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97)
를 보는 투자자 396 >
새만금 개발사업.
전라북도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를 방조제로 막은 다음 내부를 매립하는 단군 이래 최대의 간척사업이었다.
처음 공사가 시작된 것은 1991년. 이후 19년에 걸쳐 3조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돼, 33.9킬로미터라는 세계최장방조제를 건설했다.
그 사이 대통령이 바뀌고, 집권당이 바뀌고, 어민들의 생존권 주장, 환경파괴 등으로 인한 소송 등으로 공사가 몇 차례 중단되는 일도 있었지만, 결국 2010년 방조제가 완공되었다.
여의도의 140배가 넘는 땅이 새로 생겨났고, 한국 국토 면적은 0.4퍼센트나늘어났다. 그리고 이 땅은 100퍼센트 정부에 귀속되었다.
이는 한국을 넘어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으로 기록됐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 발생했다. 원래 새만금 사업의 최대목적은 농지확보였다. 그런데 막상 방조제가 완공될 때쯤에는 쌀이 남아돌아 있던 농지마저 줄여야 할상황이 됐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신도시개발로 사업방향을 바꿨다.
농지는 바닷물을 빼낸 다음 거기에 모내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신도시는 매립지 조성부터 각종 기반시설 공사까지 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때부터 개발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토해양부 산하에 새만금개발청을 만들고, 인프라 건설과 기업유치에 힘을 쏟았다. 주기적으로 새만금 국제포럼과 투자설명회도 열었다. 하지만 아무리 세금을 퍼부어도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고, 예산이 줄며 예정되었던 공사도 지지부진했다.
한때 개발의 꿈에 부풀어있던 주변 지역주민들은 먼지만 날리는 허허벌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새만금은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었다.
* * *
처음 이 예지를 봤을 때 생각했다.
어째서 새만금일까?
예지가 잘못된 방향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면, 새만금인것에는 분명히 그럴 만한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각 끝에 내린 답이 바로 새만금 신도시다. 서울을 뛰어넘는 금융과 산업의 첨단도시가 만들어진다면, 옮겨갈 만한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일반적인 보통의 경우,도시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정부주도 아래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도 얼마든지 있다.
한국 역시 몇 차례 신도시를 개발했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판교, 광교, 동탄, 위례 등등.
이 신도시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기존 대도시와 연결되어 있는 위성도시라는 것이다. 혼자서 기능하는 신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새만금의 초기구상은 농업식량생산기지 조성이었다. 하지만 이후 농지를 줄여 도농복합도시로 만들기로 했다가, 이제는 아예 경제협력특구로 지정했다.
현 정부가 내놓은 야심찬 계획에 따르면, 글로벌 자유무역의 중심도시로 만들겠다고 한다. 이번 정부만 그런 건 아니고 역대 정부마다 전북 첨단도시, 서해안시대 중심지, 동북아 허브도시, 아시아의 두바이, 국제금융도시 등등…… 아무튼 온갖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였다.
난 택규에게 말했다.
“도시는 입지가 가장 중요해. 다른 건 돈을 들여 바꿀 수 있어도 입지는 바꿀 수 없으니까.”
도시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오가기 위해서는 교통이 좋아야 하고, 기업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물류가 좋아야 한다.
다행히 새만금의 입지는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적합한 편에 속한다.
간척지라는 특성상 바다를 끼고 있는 것은 물론, 전국이 두 시간 권역 안이다. 수도권과는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고, 고속철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새만금국제공항과 새만금항만은 착공에 들어갔다. 예산 문제로 공사는 지지부진한 상태지만.
가까운 거리에 군산항이 있고, 아니면 트럭을 통해 부산항으로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어차피 무인전기트럭이 출시되면, 육상 물류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택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만금과 비슷한 입지는 다른 곳도 많지 않나? 외국에도 꽤 될 것 같은데.”
“가장 큰 차이는 새만금은 사유지가 하나도 없는 100퍼센트 중앙정부의 땅이라는 거지.”
이 정도 크기의 부지를 중앙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곳은 전 세계에 새만금 외에 없다고 봐도 좋다. 이는 실로 엄청난 강점이다.
