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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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차를 타고 세종시로 향했다.
세종시는 수도권의 집중을 막고, 국가균형발전을 목적으로 충청도에 만들어진 신도시다. 수도권 밖에 만들어진 가장 큰 규모의 신도시로 원래는 행정수도를 이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와 소송 등을 거치며 이 계획은 무산됐고, 정부부처의 절반 정도만 이전하며 반쪽짜리 행정수도가 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정부정책에 따라 국무총리 직속기관들도 세종시로 이전했다. 국무총리는 다른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국무회의나 국회출석 등의 서울 출장을 제외하고는 평소에는 세종시에서 업무를 봤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직접 세종시로 가는 거고.
정문에서부터 기자들이 잔뜩 대기 중이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바로 카메라 셔터가 터지고, 기자들이 달려들어 마이크를 내밀었다.
“무슨 이유로 만남을 요청하신 겁니까?”
“한국경제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혹시 미국 측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까?”
“국민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상됐던 상황인 만큼 역시나 대기하고 있는 청사 직원들은 몸으로 기자들을 막았다.
누가 보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검찰청에 출두하는 줄 알겠네.
언론에서는 이미 만남의 목적에 대해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다. 맞힌 건 하나도 없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니면 말고’ 아니겠나?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미 약속을 해놓고 온 것인 만큼 별다른 절차 없이 직원들은 바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류정훈 국무총리는 응접실에서 반갑게 나를 맞았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이 친근하고 푸근한 외모였다.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에서국무총리의 존재감은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대중적인 인지도는 적어도 명실상부한 행정부 2인자.
이런 사람을 이렇게 독대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특권이겠지.
물론 미국 대통령, 중국 국가주석, 러시아 대통령 등을 차례대로 만났는지라 별 감흥은 없다.
바로 저번 주에는 로날드 대통령을 만나고 오기도 했고.
우리는 인사를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직원이 커피와 차를 내왔다.
“세종시에 오신 건 처음이신가요?”
“예. 도로도 넓고 건물도 다 깨끗하네요.”
이는 계획대로 조성된 신도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로날드 대통령님의 재선 출정식에서 연설하신 것 잘 봤습니다. 강진후 대표님 덕분에 한미관계가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류정훈 국무총리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강진후 대표님께서 오신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더군요. 저 역시 좀 궁금합니다.”
“용건에 대해서는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정부정책에 대해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답해드리겠습니다.”
난 부담 갖지 않고 물었다.
“현재 경제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정부의 대책이 있습니까?”
사실 한국경제는 지표상으로만 보면 괜찮은 편이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이 잘나가며,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3퍼센트에서 3.5퍼센트까지 높여 잡았다.
하지만 첨단산업과 대기업들이 잘나가는 것과는 달리 서민경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고용이 많은 제조업과 건설업 등의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하기 때문.
경제에 대한 질문을 할 거라고 예상했는지 그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도 부양책을 검토 중입니다. 투자에 대한 세금감면을 통해 기업투자를 촉진하고, 대규모 SOC를 조기에 착공할 예정입니다. 또한 공공주택사업과 민간재개발사업도 지원하려고 합니다.”
“발표된 내용 그대로군요.”
건설업은 고용 유발효과가 매우 크다. 그래서 역대 정부마다 건설경기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책을 써왔다.
이걸 특히 좋아했던 것은 박시형 전 대통령. 아주 대한민국 전체를 공사판으로 만들며, 뒤로 열심히 해드셨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당은 이를 강하게 비판했고, 허창민 대통령은 절대 ‘토건 정부’가 되지 않겠다며 공언했다.
하지만 지금 하는 걸 보면 내로남불이라 욕먹어도 할 말 없다.
난 이어서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서울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나요?”
내 물음에 류정훈 국무총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도가 궁금하겠지.
현재 정부는 부동산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이 시작된 것은 박시형 정권 말기. 경기부양의 일환으로 대출 규제를 풀며 대놓고 ‘빚내서 집사라’고 국민들을 부추겼고, 한동안 안정세를 유지하던 집값은 치솟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권이 바뀐 뒤 일어났다.
허창민 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반대로 집값을 안정화시키고 투기를 뿌리 뽑겠다며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종합부동산세 인상,양도세 감면혜택 축소, 과세대상 확대, 재건축 이익 환수, 임대사업자 등록 규제, 대출 규제 등등.
부동산 투기를 막고,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좋은 의도로 한 일이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고, 나쁜 의도로 한 일이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어떻게 된 게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나선 이후, 서울집값은 사상최고치로 폭등했다. 사실상 부동산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봐도 좋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수도권 인구집중이 계속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규제로 인해 공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류정훈 국무총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부동산 투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입니다.”
“그런데 정부의 방침과는 달리 이미 집값이 폭등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월급 모아서 서울에 집사는 것은 불가능해졌다고 봐도 좋겠죠.”
정부입장에서 집값이 오르는 게 좋을까, 떨어지는 게 좋을까?
정답은 물가와 똑같다. 경제성장에 따라 완만하게 오르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사실 집값이 오르는 동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다. 일단 집 산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큰돈을 번다. 그리고 건설경기가 활성화되며 건설사도 돈을 벌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돈을 번다. 그 외에 공인중개, 이사, 자재, 인테리어, 가구 등 관련 산업 종사자들도 돈을 번다. 부동산 가액이 높아지고 거래가 활발해지며 정부의 세수도 늘어난다.
