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55)
일을 끝낸 뒤, 난 엘리를 만나 청담동의 한 카페에 갔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이제는 이것도 익숙하다. 다행히 이미 공인된 사이인 만큼 예전처럼 파파라치가 쫓아다닌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엘리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은성차 신차 엄청 잘 팔리나 봐요. 저희 직원 중에도 계약한 사람이 있는데, 6개월은 기다려야 한대요.”
“예약물량만 10만 대라고 하니까요.”
은성차의 신형 전기차 레이븐은 출고되기가 무섭게 차례대로 고객들에게 인도됐다.
이전까지 한국에서 자율주행의 개념은 차선이탈을 방지하고, 앞차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는 등 운전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레이븐은 AD시리즈와 동일한 자율주행을 구현했다. 운전자의 조작 없이도 주위상황을 인식해 멈추거나, 차선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 출발부터 주차까지 운전자의 조작이 필요 없을 정도다.
“의외로 한국이 자율주행규제를 빨리 풀었네요.”
“한국은 은성차의 독점시장이잖아요.”
때문에 은성차가 신기술을 내놓으면 규제가 풀리거나 정부가 지원책을 내놓는다.
자동차는 제조업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고용유발효과가 크다. 그렇다 보니 어느 나라든 자국기업을 밀어주기 마련.
이전에 은성차가 수소차에 투자했을 땐 정부에서 수소경제니 뭐니 하며 수소차에 대한 각종 지원책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수소차를 포기하고, 자율주행전기차를 내놓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자율주행규제를 풀고 전기차 지원책 강화에 나섰다. 당장 세금을 들여서 관공서와 마트 등에 전기차 충전소 1만 개를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정부가 규제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반대하는 기득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율주행을 허용하는 것일 뿐, 당장 무인차를 허용하는 것은 아닌 만큼 반대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물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자율주행기술의 끝은 무인차니까.
지금이야 반드시 운전석에 사람이 탑승해야 하지만, 더 많은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무인차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조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차에 운전자가 타고 있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사람이 차량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를 직접 타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운전자가 필요없다는 답변이 훨씬 높았다.
자율주행이 인간보다 훨씬 사고율이 적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됐다.
법규가 바뀌면 인식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 법규가 바뀐다. 미국은 부분적으로 무인주행을 허용하는 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운전자가 없는 무인트럭이 군집주행을 하며 도로를 달렸다.
카로스는 모빌리티사업에 직접 진출해 무인차를 활용한 승차공유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아이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이버는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자율주행실험을 중단하고, AD시리즈를 구매해 무인승차공유를 하는 방향을 검토했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카로스는 자율주행차량을 통해 도로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차량의 경로를 바꾸거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를 한다.
승차공유 기업의 핵심은 데이터인데, 언제 어디서 승객을 태우고 수송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부 자동차 제조사이자 경쟁사인 카로스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아이버의 이용고객이 늘수록 카로스는 승차공유에 필요한 각종 데이터를 가만히 앉아서 쌓을 수 있다. 때문에 아이버 내부에서는 AD시리즈 도입계획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기술은 한번 종속되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은성차는 자율주행전기차의 핵심인 소프트웨어와 배터리를 각각 카로스와 TS컴퍼니를 통해 공급받는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은성차의 독자생존이 힘들 거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이건 GM과 포드 역시 마찬가지.
OTK컴퍼니 입장에서는 이 회사들이 없어도 되지만, 이 회사들 입장에서는 OTK컴퍼니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쨌거나 한국은 원래 자율주행 분야에서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보다도 뒤처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기술제휴 덕분에 단숨에 상황이 역전됐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산업전반에 걸쳐 변화가 시작됐다. 충전소, 물류, 운송, 보험 등등.
서성화재는 자율주행차의 보험료를 감면하는 보험 상품을 출시했고, 물류업계는 군집주행이 가능한 카로스의 자율주행트럭을 계약했다.
