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23)
임진용 회장이 말했다.
“그동안 한국 대기업들은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나오면 재빨리 뒤를 따라가는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쯤부터는 중국이 이런 방식으로 선진국들을 빠르게 쫓아오는 중이지요.”
문제는 도가 지나쳐 카피캣으로 악명 높다는 것이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유명 고급차의 디자인과 기술을 대놓고 베껴서 내놓았고, IT업체들 역시 엔플과 서성전자를 베꼈다.
그걸 막기 위해 특허라는 게 존재하지만, 중국기업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특허를 침해당한 기업이 항의를 해도 중국정부는 자국기업의 편을 들어주었다.
중국이 이런 식으로 나올 수 있는 이유는 거대한 내수시장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를 무시해 연구개발비를 아끼고,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수시장을 장악한다. 그 다음 덩치를 키워 외국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하나의 패턴이다.(이때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충분히 특허를 확보한 상태다)
“하드웨어야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겠지만, 품질은 흉내 낼 수 없을 테고. 설사 똑같이 베낀다 한들 단가는 못 맞추지 않겠어요?”
엔플이 경쟁사인 서성전자에 부품을 주문하는 이유는 그만한 품질의 제품을 그 가격에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서성전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정부가 지원에 나선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중국정부는 자동차굴기를 선언하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자국기업을 키우기 위해 외국기업 진출시 현지회사와 합작사 설립을 강제하고, 자국기업이 만든 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주고, 한국기업들의 배터리는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각종 꼼수를 쓰기도 한다.
그래도 중국 내수시장이 워낙 넓으니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난 피식 웃었다.
“어차피 핵심은 데이터잖아요.”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구블에서 매일 검색을 하고, 그 데이터는 고스란히 구블의 자산이 된다. 이는 PC OS시장의 MS, 온라인쇼핑시장의 AMZ, SNS시장의 페이스노트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면, 경쟁자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계속 격차를 벌릴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업체들이 수백 대의 실험차로 데이터를 수집할 때 카로스는 시중에 판매한 수십만 대의 자동차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업체들이 쫓아오기 힘든 일종의 해자 역할을 하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기술은 얼마든지 베낄 수 있어도 데이터는 경험을 통해 채득하는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열심히 베끼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있는 위치까지 오게 될 것이다.
“따라 잡히지 않으려면 열심히 뛰어야겠네요.”
임진용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께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혁신과 성장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야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자면 뒤처진다고 했는데, 이제는 졸면 끝장입니다.”
그만큼 과거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산업흐름이 빨라졌다.
난 웃으며 말했다.
“붉은 여왕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역시나 그는 바로 알아들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말이죠.”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본업은 수학교수이자 수학자다.(유명한 사진가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그가 쓴 책에는 수학과 논리에 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게 바로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s Hypothesis)다.
붉은 여왕은 제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 달려야한다. 이는 주위의 모든 것들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달려야 한다.
경영학에서는 기업은 발전이 없으면 퇴보하고,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실제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뒤로 처져 몰락해 사라진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부품생산에는 별 문제 없나요?”
“카로스가 요구하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 수원공장에서 열심히 생산 중입니다.”
사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아무리 잘 팔려봐야 생산량이 받쳐주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그 사이 다른 경쟁사가 치고 들어올 수도 있는 거고.
다행히 카로스나 서성전자나 적기에 투자를 해놓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부랴부랴 공장 짓는다 설비 증설한다 난리였겠지.
“선물로 드린 차는 잘 타고 계신가요?”
“그럼요. 둘 다 아주 마음에 들어 해요.”
엘리는 페라리를 어찌나 아끼는지 직접 손세차까지 한다.
현주 누나는 주로 비서가 운전하는 S클래스 마이바흐를 타고 다니지만, 가끔은 퇴근 후 아벤타도르를 몰고 드라이빙을 즐긴다.
이런 걸 보면 좋은 차는 사람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모양이다. 우리도 그런 차를 만들어야겠지.
잠시 후, 한 사람이 회장실로 올라왔다.
임진용 회장은 나에게 그를 소개시켜주었다.
“이번에 전장부문을 맡게 된 유명호 사장입니다.”
