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13)
현주 누나는 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
“알겠지만 빅원으로 인해 손해 본 회사가 한둘이 아니야.”
나는 빅원 발생 몇 달 전부터 그 사실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내 말을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IB 중에서는 골든게이트 빼고 모두가 손실을 봤고, 헤지펀드들 역시 큰 손실을 입었다. 우리는 덕분에 100억 달러를 넘게 벌었지만.
“어떻게든 손실을 복구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오는 거지.”
공매도(Short selling)는 없는 주식을 먼저 판 다음 나중에 사서 갚는 거래기법을 뜻한다. 우리 역시 L6 사태 때 서성전자를 공매도한 전력이 있다.
공매도는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과열을 방지하고, 헤징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등 여러 순기능이 있다.
거의 모든 나라가 공매도를 허용하지만, 대다수의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에 대해 부정적이다. 심지어는 폐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만큼 문제점이 많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될 때 쓰는 투자방식이다.
공매도를 하든 안 하든 떨어질 주식은 떨어진다. 이 경우 공매도는 오히려 시장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공매도로 인해 실제가치보다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지거나, 일부러 위기를 과장하고 잘못된 정보를 퍼트려 주가하락을 유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번만 해도 외국계증권사에서는 한국시장 전체에 대해 부정적 리포트를 쏟아내는 중이다.
주가는 흔히 주인과 산책 나온 개에 비유되기도 한다. 가끔은 주인을 앞서거나 뒤서거나 해도 결국은 주인과 함께 이동한다. 이때 주인은 기업의 실제가치다.
공매도로 인해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진다고 해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본이 적고 정보가 느린 개인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사실 공매도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투자자의 접근이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예탁금만 있으면 개인투자자도 공매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사실상 개인투자자가 공매도가 불가능한 구조다.
기관과 외국인은 자본과 정보, 거래수수료 등에서 개인을 압도하고, 여기에 공매도까지 활용할 수 있다. 반면 개인은 오직 매수와 매도로만 대응이 가능하다.
만약 OTK컴퍼니가 외국계법인이 아니고 자본규모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L6 사태 당시 손가락만 빨아야 했을 것이다.
“봐서 알겠지만 시장전반에 걸쳐 공매도를 쏟아내고 있어. 은성차가 주타깃이고, 바이오와 소비재가 그 다음이라고 봐야지.”
“주도 세력이 누군가요?”
“알베르트.”
난 눈살을 찌푸렸다.
“또 걔들이에요?”
정식명칭은 알베르트 매니지먼트(Albert Managements).
자칭 행동주의 펀드이자 투자전문 운용회사지만, 실체는 벌처펀드(Vulture Fund)에 가깝다. 위험에 처한 기업을 대상으로 수익을 노리고 달려드는 모습이 시체를 뜯어먹는 독수리 같다고 해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
주로 하는 일은 부실기업이나 부실채권을 헐값에 인수해 다시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투자의 범주니, 뭐라 할 건 아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한다.
유명한 일화로는 1996년 페루 국채를 사들여 국외로 도피한 전 대통령의 전용기를 압류하는 방식으로 다섯 배를 받아냈고, 콩고 국채를 헐값에 사서 콩고정부가 국제사회에 받은 빈곤 지원금까지 뜯어 상환 받았다. 그리고 2002년 아르헨티나 모라토리움 당시에는 20억 달러가 넘는 국채를 헐값에 사들인 후 미국법원에 제소하고 외국항구에 정박 중인 아르헨티나 해군 선박을 압류시키는 등 온갖 방법을 써서 원금과 이자를 전부 받아내 400퍼센트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투기적 행태에 비난을 퍼부었지만, 알베르트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불법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실제로 합법이긴 했다. 하는 짓이 쓰레기 같아서 그렇지.
“알베르트 자산규모가 얼마나 되죠?”
“400억 달러.”
난 깜짝 놀랐다.
“언제 그렇게 늘었어요?”
“창업 이후 연평균 수익률이 16퍼센트야. 최근 수익률만 놓고 보면 20퍼센트고. 이 정도면 투자자들이 돈 싸들고 달려들 만하지.”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들쑤시고 다니는 중이다.
현주 누나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시장이 괜찮게 보인 모양이야. 금융시장 규모에 비해 개방도가 커서 돈을 투자하기 쉽고, 빼기는 더 쉬우니까.”