“그런데 새만금 개발한다고 하면 환경단체가 반대하지 않을까? 예전에 그린피스까지 와서 반대하고 시위했었잖아.”
“아!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어째서?”
“알아보니까 이미 다 파괴돼서 더 이상 파괴될 환경이 없대.”
“…….”
간척사업은 필연적으로 환경을 파괴한다. 하지만 새만금은 이미 간척사업이 다 끝났고, 다시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때 새만금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극렬하게 반대했던 환경단체들도 지금은 조용하다.
남은 건 저 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새만금 신도시 계획은 내가 갑자기 생각해낸 게 아니라, 정부가 이미오래전부터 추진하고 있었다. 다만 잘 안 되고 있을 뿐이지.
계획이 답보 상태인 이유는 첫 단계인 기업유치부터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땅값이 싸고 주민반대도 없는 곳에 대규모 공장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면, 기업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공장을 지어봐야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단순노동이 필요한 굴뚝산업이라면 모를까, 첨단산업의 경우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서성, SSK, CL 등의 대기업들은 수도권에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공장 등을 짓는다. 그러나 이미 수도권은 포화상태고, 각종 규제에 묶여 있다. 또한 토지매입과 주민반대로 인해 계획이 무산되는 일도 많다.
결국 기업이 새만금으로 가지 않는 이유는 인재들이 대부분 서울과 그 주변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서울에 살고 싶어 하지. 그렇다면 왜 서울에 살고 싶어 할까? 서울에서 누우면 잠이 잘 와서? 서울에서 밥 먹으면밥맛이 좋아서?”
“사는 게 편해서 그런 거 아니야?”
“정답.”
서울에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직장, 교육, 의료, 쇼핑, 문화 등 모든 편의성을 누릴 수 있다. 서울에 살면 여행 갈 때를 제외하고는 서울 밖으로 나갈 일이 잘 없다.
사람은 사람이 있는 곳에 몰린다. 모두가 살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된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방법은 간단하지 않다.
대체 어떻게 해야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난 화이트보드를 꺼내들었다.
“사람이 살려면 뭐가 있어야 할까?”
“집이 있어야지.”
“정답.”
난 화이트보드에 ‘아파트’를 적었다.
“그 다음은?”
“회사도 있어야지.”
난 ‘아파트’ 옆에 ‘기업’을 적었다.
상업시설이 없는 도시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게 된다. 잠만 그곳에서 자고 출퇴근은 다른 곳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타운이 되지 않으려면, 기업이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잠자고 일만하며 살 수는 없다.
“애를 키우려면 유치원과 학교가 필요하지. 쇼핑하려면 백화점, 마트, 쇼핑센터가 필요하고. 그리고 문화생활도 즐겨야 하니,영화관, 미술관, 공연장도 필요하고.”
“주말에 놀러가려면 테마파크도 있어야지.”
“테마파크 중요하지. 디즈니랜드가 좋을까,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좋을까?”
내 물음에 택규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둘 다 넣으면 안 되나?”
“천잰데.”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한곳에 모여 있는 건 올랜도 뿐이다. 하지만 새만금은 땅이 남아도니, 둘 다 넣지 말라는 법도 없다.
“좋은 호텔이나 리조트도 있어야지.”
“맞아.”
“그때 싱가포르에서 본 것 같은 거.”
“마리나베이 샌즈?”
싱가포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대한 세 개의 빌딩과 그 위에 얹어진 기다란 배. 그 배 안에는 인피니티 풀이 있어서 인증샷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그곳이 바로 마리나베이 샌즈.
건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호텔을 지은 것은 샌즈그룹. 미국의 유명 카지노, 리조트, 호텔 그룹으로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호텔과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관광객들 끌어들이려면 외국인 카지노도 하나 있는 게 좋겠네.”
다 적어놓고 보니, 한두 개가 아니다. 과연 이걸 다 유치할 수 있을까?
정부나 나나 세운 계획은 거기서 거기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겠지.
“한번 가보자.”
“어디를?”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새만금. 눈으로 보는 게 가장 확실하지 않겠어?”
* * *
만약 내가 새만금에 간다고 하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온갖 소문이 퍼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끼리 몰래 가보기로 했다.
