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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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엘리와 택규와 함께 현주 누나 집으로 찾아갔다. 미국 다녀온 뒤로 바빴기에 오랜만에 모여서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서 와.”
누나와 헨리는 우리를 반겨주었다.
택규는 백화점에 들러서 사온 BMW를 내밀었다.
“선물 사왔어, 누나.”
진짜 자동차는 아니고, 애들이 타고 다니는 유아용 장난감차다. 그래도 배터리가 탑재되어있고, 스티어링휠과 엑셀이 있어서 밟으면 실제로 움직인다.
그래서인지 가격도 애들 장난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나 어렸을 때 타던 건 그냥 발로 굴렸던 것 같은데.
현주 누나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
“고맙긴 한데, 건이가 타려면 아직 멀었어.”
“애들은 금방금방 큰다며?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거지.”
난 와인을 들어보였다.
“와인도 가져왔어요.”
현주 누나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우리를 보았다.
“오늘 무슨 날도 아닌데, 왜 이래?”
“그냥요.”
“조카 사랑은 삼촌 아니겠어?”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건이는 보모와 놀고 있었다. 정말이지 하루가 다르게 크는 중이었다. 이제는 곧잘 기어 다니고, 말도 흉내낸다.
엘리는 두 손으로 건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까꿍! 이모 왔어. 우리 건이 그새 많이 컸네.”
“헤헤!”
아기들도 예쁜 사람은 한눈에 알아보기 마련이다.
엘리의 품에 안긴 건이는 해맑게 웃었다. 그런데 이어서 택규가 안아들자 갑자기 힘차게 울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헉! 삼촌이야, 삼촌.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누나.”
아기가 있는 집은 아기가 중심이 되기 마련. 다 같이 건이와 노는 사이 난 헨리와 따로 얘기를 나눴다.
“결혼생활은 어때요?”
“솔직하게 말씀드릴까요?”
“예.”
아무리 좋아서 결혼했어도 역시 현실은 만만치 않겠지?
헨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요?”
다른 사람들 얘기랑은 좀 다른데.
“누나 성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현주 성격이 어때서요? 일할 때는 똑 부러지지만, 집에서는 누구보다도 다정합니다.”
이제는 영어이름이 아닌 본명을 부르는 게 자연스럽다. 어지간히 사랑하는 모양이다.
행복해하는 헨리의 모습을 보니, 왠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어차피 일이 시작되면 알려질 수밖에 없는 만큼 미리 누나에게 말하고 조언을 구할 생각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누나가 택규에게 먼저 말했다.
“할 말이 뭐야?”
“응?”
“아까부터 계속 눈치 보고 있던데.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택규는 재빨리 나에게 공을 떠넘겼다.
“그건 진후가 설명할 거야.”
난 준비해온 얘기를 꺼냈다.
“사실은요…….”
난 새만금 개발에 대한 구상을 밝혔고, 현주 누나와 헨리는 진지하게 우리의 얘기를 들었다.
현주 누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택규는 옆에서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누나. 뜬금없이 신도시 만들겠다고 하니, 좀 황당하겠지.”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야. 새만금 개발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골든게이트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새만금 국제협력용지가 조성되고 나면 이후 이주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어. 부지제공과 각종 세제혜택을 제시하며 말이야.”
헨리도 한마디 했다.
“외국기업들 대상으로 투자유치회도 많이 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관련이 있는 기업이라면, 새만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겁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워낙 큰 간척사업이었던 만큼 세계적으로도 꽤 유명하다고 한다.
현주 누나는 나를 보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쪽에 관심을 갖게 된 거야?”
예지를 봤기 때문이지만…… 이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그냥 실리콘밸리 복구현장을 보니 문득 생각이 들어서요. 저런 도시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맞아, 누나. 서울은 너무 복잡하잖아.”
현주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나라나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되기 마련이지. 그러나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도 서울과 수도권은 심각한 수준이야.”
