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66)
이번 남북회담은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첫날 회담이 끝난 후 국내외 언론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와 택규, 한병선 은성금강 사장 역시 어떠한 취재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전 회담에 비해 관심이 더욱 커진 이유는 내가 참석했기 때문. 다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특히 NHK와 산케이신문 등의 일본언론은 회담결렬을 기정사실화하듯 보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택규가 말했다.
“얘들은 결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네.”
“그게 일본의 바람이지.”
오카자키 총리는 그동안의 전범국 이미지에서 벗어나,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군대 보유와 교전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폐기해야 한다. 때문에 일본은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난리를 쳐대며, 일본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계속해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만큼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바라지 않겠지.
집에 돌아온 시간은 거의 자정이었다.
파자마를 입은 엘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안 자고 있었네요.”
“TV토론 보고 있었어요.”
TV를 슬쩍 보니 여당과 야당 의원들이 패널로 나와 격렬한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북한 얘기만 나오면 서로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회담은 어떻게 됐어요?”
택규는 회담장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고, 엘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일청구권 700억 달러요? 말도 안 돼요! 진후는 그 금액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음, 그게…….”
택규는 쓰러질 것 같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밥부터 좀 먹어야겠어요.”
회담과 회의가 이어지는 바람에 점심 이후로는 아무것도 못 먹었다.
엘리는 손을 들었다.
“아! 저도 먹을래요!”
우리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다 같이 거실에 둘러앉았다. 재산에 비해 식단이 너무 소박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얘기를 나눴다.
“가스관 건설과 철도 연결 사업은 경제적 효과가 크겠죠?”
“그럼요. 아마 향후 남북관계를 완전히 바꿔놓게 될 거예요.”
일단 화석연료를 전량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싸고 안정적으로 시베리아산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다. 북한 역시 가스관을 통해 중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효과를 갖는 것은 철도예요. 교통인프라는 산업의 초석이니까요.”
철도가 연결되면, 그동안 섬나라나 다름없던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갖게 된다.
육로수송은 해상수송에 비해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철도를 통해 러시아와 유럽으로 보낼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북한 또한 통행료만 받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생각이 있다면, 철길이 지나가는 지역에 산업단지를 만들겠지. 로사톰은 동해안을 따라 TWR을 건설하는 것까지 생각해놓았다.소형원자로인 만큼 공사기간이 짧고, 필요한 지역에 필요한 만큼 건설할 수 있다.
엘리는 컵라면 뚜껑을 열며 물었다.
“그런데 배상금을 받아도 위에서 다 해먹으면 어떡해요?”
실제로 후진국들의 경우 NGO 단체의 국제원조마저 정치인과 관료들이 해쳐먹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크게 걱정할 건 없어요. 북한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불량국가니, 배상금으로 받은 돈이 핵이나 무기개발에 전용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감시할 테니까요.”
택규는 젓가락으로 면을 휘저었다.
“그래도 해쳐먹을 놈들은 해쳐먹을 거 아니야?”
맞는 말이다.
“뭐, 어차피 해쳐먹을 거면 200억 달러에서 해쳐먹는 것보다 700억 달러에서 해쳐먹는 게 낫지 않겠어?”
최고존엄과 그 주변 인간들이 20퍼센트씩 해쳐먹는다 가정하면, 전자는 160억 달러가 남고 후자는 560억 달러가 남는다.
“그리고 절반 이상은 현물로 받게 될 거야.”
200억 달러만 해도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여기서 500억 달러가 늘어나면, 10년, 20년에 걸쳐서 분할로 지급한다고 해도 부담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이중 절반 이상은 자재, 부품, 기계, 식량 등 현물로 받게 될 거고, 이는 경제개발에 쓰일 수밖에 없다.
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일본 재정상황에서 이 금액을 부담할 수 있을까요?”
현재 일본의 GDP는 세계 3위.