문제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부동산은 거래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특징이 있다. 집값이 오르면 전월세가 따라 오르며, 집을 사지 않은 사람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진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가계부채. 집값 폭등과 맞물리며 부동산대출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1600조 원. 이는 거의 GDP와 맞먹는 금액으로, OECD 국가들과 비교해봤을 때도 심각한 수준이다.
결국 집을 산 사람들은 대출 갚느라 허덕이고, 집을 안 산 사람들은 주거비 내느라 허덕인다. 자연히 소비는 위축되고, 경제는 침체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입니다. 한국 부동산시장에 투기수요가 넘쳐나는 건 사실이지만, 실수요도 얼마든지 있죠. 공급이 확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집값을 잡는 데는 한계가 있을 텐데요.”
“그래서 서울과 수도권에 택지를 개발하고, 3기 신도시를 만들어 30만 호 이상을 공급할 예정입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신도시건설에 나선 것은 1990년 대. 당시 노태우 정부는 집값폭등과 공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택200만 호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분당과 일산으로 대표되는 1기 신도시를 만들어 아파트를 공급했고, 덕분에 수도권의 주택난을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수도권 인구는 계속 증가했고, 판교, 광교, 동탄, 운정, 위례 등에 2기 신도시를 건설했다.
그리고 이번에 또다시 서울집값이 폭등하자 부랴부랴 3기 신도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왕숙, 교산, 계양, 창릉, 대장 등에 신도시를 지어 서울집값을 잡겠다는 것이다.
“3기 신도시를 건설해봐야 과연 서울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요? 이미 나올 만한 대책은 다 나왔다는 생각에 부동산 시장이 또다시 들썩거리고 있던데요.”
정부 대책에 떨어지는가 싶던 서울집값은 다시 치솟고 있고, 분양하는 아파트마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3기 신도시들이 완공되고 나면, 수도권 과밀화는 더욱 심해질 겁니다. 그리고 다음 정부는 또 4기 신도시를 짓겠다고 하겠죠.”
류정훈 국무총리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정부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럼 대표님 생각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이거 말고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보라는 거겠지.
“빅원 이후 미국 전역의 대도시 집값이 폭등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가 붕괴되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투기수요까지 몰리며 1년도 안 돼 수십 퍼센트씩 치솟았다.
놀란 주정부들이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폭등하는 집값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갑자기 가격이 크게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아실 겁니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재건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백 개의 IT기업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의지를 불태우며 본사를 건설 중이다. 기업들이 돌아가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따라서 돌아간다. 자연히 집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론은 수요를 다른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게 최선이라는 겁니다.”
“정부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거군요.”
류정훈 국무총리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세종시 건설을 추진한 것도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려는목적이었습니다. 서울과 과천 등에 있던 정부기관들이 이전하며, 그곳에서 일하던 공무원들은 자연히 따라서 내려왔습니다. 일부 공무원은 가족들을 데리고 이주했지만, 여전히 많은 공무원들이 혼자 세종시로 내려와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서울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올라가는 게 현실입니다.”
실제로 금요일 밤 서울로 가는 상행선과 일요일 밤 세종시로 가는 하행선 버스와 KTX는 표를 구하기가 힘들 정도다.
이는 수도권 밖으로 인구를 분산시킨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말해준다.
“수도권 인구집중은 수도권에도 문제지만, 다른 지역에도 문제입니다.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부산이나 대구, 광주 등의 광역시들조차도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며 인구가 줄고 있으니까요.”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리고, 기업들은 구직자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린다. 반면 지방은 산업공동화와 인구감소를 동시에 겪고 있다. 군산만 하더라도 전기차 산업단지가 들어와서 간신히 한숨 돌렸을 정도다.
“역대 정부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수를 썼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아니, 그나마 세종시 건설이나 수도권 규제 같은 대책 덕분에 이 정도로 그쳤다고 보는 게 좋을 겁니다.”
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발표한 경기부양책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에 대규모 개발계획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면 서울집값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텐데요. 건설경기를 활성화시키면서 집값을 잡겠다는 것은 모순 아닌가요?”
“…….”
이 질문에 대해서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난 슬슬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서울집값도 안정화시키고 경기도 부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류정훈 국무총리는 놀란 듯했지만,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정말로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바로 새만금 신도시 개발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반응은 잠시 후에 나왔다.
“……새만금이요?”
그는 호남 출신 총리로 김제가 고향이다. 그런 만큼 새만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만나러 온 거고.
“예. 새만금에 신도시를 만들면 수도권 인구집중 문제가 해결되며 서울집값은 자연히 안정될 겁니다. 대규모 투자와 건설로 경기도 좋아지겠죠. 정부 입장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습니다.”
난 개발계획을 간략하게 정리해놓은 서류를 내밀었다.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까?”
류정훈 국무총리는 품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그러고는 마지막장까지 신중하게 읽은 다음 나에게 물었다.
“이게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거의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난 단호하게 말했다.
“정부가 하면 안 되지만, 제가 하면 된다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