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19)
오카모토 외무상은 OTK컴퍼니 본사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차가 떠나고 나자 앞에서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고, 피해자들은 눈물을 훔쳤다. 강진후는 그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다음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은 그대로 카메라 잡혀 전 세계에 방송됐다.
언론사들은 기사를 쏟아냈다.
[오카모토 외무상, OTK컴퍼니 본사 앞에서 굴욕] [강진후, 단 1주도 돌려주지 않겠다고 말해] [청와대, 오카모토 외무상과 만날 이유 없어]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들, 오카모토 외무상에게 막말에 대한 사과 요구] [강진후의 외교적 결례 행위. 한국 국격 떨어트려] [우리정부가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 높아] [강진후가 한일관계에 미칠 악영향은?] [한국정부가 외교적으로 감당해야할 불이익은?]조중일보 등 몇몇 보수언론들은 한일관계 악화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지만, 대부분은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었다.
-ㅋㅋㅋ저 미친놈.
-강진후가 한국, 중국, 일본 다 깠네. 트리플 크라운 달성!
-이쯤 되면 모두까기 헤트트릭 인정해줘야 한다.
-이번 건 착한 까기 인정합니다.
-강진후 패기에 지렸다! 보는 내가 다 속이 시원하네.
-오카자키가 와서 무릎 꿇고 빌어도 돌려주지 마라.
-외교적 결례는 개뿔.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온 놈이 잘못 아니냐?
-강진후가 공무원이라면 모를까 민간인인데, 정부 보고 뭘 어쩌라고?
-OTK컴퍼니는 미국기업인데, 왜 한국정부가 외교적 불이익을 감당해야 하냐? 따지려면 미국 가서 로황상에게 따져라.
-누구인가? 누가 우리정부가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었는가?
-아주 그냥 친일파들에게 마구니가 꼈어, 마구니가!
* * *
난 택규와 함께 골든게이트 한국지사로 건너갔다. 현주 누나와 엘리가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계속 일이 터지는 바람에 둘 다 잔뜩 지친 것 같은 모습이다.
“누나 점심 맛있게 먹었어?”
택규의 물음에 현주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안 먹었어?”
“지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게 생겼어?”
엘리가 말했다.
“전 샌드위치 먹었어요.”
“잘했어요.”
오늘도 미모가 빛을 발하는구나. 얼른 퇴근해서 데이트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현주 누나가 금연껌을 씹으며 말했다.
“오카모토 외무상 다시 돌아갔네.”
“시간이 없다는 생각은 아직 안 드는 모양이죠.”
“정말로 할 생각이야?”
“그럼요.”
OTK컴퍼니 계좌에는 토요타 주식 1487만 주가 담겨있다. 법적으로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해도 이 주식을 계속 들고 있기는 힘들다.
주식을 갖고 있다 한들 현실적으로 토요타에 경영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일본정부가 가만히 있지도 않을 테고.
결국 둘 중 하나다. 어딘가에 매각하거나, 일본정부와 협상해서 돌려주거나.
“일본정부 역시 전부 반환받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슬슬 7, 80퍼센트 정도 반환받는 선에서 협상하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던데.”
70퍼센트만 돌려주면, 나머지 30퍼센트는 공식적으로 소유권을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대략 7천억 엔.
이 정도면 충분히 남는 장사인 셈이다.
만약 일본정부가 주식을 반환받는 데 성공한다면, 오카자키 총리와 자민당은 한숨 돌릴 테고, 지지율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1000만 주를 돌려주면, 이만큼이나 돌려줘서 고맙다고 할까요, 아니면 497만 주를 안 돌려준 것에 대해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할까요?”
택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일본 애들 말 바꾸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야?”
“역시 그렇지?”
이대로 끝내기에는 이제까지 저쪽에서 한 짓도 있고. 좋은 기회인데 이대로 흘려보내기는 아쉽다.
현주 누나는 금연껌을 씹으며 물었다.
“로날드는 뭐래?”