나이는 약 50대 초반. 작은 체구에 시원하게 벗겨진 머리가 인상적이다. 반면 옆머리는 비교적 풍성했다.
“유명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진후 대표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우리는 악수를 나눴다.
전장부문은 카로스와 직접 협력하는 만큼 앞으로 얼굴 볼 일이 많을 거다.
“식사하러 가시죠. 구내식당 어떻습니까?”
“좋아요.”
안 그래도 한 번 구경하고 싶었다.
서성그룹 구내식당은 웬만한 전문음식점 못지않기로 유명하다. 기업들이 구내식당에 신경 쓰는 것은 요즘 추세기도 하다. 직원복지도 복지고, 맛있게 먹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구내식당이 잘 되어 있는 회사일수록 생산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우리는 같이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서성타운은 총 네 개 동으로 이뤄져 있고, 지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 전자를 포함한 계열사 직원 약 2만5천 명이 근무한다. 마침 딱 점심시간인지라 식당은 이미 직원들로 붐볐다.
우리가 등장하자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직원들이 회장 볼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도 구내식당에서.
당연히 내 얼굴도 알아봤다. 직원들만 있는 만큼 폰을 꺼내 사진을 찍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몰래 찍는 놈들이 있겠지만.
메뉴는 한식, 일식, 양식, 중식 등 다양했다.
“가격은 얼마인가요?”
“직원들은 무료입니다. 업무 때문에 방문한 협력업체 직원들은 5천 원. 외부인은 받지 않습니다. 주변상권에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요.”
“…….”
그럼 나도 5천 원을 내야 하는 건가?
임진용 회장은 지갑을 꺼내들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밥은 제가 쏘겠습니다.”
우리는 식판을 들고 줄을 섰다. 아무리 바쁘신 회장님이라도 밥 먹는 순서는 지켜야지.
임진용 회장은 자연스럽게 줄 앞뒤에 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회사생활하며 힘든 점은 없나요?”
그러자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없습니다.”
“너무 즐겁습니다.”
“상사 분들이 다들 잘해주십니다.”
문득 군시절 우리 대대에 방문한 사단장이 이병이던 나에게 군 생활 힘든 점 없냐고 물어봤던 게 생각난다.
그때 나도 똑같이 대답했었지.(사실 ‘지금이 가장 힘듭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전에도 느꼈지만, 임진용 회장은 의외로 이런 깜짝쇼를 좋아하는 듯하다.
택규 말로는 관종끼가 좀 있는 것 같다는데…… 진짠가?
우리는 먹고 싶은 음식을 담아서 빈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여기 자리 있나요?”
“예. 앉으…… 헉!”
밥 먹으며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직원은 임진용 회장을 보고는 입 안에 있던 밥알을 뿜어낼 뻔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식사했다.
주변에 있는 직원들은 다들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은 표정이다. 그렇다고 먹다 말고 일어나는 건 더 이상하겠지.
그래도 분위기가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다들 신기하다는 듯 우리에게 슬쩍슬쩍 시선을 보냈다.
난 밥을 먹으며 직원들을 관찰했다. 대부분 20~40대 정도의 젊은 직원들이고, 내 또래로 보이는 신입사원들도 보였다.
남자들이야 군대 때문에 이제 슬슬 취업문을 두드리겠지만, 여자동기들 중에는 이미 취업한 애들도 여럿이다.
“왜 그러십니까?”
“택규가 아니었다면, 저도 어딘가에 취직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임진용 회장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대 기업의 CEO가 되셨죠.”
구내식당을 가득 메운 직원들을 보니, 새삼 기업이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지 알 것 같다.
산업은 금융에 비해 고용 유발효과가 크다.
OTK컴퍼니 정직원은 수십 명에 불과하지만, 지분을 소유한 종속회사들을 통해 수만 명을 고용한다.
얼굴 한 번 못 본 사람들의 생계가 내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 * *
우리는 그랜드데이턴호텔 로얄 스위트룸을 빌려 작은 파티를 열었다.
하루 숙박비만 무려 1500만 원이다. 그래도 골든게이트에서 잡은 거라 30퍼센트 할인 받았다.
내가 아르망 드 브리냑을 따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우리는 샴페인잔을 가득 채운 다음 건배했다.
한쪽에는 호텔에 주문한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었고, 택규가 따로 피자와 치킨을 주문했다.
