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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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스너 총리는 한국어가 가능한 통역을 대동했지만, 영어를 잘해서 딱히 통역을 거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는 독일어로 인사를 건넸다.
난 살짝 놀랐다.
“어! 독일어도 할 줄 알아요?”
“간단한 대화 정도는요. 대학 다닐 때 독일인 친구가 있어서 좀 배웠어요.”
“혹시 남자?”
엘리는 내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자리에서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아요.”
“…….”
그냥 대답만 해주면 되는데, 왜 말을 못해?
난 메이스너 총리와 음료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총리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저 역시 강진후 대표님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대단한 일들을 해내셨어요.”
“저야 그저 돈 벌기 위해 한 것뿐인데요.”
“그랬다면 빅원의 피해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지는 않았겠죠.”
메이스너 총리는 웃고 있었지만, 나를 보는 시선은 복잡해보였다. 설마 브렉시트 때문인가?
브렉시트는 EU 창설 이후 발생한 최악의 사건. 그게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그 기회를 틈타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겨갔다.
그리고 독일은 자동차산업 비중이 매우 큰 나라다.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포르쉐, MAN 등등.자국 브랜드뿐 아니라 미니, 벤틀리,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 등도 인수해 계열사로 두고 있다.
한국과 일본 역시 자동차강국이지만 대당 10만 달러가 넘는 고급차 시장에서 독일의 점유율은 압도적이다.
차는 역시 독일차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한때는 나도 벤츠를 타는 게 꿈이었던 때가 있다. 학교 다닐 때 기홍선배가 아빠차 끌고 오자, 괜히 운전대에 앉아 사진 찍고 그랬었지.
그랬던 내가 자동차회사를 갖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카로스와 손을 잡은 미국과 한국 업체들과는 달리, 독일 자동차회사들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개발을 진행했다.
하지만 미래차 분야에서 카로스와의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자동차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내가 독일차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고, 협력자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이번 방문에 대해서도 업계 전체가 관심을 가졌다.
메이스너 총리와 대화를 나누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입구를 보니 양복을 입은 한 백인남성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세바스티앙 블랑 프랑스 대통령.
이제 40대 초반인 그는 이마가 좀 벗겨지긴 했지만,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뉴스에서 자주 봐서 익숙한 얼굴이다. 빨리도 왔다. 원래 내일 오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프랑스 쪽에서 오늘 오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엘리는 작은 목소리로 나한테 말했다.
“독일 잘되는 걸 프랑스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 없잖아요.”
EU라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 묶여 있어도, 각국의 이해관계는 각자 다른 법이지.
그는 먼저 메이스너 총리와 인사를 나눴다. 두 정상은 마치 오랜 친구 같이 다정한 모습이었다.
대체로 인접국들끼리는 사이가 안 좋기 마련. 태국과 베트남,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등.
원래 유럽 본토의 맹주는 독일이 아닌 프랑스였다. 그러다가 독일이 치고 올라오며, 그게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다툼이 있었던 만큼, 독일과 프랑스는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유명한 앙숙이다.그러나 이제는 손을 잡고 EU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이끌어나가고 있다.(원래는 영국도 있었지만, 나가기로 했으니)
프랑스 제조업이 독일에 비하면 뒤처지는 것은 사실. 그러나 알고 보면 프랑스 역시 제조업 강국이다.
르노와 푸조라는 거대 자동차회사가 둘이나 있고(품질은 독일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에어버스로 대표되는 유럽 최대의 항공우주산업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강점을 가진 분야가 있으니 바로 에너지.
프랑스의 EDF는 러시아의 로사톰과 비견될 만큼 크고 아름다운 회사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 전력생산량의 20퍼센트 이상을 담당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생산전력의 80퍼센트를 원전에 의존한다는 것. 원자력이나 핵 관련 기술은 프랑스도 어디서 뒤지지 않는다.
원전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전력생산, 관리, 송전 등 전기와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도 높은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
이 외에 패션의류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명품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아니겠나?