국가예산은 GDP 규모와 비례하는 만큼 역시 세계 3위고, 금액으로는 거의 2조 엔에 달한다.
하지만 세금이란 상당 부분 이미 사용처가 존재하고, 부가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다. 게다가 일본은 매년 걷는 세금에 비해 돈을 많이 쓰는 적자재정을 펼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누적된 적자는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현재 일본의 국가부채는 1100조 엔을 넘었다. 이는 모든 국가 중에서 최대고, 일본 GDP의 2배가 넘는 액수다.
택규는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그럼 거기서 7조 엔 더 늘어도 상관없잖아. 빚이 1100조 엔이나, 1107조 엔이나.”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이게 죽도록 맞은 사람에게 한 대 더 맞아도 괜찮지 않냐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달라?
가뜩이나 빚더미에 앉아 있는 일본 입장에서는 미치도록 부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 사정.
다시 말하지만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 그리고 북한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최빈곤국.
내전에 신음하는 아프리카국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빈곤함을 자랑한다.
쥐가 고양이 생각해주는 것도 아니고…….
“뭐, 굳이 걔들 사정까지 신경 써줄 필요는 없겠지. 없는 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피해본 거 배상받는 건데.”
택규는 면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동의 적은 협력에 큰 도움이 되기 마련이지.”
* * *
판문점에서 다시 회담이 열렸다.
어제에 비하면 훨씬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악수를 하며 내 손을 잡는 리해룡 부위원장의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돌아가서 회의를 한 것은 북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회담장에 다시 나왔다는 것은 최고존엄이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리해룡 부위원장이 말했다.
“위원장님께서는 우리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는 강진후 대표의 의견에 공감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어떻게 일본의 입장을 바꿀 수 있을지 우려하셨습니다.”
대일청구권 협정은 대략 100억~200억 달러 정도 선에서 협의 중이었다. 당연하지만 돈은 많이 받을수록 좋다.
북한이라고 왜 금액을 더 받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북일관계, 기존에 배상을 받은 다른 나라들과의 형평성, 북한의 국력과 일본의 국력 등을 고려했을 때 그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뭐, 이 정도만 되도 북한 입장에서는 엄청난 금액이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금액을 500억 달러 이상 올려주겠다고 나섰으니,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
“말씀드렸다시피 돈도 돈이지만, 식민지배와 전쟁범죄에 대해 진실한 사과가 선행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못된 합의는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북한은 한국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강제징용이랑 위안부 문제를 원점에서 논의해 확실한 사과를 받아낼 생각입니다.”
가능하면 대일청구협정을 조용히 마무리 짓고 싶은 것이 일본의 속내. 하지만 내가 끼어들면 이 문제는 국제적인 뉴스가 될 것이다.
일본이 인정을 하든 안 하든 협상과정 내내 일본이 저지른 각종 전쟁범죄들은 세계적으로 이슈화될 것이다.
“이는 과거의 잘못을 지우고 군비를 증강하려는 일본의 행태를 저지하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리해룡 부위원장은 나를 보며 물었다.
“계획이 아무리 좋아도, 실현이 되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일이 잘못되면 전부 제 탓을 하시면 됩니다.”
난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이제까지 제가 했던 일 중에서 실패한 일이 있었나요?”
이럴 땐 투자자로서의 명성이 큰 도움이 되겠지.
내 얘기에 이어서 윤제훈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러 협력을 통한 가스관과 철도 건설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회담은 사흘째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무슨 동네 어른 만나는 것처럼 친근한 분위기다. 같이 커피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택규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초코파이 좀 그만 처먹어! 니가 무슨 북한 노동자냐?
중요한 얘기는 둘째 날 이미 다 끝났다. 오늘 자리에서는 향후 남북교류와 협력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얘기들이 오갔다.
윤제훈 통일부 장관은 준비해온 얘기를 꺼냈다.