난 일전의 통화를 떠올렸다.
“살살하라고 하던대요.”
“사실상 허락이네.”
만약 로날드가 일본 입장을 신경 썼다면, 적당한 선에서 주식을 돌려주라고 중재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엔저는 미국의 용인 아래 이뤄졌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 일본은 수출품목이 겹치지 않았고, 중국경제를 견제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 역시 제조업과 수출에 힘을 쏟고 있는 만큼 더 이상은 엔저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오카자키 총리는 계속해서 엔저를 밀어붙였다.
일본 입장에서도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내수회복세가 더딘 상황에서 수출마저 무너지면, 일본경제가 다시 주저앉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현주 누나가 말했다.
“어차피 미국은 일본 자동차업체들을 손볼 생각이었어. 슬슬 관세부과 얘기도 나오는 중이고. 니가 나서서 때린다고 하면 말릴 이유는 없겠지.”
카로스는 GM과 포드와 협력 중이고, 자동차노동자들은 로날드의 가장 중요한 지지층이다. 그런데 일본정부와 토요타는 전 세계에서 여론몰이 하며 카로스를 공격했다.
통화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움직이면 미국도 도와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거 하면 또 욕먹겠네.”
택규가 말했다.
“어차피 이미 먹을 만큼 먹었잖아.”
“그렇긴 하지.”
여기서 욕 좀 더 먹는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건 없다. 그렇다고 나 혼자 욕먹을 생각은 없다. 기왕 욕을 먹어야 한다면 다 같이 먹어야지.
난 칼 마르크스의 명언을 다시 중얼거렸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택규가 한마디 덧붙였다.
“노예는 두 번 찌른다는 말도 있지.”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좋은 말이다.
시곗바늘은 슬슬 12시 반을 가리켰다. 니케이 오후장이 열릴 때다.
난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시작할까요?”
* * *
일본공적연기금(GPIF).
운용기금만 1500조 엔이 넘는 세계적으로 손가락에 꼽는 거대기관이다.
니시다증권에서 주문실수가 발생한 뒤 일본전역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노후자금 2조3천억 엔이 날아갔다는데, 좋아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매뉴얼대로만 했다면, 절대로 발생할 리 없는 사고였다.
기존대로 여러 증권사에 나눠서 운용을 위탁했다면, 설사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손실은 한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니시다증권 한 곳에 운용권한을 몰아주는 바람에 이런 일이 터졌다.
니시다증권 오쿠타 사장은 실수한 직원을 징계하고, 가능한 빨리 수습하겠다고 사죄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숙인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주식을 돌려받지 못하면 파산은 피하기 힘들 것이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문제가 커지면 총리까지도 자리보전하기 힘들 거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투자총괄책임자(CIO) 나미키 코지는 강진후가 마음을 바꿔 주식을 돌려주기만을 간절하게 바랬다.
누구도 일본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잘만 협상하면 주식을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오후 12시30분.
일본증시가 열리기가 무섭게 토요타 주식 매도가 쏟아졌다. 마치 폭탄이라도 떨구듯 한번에 수만 주씩 매도가 쏟아졌다.
골든게이트 계좌에서 쏟아진 매도폭탄은 니케이지수 전체를 끌어내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일본 금융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누가 파는 것인지는 알아볼 필요조차 없었다.
“이런 미친. 그 주식을 장에서 팔겠다고?”
물량 앞에서는 장사 없다. 14만3천 엔에 머물던 주가는 5분도 안 돼 10퍼센트 이상 하락했다.
시가보다 훨씬 낮은 금액인 만큼 여기저기서 매수주문이 밀려들었지만, 매도세는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블록딜로 매도했다면, 시중에서 매각하는 것보다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작정하고 헐값에 파는 걸까?
‘대체 왜……?’
그 순간,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오늘은 다름 아닌 옵션만기일.
“선물이랑 풋옵션을 어디서 사들였지?”
나미키는 재빨리 선물과 옵션의 거래내역을 살펴보았다.
