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86)
노벨평화상은 아무래도 평화라는 개념 자체가 주관적이고 모호하다보니, 매년 수상에 논란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노벨화학상은 학계와 대중들 누구나 인정할 만한 업적과 성과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각종 첨단제품으로 먹고 살지만, 정작 단 한 명의 과학 분야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후보도 제대로 못 냈다.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김호민 교수가 유력한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오! 노벨화학상! 드디어 과학 분야 수상자가 나오는 건가?
-어차피 김호민 교수를 지원한 것도 강진후 아니야?
-지금은 OTK연구소 소장으로 있지.
-이번에 둘 다 노벨상 타면, OTK컴퍼니가 두 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는 건가?
-장하다. 오타쿠컴퍼니! 한국기업인 게 자랑스럽다.
-거기 미국기업 아님?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한국인이 탄다는 게 중요하지.
-이정혜 의원님께서 어떤 겐세이를 놓을지 너무 기대된다.
자유국민당 몇몇 국회의원들은 내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서 경기를 일으켰지만, 김호민 교수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반면 새정치당은 논평을 내며 환영했다.
“새정치당은 김호민 교수의 노벨화학상 수상을 기원합니다. 이는 대한민국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인 동시에 한국의 기초과학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쾌거이기도 합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그리고 중진의원들은 김호민 교수를 만나겠다며 연락도 없이 연구소로 쳐들어갔다.
얼떨결에 그들을 맞이한 김호민 교수는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은 뉴스와 신문을 도배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초선의원들은 단체로 한국대와 OTK배터리를 생산하는 서성SB 공장을 방문했고, 일부 의원들은 ‘기초과학 진흥을 위한 지원과 투자에 관한 법’, 일명 ‘김호민법’을 앞 다투어 발의했다.
관계자들 의견을 수렴해서 만든 것도 아니고, 적당히 여기저기서 짜깁기해서 급하게 만든 법안이 제대로 된 내용일 리 없다. 국회의원들 중 의사와 변호사 출신은 많아도 과학자가 없다는 것도 문제고.
과학계는 기가 차다는 반응이었다.
그동안 지원해달라고 사정사정할 때는 모른 척하더니, 이제 와서 말 같지도 않는 법률에 김호민 교수의 이름을 붙여가며 이슈에 편승하기 위해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택규는 기사를 보며 말했다.
“아니, 지들이 한 게 뭐가 있다고 남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나?”
“…….”
내가 이래서 정치인을 싫어한다. 그래서 악수하고 사진 찍자며 찾아온 정치인들을 전부 돌려보냈다.
국내언론사와 외신들은 OTK컴퍼니로 몰려왔다. 한 회사에서 동시에 노벨상 수상자 둘이 나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
인터뷰 요청도 쏟아졌지만, 나와 김호민 교수 모두 거절했다. 정기홍 팀장이 공식 보도자료를 냈을 뿐이다.
직원들도 들뜬 분위기였다. 상 타면 보너스라도 줘야 하나?
또 하나 신이 난 곳은 바로 한국대. 이유는 당연히 나와 김호민 교수 둘 다 한국대 출신이기 때문.
한 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 둘을 배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
* * *
각종 이슈를 가장 잘 맞추는 기관은 어디일까?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이나, 리서치 기관이 아닌 바로 온라인 베팅사이트다.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온갖 주제를 가지고 베팅을 한다.
경마나 경륜은 물론 날씨, 스포츠, 선거나 투표결과 등등. 여기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누가 될지도 포함된다.
사실 전문가의 의견이라는 것은 냉철한 판단으로 도출해낸결과이지만,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본인이 속해있는 기관, 후원하는 단체, 정부의 입김 등의 외부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익명으로 베팅하는 도박사이트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택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지. 그러나 누구도 자기 돈을 걸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
베팅사이트에 따르면, 나와 로날드 대통령, 모한 교수의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은 거의 확실했고, 김호민 교수의 수상확률은 약 50퍼센트 정도였다.
난 택규와 함께 OTK연구소로 향했다. 근처에 도착하자 눈에 띄는 것은 곳곳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었다.