그 이유는 정치, 산업, 금융, 교육 등 모든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토가 넓은 미국과 중국은 차치하더라도 인구가 많은 나라들은 주요도시가 2~3개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은 수도권에만 인구의 40퍼센트가 집중되어 있다.
“현재 수도권은 포화상태야. 단순 제조업이라면 모를까 첨단 제조업은 지방으로 내려가기도 힘들지.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처럼 기업들도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금융회사든 IT회사든 한곳에 몰려 있으려고 하는 거고. 만약 서울을 대체할 만한 도시가 만들어진다면, 기업들도 기꺼이 그곳으로 가려하겠지.”
택규가 말했다.
“그런데 거기 가보니까 지금 허허발판이던데.”
현주 누나는 커피를 마셨다.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푸동도 예전에는 그랬어.”
상하이는 황푸강을 중심으로 푸동과 푸서로 나뉜다. 일찍부터 도시가 형성된 푸서와는 달리 푸동은 논밭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마치 예전의 강북과 강남과도 같았다고 봐도 좋다. 지금이야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원래 강남은 밭이 펼쳐진 시골마을이었다.그런데 1960년대부터 도시확장을 위해 정부는 강남을 집중적으로 개발했고, 지금은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동네로 거듭났다.
헨리가 설명을 해주었다.
“중국정부는 푸동을 중국의 금융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유는 제조업 중심의 성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제조업이 성장할수록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커지니까요.”
산업과 금융은 경제의 양쪽 날개다.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없듯, 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금융이 뒤를 받쳐줘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허허벌판인 푸동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아했죠.중국은 지방정부에 건물을 하나씩 짓도록 강제했고,국영기업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농촌이나 다름없던 푸동은 이제 마천루가 늘어선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금융중심지로 거듭났다.
현재 상하이에는 푸동을 중심으로 500개가 넘는 금융기관이 입주했고, 1만5천 개가 넘는 외국기업이 들어왔으며, 외국인 인구만15만 명이 넘었다. 이 모든 게 불과 30년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중앙정부 정책에 따라 강제로 건물을 짓고 이주한 지방정부와 기업들은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였다.
현주 누나가 말했다.
“새만금은 강남이나 푸동보다 개발이 훨씬 쉬울 거야. 그때보다 건축기술이 발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유지가 없어서 토지매입에 들어가는 자금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니까. 단 PEF 투자에 앵커LP가 필요하듯, 이 경우에는 앵커기업이 필요하겠지.”
마치 배가 닻을 내리듯 투자의 닻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리미티드 파트너(Limited Partner)를 앵커(Anchor LP)라고 한다.
잘 모르는 것에 투자하기를 꺼리듯, 아무것도 없는 땅에 건물을 지으라고 하면 누구나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개발에 뛰어들어 먼저 빌딩을 지어 올려야 한다. 그러면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이 옆에 건물을 짓기 시작하고,그렇게 도시가 만들어진다.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빌딩을 지었는데, 아무도 옆에 건물을 짓지 않는다면? 그럼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보게 된다.
“뭐든 시작이 힘든 법이지. 한번 물꼬를 트면 그 다음부터는 물이 쏟아지게 될 거야. 다행히 너희에게는 그것을 실행할 만한 영향력과 자본이 있잖아.”
“해도 괜찮을까요?”
현주 누나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뭘 물어봐? 이미 하기로 결정하고 말 꺼낸 거 아니었어?”
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계셨네요.”
현주 누나는 피식 웃었다.
“뭘 새삼스럽게? 이제까지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면서.”
택규는 재빨리 양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오! 역시 우리 누나!”
“시끄러.”
* * *
예지가 아무리 미래를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을 실현할 방법을 찾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난 계속해서 그 방법을 고민했다.
새만금 신도시 계획은 굳이 내가 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여러 정부를 거치는 동안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이 끝마쳐 놓았기 때문이다.
산업연구, 국제협력, 관광레저 등의 용지를 다 나눠놓았고, 항만, 국제공항, 동서간선도로, 남북간선도로, 새만금포항고속도로,고속철 연장 등 인프라 공사 계획도 다 잡혀있다.
