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8)
보는 투자자 047
47화.
인사가 끝나고 나자 데릴은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사명에서 보듯 카로스는 단지 자율주행만을 개발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처음 카로스라는 사명을 접했을 때 사륜마차를 떠올렸다. 그러나 스펠링은 Carrosse가 아닌 CarOS.
중의적인 의미로 이렇게 지은 건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동차는 석유를 연료로 하는 내연기관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 각국의 기업과 정부는 이미 내연기관차를 대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이 흐름대로라면 내연기관차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예상보다 빨리 다가오는 중이다.
그는 이어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차세대 자동차는 뭐가 될 것 같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전기차겠죠.”
차세대 자동차의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기차(EV)고, 다른 하나는 수소차(FCEV)다
어느 쪽이든 간에 전기로 모터를 움직인다는 점은 똑같다. 다만 전기차는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로 작동하고, 수소차는 내부에서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만든 전기로 작동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기차의 경우 복잡한 엔진과 미션 대신 배터리와 모터만 있으면 작동이 된다. 구조 역시 단순하기 그지없어 RC카를 크게 만드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이 아닌 신생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차와 수소차가 경쟁을 하는 구도였다.
사실 전기차는 태생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로 구동하기 때문에, 주행거리가 짧고 충전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무작정 배터리 용량을 늘리면 차체는 무거워지고 가격은 비싸진다.
내연기관차에 비해 부품이 훨씬 적게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전기차가 무겁고 비싼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은성차는 전기차가 시장경쟁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수소차 개발에 올인했다. 덕분에 세계 최초로 수소차 양산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은성차의 예상과는 달리 사실상 전기차의 승리였다.
미국의 니콜라는 전기차의 약점이라고 여겨지던 주행거리와 충전시간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사막 한복판에 거대한 공장을 지어 배터리 가격을 낮췄다.
중국의 BID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차 시장을 선도하려는 중국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세계 최대의 전기차 업체로 발돋움했다.
전기차의 성장세에 따라 각국 정부의 지원 역시 전기차에 집중되었다.
결국 모든 자동차업체들이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었고, 은성차 역시 뒤늦게 전기차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미 기술력에서 크게 뒤쳐진 상태였다.
데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에는 각종 전자장치가 줄줄이 달리고 있습니다. 네비게이션, 후방카메라, 라디오, DMB, 에어컨, 열선, 블랙박스 등등.”
보조장치 뿐만이 아니다.
옛날 자동차는 엑셀을 밟으면 연결된 기계장치가 쓰로틀을 열어 엔진으로 공기를 주입했지만, 현재는 ECU라는 전자장비가 대신하고 있다.
엑셀을 밟으면 ECU에 전기신호가 가고, ECU가 그 정보를 처리해 쓰로틀 개폐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ECU에 이상이 생기면 급발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구동장치마저 모터로 바뀌면, 자동차는 오로지 전기로 움직이는 컴퓨터가 되는 것이다.
데릴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카로스의 목표는 자율주행을 포함한 자동차의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자동차용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기획안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CEO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무게가 달랐다.
자동차용 인공지능이라······.
현주 누나가 질문했다.
“현재 다른 업체들은 이미 자율주행을 상용화하고 있는데, 카로스의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자율주행은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운전보조기능, 부분 자율주행, 조건부 자율주행, 고도 자율주행, 완전 자율주행으로. 이중 조건부 자율주행인 3단계까지는 현재 개발이 완료되어 양산차에 탑재되었고, 4단계에서 5단계는 연구 중이다.
그런데 카로스는 현재까지 어떠한 결과물도 내놓지 못했다.
데릴은 조소를 지었다.
“그런 건 그저 정해진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되는 프로그램일 뿐. 진정한 자율주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럼 어떤 게 진정한 자율주행인가요?”
내 질문에 데릴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반응하는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것입니다.”
정해진 차선을 벗어나지 않고, 교통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신호를 확인하고 출발하고, 장애물을 발견하면 멈춘다.
이 모든 것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작동한다. 규칙이 정교해질수록 오작동의 확률은 줄어든다.
실제로 구블이 개발한 자율주행차는 대도시에서의 도로실험도 여러 차례 통과했다.
하지만······.
혼잡한 사거리에서 교통경찰이 직접 수신호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통경찰의 수신호는 신호등보다 우선한다. 그런데 자율주행차가 과연 신호등을 무시한 채 경찰의 손짓을 보고 주행할 수 있을까?
뒤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를 판단해 주행을 멈추고 알아서 길을 비켜줄 수 있을까?
앞차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음주운전이라고 판단해 피해갈 수 있을까?
그 외에 주행 중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난 어째서 카로스가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은성차가 바란 것은 자율주행에 필요한 알고리즘의 개발이다. 규칙에 따라 가거나 멈추는 기계를 원한 것이다.