차는 쭉 뻗은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다. 내가 운전석에 앉아있긴 하지만, 어차피 자율주행이 알아서 하니 딱히 손을 댈 건 없었다.
“왜 가는지 말 안 해줄 거예요?”
“이따 말해줄게요.”
내 옆에는 엘리가 있었고, 그리고 뒷자리에는 택규와 유리가 앉아있었다.
둘만 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같이 가게 됐다.
이유는 오늘 유리와 쇼핑을 가기로 한 엘리가 따라 나섰기 때문. 유리는 자연스럽게 같이 따라왔다.
난 엘리에게 말했다.
“진짜 쇼핑 안 가도 돼요?”
“어차피 살 것도 없었어요. 쇼핑보다는 바다 보러가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이따 회도 먹고.”
유리도 말했다.
“맞아요. 백화점 가봐야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요.”
“…….”
둘 다 살 게 없는데, 쇼핑은 왜 가기로 한 거야?
궁금했지만, 왠지 물어보면 바보 취급 받을 것 같아서 안 물어보기로 했다.
긴 금발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유리는 영락없는 대학생 같은 모습이었다. 엘리는 흰색과 파란색 스프라이트 무늬 원피스를 입고, 샌들을 신었다.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았음에도 모델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언니 오늘 진짜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그치만 제 눈에는 유리가 훨씬 더 예쁜데요.”
서로의 미모를 칭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둘이 같이 쇼핑하러 갔으면, 백화점에 있던 사람들이 다 쳐다봤을 것이다.
난 택규의 의견에 따라 잠깐 휴게소에 들렀다.
얼굴이 알려진 나와 엘리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대신 택규와 유리가 실컷 먹거리를 쇼핑해 왔다.
“핫도그 먹을래?”
“됐어.”
“소떡은?”
“안 먹어.”
엘리가 물었다.
“소떡이 뭐예요?”
“소시지랑 떡 같이 먹는 거요.”
“전 먹어볼래요.”
엘리는 몇 입 먹더니 나에게 꼬치를 내밀었다.
“맛있는데요? 진후도 먹어봐요.”
난 못 이기는 척 받아먹었다. 먹어보니 맛있어서 그냥 나도 먹기로 했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단체로 피크닉 가는 것 같다.
휴게소를 지나 두 시간을 더 달린 끝에 드디어 새만금방조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를 가로지르며 뻗어있는 수십 킬로미터의 방조제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바다 위에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 감상이 깨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만금 매립지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잠깐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불 때마다먼지가 날려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였다.
뭔 황사야?
택규는 감탄하듯 말했다.
“이야! 한국에도 사막이 있었네.”
직접 보니 어째서 세금으로 사막 지어놨다고 욕했는지 알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지 않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심하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잡히지 않는다.
난 실리콘밸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진으로 참혹하게 무너진 그곳에도 새롭게 도시가 건설되고 있다.
자본만 투입된다면, 여기에 도시를 만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두바이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초고층빌딩을 세우고 최첨단 도시를 건설했어. 지금 그곳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돼서 매년15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고 있고. 두바이에 비하면 새만금이 훨씬 현실적이지.”
택규가 말했다.
“그거 다 오일머니 덕분 아니야?”
“뭐…….”
두바이는 석유가 나지 않지만, 개발에 있어서 오일머니가 쏟아져 들어온 것은 사실.
참고로 중간에 금융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중앙정부라 할 수 있는 아부다비에 손을 벌리는 처지가 되었다. 두바이 신도시의 상징이었던 초고층빌딩 부르즈 두바이도 아부다비 자본에 넘어가 부르즈 할리파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 돈이 오일머니에 비해 부족할 건 없잖아.”
“그러네.”
우리의 대화에 엘리와 유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여기까지 같이 왔는데, 말 안 해줄 수도 없다. 어차피 얼마 후면 전 세계 사람들이 알게 될 일이기도 하고.
“아직은 비밀이니 당분간은 둘만 알고 있어요.”
유리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빠랑 아저씨한테도 말 안할게요.”
난 솔직하게 말했다.
“여기에 신도시를 만들어 보려구요.”
역시나 둘 다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마침 세찬 바람이 불며 먼지가 사방으로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