“대통령님께서는 이산가족 상봉이 최우선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생존자들이 전부 고령이라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리해룡 부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빠르게 검토하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지난번 북남수뇌회담 때 위원장님께서도 동의하셨던 만큼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민간 스포츠와 문화교류는 물론이고, 올림픽 공동입장이나, 남북 단일팀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얘기가 술술 풀리는 분위기다.
돈은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이래서 사람은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이다.
회담이 끝날 때쯤 리해룡 부위원장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북남이 교류할 일이 많아질 거라 생각하오. 위원장님께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시니, 추후 우리 공화국을 방문하는 게 어떻겠소?”
북한 최고존엄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난 자주 뉴스에서 나오는 배 나온 30대 남자를 떠올렸다. 나이는 나와 얼마 차이 나지 않지만, 그는 이미 세계 최악의 독재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최소한 경제를 성장시켰고, 이는 체제를 정당화시키는 이유가 됐다. 그런데 북한은 그런 것도 아니다.
고난의 행군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상황이 열악하다.
작정하고 노력해도 이 정도로 경제를 말아먹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좀 궁금하긴 하다.
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되는 대로 방북하도록 하겠습니다.”
* * *
회담 종료 후.
윤제훈 통일부장관과 리해룡 부위원장은 악수를 나누는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고, 통일부 대변인이 언론 앞의 브리핑했다.
“……이상의 사안들에 대해 남북대표들이 합의했고, 조속한 시일 내에 남북정상회담을 열 예정입니다.”
즉시, 국내외 언론의 기사가 쏟아졌다.
[(속보) 북한, 남측 요청 받아들여 금강산 시설물 철거 보류!] [안전상 우려도 있는 만큼, 담당자의 시설물 점검 허가!] [김 위원장, 철거하지 않을 거면 남측이 책임지고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보수하라 지시] [금강산 관광 재개 길 열리나?] [북측, 남측 요청 받아들여 연내 이산가족상봉 추진!] [북한이 태도를 바꾼 결정적 이유는?]조선중앙TV 뉴스에 모습을 드러낸 핑크레이디는 최고존엄의 말씀을 전했다.
“경애하는 위원장님께서는 금강산 시설물들의 외관이 낡고 흉물스럽다고 지적하시며, 철거하지 않을 거면 하루 빨리 정비해 민족의 영산을 지켜나가야 하다고 말씀하시었다! 또한 남측 실무자들의 시설물 점검을 허가하시며, 담당자로 하여금 정비계획을 제출할 것을 지시하셨고, 이에 남측 역시 응하기로 했다.”
사용도 안 할 건물이라면 보수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이는 사실상 금강산 관광 재개의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금강산 시설물을 이산가족상봉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는 관광 재개에 더더욱 긍정적인 소식이었다.
은성금강과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들은 바로 점검단을 꾸려 방북하기로 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향후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으로 대북관련주들과 은성그룹주 주가는 크게 뛰었고, 일부 기업은 상한가를 쳤다.
-와씨! 강진후가 안 되는 걸 되게 만든 거야?
-지린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진후야! 진후야! 그렇게 속고 또 속냐?
-근데 진짜 어떻게 한 거? 설마 북한에 뒷돈 찔러줬나?
-이 ㅅㄲ 결국 종북이었음. 최고존놈 똥구멍이나 핥아라!
-대체 언제적 강진후냐? 얘도 이젠 맛이 갔네.
-ㅋㅋㅋ 넌 대체 얼마나 벌기에 강진후 걱정해주는 거냐? 월 200은 버냐?
-장군님께 뒤통수 처맞고 돈 날리면, 제대 후 잊고 있던 멸공의 횃불 가사가 생각날끄야~
-금강산에 OTK컴퍼니가 돈 넣은 것도 아닌데, 날리고 말고 할 게 뭐있음?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회담을 위한 회담이라며 비난을 쏟아내던 야당과 보수 에이튜버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꽉 막혀 있던 남북관계가 한순간에 뚫리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