택규는 감탄했다.
“오! 역시 정부는 다 계획이 있구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참으로 시의적절한 계획이었지.”
그런데 계획을 세우면 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떻게 된 게 계획대로 진행된 게 하나도 없다.
계획대로만 됐으면 지금쯤 세계적인 첨단도시가 들어서고도 남았겠지. 그러나 직접 눈으로 확인했듯 현재 먼지만 날리는 중이다.
인프라 공사는 지지부진하고, 일부 지역은 아직 매립지 조성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어째서 계획대로 안 된 건데?”
“돈도 문제고, 정부도 문제지. 이런 말이 있어. 만약 연방정부가 사하라 사막을 관리했다면, 5년 안에 모래가 부족해질 거라고.”
정부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조직인지를 비꼬는 말이다.
“누가 한 말인데?”
“밀턴 프리드먼 교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다. 대표적인 시카고 학파로 현재 주류 경제학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정부의 역할이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말에 100퍼센트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반드시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무려 3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새만금 땅은 100퍼센트 정부 소유. 정부가 계속 개발사업을 주도한다면, 앞으로 또 몇 십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예지를 봤으니 하긴 해야겠지만, 굳이 돈 안 되는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난 투자자지, 자선사업가가 아니니까.
따라서 개발을 제대로 진행시키고,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정부가 가진 개발 주도권을 넘겨받을 필요가 있다.
난 인터넷에 신도시를 검색해보았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3기 신도시에 관한 기사였다.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에 다섯 곳의 미니 신도시를 만들어 약 2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목적은 서울의 집값 안정.
하지만 계획이 발표된 이후 주변지역 주민들은 집값하락과 교통체증을 우려하며 반대시위를 벌였다. 아직 토지매입도 진행되지 않아 실제 아파트 공급까지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뭐야? 신도시 잘만 만드네. 근데 왜 새만금은 안 된 거야?”
“거긴 수도권이 아니잖아. 땅이 넓기도 하고.”
신도시 개발에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푸동이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중국정부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개발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말로는 새만금을 개발하겠다고 외쳐도, 우선순위에서는 항상 뒤로 밀렸다.
그 이유는 쓰는 돈은 많은 반면, 성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
난 기사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좋은 방법이 생각난 것 같은데.”
* * *
OTK컴퍼니 강진후 대표는 국무총리와의 만남을 요청했다.
사람들은 이를 신기하게 여겼다. 강진후는 미국 정치권과 친한 것과는 달리 한국 정치권과는 최대한 거리를 뒀다. 때문에 그가 한국 정치인을 먼저 만나자고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다들 이유를 궁금해 했고, 정치권은 술렁거렸다.
류정훈 국무총리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발전과 투자활성화를 위해서라면 정부는 언제든지 기업인과 만날 수 있습니다. 강진후 대표께서 먼저 만남을 요청한 만큼 기꺼이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역시나 야당은 꼬투리를 잡고 공격했다.
연나경 대표가 말했다.
“이전 정부에서 대통령이 기업인을 만났을 때는 부정청탁과 뇌물이 오갔다고 비난하더니, 일국의 국무총리가 기업인과 독대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런 내로남불 정부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역시나 여론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앟았다.
-아니, 저번에는 반기업 정서가 투자를 막는다고,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기업인들을 직접 만나서 투자를 독려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언제는 경제와 민생부터 챙기라더니.
-경제 챙기려면 강진후부터 만나야 하지 않음?
-각하는 몰래 만나서 뒷돈 달라고 해서 문제가 됐던 거고. 공식적으로 만나는 건 문제가 없잖아. 강진후가 로날드 대통령과 독대한 게 몇 번인데.
-기업인 안 만나면 안 만난다고 지랄. 만나면 만난다고 지랄~
-ㅋㅋㅋ 연적연. 연카자키 말은 연카자키 말로 반박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