지역 정치인들이 건 것도 있고, 일반 시민들이 돈을 모아 걸어놓은 것도 있다.
“이 나라는 노벨상 못 받아서 한이라도 맺혔나?”
OTK배터리 개발 덕분에 김호민 교수는 돈방석에 앉았다. 아마 우리나라 교수들 중에서는 가장 돈이 많을 것이다.
그동안 번 돈으로 얼마나 호의호식 하는지 궁금했는데, 오랜만에 만나 보니 거지꼴이 따로 없다.
더벅머리는 떡져 있고, 옷은 언제 빨았는지 모를 정도로 지저분했다. 세수를 안 했는지 얼굴이 개기름으로 번들거렸다.
이건 다른 연구원들 역시 마찬가지. 다들 잠도 제대로 못잔 듯 흐느적거렸다.
“피자 좀 사왔어. 다들 드시면서 하세요.”
난 차에 실고 온 M피자 십여 박스를 건네주었고, 연구원들은 좀비 같은 모습으로 피자를 집어먹었다.
난 김호민 교수에게 말했다.
“좀 쉬면서 해요.”
“쉴 거 다 쉬면, 언제 연구하고 언제 실험해?”
김호민 교수는 서성SB 연구소와 협력해 OTK배터리 성능을 계속해서 끌어올리는 한편, 무선충전 기술을 연구했다.
“스마트폰이나 다른 전자기기에서 무선충전방식은 상용화됐지만, 아직 전기차는 실험단계야. 주차면 안에 차를 넣었을 때 자기 유도방식으로 무선충전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데, 문제는 유선충전만큼 속도가 안 나온다는 거야. 실제 사용하려면 적어도 유선충전 대비 90퍼센트까지는 효율을 끌어 올려야 돼.”
지금은 사람이 직접 충전구에 코드를 꼽아야 한다. 이걸 차를 주차면 안에 넣으면 자동으로 충전되는 무선충전방식으로 바꿀 생각이다.
완충된 차는 알아서 시동을 걸고 일반 주차면으로 옮겨간다.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자동차가 알아서 충전하는 만큼 충전에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먼 미래의 일 같지만, 지금 기술로도 어렵지 않게 구현이 가능하다. 효율이 문제일 뿐이지.
“핵심은 결국 배터리네요.”
OTK배터리는 서성SB 공장에서 소형배터리로 먼저 생산 중이고, 자동차용 대형배터리는 미국의 TS컴퍼니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서성전자는 신형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에 OTK배터리를 적극적으로 탑재했다. 전자제품 성능이 상향평준화된 상황에서 사용시간이 길다는 것은 충분한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엔플과 MS 등 다른 업체에서도 배터리공급 요청이 들어왔지만, 현재 생산물량으로는 서성전자에 납품하기도 버겁다.
자동차용 대형배터리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원래 TS컴퍼니를 지을 때만 해도 생산이 안정되면, 니콜라의 기가플랜트처럼 다른 자동차업체에도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상황이 좀 바뀌었다. OTK배터리가 개발됐고, 전기차 공장은 계속 증설 중이다.
판매량이 폭망한다면 모를까, 우리 쓸 물량도 부족하겠지.
배터리와 전기차업체들은 자체 기술개발에 나섰지만, 기존 NCM배터리 성능을 아무리 끌어올려봐야 OTK배터리의 성능을 쫓아오기는 힘들었다.
* * *
우리는 김호민 교수의 연구실에 앉았다.
여전히 지저분하고 어지럽혀진 모습이다. 간간히 밤을 새는지, 한쪽에는 접이식 침대가 펼쳐져 있었다.
김호민 교수는 믹스커피를 타주었고, 난 그것을 받아 마셨다.
“곧 노벨상 타시겠네요.”
김호민 교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노벨상은 무슨. 나보다 더 대단한 업적을 낸 사람들도 많은데. 이번에 분자화학에 연구성과를 낸 스태퍼드 베어 팀도 있고. 저온전자 현미경을 개발한 말콤 글래드웰도 있고.”
“그래도 코발트를 대체할 신소재를 개발한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 않겠어요?”
폭등하던 코발트 가격은 OTK배터리 개발 이후 폭락을 거듭해, 지금은 고점대비 70퍼센트 넘게 하락했다.
