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56)
식사를 끝마친 오택규와 민하영은 차를 타고 카페로 이동했다. 택규가 오늘 타고 온 차는 레이븐.
민하영은 놀랐다.
“또 차 샀네. 이거 은성차 신차잖아. 진짜 자율주행 돼?”
“응. 되던데.”
경로를 설정하자 차는 도로를 따라 알아서 움직였다. 민하영은 신기해 어쩔 줄 몰랐지만, 택규는 원래 AD시리즈를 타고 다녔던 만큼 별 감흥은 없었다.
연남동에 있는 카페에 도착한 둘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민하영은 바닐라라테를, 택규는 딸기라테를 시켰다.
민하영은 수시로 사이트에 들어가 반응을 체크했다. 자신이 그린 만화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떠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기한 일이다.
현재 네오틴에 정식연재되는 웹툰은 100개가 넘는다. 인기 있는 작품들이 한둘이 아닌데, 그중에서 5위 안에 든 것은 엄청난 일이다.
상위권에는 쟁쟁한 인기작들이 몰려 있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1위를 노려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로스트 판타지의 인기 덕분인지, 민하영의 웹툰은 정식으로 수출되지 않았음에도 올라오기 무섭게 영어와 일본어 등으로 번역돼 해외사이트에 뿌려졌다.
“벌써부터 해외사이트 연재 얘기가 나오고 있대. 일단 일본 쪽이랑 동시연재하는 것도 고려 중인가 봐.”
계속 싱글벙글 웃으며 사이트를 들여다보던 민하영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왜 그래?”
“아, 아니. 악플이 있어서.”
택규는 폰을 받아보았다. 대부분 재미있다는 댓글이었지만, 악플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핵노잼’, ‘내가 그려도 이거보다는 잘 그리겠다’, ‘별점 1개도 아깝다’, ‘로스트 판타지 이미지에 먹칠하지 말고 연재 접어라’, ‘그림 그만 그리시고, 기술 배우시는 건 어떤가요?’ 등등.
“댓글이 많으면, 악플도 많은 게 당연하지.”
만화책을 출판하던 시절과는 달리 웹에서 연재하는 웹툰은 독자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이는 작가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옳은 지적이면 받아들여 고치면 되고, 아닌 거면 그냥 무시하면 돼. 어차피 재미만 있으면, 욕하면서도 볼 테니까.”
민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러네. 알았어. 아! 너한테 줄 거 있는데.”
“뭔데?”
“보고 놀라지 마.”
“응. 안 놀랄게.”
민하영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짠!”
“헉!”
놀라지 않겠다고 했지만, 택규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내보인 것은 다름 아닌 음악회 티켓.
단순히 클래식 음악회가 아닌 바로…….
“로스트 판타지 오케스트라 티켓이야. 이거 구하기 엄청 힘든 거 알지?”
로스트 판타지 오케스트라의 시작은 작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교향악단은 공연장의 개보수가 필요했다. 여기에 OTK컴퍼니 부대표는 무려 27억 원이나 되는 비용을 지원하며, 로스트 판타지를 오케스트라로 연주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교향악단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좌석교체, 음향설비교체, 화장실 수리 등 한국음악전당을 전면적으로 리모델링했다.
그 사이 단원들은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게임음악을 매일 같이 열심히 연습했다. 음악의 스토리와 배경 등을 이해하기 위해 단체로 세계관을 공부하거나 직접 게임을 해보기도 했다.(그러다가 정말로 로스트 판타지의 팬이 된 단원들도 있었다)
한국음악전당은 현대식으로 개보수를 끝마쳤고, 연주회는 어느새 이번 주말로 다가왔다.
공연 전에 녹음을 완료했고, OTK게임즈에서는 한시적 이벤트로 모바일과 온라인의 배경음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틀어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 30주년을 맞아 팬들을 위한 기념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언론에서도 이색적인 이벤트 정도로 취급했다.
그런데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이 전 세계에서 흥행하고, 이치카와 시게루가 VRMMORPG 개발을 선언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는 게임 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고, 성공할 경우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이미 게임사, 퍼블리싱사, 펀드사, 금융사들이 직접 뛰어들거나 투자를 검토했다. 세계최대 국부펀드 네덜란드 GPFG는 이미 개발비 투자의사를 밝히고 협상이 들어간 상태였다.