그러나 데릴의 목표는 전혀 달랐다. 그는 단순한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처럼 사고하며 차를 운전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을 원했다.
이러니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자율주행을 고도화시킨 다른 업체들에 비해 기술 개발이 더딘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개발하는 인공지능은 자율주행은 물론, 길안내, 탑승자를 위한 컨텐츠 제공, 자동주차, 배터리의 효율적 관리 등등 차량의 모든 시스템을 제어하는 완벽한 운영체제입니다.”
통역을 들은 택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깐. 그거 완전히 아스라다잖아.”
“그게 뭔데?”
“사이버 포뮬러에 나온 인공지능이 탑재된 머신.”
“······.”
대체 언제 적 애니메이션이야?
적어도 우리 세대는 아니다. 그 애니 본 사람들은 지금쯤 30대 아저씨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데릴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크흠!”
“······.”
뭔가 찔리는 게 있나? 설마 그 애니를 보고 자동차용 인공지능 개발을 생각한 건 아니겠지?
데릴은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은성차의 지분을 매입해줄 투자처를 찾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은성차 산하에서는 더 이상 개발이 힘든 상태입니다.”
초기에 카로스는 합작사 형태로 설립되었다.
AMZ는 IT회사답게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투자는 하되 업무에 관여하지 않았다. 때문에 데릴은 자신이 원하는 팀을 꾸려서, 원하는 기술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AMZ가 지분을 매각하고, 은성차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건 한찬영의 존재였다.
그는 자율주행 개발을 후계자 치적 쌓는 용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먼 미래를 내다본 인공지능의 개발보다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을 원했다.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에 양쪽은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찬영은 카로스에서 손을 뗐고, 그것이 매각으로 이어졌다.
난 생각에 잠겼다.
만약 그의 말대로 자동차의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운영체제를 만들어 낸다면? 그래서 인간이 더 이상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없어진다면?
자동차는 현대생활의 필수품이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자동차의 중요성은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계속 성장해 나갈 분야인 만큼, 세계 유수의 자동차와 IT업체들이 일제히 미래차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난 운전자 없는 자동차들이 도로를 누비는 모습을 떠올렸다.
모든 자동차들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배터리가 부족해지면 알아서 가까운 충전소를 찾아가 충전하고, 주인이 부르면 시간에 맞춰 정해진 장소에 멈추는.
실감나는 포르노를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되어도, 더 맛있는 피자를 빨리 배달받아 먹을 수 있게 되어도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다르다. 자동차를 제어할 인공지능이 개발된다면,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성공 가능성뿐인데, 난 두 번이나 성공을 예지했다.
개발에 성공하면, 기업 가치가 얼마나 될까?
데카콘은 시총 10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기업. 원화로는 11조 원.
이건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금액이다. 세계 자동차시장 규모를 생각해볼 때 11조가 아니라 110조가 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
순간, 온몸에 강한 전율이 일었다.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다. 성공만 한다면 이제까지 투자한 다른 모든 기업을 합친 것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난 데릴에게 물었다.
“현재 카로스의 지분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은성차가 86퍼센트, 저와 개발자들이 14퍼센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IT전문 인력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연봉이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이른다.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중소규모의 회사가 그 금액을 다 맞춰줄 수는 없기 때문에 연봉을 줄이는 대신 스톡옵션을 지급한다.
원래 직원들에게 배정된 스톡옵션은 전체 주식의 7.5퍼센트였다. 그런데 AMZ가 지분을 매각할 당시 데릴과 직원들은 사비를 털어 6.5퍼센트를 추가로 매입했다.
현재 데릴의 지분은 6.4퍼센트, 다른 직원들이 7.6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은성차가 가지고 있는 지분 86퍼센트만 매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택규의 말마따나 당장은 은성차 좋은 일 시켜주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들이 고작 1억 달러에 팔아치운 회사가 100억 달러가 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카로스가 개발하는 것은 미래차의 핵심기술. 그 기술을 선점하면, 어느 자동차기업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카로스가 데카콘이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미래에 벌어질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난 은성차에 기술을 빼앗기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은성차를 상대로 기술을 빼앗게 생겼다.
물론 나는 걔들과 다르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오는 거다.
그러니 조금도 미안해할 필요가 없겠지.
참고로 은성차가 부르는 가격을 그대로 지불할 생각은 없다. 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저쪽이니까.
은성차 입장에서도 헐값에 특허와 핵심기술을 나눠서 매각하느니, 금액을 낮춰서라도 통째로 팔고 싶어 할 테니 협상의 여지는 충분할 것이다.
이제까지 현주 누나에게 맡겼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말하기로 했다.
난 데릴을 보며 말했다.
“We will invest in CarOS.”(카로스에 투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