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1)
얼마 지나지 않아 짜장면과 짬뽕, 볶음밥, 그리고 탕수육이 도착했다.
배달 온 아저씨는 정리가 안 된 어수선한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사 오셨나 보네요. 서비스 많이 드릴 테니, 자주 시켜 주세요.”
“예.”
우리는 빈 책상에 둘러앉아 짜장면과 짬뽕을 먹었다. 간만에 먹어서 그런지 쭉쭉 들어간다. 역시 중국요리는 맛있구나.
“집은 구하셨어요?”
“이제 구해봐야지.”
“그럼 그동안은 어디서 지내셨어요?”
상엽 선배는 한쪽에 놓인 접이식 침대를 가리켰다.
“일단 여기서 먹고 자고 했지.”
“씻는 건요?”
“맞은편 건물에 찜질방 있어.”
“······.”
학교에서 봤을 때도 느꼈지만, 이 사람은 노숙 마인드가 생활화 되어있구나. 어디에 던져놔도 잘 살 것 같다.
“이제 직원도 뽑아야죠.”
“안 그래도 선배님께서 몇 명 소개시켜줬어. 급한 일은 마무리 되었으니, 슬슬 면접 봐야지.”
여기서 선배님이란 현주 누나를 뜻한다.
우리가 영종도의 호텔에서 외국 스타트업을 만나 투자하는 사이 상엽 선배는 골든게이트 직원들과 함께 열심히 국내 스타트업들을 만나러 돌아다녔다.
정신없이 일하느라 집도 못 구하고 사람도 못 구한 것이다. 이제 여유가 생겼을 테니, 슬슬 하나씩 해야겠지.
상엽 선배는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너 정기홍 알지?”
“기홍 선배요? 학과 선배인데 당연히 알죠. 얼마 전에도 한 번 봤어요.”
같은 실투아리 식구였는지라 상엽 선배 역시 기홍 선배와 친했다. 졸업은 기홍 선배가 먼저 했지만, 학번은 상엽 선배가 1년 위다.
“걔 지금 백수라는데.”
“그래요?”
KYB증권사 그만두고 PEF 쪽 알아본다더니, 잘 안 된 모양이다. 하긴 요즘 취업이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며칠 전 연락 왔어. 취직자리 알아보고 있다고 해서 한 번 만나보려고.”
“K컴퍼니에 채용하시게요?”
상엽 선배는 농담하듯 말했다.
“일단 얘기 해보고. 네가 면접 볼래?”
기홍 선배 앉혀놓고 내가 면접관으로 앉아있으면 볼만하겠다. 아예 취업 못한 선배들을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면접 볼까?
이런 게 바로 일자리창출이자 창조경제지.
난 손을 저었다.
“선배가 알아서 하세요.”
믿을 만한 상엽 선배와는 달리 기홍 선배는 입이 싸기로 유명하다. 술 한 잔만 들어가면 비밀이란 비밀이 수도꼭지 틀면 물 나오듯 쏟아져 나온다.
과내에 퍼진 온갖 소문의 출처를 알아보면, 절반 이상은 정기홍이다.
“제가 면접 보면, 다음날 학교 전체에 소문이 퍼질 걸요.”
상엽 선배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아무튼 빨리 직원을 뽑던지 해야지. 이러다가 내가 먼저 죽겠다.”
지금 보니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눈에 퀭하다. 살도 좀 빠진 것 같다.
“잠은 잘 자요?”
내 물음에 상엽 선배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럼 하루에 세 시간씩 아주 푹 자고 있지.”
난 피식 웃었다.
“그 정도면 양호하네요.”
택규가 말했다.
“우리 누나도 골든게이트에 입사하고 몇 년 동안은 잠 한 번 제대로 자보는 게 소원이었다던데.”
금융권은 이게 문제다.
돈을 벌면 뭐하나? 쓰기도 전에 죽을 텐데.
다 먹고 나자 우리는 빈 그릇을 밖에 내다 놓았고, 상엽 선배는 물을 끓여 믹스커피를 타주었다.
“일단 경리부터 빨리 뽑아야겠어. 볼펜부터 커피믹스까지 필요할 때마다 내가 마트 가서 사오는 중이라.”
원래 뭐든 시작이 힘든 법이다.
커피를 다 마신 후, 우리는 본격적인 일 얘기를 했다.