로스트 판타지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며, 오케스트라 공연에 대한 관심 역시 커졌다. 하지만 수백석이나 되는 좌석들은 로스트 판타지 팬들에 의해 진작 매진된 상태.
분위기가 달아오르며, 암표가격은 더욱 치솟았다. 공연횟수를 늘려달라는 요청이 쏟아졌지만, 이후 해외공연 일정이 잡혀있는 지라 그렇게 하기도 힘들었다.
택규는 티켓을 받아서 살펴보았다. 게임음악이라 해도 오케스트라 공연인 만큼 티켓값은 가장 싼 좌석이 10만 원이다.
그런데 민하영이 가져온 티켓은 VIP석이다.
“이거 어떻게 구했어?”
민하영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웹툰연재 시작 축하한다고 OTK게임즈 코리아에서 보내줬어.”
“아…….”
거기서 그런 쓸데없는 짓을?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음악회는 오택규가 후원하고 주최한 것이나 다름없다.
민하영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그, 그날 시간 돼? 너 로스트 판타지 좋아하잖아.”
“그렇긴 한데…….”
서울 공연은 총 사흘에 걸쳐서 진행된다. 공연 첫날에는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 총괄 음악감독인 콘도 하야시도 오기로 했다.
택규는 이미 진후와 함께 참석이 예정돼 있다.
그런데 민하영이 가져온 티켓도 하필이면 첫째 날이다!
순간, 택규의 머릿속에 오만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이야. 어쩔 수 없이 정체를 밝혀야 하는 건가?’
민하영은 택규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CA활동을 같이 하며 만화와 게임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했었다.
졸업 후 연락이 끊겼으나, 다단계를 계기로 재회했다. 택규는 정체를 숨긴 채 그녀가 다시 만화를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계속 숨길 생각은 없었고, 적절한 때 말하려고 했다.
문제는 한번 숨기기 시작하니 더욱 말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것.
그래서 이제까지 계속 말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녀도 어엿한 대형포털사이트 웹툰작가.
슬슬 정체를 밝혀도 되지 않을까?
택규는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사실은 말이지…….”
“이 공연 OTK컴퍼니 부대표가 기획한 거 알지?”
“……응?”
민하영은 토끼 같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 사람 진짜 대단한 것 같지 않아? 애초에 로스트 판타지를 되살린 것도 그 사람이잖아. 부대표가 투자하지 않았으면, LFM과 LFO 둘 다 못 나왔을 테고. 그럼 내가 로스트 판타지 웹툰을 그릴 일도 없었을 테고. 혹시라도 음악회에서 보게 되면 감사의 인사라도 해야 하나?”
“…….”
“그런데 대체 누굴까? 설마 주위사람들한테도 정체를 숨기고 있나?”
택규는 슬쩍 물었다.
“만약 아는 사람이 그러면, 어떨 것 같아?”
민하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완전 배신감 느낄 것 같은데.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빠.”
“헉!”
“생각해봐. 완전 뒤통수 맞은 느낌일 거 아니야? 돈 많다고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
택규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지.”
아무래도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아! OTK컴퍼니랑 여가부 토론회한 영상 봤어? 그거 엄청 이슈였잖아. 부대표 얼굴은 나오지 않고 목소리는 좀 바뀌었는데, 이상하게 말투가 좀 익숙하더라. 마치 어디서 자주 들어본 것 같다랄까?”
택규는 당황했다.
“그, 그래?”
“왠지 오늘 너랑 얘기하는 내내 계속 그 영상이 떠오르더라구. 지금 든 생각인데, 왠지 너랑 말투가 비슷한 것 같기도…….”
민하영은 말끝을 흐리더니, 이내 오택규를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동안 안경 너머로 서로의 시선이 오고갔다.
민하영은 웃으며 농담처럼 물었다.
“설마 니가 OTK컴퍼니 부대표라는 건 아니지? 예를 들어 OTK가 오택규의 약자라던지?”
“…….”
택규는 대답 대신 시선을 피했다.
그 순간, 민하영은 그동안의 일들을 떠올렸다. 어떻게 통장에 100억 원이라는 돈이 있었을까? 어떻게 반썸 대표와 검찰을 움직여 JG블록체인을 박살냈을까? 그리고 양하나와 CL화학 사장은 왜 술자리에 왔을까?
