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50)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소비에트연방이 몰락하며, 세계의 패권은 미국이 차지했다.
세계경제는 미국과 미국통화인 달러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미국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확고부동한 위치에 있었다.
그나마 무릎까지라도 추격했던 것은 일본이 유일하다. 하지만 너무 가깝게 따라붙은 나머지 강제로 플라자 합의(Plaza Agreement)를 맺었고, 이후 부동산 버블붕괴로 박살났다.
90년대에 들어서는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했지만,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중국은 드넓은 대륙과 자원, 15억이 넘는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하여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몇 년 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GDP 2위를 차지하며, 당당하게 G2로 올라섰다.
후발주자인 중국은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위해 전형적인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을 취했다.
이를 위해외국기업이 중국에 진출시 반드시 자국회사와 합작사를 세우도록 강제했다.
첫째 목적은 외국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을 자국기업과 나누게 하기 위함이다. 그냥 들어와서 돈만 챙기게 두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목적(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다)은 바로 합작을 통한 기술력 습득이다.
기술력이란 단지 특허 몇 개가 아니라 기업이 오랜 기간 쌓아올린 문화의 총체다. 현지기업 입장에서는 같이 공장을 운영하고 제품을 유통하며, 글로벌 기업이 가진 노하우를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설명을 들은 택규가 물었다.
“배우는 게 아니라 베끼는 거 아니야?”
“뭐, 그렇긴 하지.”
“그걸 알면서도 왜 중국에 진출하는 거야?”
“그만큼 내수시장이 크니까.”
어느 기업이라도 15억나 되는 시장은 포기하기 힘들다.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합작사를 세우는 것이다. 당장은 돈을 벌 수 있으니 좋지만, 문제는 그 후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에비앙 생수로 유명한 프랑스 식품기업 다농의 경우 중국에 진출하며 현지 식품기업인 와후후와 합작사를 세웠다. 그런데 다농의 기술력을 습득한 와후후가 다른 법인을 만들어서 자체 상품을 판매했고, 그로인해 분쟁이 생겨서 소송전까지 벌어졌다.
중국법원은 당연히 자국기업의 편이다. 싸워봐야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다농은 결국 와후후에 지분을 전량매각하고 철수했다.
좋게 보면 차익을 실현하고 떠난 거지만, 나쁘게 보면 단물 다 빨리고 쫓겨난 셈이다.
비슷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어느새 덩치를 키운 중국 현지기업들은 외국기업들의 지분을 인수하거나, 중국시장에서 쫓아내고 있다.(야심차게 진출했던 국내 대기업들 역시 하나둘씩 발을 빼는 중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제품이라고 하면,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오죽하면 폭탄 빼고는 다 터진다는 농담도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다 옛말이다. 대기업으로 성장한 중국기업들은이제는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첨단기술 분야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율주행과 전기차로 대표되는 미래차고.
임진용 회장이 말했다.
“중국에 배터리 공장을 지으라는 압박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OTK배터리를 중국에서 생산하기만 하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중국기업과 합작사를 세우라는 얘기죠?”
“물론입니다.”
중국에 합작사를 만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술력을 빼가려 들 것이다. 사람 한두 명 빼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확실한 방법이겠지.
자율주행차에 이어서 배터리까지. 뭐 이렇게 우리에게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안 한다고 하면요?”
“중국은 한국업체들이 생산한 NCM배터리에 대해 보조금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수시장에서 배제시켰습니다. 만약 중국에 합작사를 세우지 않는다면, OTK배터리는 인증을 받는 것조차 어렵게 될 가능성도 큽니다.”
이는 중국 내에서는 전기차뿐 아니라 다른 전자기기에도 OTK배터리를 탑재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OTK배터리는 이미 소형배터리부터 상용화를 시작했다. 모듈을 제작해 테스트 중이라고 하니, 조만간 자동차용 배터리팩이 만들어질 것이다.
가격은 현재 기존 배터리보다 비싸지만, 용량은 두 배에 총전속도는 네 배다. 생산라인만 정비되고 대량생산에 들어가면 가격도 더 낮아질 테고.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둘 중 하나입니다.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협상해 중국시장에 빨리 진출하거나, 아니면 중국을 제외한 다른 시장을 장악하며, 기술격차를 더 벌려야합니다.”
물론 어느 쪽을 택하든 중국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겠지.
짝퉁 레고에서 시작된 얘기가 점점 복잡해진다. 특허를 무시하는 나라를 상대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다.
“그 문제는 좀 생각해봐야겠네요.”
임진용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기차 출시와 생산을 서두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배터리 생산은 슬슬 준비되었으니까요.”
“저도 같은 생각이긴 한데…….”
개발이 더디게 진행되는 게 문제다. 이러다가 해를 넘기게 생겼다.
임진용 회장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은성차와 협력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요즘 사정이 안 좋은 모양인데.”
“은성차요?”
“카로스만으로는 북미와 유럽시장 물량을 대기도 힘들 겁니다. 아시아시장 파트너로는 고려해 볼만 하지 않겠습니까?”
서성그룹은 미래차를 차세대먹거리로 점찍었다. 때문에 그동안 반도체로 번 돈을 지속적으로 전장과 배터리에 쏟아 부었다.
누가 만들든 자율주행차와 전기차가 많아지면,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여기에 반도체 수요도 함께 증가하니, 서성그룹 입장에서는 꿩 먹고 알 먹고다.
택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얘 은성차 싫어해요. 그치?”
“뭐…….”
그 순간, 내 눈앞에 뭔가가 떠올랐다.
* * *
한찬영은 은성차그룹 본사에서 회의를 열었다. 각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이 회의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들 표정이 어두웠다.