현주 누나는 OTK컴퍼니가 투자한 기업들 목록을 공용 클라우드에 올려놨다. 그리고 상엽 선배 역시 K컴퍼니가 투자한 국내 기업들 목록을 정리해 올렸다.
어느 쪽에서 투자했든 경영보고서를 받아 분석하고 관리하는 것은 앞으로 K컴퍼니가 해야 할 일이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이 기업들을 고른 기준이 뭐야?”
국적과 업종, 영업형태 등 무엇 하나 공통점이 없는 기업들이다. 듣자마자 대박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업이 있는 반면, 이게 진짜 가능한 건지 의문이 드는 사업도 있다.
“주사위 굴려서 뽑은 것들이에요.”
상엽 선배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진짜야?”
“농담이에요. 그냥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기업들만 뽑은 거예요. 이 중 10퍼센트만 성공해도 대박일 걸요.”
“그건 그렇지.”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성공할 경우 10배는 기본이고, 1만 배 이상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남은 돈은 얼마나 돼요?”
“67억.”
자본이 700억이었으니, 90퍼센트 이상을 스타트업 투자에 쓴 셈이다. 그래도 67억이나 남았구나.
이 중 10억 정도는 앞으로 뽑을 직원들 인건비와 운영비로 써야한다.
상엽 선배는 슬쩍 물었다.
“남은 돈은 내가 투자 좀 해도 될까?”
“투자하고 싶은 데 있어요?”
내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봐둔 게 몇 개 있어.”
생긴 건 둔해보여도 투자에 있어서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표정을 보니 벌써 좋은 기회를 포착한 모양이다.
“해보고 싶은 대로 해봐요. 회사 운영에 지장 없으면, 적당히 날려먹어도 뭐라고 안 할게요.”
상엽 선배는 기뻐했다.
“진짜?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하고 싶었던 걸 못해서 몸이 근질거렸나 보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몰라.
* * *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느긋하게 쉬었다.
큰 투자를 끝마쳤고, 잔고도 거의 바닥났으니 딱히 할 일이 없다.
며칠 후, 현주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은성차와 협상 끝났어.]“금액은요?”
[8800만 달러. 이제 카로스는 OTK컴퍼니 소유야.]“고생하셨어요, 누나.”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계약이란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다. 협상 내내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잘 마무리 됐구나.
처음 부른 금액이 1억 달러였으니, 12퍼센트나 깎은 셈이다. 은성차 입장에서도 빨리 처분하고 손을 떼고 싶었던 모양이다.
설마 자신들이 헐값에 팔아치운 기업이 향후 세상을 바꾸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후에요? 저도 바꿔줘요.]잠시 후, 목소리가 바뀌었다.
[헤이, 진후. 잘 지내고 있어요?]엘리였다.
“예. 엘리는요?”
[여기는 재미없어요. 다 양복 입은 아저씨들뿐이고. 진후랑 일할 때가 즐거웠는데요.]“저도 그래요.”
[(미팅 시간 다 됐어, 엘리) 아,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 연락할게요.]난 전화를 끊었다.
역시 직장인들은 바쁘구나. 상엽 선배 역시 사무실 인테리어에 직원 충원하느라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우리 둘만 하품이 나올 정도로 한가하다.
이번에는 차가 출고 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김도윤 딜러는 탁송기사와 함께 직접 집 앞까지 찾아와 우리에게 키를 건네주었다.
주택 차고에는 오택규카와 함께 회색 7시리즈와 파란색 i8이 나란히 늘어섰다.
7시리즈는 재고가 있던 반면, i8은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했는데 마침 계약이 취소된 차량이 생겼다.
처음 계약한 크리스탈 화이트가 아닌 프로토닉 블루 색상이었지만, 택규는 상관없다고 했고, 덕분에 바로 인도 받을 수 있었다.
내 눈에는 흰색보다는 파란색이 훨씬 괜찮아 보인다. 세단이라면 모를까 스포츠카는 이런 색이 잘 어울리지.
우리는 딜러의 안내에 따라 차를 살펴본 다음 서류에 사인을 했다.
“좋은 인연 맺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요하시거나 궁금한 일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살펴가세요.”
택규는 주차된 차들을 보며 물었다.
“뭐 타고 갈까?”
i8에는 두 명 이상 타기 힘들다.
난 7시리즈의 보닛을 손으로 두드렸다.
“당연히 이거 타고 가야지.”
* * *
어머니가 계신 집에 도착하니, 이삿짐 포장은 거의 마무리 되었다. 어차피 짐이 얼마 없기도 했고.