그동안 한국증시가 외국계 자본에 의해 휘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서성전자조차도 얼마 전 반도체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메릴린치 리포트로 인해 하루 동안 5퍼센트 폭락했다.
며칠 만에 다시 회복되긴 했지만, 그 사이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익을 봤다.
“이번에는 은성차를 타깃으로 잡은 건가요?”
“자동차주는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니까.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리콜 사태까지 터졌으니 타깃이 될 만도 하지. 금융위기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잖아. 자동차주 공매도 하면 뭐 생각나는 거 없어?”
바로 생각났다.
“폭스바겐 공매도 사태요?”
엘리 역시 같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황당한 사건이었죠.”
택규 혼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뭔데?”
“금융위기 때 있었던 일이야.”
금융에서 일어난 각종 사고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건 꽤나 큰 사건이라서 당시 뉴스에도 많이 났다. 난 어렸을 때라서 나중에 알았지만.
2008년은 자동차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차는 집 다음으로 큰 자산. 금융위기로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차를 새로 사려는 사람은 없었고, 자동차판매량은 곤두박질쳤다.
자동차주는 속절없이 폭락했고,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때문에 헤지펀드들은 자동차주를 타깃으로 삼고 공매도를 쏟아냈다.
폭스바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폭스바겐은 포르쉐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200유로이던 주가가 단기간에 400유로로 급등한 상태였다.
누가 봐도 주가는 실제가치보다 고평가 되어있었다.
헤지펀드들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그들은 일제히 폭스바겐 주식에 공매도를 퍼부었다.
약 한달 동안 전체주식의 12퍼센트를 공매도로 팔아치웠고, 사용한 실탄만 100억 유로가 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폭스바겐 주가가 반토막 났어.”
“그럼 헤지펀드가 이긴 거 아니야?”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
이제 폭락한 주식을 매수해 공매도를 상환하고 엄청난 수익을 챙겨서 떠나기만 하면 끝이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어.”
“무슨 문제?”
현주 누나가 말했다.
“포르쉐홀딩스가 폭스바겐 지분을 42.6퍼센트 취득했다고 공시를 냈거든. 그리고 콜옵션을 이용해 연내에 50퍼센트, 내년까지 74.1퍼센트까지 지분을 늘리겠다고 밝혔어.”
엘리가 설명을 덧붙였다.
“폭스바겐 주식의 20.1퍼센트는 본사 소재지 니더작센주의 소유예요. 이는 시장에 나올 리가 없는 매물이죠.”
둘 다 퍼센트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금융권 사람들이 이런 얘기 참 좋아하지.
난 계속 설명해주었다.
“생각해봐. 포르쉐가 폭스바겐 지분을 74.1퍼센트까지 확보하고, 여기에 니더작센주가 보유한 20.1퍼센트를 더하면 94.2퍼센트야. 그럼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은 고작 5.8퍼센트에 불과하지. 그런데 헤지펀드들은 12퍼센트를 공매도 했단 말이야.”
택규는 눈을 껌뻑였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을 전부 사들인다 하더라도 숏커버링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는 거지.”
어떻게든 포르쉐가 지분을 더 늘리기 전에 폭스바겐 주식을 사들여서 공매도를 상환해야 한다.
포르쉐의 공시가 나간 뒤.
장이 열리자마자 헤지펀드들은 닥치는 대로 폭스바겐 주식을 사들였다.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어.”
갑작스런 주가폭등으로 폭스바겐은 독일 우량기업을 모아놓은 DAX30지수에 편입되었다. 이렇게 되자 기관투자자들마저 주가가 더 오르기 전에 매입에 나섰고, 인덱스펀드와 프로그램매수까지 가세했다.
사려는 사람들은 많은데 물량은 씨가 말랐다.
폭스바겐 주가는 하루만에 150퍼센트 급등해 500유로가 넘었고, 다음날에는 1000유로를 넘었다.(독일증시는 상하한가 제도가 없다)
단 이틀 만에 4배가 넘는 폭등이었다.
시가총액 역시 4배 이상 늘며, 폭스바겐은 당시 부동의 1위였던 엑손모빌을 제치고 전 세계 시총 1위 기업으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생각해보면 기가 막힐 일이지. 신제품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판매량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모든 게 그대로인데, 투기세력의 장난질에 시가총액만 4배가 늘어난 것이다.
결국 포르쉐가 매입계획을 철회하며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사이 포르쉐는 신나게 폭스바겐 주식을 팔아 치웠다.