먼저 경영보고가 시작됐다.
“북미와 유럽에서 매출이 계속 하락 중입니다. 적자 폭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빅원 이후 세계경제가 큰 충격을 받으며 자동차 판매량은 저점을 찍었지만, 지금은 점차 회복세를 띠고 있다.
생각해보면 지진으로 타격을 받은 것은 캘리포니아의 일부 지역일 뿐이다. 미국의 경우 오히려 대재난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냈다는 자신감과 향후 호황에 대한 기대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판매량이 늘고 있는 다른 완성차업체들과는 달리 은성차의 판매량은 계속 줄어들었다.
이유는 당연히 에어백 리콜 사태 때문이다.
지금이야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매출 하락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지속적인 영업이익률 하락이다. 은성차가 한창 잘나갔을 때는 영업이익률이10퍼센트가 넘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간신히 7퍼센트를 유지했는데, 작년에 에어백 리콜사태가 겹치며 3퍼센트까지 하락했다. 그리고 1/4분기는 에어백 리콜과 출고적체가 겹치며 대규모 적자를 봤다.
한찬영 입장에서는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그룹을 물려받게 된 셈이다. 한민구의 퇴임이 예상보다 빠르긴 했지만, 다행히 그전부터 경영권승계를 준비해오고 있었다. 한찬영은 빠르게 그룹내부를 수습하고 인사혁신을 단행했다.
선대 회장을 따랐던 일부 사장과 임원들은 자리를 놓고 물러났고, 그 자리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토요타는 급발진 사태를 겪고도 살아남아 재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따지고 보면 에어백 불량은 급발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은성차는 여전히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자동차그룹이고, 위기를 극복할 만한 충분한 저력이 있다.
한찬영은 신차 출시계획을 앞당겨 소형차 2종과 중형차 1종을 내놓았다.
각종 신기술과 안전장치를 탑재하며 원가가 크게 올랐지만, 이익률 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동일한 가격에 출시했다.
당장 이익을 내는 것보다 중소형차부터 다시 차근차근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나겠다는 계획이다.
다행히 시장 반응은 좋았다. 가성비 좋은 차라는 입소문이 났고, 해외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에어백 리콜 이슈에서도 벗어나며 판매량은 점차 증가세였다. 일부 차종은 물량이 부족해 몇 개월 대기해야 할 정도다.
그런데…….
권환용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현재 평택공장, 전주공장, 울산1공장과 2공장에서 노조가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찬영은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또 파업인가…….”
어차피 매년 벌어지는 일이라 그다지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은성차 노조는 12년 연속 파업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중간에 한 해 쉰 걸 빼면, 또다시 7년 연속으로 파업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심각했다. 가뜩이나 회사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친 상태에서 계약된 물량이 제때 출고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작년에 GM이 국내공장이 하나를 폐쇄했음에도 은성차 노조는 아무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은성차는 GM과는 달리 한국공장을 폐쇄하기 힘든 구조다.
꼭 국내생산을 고집할 필요 없이 해외공장에서 생산해 들여오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노사협약에 따라 해외 생산물량을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노조가 동의해줄 리 없다. 결국 전면파업이 벌어지면, 내수판매는 자연히 올스톱된다.
한찬영은 권환용 부회장에게 물었다.
“임단협은 어떻게 진행 중입니까?”
“임금인상 부분은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다른 조건들이 문제입니다. 회사 쪽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노조위원들과 계속 얘기 중이긴 합니다만,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태도가 더욱 강경합니다. 다음 협상 때까지 요구안이 전부 관철되지 않으면 모든 공장이 전면파업에 돌입하겠다고 합니다.”
파업이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이는 협상이 결렬됐을 때 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지, 최선의 수단은 아니다.
그런데 은성차 노조는 파업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요구조건을 안 들어주면 일단 파업부터 하고, 그 다음 협상을 시작한다.
윤수환 사장이 물었다.
“회사사정이 어렵다고 얘기는 해보셨습니까?”
“얘기해봤는데, 노조 측에서는 경영실패 책임을 왜 노동자에게 전가하느냐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경영성과가 좋을 때는 노동자도 함께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더니, 경영성과가 안 좋아지니 갑자기 말이 바뀌는 건 뭔 경우인가?
은성차 노조는 이 모든 게 오너일가의 잘못된 경영에서 비롯되었다며, 한찬영의 퇴진과 전문 CEO 도입을 주장했다.
이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CEO마저 갈아치울 기세다.
이쯤 되면 노조인지 주주인지도 모르겠다.
국내공장을 폐쇄할 수도 없고, 해외에서 물량을 들여올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내수마저 문제가 생기게 놔둘 수는 없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배민성 부회장이 말했다.
“그렇다고 정말로 전면파업을 하겠습니까? 지금 회사가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노조도 잘 알고 있다면서요?”
권환용 부회장은 딱 잘라 말했다.
“반대입니다.”
“반대라니요?”
“오히려 회사가 위기인 만큼 파업을 강행해 요구조건을 들어달라고 압박할 겁니다.”
그는 판매영업사원으로 입사해, 노무관리지원담당과 평택공장장을 거쳐 현재는 은성차그룹의 노무관리와 국내생산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그런 만큼 노조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생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은 노조가 회사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결코 쉽게 놔주지는 않을 것이다.
은성차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결국 한 사람과 연결된다.
‘이것도 저것도 다 강진후 때문인가?’
현재 카로스의 판매대수는 10위는커녕 2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기업 가치는 이미 은성차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만큼 미래차 경쟁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찬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원인이 있는 곳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