“저희 왔습니다, 어머님.”
“택규도 같이 왔구나.”
어머니는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원래 살던 집으로 이사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어머니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포장된 짐들을 트럭에 실었다.
잠시 살았던 전셋집은 다시 부동산에 내놓았다. 빨리 나가면 좋고, 아니면 계약만료일에 돌려받아도 상관없다.
“그럼 도착지에서 뵙겠습니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먼저 출발했다.
“저희도 출발해요.”
삐빅!
리모콘키를 누르자 7시리즈에서 불이 들어왔다. 어머니는 주차장에서 서있는 거대한 세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차는 뭐니?”
난 웃으며 말했다.
“이사기념 선물이에요. 어머니 타시라고 한 대 샀어요.”
내가 7시리즈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예전에 우리 집 차는 은성차의 초대형 세단 카발루스였다. 아버지가 안 타실 때는 어머니가 자주 운전해서, 대형세단을 모는 데 익숙하시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나 안전을 생각하면, 대형세단 만큼 좋은 게 없지.
“이, 이걸 진후 네가 샀다고?”
“예. 그 집은 지하철역도 멀잖아요. 장 보고 놀러 다니고 하려면 차가 있어야죠.”
“그래도 무슨 외제차를······ 이게 대체 얼마짜리야?”
“할인 받아서 싸게 샀어요. 저 돈 많으니 걱정 마세요.”
사실 돈 없어서 OTK캐피탈에서 빌려서 샀지만.
“타세요.”
내가 운전대를 잡고, 택규가 조수석에, 어머니는 뒷자리에 앉았다.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어머니는 실내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살피며 잔소리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비싼 차를 뭐 하러 사? 그냥 적당한 국산 중고차 사도 되는 걸. 얘는 살 거면 미리 엄마한테 얘기를 좀 하지. 외제차는 유지비도 많이 든다던데.”
말은 이렇게 해도 엄청 마음에 드는 것 같은 눈치다.
“그래도 BMW가 좋긴 좋네. 조용하고, 시트도 푹신하고.”
택규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제 선물도 있습니다.”
“응? 또 무슨 선물?”
“후후. 기대하세요.”
우리는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동탄 집에 도착했다.
완벽하게 수리와 인테리어가 끝난 동탄 집에는 TV, 냉장고, 세탁기를 포함한 각종 가전제품들이 다 들어와 있었다.
저번처럼 서성디지털프라자에 가서 최고급품으로 싹쓸이 쇼핑을 해온 것이다. 수천만 원이나 되는 금액은 택규가 결제했다.
“제가 드리는 이사선물입니다, 어머님.”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살다 살다 이게 대체 뭔 일인지 모르겠네.”
직원들이 이삿짐을 나르는 동안 어머니는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가전제품을 만져보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가구는 일부러 안 샀으니까, 취향에 맞게 주문하세요.”
이삿짐 정리가 끝난 후.
우리는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하는 일은 좀 어떠니?”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어요. 그래서 말인데······.”
난 어머니께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앞으로 1년 정도 택규랑 여행을 다니며 공부를 좀 해보려구요.”
* * *
예지로 찾아낸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끝났고, OTK컴퍼니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당분간은 내가 할 일은 없다.
원래는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복학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일들을 겪으며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이번 투자를 하며, 여러 나라의 젊은 창업자들을 만났다. 단지 큰돈을 버는 것을 떠나, 그들은 꿈이 있고 목표가 뚜렷했다.
그리고 현주 누나와 엘리가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금융권이 만만치 않은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
“영어도 좀 더 배워야하고.”
“너 영어 잘하잖아.”
“그렇지 않아.”
물론 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수능과 토익용으로 배운 영어인지라 어휘력의 한계가 분명했다.
비즈니스를 하려면 좀 더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너도 배워야지.”
택규는 깜짝 놀랐다.
“나는 왜? 너가 하면 되잖아.”
“언제까지 내가 통역해줄 수는 없잖아. 그리고 혼자 있을 때도 생각해야지.”
“배우면 뭐가 좋아?”
“게임할 때 편할 거야.”
“······.”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익혀야 한다. 중국어나 스페인어도 배우면 좋겠지만, 우리 둘 다 그 정도 여력은 안 될 테고.
“앞으로 1년 동안 세계와 금융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
“그냥 여행이든 공부든 너 혼자 하고, 난 집에서 게임하면 안 될까?”
“응. 안 돼. 짐 챙겨.”