현주 누나는 담배를 피우며 물었다.
“여기저기서 상장을 기대하는 눈치던데. 생각 없어?”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상장을 꿈꾼다. 한때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엔플, 구블, 페이스노트도 상장하며 거대 기업으로 거듭났다.
상장을 하는 이유는 비상장일 때에 비해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자금을 끌어 모으기 쉽기 때문이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장을 하게 되면 투자자들 보호를 위해 재무제표, 분기별 실적, 투자 계획 등을 투명하게 공시해야한다.
“굳이 그럴 필요 있겠어요?”
신차의 성공으로 자금흐름도 원활하고, 개발비용도 충분하다. 만약 돈이 더 필요하면 채권을 발행하면 되지, 굳이 상장을 택할 이유는 없다.
“카로스를 나스닥에 상장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내 질문에 현주 누나가 말했다.
“지금 분위기면 2천억 달러는 받을 수 있겠지.”
8800만 달러에 사들인 기업이 몇 년 만에 2천억 달러가 되었다. 물론 그 사이 수백억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난 다시 물었다.
“OTK연구소에서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에 성공한다면요?”
현주 누나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건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데. 일단 3천억 달러는 확실히 넘겠지.”
1년에 10만 대도 못 파는 니콜라가 수백만 대를 파는 GM의 시총을 뛰어넘은 것은 향후 전기차시장의 패권을 장악하게 될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만큼 전기차시장이 가진 잠재력이 크다.
현재 전기차 판매량은 내연기관차량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세기를 이끌었던 내연기관차의 종말은 이제 시간문제다. 그리고 그 시기는 모두의 예상 더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다.
경쟁자는 한둘이 아니다. 이전까지 카로스에 대해 신경도 안 썼겠지만, 이제부터는 견제가 본격화될 것이다.
난 샴페인을 마시며 말했다.
“누가 승자가 되느냐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겠죠.”
* * *
한창 바쁜 와중에 반가운 얼굴들이 OTK컴퍼니 본사를 찾아왔다.
바로 페이스잇 CEO 토비 스트롱과 COO 제라드 베이컨이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토비는 능글맞게 말했다.
“걸어오면서 봤는데, 한국에는 미녀들이 많네요. 놀랍습니다.”
둘이 본사를 방문한 건 처음이다.
일본에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것이다. 출장 이유는 일본 AV업체들과의 미팅 때문이다.
이번에 J1, SOB, ECC, 모디즈 등을 만나 컨텐츠 공급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페이스잇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포르노시장의 최강자로 부상했다. 그래서인지 그쪽에서는 둘을 환영하기 위해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냥 파티도 아니고, 풀장을 통째로 빌려 비키니 입은 AV배우들 수십 명과 함께 여러 게임을 하며 노는 풀파티였다.
왠지 둘의 표정이 매우 행복해 보이는데, 그 때문인가?
이 사실이 알려지자 둘은 또다시 양덕(?)들의 우상으로 등극했다.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더니…….
난 둘에게 물었다.
“카인포테인먼트는 어떻게 되가나요?”
자율주행은 사람을 운전에서 해방시킨다. 운전자는 이동하는 시간동안 즐길거리가 필요하고, 그게 바로 카인포테인먼트다.
현재 페이스잇은 포르노산업에서 쌓은 노하우를 통해 카인포테인먼트 쪽으로 진출을 준비 중이다.
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컨텐츠업체들과 협의하며 차근차근 진행 중입니다. 그보다 자금을 지원받고 싶습니다.”
“무슨 일로요?”
페이스잇의 매출과 이익은 계속 증가세에 있다. 하지만 번 돈은 자체 포르노 제작과 VR포르노 제작에 다시 재투자 되었기에 유보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댄싱래빗을 인수하려고 합니다.”
“그게 뭐하는 회사인데요?”
내 물음에 토비와 제라드는 당황했다.
“두 분 다 그 유명한 회사를 모르십니까?”
“설마 제품을 써본 적도 없으십니까? 거기 제품 좋은데.”
“그러니까 뭐하는 회사인데요?”
토비가 말했다.
“미국 성인용품 2위 기업입니다.”
“아…….”
성인용품 회사를 인수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