K모빌리티는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승차공유를 실행할 예정이지다. 이쪽은 운수사업법 규제에 묶여있는 만큼, 아예 무료로 운영하며 다른 수익원을 찾는 방법을 고려중이다. 택시업계가 또다시 들고 일어나겠지만.
엘리는 손으로 턱을 괜 채 말했다.
“몇 년 전에 진후가 돈을 투자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잘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요.”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뿌려놨던 씨앗들이 이제 과실을 맺고 있는 거죠.”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나와 엘리의 이름을 수군거리는 게 들려왔다. 경호원들이 주위에 있어서 다가오지 않는 게 다행이다.
“유명해지니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네요.”
엘리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가끔 모르는 사람이 사인해 달라고 할 때가 있어요.”
TV광고는 끝났지만, 엘리가 입고 찍은 제품사진들은 아직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여름이 되면 다른 버전의 TV광고를 내보낼 예정이다.
베스터 측에서는 추가촬영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엘리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체 다른 유명인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연예인들은 쉬는 동안 외국에 나가 자유를 느낀다고도 하는데, 난 전 세계에 얼굴이 알려져 그러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산간오지로 여행을 갈 수도 없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나?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래서 택규가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나 봐요.”
* * *
미국 대통령이 로날드 스탬퍼인 건 알아도 부통령이 누군지는 미국인들도 잘 모른다.
삼성그룹 회장은 임진용이다. 그렇다면 부회장은? 버크셔캐셔 회장 워렌 보트는 에덴스의 현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리고 부회장 찰리 베인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자다.
그는 항상 워렌 보트의 투자에 조언을 하고, 둘은 매년 에덴스에서 열리는 버크셔캐셔 주주총회에도 같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역시나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OTK컴퍼니 역시 마찬가지. 대표인 강진후가 주목받는 만큼 부대표의 존재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브컬처계에서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그중에서도 게임규제 문제를 놓고 여가부와 한판 붙은 것은 큰 이슈였다.
여가부는 그동안 서브컬처에 각종 규제를 가하기로 악명 높았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검열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신전미 장관은 여러 차례 가상캐릭터에 아청법을 더욱 강하게 적용시켜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OTK컴퍼니 부대표가 작정하고 나서서 여가부를 무너뜨리자, 사방에서 갈채가 쏟아졌다.
그로 인해 신전미 장관은 물러나고, 여가부는 규제권한을 산실했다.
당시 토론회 영상은 자막까지 달려 에이튜브 등 여러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갔다. 그리고 한동안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또한 부대표가 직접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로스트 판타지 시리즈는 모바일에 이어서 온라인마저 초대박이 터졌다. 로스트 판타지 온라인(Lost Fantasy Online)…… 일명 LFO는 한국과 일본, 동남아에 이어서 중국과 북미시장을 휩쓸었다.
이제까지 일본 콘솔게임은 여러 차례 세계시장에서 히트 쳤지만, 상대적으로 온라인게임은 부진했다. 그런데 LFO는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니시다증권 사태 이후 대주주가 OTK컴퍼니라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쓰던 일본언론들은, 막상 게임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갑자기 일본게임의 승리라며 치켜세웠다.
로스트 판타지 콘텐츠를 활용한 여러 가지 사업 역시 진행 중이다.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이야기도 나왔고, 넷플레이에서는 시즌별 드라마를 제작할 예정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형 포털사이트에서는 로스트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웹툰이 연재를 시작했다.
* * *
고기집에 먼저 도착한 민하영은 자리에 앉았다.
작은 체구에 머리를 하나로 묶었고, 둥근 안경을 꼈다. 쌍커풀이 없는 토끼 같은 눈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해서, 어디를 가도 귀엽다는 말을 들을 것 같은 외모였다.
잠시 기다리자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쓴 남자가 도착했다. 입고 있는 옷은 SPA 브랜드의 트레이닝복.
택규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축하해. 완전 대박났더라.”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민하영의 웹툰이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오틴의 심사를 통과해 연재를 시작했기 때문.