코발트 가격 폭락으로 투기하던 헤지펀드들은 엄청난 손실을 봤고, 코발트 광산을 차지하고 있던 콩고 반군의 자금줄이 끊겨 세력이 약화돼 내전까지 잦아들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화학상이 아닌 평화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처럼 얘기하기도 했다.
난 확신을 갖고 말했다.
“분명히 교수님께서 타게 되실 거예요.”
택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확실합니다.”
김호민 교수는 손을 내저었다.
“자꾸 그런 말 하지마. 이러다가 못 타면 쪽 팔려서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겠어.”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예지를 봤기 때문이지만, 그걸 직접 말해줄 수는 없는 노릇.
김호민 교수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번 모터쇼 보니까 다른 업체들 기술력도 만만치 않던데.”
“저도 좀 놀랐어요.”
아이버는 완성에 가까운 자율주행기술을 선보였고, 포드와 GM도 주행거리와 충전속도가 크게 개선된 신형 전기차를 들고 나왔다.
방식은 달라도 궁극적인 목표는 모두 같다. 바로 무인차를 이용한 이동수단의 통합이다.
카로스 역시 승차공유와 차량공유로 뻗어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전기차에서는 니콜라나 BID 등과 맞붙게 될 테고, 승차공유에서는 아이버와 다다추싱, 크랩 등이 경쟁자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쪽이 21세기 자동차산업의 패권을 가져가게 될 것이다.
택규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없었던 거예요?”
“투자와 지원을 제대로 안 했으니까.”
뭐든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법이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과학과는 달리 기초과학은 성장해서 꽃을 피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정부와 기업 모두 그동안 기초과학을 등한시해왔던 게 사실이다.
김호민 교수가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번 돈으로 기초과학에 투자를 좀 해보려고. 한국에 제대로 된 과학자가 없는 게 아니야. 제대로 된 지원체계가 없을 뿐이지.”
택규가 말했다.
“그런데 그런 거 지원하면 위에서 다 빼먹지 않나요?”
김호민 교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니라고 말은 못하겠네.”
그동안 교수들이 연구비 횡령하는 행태를 보면 가관이다. 석, 박사 대학원생들에게 월급을 주고 나중에 현금으로 돌려받거나, 아예 통장과 카드를 받아다가 자신이 뽑아가기도 한다.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석, 박사 목숨이야 교수의 말 한마디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계는 대단히 좁다.
아예 이 바닥 뜰 생각이 아니면, 교수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현직에 있었던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직접 재단을 만들어 보려고. 정말 뜻있고 열정 있는 사람들 선발해 지원해줄 수 있게.”
돈 벌어서 호의호식할 생각은 안 하고, 과학계에 투자할 생각을 하다니.
“한국대 화학과 학생들에게 미안해지네요.”
“왜?”
“이런 좋은 교수님을 제가 빼가서요.”
내 말에 김호민 교수는 부끄러운지 괜히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 * *
출근해서 일을 처리하는데, 난 전화를 한통 받았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김명준 교수님은 웃으며 말했다.
[내 제자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아직 받은 것도 아닌데요.”
[어차피 받을 거잖아. 경쟁후보라고 해봐야 유엔난민기구 정도인데, 거긴 전에도 수상했으니. 만약 안 주면 로날드가 가만히 있겠어?]“그건 그렇죠.”
익명의 백악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미 대통령 집무실에 상 놓을 자리까지 만들어놨다고 한다.
대체 이 사람은 노벨상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얼마 전에 보수단체도 학교에 한 번 다녀갔어. 그 뭐더라? 강진후 노벨상 수상 저지 범국민 행동위원회였나? 학교에 편지도 엄청 보냈는데, 너한테 보내주려고 열심히 모아놓고 있어.]“……괜찮습니다. 그냥 불태워주세요.”
“그냥저냥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한 번 놀러와야지. 전에 강의하기로 했던 거 잊었어?]안 그래도 신세진 게 많아서 한 번 찾아가서 뵈어야겠다고생각했다.
“언제 갈까요?”
[월요일에 놀러와. 커피 사줄게.]“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