확실히 이러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OTK컴퍼니는 수많은 투자를 성공시켰고, 어느새 세계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 기업의 부대표가 오택규라고?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리가…….”
그런데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있던 택규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어이없게도 액정에는 ‘강진후’라는 이름이 떠있었다.
택규는 당황하는 민하영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민하영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뭐야? 설마 같이 산다는 친구가 강진후였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고개를 돌렸고, 실수를 깨달은 그녀는 입을 다문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민하영은 일단 앞에 있는 바닐라라테를 벌컥벌컥 마셨다.
‘저거 뜨거운 거 아닌가?’
그러나 민하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로 물었다.
“그동안 왜 속인 거야?”
“아니, 뭐…… 속였다기보다는 필요 이상의 정보를 말하지 않은 것이랄까? TMI를 자제한 거지.”
“지금 농담이 나와?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나도 잘 몰라. 팔기 전까지는 돈도 아니고.”
세계 최대부자는 누가 뭐래도 강진후다. 그리고 두 번째 부자는 바로 오택규다. 연이은 투자성공으로 OTK컴퍼니 가치가 1조 달러가 넘으며, 오택규의 자산 역시 2천만 달러를 넘어섰다.
민하영 입장에서는 그게 어느 정도 큰 금액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 그냥 암호화폐로 큰돈 번 거 아니었어?”
실제로 암호화폐로 대박을 친 사람들인 종종 있다.
그래서 반썸대표와도 친분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게임을 좋아했으니, OTK게임즈 코리아 관계자와 우연히 알게 됐을 수도 있고.
“아! 그건 맞아. 그 돈으로 OTK컴퍼니를 만든 건데, 진후가 회사를 이 정도로 키울 줄은 나도 몰랐어.”
“…….”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웹툰작가가 되고 나면, 그래도 떳떳하게 옆에 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민하영은 울상을 지었다.
‘OTK컴퍼니 부대표는 너무하잖아!’
* * *
한국음악전당은 깔끔하게 단장을 끝마치고 새롭게 문을 열었다. 오늘은 로스트 판타지 오케스트라 첫 공연이 있는 날. 공연장은 오랜 만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택규와 일찍 공연장에 도착해 한국교향악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박혜진 대표와 장기훈 지휘자, 그리고 단원들은 후원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박혜진 대표가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게임음악을 오케스트라로 공연하는 것에 좀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덕분에 클래식과 한국교향악단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택규가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 흥행에 성공할 줄이야.
수익을 떠나 게임 홍보와 클래식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됐다.
우리는 취재진이 들어오지 못하는 실내에 머무르며 사람들과 인사했다. 재계 사람들과 일전에 게임규제 문제로 친분을 쌓은 게임업계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임진용 회장과 임수미 사장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바쁘실 텐데, 와주셨네요.”
“바빠도 문화생활은 해야죠. 음악회는 오랜 만이네요.”
난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임진용 회장 딸은 부끄러운지 아빠 뒤로 숨은 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럴 땐 애들한테 용돈이라도 줘야 하나?
헨리와 현주 누나는 함께 왔다.
정장을 입은 헨리는 여전히 잘생기고 멋있는 모습이고, 현주 누나도 간만에 안경을 벗고 꾸몄다.다정하게 팔짱을 낀 둘 사이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현주 누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음악회에 참석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택규가 또 한 건 한 거죠.”
오택규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벌이겠나?
잠시 후, 미용실에 들렀다온 엘리가 도착했다.
“저 왔어요, 진후.”
어깨가 완전히 드러나는 레드와인색 오프숄더 원피스를 입었고, 에나멜 하이힐을 신었다. 귀걸이와 목걸이를 하고 머리까지 매만졌기 때문인지 일할 때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풍겼다.
엘리는 나에게 물었다.
“어때요? 잘 어울려요?”
너무 예뻐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예쁘긴 한데, 가슴이 너무 파인 거 아니에요?”
다른 남자들의 시선이 쏟아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자 엘리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헷, 요즘 이 정도는 다들 입어요.”
엘리는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걱정되면, 진후가 이렇게 가려주면 되죠.”
“알았어요.”
내가 엘리와 함께 사장이나 회장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택규 주변에는 재계의 젊은 여성들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
뭐야? 쟤 왜 저렇게 인기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