인구가 적으면 금융이나 IT 등 한두 가지 산업만 잘해도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어설 수 있지만,인구가 5천만 명이 넘어서면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는 산업전반이 고루 발달돼 있는 편이고, EU 내에서 독일에 이어 2위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는 독일이 가지지 못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UN 상임이사국 자리고, 둘째는 핵무기다.따라서 정치외교와 군사적 측면에서는 유럽최강이라고 봐도 좋다.
난 블랑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가 영어로 인사하자, 그 역시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했다.
“반갑습니다, 강진후 대표님. TV에서 보던 것보다 직접 뵈니 훨씬 잘생기셨네요.”
엘리도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엘리 킴이에요.”
“와우!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로 엄청난 미인이시네요.”
“과찬이세요.”
“하하, 모델로 나온 영상은 잘 봤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엘리의 몸을 터치하는 모습이 자꾸 신경에 거슬린다. 프랑스 남자 특유의 나쁜 손버릇인가?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인 그는 취임초기만 해도 젊고 유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평가가 좀 바뀌었다.
사실 지금 프랑스 경제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제조업 경기 악화로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있고, 공장이 생기지 않으니 일자리가 늘지 않고, 노동자들의 처우와 복지는 계속 악화됐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블랑 대통령은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며 부유세와 자본소득세는 감세하고, 10퍼센트가 넘는 유류세 인상을 발표했다.
기름에 붙는 세금인 유류세는 과거에는 부유층들이 내는 세금으로 인식됐다. 돈 없는 사람은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반면, 돈 많은 사람들은 배기량이 큰 차를 몰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옛말. 요즘은 오래된 소형차보다 새로 나온 대형차의 연비가 더 좋다.
그리고 돈 많은 사람들은 도심에 살아 차를 탈 일이 적은 반면,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서민들은 도시외곽으로 밀려나가 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제 유류세는 사실상 돈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내는 역진세 성격을 띠고 있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연비가 더 좋은 차나 전기차로 바꾸라고 말했지만, 애초에 그럴 돈이 있다면 왜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겠는가?
결국 노동자들은 폭발했고, 작년 말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거센 시위가 벌어졌다. 노동자들의 마음속에서 쌓이고 쌓였던 게 유류세 인상으로 폭발한 셈이다.
언론들은 항상 한국노조의 폭력성을 비난하지만, 프랑스 노동자들 시위하는 걸 보면 이건 거의 내전이 따로 없는 수준이다.
결국 블랑 대통령은 유류세 인상을 철폐하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아직도 시위와 퇴진운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두 정상은 나 외에도 다른 한국기업인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다들 막 도착한 터라 비행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황. 때문에 호텔에서 열린 저녁만찬은 금방 끝났다.
모두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쉴 수는 없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 그리고 실무진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밤늦게까지 회의가 벌어졌다.
“분위기를 보니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쉬운 상황이라는 걸 저쪽도 알고 있으니까요.”
“독일인들 상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한국과 일본이 무역분쟁을 벌이면 독일과 프랑스 등은 어디 편을 들까?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그 사이 양국을 상대로 챙길 걸 실컷 챙기겠지.
애초에 우리가 여기로 찾아온 것부터가 아쉬운 입장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이미 짐작했던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이제까지 일본에서 수입하던 소재와 부품을 전부 다른 곳에서 사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하지만 한국기업들이 일본에서 사오는 핵심 소재와 부품의 10퍼센트만 다른 곳에서 사와도 대일무역 의존도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게 무슨 동대문에서 옷 떼 오듯 한번 물건 떼고 끝나는 게 아니다. 계약을 맺으면 기본이 1년이다.
만약 한국기업들이 납품처를 바꾸면, 이후 제재가 풀리더라도 일본기업들 부품은 한동안 쓸 수가 없다.
“어차피 일본 정치권에서 멋대로 제재한 것인 만큼,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알아서 제재를 풀게 될 겁니다. 목표는 납품처를 추가로 확보함으로써 교섭능력을 높이는 겁니다.”