골든게이트만이 아니라 여러 증권사 계좌에서 매수했다. 하지만 의심을 가지고 살펴보니, 지속적으로 선물을 매도하고 풋옵션을 매입한 흔적이 보였다.
이게 누구일까?
‘만약 장마감 시간에 맞춰 남은 물량을 다 쏟아낸다면?’
상황을 눈치 챈 것은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공포가 일본증시를 집어삼켰다.
* * *
연기금은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Index Fund)의 성향을 띠고, 시총상위 종목들을 비율에 맞춰서 계좌에 담는다.그런데 원래대로라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할 토요타 주식이 주문실수로 인해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매물이 쏟아지자, 공적연기금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사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투자자들의 시선이 도쿄증권거래소로 쏠렸다.
옵션만기일에는 주가 변동성이 커진다. 만약 강진후가 작정하고 덤빈다면 변동성을 얼마나 더 키울 수 있을까?
투자자들은 모니터들을 들여다보며, 정신없이 주문을 넣었다.
“설마 오늘 하루 안에 2조 엔을 다 매도할 생각은 아니겠지?”
“현물에서 손실을 보고 파생에서 수익을 낼 생각인가?”
“그렇다 해도 현물 손실이 훨씬 클 텐데.”
“어차피 매수가라고 해봐야 고작 1497만 엔이야. 그러니 손해를 봐도 상관없지 않나?”
일본 현지시각 오후 2시 무렵.
워싱턴D.C.에서 긴급발표가 나왔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예상 관세는 20퍼센트에 달했다.
이 발표가 누구를 타깃으로 하는 건지는 분명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순식간에 상황을 눈치 챘다.
“강진후가 저러는 건 미국이 중재하지 않겠다는 건가?”
“로날드 행정부는 더 이상 엔저를 용인하지 않을 생각이야!”
“당분간 일본증시는 힘들겠네.”
그동안 일본증시를 밀어올린 힘이 바로 엔저였다. 그런데 엔저가 끝나게 된다면? 당연히 수출대기업들의 수익이 줄며 증시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침몰하는 배에는 타고 있는 게 아니다. 나중에 다시 타더라도 지금은 일단 내려야 한다. 다들 판단을 끝내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 * *
행동주의 헤지펀드 알베르트 매니지먼트.
창립자이자 회장인 칼 싱어는 돈밖에 모르는 투기꾼으로 악명이 높았다. 워렌 보트는 그가 하는 짓이 시체를 뜯어먹는 벌처(Vulture)나 다를 바 없다며, 대놓고 욕했을 정도다.
그만큼 그는 수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쓰레기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도 한국시장에서 강진후를 상대했다가 큰 손실을 입고 물러나야 했다.
칼 싱어는 폭락하는 일본증시를 보며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나보다 더한 새끼는 처음 보네.”
* * *
도쿄증권거래소에서 토요타 주식 매도가 쏟아지고, 니케이가 폭락하자,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외부에 나가있던 오카자키 총리는 소식을 듣자마자 관저로 돌아왔다.
“연기금은 뭐하고 있는 건가?”
마쓰카타 재무상이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공적연기금은 국내주식뿐 아니라, 해외주식, 부동산, 채권 쪽에 투자할 현금까지 돌려 주가방어에 나섰다.
“가능한 방법 다 동원해! 증권사들에 협조 요청하고.”
마쓰카타 재무상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 그게 외국계만이 아니라, 일본 증권사들도 매도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뭐?”
오카자키 총리는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선물 매도상위에 노무라증권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관세부과 방침이 발표되자, 전 세계 헤지펀드들까지 매도에 가세했다. 연기금이 사들이며 방어하고 있지만, 무너지는 댐을 손으로 막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모든 게 단 한 사람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오카자키 총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강진후 이 개새끼야!!!”
20835에서 출발한 니케이지수는 8.02퍼센트 하락한 19164에 장을 마감하며, 브렉시트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