다른 자동차회사들이 순이익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포르쉐의 2008년 순이익은 전년대비 50퍼센트가 늘었다. 설마 차를 잘 팔아서 이런 수익을 냈겠나?
반면 공매도에 나선 헤지펀드들은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고 물러났다. 그리고 공매도에 가담했던 독일 5위 부자 아돌프 메클레는 철도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정부든 개인이든 헤지펀드의 공매도에 이를 갈던 때였기에 대부분 꼴좋다는 반응이었다.
“헤지펀드들이 작정하고 공격하면 시장이 당해내기 힘들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골든게이트 역시 비슷한 일을 많이 해왔고.”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제조업강국. 당장 CES만 가봐도 한국제품들 천지다. 지나친 대기업중심과 수출주도형 경제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지만, 어쨌거나 서성전자나 은성차 같은 대기업들의 활약 덕분에 매년 막대한 경상수지를 벌어들이며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선전하는 산업자본과는 달리 금융자본의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다.
현주 누나는 한숨을 쉬듯 말했다.
“한마디로 산업으로 돈을 벌어서 금융으로 뜯기고 있는 셈이지.”
투자해서 배당이나 매각차익을 얻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투기적 행태로 돈을 빼가는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게 문제다.
엘리도 한마디 했다.
“투기자본이 한국시장에서 먹튀 논란을 일으킨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IMF 당시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외국자본에 헐값에 팔려나갔다.
가장 잘 알려진 사건으로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먹튀가 있다. 그 뒤를 이어 칸라인그룹이 비슷한 방식으로 HB은행을 먹튀했다.(이걸 성공시킨 사람이 바로 RCK브로스의 류철균 회장이다)
타이거펀드는 SSK텔레콤을 상대로 지분경쟁을 벌여 6300억을 먹튀했고, 이후 소버린은 SSK지주사를 상대로 경영권 탈취를 시도해 또다시 9000억 먹튀에 성공했다.(두 번이나 털릴 정도면 총수일가의 잘못과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의심해 봐야 하지 않나?)
그리고 칼 아이칸은 KT&G 지분을 매입해 경영에 간섭하는 방식으로 1500억을 먹튀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으로 먹튀 사례를 다 열거하자면 책 몇 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다.
반면 한국자본이 외국시장에서 먹튀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가장 큰 성공사례를 하나 꼽자면 브렉시트 당시 OTK컴퍼니가 영국과 일본 외환시장에서 먹튀한 일이랄까?(그런데 정작 OTK컴퍼니는 미국자본으로 분류된다)
“투기자본이 보기에 한국은 만만한 시장이니까요.”
택규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무슨 먹튀 공화국도 아니고.”
빅원으로 인해 소비심리가 줄어 경제가 위축되며 수출비중이 큰 한국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헤지펀드가 작정하고 공매도를 쏟아내며 증시하락과 환율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시총 비중이 가장 큰 서성전자가 버텨서 이 정도지, 서성전자를 제외하고 보면 증시 하락률은 더욱 커진다. 그 서성전자조차도 오른 환율을 감안하면 20퍼센트 떨어진 셈이다.
게다가 하필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대통령이고, 정권교체기에 문제가 터지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다. 은성차 역시 리콜과 한민구 회장 퇴임, 경영권 승계 문제가 겹치며 어수선한 상태고.
그 점을 알기에 헤지펀드들이 작정하고 이런 짓을 벌이는 거겠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하청업체들과 개인투자자들만 죽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높으신 분들이 문제를 일으켜도, 피해를 입는 건 서민들이다.
헤지펀드들이 막대한 수익을 챙겨 시장을 떠날 때쯤에는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고, 부품업체들은 줄도산한 뒤겠지.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투기자본을 직접 규제할 수도 없다. WTO나 ISD(투자자국가간직접소송제도) 등의 문제 때문이다.
실제로 론스타의 경우, 먹튀를 한 것도 모자라 한국정부의 매각승인 지연으로 손실을 입었다며 ISD에 제소했다. 그렇게 이익을 보고도 배상금까지 알뜰하게 챙겨가겠다는 것이다.
개새끼들…….
사실 투기자본을 가장 잘 상대할 수 있는 것은 투기자본이다. 포르쉐가 지킬 생각도 없는 허위공시를 내서 헤지펀드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처럼.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얘들 엿 먹일 좋은 방법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