난 실무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저쪽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그러니 불리한 협상은 안 하겠다는 태도로 협상하세요.”
* * *
카로스는 디트로이트 컨벤션장에서 신차를 공개발표하기로 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차인지는 다들 짐작했다.
바로 자율주행이 가능한 전기트럭이다.
카로스 외에도 거의 모든 자동차회사들이 전기차를 만든다. 그러나 상용차인 전기트럭은 또 다른 도전의 영역이었다.
니콜라는 원래 올해 전기트럭 콜론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경영난을 겪으며 개발계획은 사실상 중단됐고, 개발인력들은 대거 이탈했다.
데릴은 니콜라에서 나온 인력들을 끌어들여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미 콘셉카가 나왔다거나, 양산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발표일을 갑자기 예정보다 열흘이나 앞당겼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강진후 대표가 독일에 간 것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어쨌거나 언론과 일반 관객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카로스 CEO 데릴이 단상에 올라섰다. 여느 때처럼 잔뜩 피곤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리에서 소개할 차는 카로스의 전기트럭 ADT1입니다.”
카로스는 전기트럭 양산계획을 알렸었고, 기존 은성트럭에 자율주행모듈을 장착해 군집주행을 선보인 바 있다. 지금도 일렬로 군집주행하는 물류트럭들이 미국 전역을 누비고 있다.
선두차를 제외하면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만큼 사고에 대한 우려가 컸으나,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어서 장막이 올라가며 ADT1의 모습이 드러났다. 공기저항계수를 줄이기 위해 디자인된 트럭의 모습은 마치 고속철을 연상시켰다.
전기트럭 개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배터리. 기존 디젤트럭 역시 승용차에 비하면 연비가 20퍼센트 수준인 만큼 전기트럭에는 전기차의 몇 배나 되는 배터리가 탑재된다.
무작정 배터리용량을 늘리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용량을 키우며 발열과 안정성을 제어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용량이 커진 만큼 충전시간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물류는 시간이 곧 돈이다. 날짜를 맞추기 위해 급하게 수송을 하는데, 충전을 하느라 한 시간씩 멈춰 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자동차회사들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연구했다.
전차처럼 집전장치를 전력선에 연결하거나, 도로 밑에 코일을 깔아 무선충전을 하는 방식 등이 논의됐다.일부 국가에서는 물류트럭이 많이 다니는 고속도로에 시범적으로 건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방식들은 결국 도로에 장치를 건설해야하는 만큼 초기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카로스 연구진들과 김호민 교수는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바로 방전된 배터리를 완충된 배터리로 통째로 교체하는 배터리 교체 시스템이다.
데릴은 동영상을 띄웠다. 전기트럭이 센터에 멈춰 서자 기계가 하단에 장착된 배터리를 꺼낸 다음 완충된 배터리를 삽입했다.
“ADT1 배터리교체에 필요한 시간은 단 2분입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지만, 실제 만드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김호민 교수가 해냈다. 대용량의 교체형 배터리를 만들면서도 발열을 줄이고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방식을 채택하자 또 한 가지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전기차의 가장 큰 문제는 가격. 물류트럭은 배터리용량이 늘어난 만큼 가격도 몇 배다.
전문가들은 최소 25만 달러는 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어서 발표된 가격은 충격 그 자체였다. ADT1의 가격은 15만 달러. 이는 기존 디젤트럭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각종 자율주행기술과 안전장치까지 갖췄음에도 이런 가격이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데릴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다들 놀라셨겠지만, 어디까지나 차 가격입니다. 배터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말에 발표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배터리가 없는 전기차를 어떻게 운행하라는 건가?
“배터리는 교체가 가능한 만큼 일정한 금액을 받고 대여합니다. 대여비용과 교체비가 발생하지만, 기존 연료가격의 30퍼센트 이하가 될 겁니다. 최첨단 자율주행기술과 OTK배터리를 탑재한 ADT1은 인건비와 연료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기존 디젤트럭에 비해 물류비용을 90퍼센트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