라는 물질이 사용된다. 하지만 PAS가 만드는 에어백은 질산염 암모늄(Ammonium Nitrate)을 사용한다.
“테트라졸과 질산염 암모늄이라…….”
그 전에 분사제는 대체 뭐야?
당연하지만, 문과에서는 이런 거 안 배운다.
배터리 때문에 NCM과 LFP에 대해 공부했던 걸로 모자라, 이젠 에어백 분사제에 대해 공부하게 생겼다. 그 뒤로도 전문용어가 줄줄이 이어졌다. 몇 번을 읽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바로 문과의 한계인가?
이럴 땐 논문을 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최선이다. 박필현 교수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소개받을 수는 있겠지.
난 오랜만에 경영학과 학과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김명준 교수님.”
핸드폰 너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누구야? 내 제자이자, 미국의 영웅 강진후 아니야?]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아니에요. 영웅은 무슨.”
[네 덕에 요즘 경영학과 애들이 목에 힘주고 다니는 중이야. 캠퍼스에서 목 뻣뻣하게 세우고 다니는 애들은 다 경영학과라고 보면 돼. 어쩐 일로 전화한 거야?]난 슬쩍 말을 꺼냈다.
“자동차학과 박필현 교수님께 좀 여쭤볼 게 있어서요. 혹시 연결 좀 시켜주실 수 있나요?”
“아, 죄송합니다.”
항상 필요할 때만 연락드리는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이다.
김명준 교수님은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그보다 공짜로 소개시켜달라는 건 아니지? 이번에는 소개비 좀 받아야겠어.]“…….”
이건 농담인지 진담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혹시 얼마나……?”
[나중에 학교에서 강의 한 번하는 걸로 하자. 경영학과 애들이 널 많이 보고 싶어 해.]“예?”
[싫으면 말고. 이만 끊는다.]“아, 아닙니다. 할게요.”
[하하, 잘 생각했어. 잘 아는 교수님은 아니라서 일단 얘기해보고 알려줄게.]“예.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난 후 난 잠시 기다렸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김명준 교수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얘기해놓았으니, 지금 전화하면 돼. 소개비 잊지 마.]난 감사하다는 답변을 보낸 다음, 곧바로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바로 통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난 공손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박필현 교수님. 경영학과 강진후라고 합니다. 김명준 교수님 소개로 연락드렸는데, 통화 괜찮으신가요?”
박필현 교수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 진짜 강진후야? 이거 영광인데. 집에 가서 애들한테 자랑해도 되나?]“제가 영광이죠. 교수님 성함은 평소에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그런데 무슨 일이야?]“다름 아니라, 교수님께서 쓰신 논문을 보고 있었는데, 여쭤볼 게 좀 있어서요.”
[어떤 논문?]“3년 전에 영국 학술지에 실린 은성차 에어백에 관한 논문이요.”
[아아, 그거. 뭐가 궁금한데?]“교수님께서 문제점을 지적하셨는데, 그 내용을 좀 자세히 알고 싶어서요.”
“아…… 제가 경영학과다 보니, 사실 이런 쪽은 잘 몰라서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 하긴 나도 다른 학과 교수들 논문 보면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더라. 간략하게 설명해주자면 이런 거야. 에어백은 사고시 운전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장비인 만큼 충돌이 발생하면 바로 전개돼야 돼. 이때 사용되는 게 바로 분사제(Propellant)야. 분사제는 압축되어 인플레이터(Inflator)라는 금속 케이스 안에 들어 있다가 전기신호가 전해지는 순간 1000분의 15초 안에 터지지. 이때 발생한 가스로 인해 에어백이 부풀어 오르는 거야.]“그렇군요.”
에어백에 이런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는 줄은 몰랐다.
[에어백의 핵심이 바로 분사제야. 예전에는 소디움 아지드(Sodium Azide)를 썼는데, 요즘에는 보통 테트라졸을 사용하지. 그런데 PAS만 유독 질산염 암모늄을 사용해.]“이유가 뭔가요?”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까. 원가에서 분사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큰데, 질산염 암모늄 가격은 테트라졸에 10분의1에 불과해. 여기에 크기까지 줄일 수 있으니 더욱 효과적이지.]역시 원가절감이 목적이었던 건가?
이 에어백을 개발한 건 PAS가 아니라 TKT정밀이다. 후발주자로서 가격경쟁력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째서 다른 회사들은 질산염 암모늄으로 바꾸지 않는 건가요?”
[안전성이 떨어지니까. 에어백 분사제는 정확히 에어백을 부풀릴 만큼의 폭발만 일으켜야 돼. 그런데 질산염 암모늄은 테트라졸에 비해 대단히 불안정해. 주로 상업용 폭약에 사용되는 물질이지. 게다가 물에 닿거나 습기가 많을 경우 폭발성이 급격히 빨라질 위험도 있고.]“그럼 어떻게 되나요?”
[필요 이상의 폭발을 일으키면 파편을 날려 탑승자를 다치게 할 위험도 있어. 실제로 비슷한 사고사례도 몇 차례 있었고.]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면 리콜을 해야 하지 않나요?”
“그걸 입증할 방법은요?”
박필현 교수는 간단하게 말했다.
[직접 충돌실험을 해보면 돼. 사실 논문 쓰면서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라서. 아쉽지만 그냥 대체실험으로 만족해야 했지.]자동차 충돌실험은 차 안에 더미(Dummy)를 실은 다음 여러 사고 상황을 가정해 부딪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 번 실험에 사용한 차와 더미는 그대로 폐기해야 한다.
그런데 차 값도 차 값이지만, 더미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개당 1억이 기본이고, 비싼 건 10억이 넘는다.
제대로 실험을 진행하려면, 최소한 수십억이 필요하다.
난 박필현 교수에게 제안했다.
“그럼 이번 기회에 한 번 해보시는 게 어떤가요? 비용은 제가 대겠습니다.”
* * *
카로스 직원들은 은성차 매장을 돌며 수십 대를 사들였다.
마침 빅원으로 인해 소매판매가 줄며, 재고차량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출고는 바로 이뤄졌다. 또한 중고차시장에서도 연식과 차종별로 은성차를 구매했다.
그 차들이 향한 곳은 놀랍게도 디트로이트의 카로스 연구소였다. 그곳에서 연구진들은 은성차 충돌실험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금세 관련 업계에 알려졌다.
PAS 경영진에게 보고받은 박시형은 당황했다.
“이놈이 또 뭔 짓을 하려는 거지?”
그동안 하도 안 좋은 일을 당하다 보니, 이제는 강진후가 뭔가를 한다고만 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이다.
대체 경쟁사 차량을 사다가 충돌실험을 벌이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건 상도덕에도 어긋나는 짓인데.
박시형은 바로 은성차 한민구 회장에게 연락했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박시형의 물음에 한민구는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들었습니다, 대통령님.]“강진후가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걸까요? 혹시 알고 계십니까?”
박시형은 깜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