포털 측으로부터 매달 고료가 나오고, 미리보기, 해외수출, 단행본수입 등에 따른 정산은 별도다.재미와 인기에 따라 수익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네오틴에 연재를 시작한 이상, 어디 가서 스스로 웹툰작가라고 말하기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만화가가 되는 것이 평생 꿈이었던 만큼, 기쁨은 몇 배로 컸다. 게다가 반응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민하영은 신나서 말했다.
“연재 시작한 지 2주 만에 5위까지 올라갔어. 반쯤은 로스트 판타지 인기 덕분이겠지만.”
“그것도 그거지만, 재미가 있기 때문이겠지.”
게임세계를 배경으로 한 웹툰은 이전에도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는 처참하게 실패한 작품들도 많았다.
독자들은 냉정하다. 재미없는 만화는 누구도 보지 않는다.
“그보다 주간연재 잘할 수 있겠어? 쉽지 않을 텐데.”
“당연하지! 내 사전에 휴재란 없어. 한 번 연재를 시작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완결까지 쉬지 않고 갈 거야.”
민하영은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모든 작가들이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고 시작한다. 그러다가 온갖 이유로 휴재를 하기 마련이지.
‘뭐, 연재 중단만 안 하면 되겠지.’
택규가 물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나와도 괜찮은 거야? 열심히 그려야 하지 않아?”
“비축분 있어서 괜찮아.”
“…….”
모든 작가들이 처음에는 비축분을 가지고 시작한다. 그러다가 그게 바닥나고 마감에 허덕이게 되는 건 순식간이지만.
‘한달 후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군.’
그동안 둘이 만나면 주로 택규가 밥을 샀다. 그러나 오늘은 정식연재를 기념해, 민하영이 사기로 했다.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마음껏 먹어.”
“그래도 돼?”
“물론이지!”
택규는 메뉴판을 펼쳐보았다.
“오! 삼겹살이네.”
메인메뉴는 수입산 삼겹살. 가격도 저렴하다. 그래서인지 주위 테이블에는 대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민하영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미, 미안. 알다시피 아직 빚 갚는 중이라서. 조, 조금만 기다려. 대박 터지면 소고기 쏠 테니까.”
다단계를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때 샀던 쓰레기 코인은 그대로 빚으로 남았다. 일단 부모님이 먼저 갚아주었고, 그녀는 부모님께 조금씩 갚아나가는 중이다.
“괜찮아. 나 삼겹살 좋아해.”
민하영은 고기와 맥주를 시켰다. 미성년자 같아 보였는지 종업원은 신분증을 받아들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택규는 다 구워진 고기를 열심히 집어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민하영은 살짝 감동했다.
‘맨날 비싼 음식들만 먹을 텐데. 나 무안하지 않게 일부러 맛있게 먹어주는 건가?’
오해였다. 택규는 원체 입맛이 싸구려라 뭐든 잘 먹는다. 요즘도 집에서 라면 끓여먹으며 행복해 한다.
둘은 맥주잔을 부딪쳤다.
“고생 많았어.”
민하영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다 네 덕분이야. OTK게임즈와 연결시켜주지 않았으면, 이런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그, 그리고 매번 봐주며 조언해준 것도…….”
말을 하는데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을 보니 양하나의 이름이 떠있었다. 꾸준히 서로 연락하는 모양이다.
“답장해야 하는 거 아니야?”
택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나중에 해도 돼.”
민하영은 일전에 술자리에서 만났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웬만한 연예인은 명함도 못 내밀 만큼 아름다운 외모에 CL그룹이라는 집안환경.
외모와 집안배경 모두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잠깐 얘기를 나눠본 결과 양하나는 만화, 애니, 게임 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취미랑 관심사는 나랑 같으니까!’
자고로 연애란 서로의 취미가 맞아야 하는 법. 예를 들어 같이 만화책을 쇼핑한다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민하영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불끈 쥐자, 택규는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왜 그래?”
그러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많이 먹어. 고기 더 시켜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